‘김 위원장 사망’, 경향은 사진으로 조선은 글로 “걱정”

곽윤섭 201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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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뒤집어보기]
 김정일 시대 이후 북한 권력 구도에 초점 맞춰
 보수-진보 신문들 간 의미 있는 차별성은 없어

 

                                                          ▶‘나경원 페인트사건’, 온라인 바다의 편집자    

                                                          ▶신문 1면에 그려진 스티브 잡스의 두 얼굴 

                                                           후보정의 한계는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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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9일 김일성 주석 사망 때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조기가 걸려있는북한땅.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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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9일. 서울역에서 김일성 사망 소식을 접하고 있는 시민들.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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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7월 9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필자는 상도동으로 기억되는 어떤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과 철거반원들 간의 대치상황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때도 철거민들은 약자였고 철거반원들은 용역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로’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돌멩이가 난무하고 서로 쇠파이프를 든 채 일촉즉발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참으로 사진찍기가 어렵다. 겁이 나서가 아니라 양쪽의 대치가 한꺼번에 보이는 앵글을 찾는 것이 난감해서 그렇다. 물론 돌멩이를 맞으면 카메라가 박살나므로 조심스럽기도 했다.
 
 돌멩이와 쇠파이프가 난무한 싸움도 멈추게 한 ‘김일성 사망’
 
 아침부터 현장의 골목에서 이리저리 피하다가 숨다가……. 그게 아니고 피하다가 찍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점심 무렵 되었나 싶었는데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밥 먹을 때가 되었다고 해서 싸움을 멈추기로 합의하는 일은 좀처럼 벌어지지 않기 때문에 갑작스런 적막감은 신기할 정도였다. 어느 편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김일성이가 죽었대!!!!”, “뭐? 그럼 전쟁 나는 거야?”, “어이구! 어쩌지? 큰일 나는 거 아냐?” 이런저런 웅성거림이 양쪽으로 번져나갔다. 당연히 더 이상 돌멩이가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게 되었고 누가 먼저 제의한 것도 아닌데 잠정 휴전상태에 돌입했다.
 가장 마음이 바빠진 것은 필자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철거현장은 큰 이슈였지만 북한 지도자의 사망은 더 큰 이슈였으므로 망연자실해하면서 싸움을 중단한 철거민과 철거반원들을 뒤로 한 채 급하게 주차해둔 곳으로 달려갔다. 어디로 가서 뭘 찍어야 하나? 회사에 전화를 걸고 홀로 동분서주했다. 당시 신문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7월 8일에 사망했고 하루 만에 발표했으며 7월 10일치 모든 신문의 1면은 ‘김일성 사망’을 알리고 있다. “외국조문사절을 받지 않는다”거나 “체제 굳힐지 주목”이라는 것을 보면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다룬 신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2011년 12월 19일은 월요일이었다. 12시 정각에 문자로 뉴스속보가 떴다. “김정일 사망.” 반신반의했으나 이번엔 달랐다. 북한의 TV매체를 통해 소식이 전해졌다. 낮 12시 발생사안은 조간신문들로서는 마감을 위해 대처할 시간이 많은 편이다. 물론 19일에 신문 만들어서 그 다음날 아침인 20일치 지면에 기사를 싣는 작업인데 과연 아침에 신문을 받아들고서야 “아니 김정일이 죽었어?”라고 할 독자가 몇이나 있을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안 되는 시골이라면 신문도 배달되지 않을 것이다. 관심이 있는 모든 국민이라면 눈감고 귀 막고 꾹 참았다가 20일치 아침 신문으로 “김정일 사망”을 접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심층적 사안이므로 신문 같은 핫미디어의 효용성이 조금 필요한 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크기보다 사진의 선택에서 승부 갈림길
 
