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사진, 사진같은 영화

곽윤섭 2011. 09. 02
조회수 16328 추천수 0

 독일의 영화 거장, 빔 벤더스의 사진에세이집 <한번은>  

 인간이 된 천사의 시선으로 ‘영원같은 딱 한 번’ 찰칵

“장소와 그 곳의 사물들의 외침과 이야기”를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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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에 처음 사진을 찍었고 열두 살에 자신만의 암실을 만들었으며 열 일곱 살에 라이카를 처음으로 선물받아 사진에 몰두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1984년에 <파리, 텍사스>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영화감독의 입지를 굳힌 다음에 비로소 자신의 사진을 인화하기 시작했고 1986년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파리, 텍사스>외에도 <베를린천사의 시-1987년 칸영화제 감독상>,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등의 영화로 전세계에 이름을 떨쳤으며 한국에도 팬이 많은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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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사진에세이집 <한번은>이 나왔다. 영화의 촬영현장 스틸컷을 직접 찍거나 촬영을 위한 장소 헌팅을 하면서 영화감독이 사진을 찍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출발점에 있어서 사진과 영화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으므로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그런 차원을 넘어선 진짜 사진가다.


빔 벤더스의 <한번은>에 실린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잘라서 인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영화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말처럼 “모든 사진은 한 편의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진에세이집이라곤 하지만 사진의 비중이 훨씬 높다. 낱개의 사진보다는 시리즈사진의 비중이 더 높다. 그래서 사진 사이사이에 적힌 글을 중얼거리며 이 책의 사진을 음미하면 나레이션이 있는 영화를 보는 착각에 빠진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초반부에서 천사 다미엘은 실제 몸으로 부대끼지 않기 때문에 ‘아픔이 뭔지도 모르는’ 천사생활의 변화없는 지겨움을 불평한다. 영원히 살 수 밖에 없는 천사보다 매순간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다. <한번은>에서 사진가 빔 벤더스는 로드무비를 찍듯 전 세계의 대륙을 훠이훠이 쏘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순서도 없고 맥락도 없다. 이것은 인간이 된 천사의 시선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 후반부에서 천사 다미엘은 가짜 천사날개를 단 공중곡예사 마리온을 사랑하게 되어 천사 직분을 버리고 인간이 된다. 인간이 된 첫날을 보낸 후 다미엘은 말한다. “딱 한번이었는데도 영원처럼 느껴진다” 사진의 속성처럼 들렸다. 한번 셔터를 눌렀을 뿐인데 그 사진은 영원하고 유일하다.

 빔 벤더스의 책 <한번은>에서 ‘한번은’이라는 단어는 딱 한번 마주친 장소이며 딱 한번만 존재하는 사진 속 시간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빔 벤더스는 “장소와 그 장소에 존재했던 사물들의 외침과 이야기”를 찍는다고 말한다. 영화를 찍듯 사진을 찍은 덕분이다.

 

빔 밴더스의 사진에세이집을 보고 나니 그의 사진전도 보고 싶어졌지만 한국 전시는 확정된 것이 없다. 그러나 이 가을 부산영화제에서 빔 벤더스의 최신작 <피나>가 상영된다고 하니 위안이 된다. 2011년 베를린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었던 <피나>는 흔치않은 3D예술영화다. 올해 2월 독일에서 개봉, 예술영화임에도 불구하고 6개월 이상 상영된 거장의 걸작이다. 영화는 정지사진의 연속이니 사진을 감상하듯 영화를 보면 좋겠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에세이집 <한번은> 구매하러 가기  cov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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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빔 벤더스의 사진에세이집 <한번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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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가 만든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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