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같은 초현실, 초현실 같은 현실

곽윤섭 2015.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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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4년째 작업하고 있는 울라 레이머의 특별회고전

사진기자로 일하다가 파인아트로...존재 혹은 부재 메시지 

합성으로 오해받기도...재건-파괴 공존하는 서울은 역동적

 

ualla06.jpg » Etre ou ne pas paraitre

 

한국에서 4년째 거주하며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초현실주의 사진가 울라 레이머의 특별회고전이 강원도 홍천군 서면 한치골길 262에 있는 ‘THE GALLERY D’에서 열리고 있다. 이 갤러리는 대명 비발디 파크의 메이플동에 있으며 28일까지 열린다. 지난 7일 춘천의 한 닭갈비 집 저녁 자리에서 처음 인사를 나눴고 11일 한겨레신문사 9층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 기사를 읽기 전에 사진을 먼저 보고 그리고 다시 기사를 읽으면 조금이라도 울라의 사진을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사 읽고 사진을 보면 곤란하다.
  무슨 말이냐면 어렵다는 뜻인데 그래도 대단히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작업들이다. “어떻게 찍었지?”라는 의문이 들어도 작가에게 잘 물어보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엔 두 세 번 물었다. 친절하게 인터뷰에 응했고 답도 시원시원하게 잘했다. 몇 안 되는 경험이지만 외국 사진가들과 인터뷰를 하면 대부분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답을 하는 편이다. 몇 안 되는 경험이지만 한국 사진가들과 인터뷰하면 꽤 많은 부류가 에둘러 말하고 모호하게 말하고 듣다 보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소릴 한다. 어렵게 말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ulla.jpg » 울라 레이머
 
 울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사진일을 시작했다. 오래전 이야기라 이제는 편하게 말할 수 있는지 몰라도 기구한 과정이 눈에 선했다. 울라의 어머니는 프랑스인, 아버지는 독일인으로 울라는 독일서 태어나 학교도 다녔다. 어떻게든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어릴 때 피겨스케이팅을 했고 울라를 취재하러 오던 기자에게 신문사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16살에 처음 신문사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청소년이니 신문 포장 등의 잔 일을 하다가 사진 찍는 일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는데 편집국에서 3번의 시험 취재를 시켰다. 그게 마약, 마피아 관련 등의 취재였는데 이걸 다 해내니 정식으로 기자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울라 이름으로 사진이 나가지 않았다. 보복이나 추적을 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울라는 “앞만 보고 갔으니 주변에서 일을 잘한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유럽 최초의 여성 사진특파원도 했고 힘이 많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거침없이 일하는 나를 신문사에서 이용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그넘, 감마, 시그마 같은 사진통신사에서 스카우트제의가 왔는데 조건이 맞지 않아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10년간 사진의 저작권이 몽땅 통신사에 넘어간다는 게 싫었다는 것이다.

  1982년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너 자이퉁을 떠날 때까지 세 군데의 신문사를 거쳤다. 울라는 당시 본인사진이 실렸던 신문을 보여줬다. 목에 흑백, 컬러, 망원, 플래시용까지 카메라 4대가 주렁주렁 달려있었으니 그가 어떻게 일을 하는 스타일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시네텍이란 에이전시를 자신이 만들고 4년을 더 일을 했다. 로저 무어, 미키 루크 등 당시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과 전속 계약을 맺어 사진 작업을 했고 돈도 꽤 벌었다. 1986년에 시네텍도 관두고 1년간 놀았다. 울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시작했고 피로가 누적되어 몹시 힘이 들었다. 과장하자면 1년간 잤다. 하하하”라고 웃었다.

 

ualla01.jpg » Highway to Eden _ e print 80x120 cm , limited edition

ualla02.jpg » Wings of Fantasy_ silver print 49x49cm_ frame 70x70cm limited edition

ualla03.jpg » Highway to Eden _ e print 80x120 cm , limited edition

ualla04.jpg » Wings of Fantasy_ silver print 49x49cm_ frame 70x70cm limited edition

ualla05.jpg » Wings of Fantasy_ silver print 49x49cm_ frame 70x70cm limited edition     
 