 주요 일간지들은 모두 1면에 김정일의 사진을 실었다. 사실 이번에는 낮 12시에 “김정일 사망” 1보를 듣자마자 다음날 아침 각 신문의 1면 구성이 궁금했다. 스티브 잡스의 사망과 김정일의 사망은 여러 면에서 다른 사안이다. 분단국가에서 상대국의 지도자가 사망했으니 여러 가지 민감한 대목이 있다. 과연 1면은 어떻게 만들 것이고 사진은 어떻게 쓸지 자못 흥미진진했다. 20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가판대에서 대충 살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진만 놓고 볼 땐 보수성향의 신문과 진보성향의 신문 간에 의미 있는 차별성은 없었다. 제목과 편집방식을 종합하면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역시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아닌 것 같다. 굳이 가르자면 아래 세 신문은 사망 이후의 변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동아 “북, 29세 청년에게 넘어가다”
 조선 “66년 왕조 기로에 서다”
 한겨레 “김정일시대 종언…. 격랑의 한반도”
 아래 다른 세 신문의 큰 제목은 짧게 맺었다. 짧다고 사안 자체가 가벼움을 뜻하진 않는다. 오히려 짧은 제목이 더 강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경향, 서울, 중앙 “김정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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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신문의 1면 사진을 비교해보자. 경향과 서울신문이 두 장씩을 썼고 나머지는 한 장을 크게 키웠다. 역시 물리적인 사진의 크기가 중요하다. 이 점에서 조선과 한겨레는 두께가 비슷한 가로 통단으로 거의 같고 나머지도 정방형, 세로로 사용하면서 비슷한 크기를 유지했다. 이번 “김정일 사망”의 사진 사용 승부는 크기보다는 사진의 선택에서 갈려진 것 같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상황에선 후계자수업을 해왔던 김정일의 승계가 기정사실화되어있었지만 2011년 “김정일 사망”상황에선 경우가 조금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다. 장의위원 1번으로 발표된 김정은의 경우 후계자로 지목받은 지가 채 몇 년이 되질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늘 그게 고심거리였다. 나라 안과 나라 밖에서 모두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러므로 이번 상황에선 남쪽의 신문이나 외신들이 모두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포스트 김정일시대의 북한 권력 구도”였던 것이다.

 

 AP 제공 사진 원본 설명에는 ‘걱정스럽다’는 표현 없어

 

 그런 점에서 조선과 경향의 1면 사진이 가장 핵심에 근접해있다. 이 사진은 2010년 10월 10일 촬영된 AP통신의 것으로 조선의 설명은 “17일 사망한 김정일(오른쪽)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10월 10일 평양에서 개최된 조선노동당 창건 6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후계자인 삼남 정은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는 김정일이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19일 발표했다”로 되어있다.
 경향의 캡션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0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당 65주년 군사퍼레이드를 참관하던 도중 아들 김정은을 바라보고 있다”이다. AP가 제공(릴리즈)한 원래 영문캡션은 알 수 없지만 직역한 한글 설명은 아래의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지난해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6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벌어진 군사 퍼레이드를 아들 김정은과 함께 참관하고 있다”
 경향은 거의 원문에 가깝고 조선은 ‘걱정스러운 눈으로’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사진의 내용에 앞서 캡션만 놓고 보면 조선은 ‘조선스러운 시각으로’ 설명을 달았다. 캡션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감정 이입 없이, 그러니까 자의적인 형용구 없이 직설적으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경향과 조선이 사용한 사진을 보면 김정일의 시선은 그야말로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스러운’ 같은 자의적인 수식어를 캡션에 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판단은 사진을 보는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
 
 놀랍게도 사진설명을 끝까지 다 읽는 독자는 별로 없다.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사진을 보다가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경우에 캡션을 참고하며 끄덕거리는 정도에 그친다. 그러므로 조선의 캡션에 대해 길게 이야기할 일은 아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선과 경향의 사진이  원래 같은 원본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경향의 경우 김정은과 김정일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 조선의 사진에선 둘의 거리는 비율로 보면 절반 이상 좁혀져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왜 그렇게 했을까?