 올라는 1987년에 다큐멘터리가 아닌 파인아트 사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1988년에 열었던 최초의 전시는 ‘온-오프(ON-OFF)’는 파인아트가 아니었고 할리우드 유명배우들의 작업이었다. 이번에 한국에서 열리는 회고전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첫 부분이  ‘온-오프(ON-OFF)’이며 알랭 들롱, 로버트 드니로, 미키 루크 등 한국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들의 젊은 시절 모습이 포함되어있다. 울라의 첫 파인아트 작업은 ‘세리 누와르(Serie Noire)’이지만 그 후에 펼쳐질 본격적인 초현실주의 사진의 징검다리 정도다. 한국회고전의 두 번째 부분이 제대로 된 첫 창작이라 할 수 있는 ‘에트르 우 느빠 파레트르(Etre ou ne pas paraitre)’다. 바로 이 사진들에서 “어떻게 찍었지? 이게 사진인가 합성인가?”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게 뭔가?
 “트럭에다 프레임, 창문 등 여러 소품을 싣고 다닌다. 바닷가를 포함해 프랑스 여러 곳에서 찍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심각해졌고 진지한 사진을 찍어야 했다. 존재와 부재에 대한 인식…. 장 노출이 필수적이다. 거울 같은 상징물을 활용했고 때에 따라 8천 와트짜리 플래시를 사용하기도 한다. 작업비밀이니 너무 많이 쓰지 말라. 하하. 어느 타이밍에 셔터를 누르는가, 이게 중요하다. 한 달 동안 테스트 촬영을 하고 모든 것이 확실해지면 제대로 된 무대와 모델을 세우고 한 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합성은 전혀 하지 않는다. 다중 노출도 없다. 이런 질문이 많았는데 네거티브 필름 원본을 공개하여 논란을 종식시켰다. 설치를 하지만 어쨌든 한 번의 셔터로 끝이 난다”
 -강하게 다가온다. 반향이 컸을 것 같다.
 “처음에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때 30대 초반이었는데 ‘이게 무슨 귀신이야기냐?’라며 이해하지 못하다가 10년 정도 지나면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엔 나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사진을 가리키며) 이것은 사람이길 포기한 사람이 짐승으로 변해가는 단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젠 말할 수 있지만 정말 힘들었다.  (또 다른 사진을 가리키며) 모래를 뿌리면서 남자가 보인다. 존재 혹은 부재의 메시지가 들어있다. 그게 꿈이든 기억이든 당신이 존재라고 인식하는 것의 소멸에 대한 작품들이다.

 

ualla07.jpg » Etre ou ne pas paraitre _expo 33

ualla08.jpg » ON OFF_Mickey Rourke 1985

ualla09.jpg » URBAN DREAM_copyright by Ulla Reimer

ualla10.jpg » URBAN DREAM_copyright by Ulla Reimer    
 
 세 번째 부분은 ‘윙스 오프 판타지(Wings of Fantasy)’로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의 후원으로 제작된 것이다. 울라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나는 단 한 명의 모델과 일을 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클레어다. 전문 모델 출신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문모델들은 모델 포즈에 굳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사진 위쪽에 보이는 갈매기를 정확한 위치에 불러오기 위해 몇 일 동안 하루종일 ‘새우 던져, 새우 던져’를 외치면서 촬영했다. 나는 핫셀카메라의 망토 같은 것을 뒤집어 쓰고 모델이 이 자세 그대로 버텼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 이 사진 찍고 나서 한동안 나하고 눈도 안 마주치더라. 하하하. 그리고 여기 비행기 위에 여자가 누드로 서있는 이 사진. 큭큭. 이곳은 군사지역이라 군인들이 지키는 가운데 촬영했다. 2백 명의 남자 앞에서 누드를 찍으려니 클레어가 당황해서…. 그런데 이 사진은 일본전시에서 금지되었다.”
 -일본에는 아라키도 있는데 무슨 소리인가?
 “아라키?는 일본 사람이고 나는 프랑스사람이잖아. 하하하. 그런 것도 있지만 장르 구분을 정확히 해야 하니까 그렇다. 아예 누드컨셉의 전시면 모두 누드를 걸어도 되는데 내 전시는 그게 아니다 보니….”
 
 듀안 마이클의 영향을 받진 않았는지 묻자 간명하게 “전혀 아니다”라고 말한 울라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세 명의 예술가에 대해 말했다.
 “최초의 인물은 안셀 아담스다. 그의 암실 작업을 피해갈 수가 없으니 큰 영향을 받았다. 13살에 최초로 안셀 아담스의 사진집을 봤는데 첫 페이지에서 소름이 끼쳤다. 그리곤 산에 올라가서 구름 아래 흔들리는 나무와 숲을 하루종일 보면서 나도 사진가가 되고 싶다. 어떻게 찍었지? 처음엔 많이 흉내 내고 그랬다. 두 번째 인물은 세바스치앙 살가두인데 그는 예술성이 곁들여진 다큐멘터리를 창작한다. 살가두는 ‘아프리카’ 이후로는 사진보다 사진에 관한 비즈니스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목적이 뭔지를 알기 때문에 좋게 생각한다. 살가두는 환경을 보호하려는 활동가라는 지적에 동의한다. 세 번째 인물이자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은 르네 마그리트다. 무슨 말인지 알지?”
 