 

 김정일-김정은 얼굴 키우려 원본 잘라 합성하거나 떨어진 거리 그대로 살리거나


 원래 AP통신이 제공한 사진, 서울신문에서 작게 쓴 사진을 보면 조금 추리가 가능해진다. 이 사진이 찍힌 장소는 김일성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주석단이다. 둘의 아래쪽엔 콘크리트축대가 있고 머리 위로는 대리석의 배경이 있다. 그리고 둘 간의 간격은 경향의 사진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 조선일보는 원본 사진을 잘라서 둘 사이의 공간을 대폭 제외해 합성했다. 그 바람에 둘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 있었다. 가까워지면 얼굴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그냥 두 사진을 합성하긴 이상했는지 오른쪽 김정일은 흑백으로 바꾸고 왼쪽 김정은은 그대로 컬러를 살렸다. 사망한 인물의 경우 흑백으로 쓰는 일이야 비일비재하니 재치를 발휘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조선일보의 사진은 합성이며 합성이라고 캡션에 밝히면 별문제가 없다. 레이아웃을 위해 가로를 세로로 만들고 세로를 가로로 만들면서 공간에 들어있는 요소의 위치를 옮겼던 사례가 없진 않다. 대표적으로 유명한 사안은 사진집 “A Day In The Life of America“를 들 수 있다. 원래 가로였던 이 사진을 책의 판형 때문에 세로로 만들면서 달과 카우보이와 나무의 위치를 변형시켰다. 이때도 논란이 있었으나 최소한 보도사진은 아니었다. 신문의 사진은 레이아웃의 한 요소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럴 땐 그래픽 처리를 했다는 것을 캡션이나 크레딧을 통해 밝혀주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 않고 아무런 설명없이 보도사진으로 활용된다면 그것은 조작이라 불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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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볼 때 경향신문은 ‘고지식하게’ 원본 사진을 길게 자르기만 했을 뿐 두 인물의 거리를 조절하지 않았다. 그 탓에 얼굴 크기가 작게 나왔다. 오랫동안 편집을 해온 선배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건 조선이 바보짓을 한 거다. 둘의 거리가 멀수록 사실은 더 걱정스러워 보일 수 있다. 물리적 거리는 연륜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하고 믿음의 간극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경향이 더 잘 썼다”고 해석했다. 명쾌한 지적으로 보인다.

 2011년 ‘김정일 사망’ 정국에서 가장 큰 키워드는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노골적으로 ‘걱정스럽다’는 캡션까지 달고 얼굴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물리적 공간을 쳐내며 합성까지 하고 “기로에 서다”는 제목까지 달면서 ‘걱정’하고 있다. 제목에선 신문사의 성향에 따라 자의적이며 주관적이며 개입하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보도사진에선 그렇게 해선 안된다. 정말 “걱정스럽다”
 
 덧붙이는 관전포인트

 

 경향과 서울신문의 사각형 사진은 같은 원본에서 나왔다. 그런데 다르다. 자세히 보면 경향은 김정일의 얼굴이 왼쪽으로 약간 기울었다. 서울은 수직으로 서있다. 배경을 보면 어떤 구조물이 있다. 따라서 둘 중의 하나는 원본이고 하나는 사진의 각도를 튼 것이다. 원본을 못 찾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원래 사진의 수평에 손을 댔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각도만 약간 틀었는데 두 사진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판단은 여러분께 맡긴다. 동아는 두 인물이 같이 나온 사진을 썼다. 역시 김정일의 사망 못지않게 권력 승계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가로사진만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장을 쓰긴 싫었는지, 혹은 조선처럼 합성을 하기도 싫었는지 알 순 없지만 고육지책이다. 베일에 쌓인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려는 중앙일보와 한 시대에 ‘종언’을 고한다는 느낌을 주는 한겨레신문은 그저 그렇다. 신문을 만드는데 정답이란 게 있을 수 없다. 각 신문사가 나름대로 선택을 할 뿐이다. 그리고 독자들의 판단이 있다. 아무래도 이날 1면 사진으로는 손대지 않은 원본을 그대로 쓰는 것이 정답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어떤 신문사도 그러지 못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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