 회고전의 네 번째 부분은 ‘하이웨이 투 에덴(Highway to Eden)’으로 이 작업에 영향을 준 것은 프랑스의 대문호 샤를 보들레르다. 보들레르의 시 ‘이방인’을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업부터 더 이상 모델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 시리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해체하고 변화시킨 뒤 다시 혼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서울과 프랑스를 왔다갔다하면서 양국에서 작업했다. (사진을 가리키며) 이거 서울이다.
 
 -한국에서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딸을 가지기 전에 8년 정도 일본에서 활동했다. 나이 40에 딸이 태어났는데 계속 일본에 있으려다 애는 모국에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프랑스로 옮겼다. 그리고 사진작업을 거의 중단한 채 아비뇽에서 16년간 딸 뒷바라지에 전념했다. 거기가 좀 시골이다. 도시 생활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다. 그러다 2012년에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하자고 해서 처음 서울을 방문했다. 이름만 프랑스지 아비뇽 시골에 있다가 서울의 고층건물을 보니 너무 좋았다. 딸하고 담판을 했다. ‘엄마는 이제 나의 생활을 찾아야겠다’고 선언했다. 그게 2012년이고 그때부터 프랑스와 서울을 왔다갔다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비행기 값이 너무 많이 들고 해서 집을 하나 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전시를 꽤 많이 했다. 지난해엔 금천구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봉제공장을 찍어서 서울 시민청에서 전시를 했다. 건강한 패션생태계를 위한 시도로 ‘금천 제조’ 프로젝트였다. 
 
 현재 울라는 비주얼 아티스트 연유진과 함께 사진, 영상 등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날 통역을 맡은 연유진이 울라의 이야길 거들어줬다. 울라는 딸을 키우는 과정에서 암이 발병했고 다 나은 다음 딸과 함께 베트남으로 가 2년 동안 어려운 처지의 청소년들에게 사진을 가르쳤다. 사진을 가르쳤지만 재활과 극복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암을 이겼는데 너희들도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만들었다. 그 후로도 울라는 인도주의적 어린이 창의성 개발 프로그램을 매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안셀 아담스나 살가두는 초현실주의 사진가가 아니다. 랄프 깁슨 같은 초현실주의 사진가의 사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진가들의 작품은 어떻게든 많이 안 보려고 노력한다. 일단 다른 사진가들의 작품을 보고 나면 그게 카피든, 오마주든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지 간에 영향을 피할 수가 없다. 나의 사진은 초현실주의에 속하는데 고전적인 초현실주의다. 이 선을 넘어서 버리면 그래픽 아트로 변한다. 물론 그 영역을 존중한다. 아 그런데 내가 사진을 가르칠 땐 다르다. 선택은 사진을 배우는 분들의 것이므로 그래픽 아트를 포함해 다양하게 가르친다.”
 
 -도시가 좋아서 서울에서 산다는데 다른 도시가 아니고 왜 서울인가?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화된 도시는 아니지 않은가?
 “1979년에 인도에 파견되어 사진을 찍으면서 처음 불교와 접했고 신자가 되었다. 나는 윤회사상을 믿는다. 지금 한국에서 머무르면서 작업하는 이유 중에는 이곳에 사찰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엔 없지만 불교를 테마로 한 사진작업도 꽤 있다. 게다가 서울은 역동적이다. 재건과 파괴가 동시에 공존한다. 예를 들어 같은 대도시라도 도쿄와 비교한다면 서울은 전혀 다른 곳이다. 나에겐 서울의 이런 점이 매력적이다. 2016년까지 총 4년간 작업하는 이것이 바로 서울에서 느끼는 영감을 표현해낸 것이다. ‘하이웨이 투 에덴’까지만 내 사진에 형태가 있었지만 이번부터 형태가 없다. 관찰이 아니라 사유다.”
 
 회고전의 다섯 번째 부분이 바로 ‘어반 드림(Urban Dream)’이다. “재건과 파괴가 공존하는 도시 서울”이라는 울라의 표현이 이해가 된다. 두 장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하는 딥틱(Diptych) 형식으로 전시하는 이 사진들은 정말 사진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실재하는 것을 찍은 사진이 맞다. 뭘, 어떻게 찍으면 이렇게 나오는지 울라는 친절하게 설명할 기세였으나 듣기를 중단했다. 그걸 알아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전시장이 서울이 아니긴 하지만 한 번 가볼 것을 권한다. 울라의 작품들 중에는 에디션이 모두 팔려버린 (솔드 아웃) 사진이 많다고 한다. 그럴 것 같다. 보고 있으면 깊이 빠져들 것 같으니 이걸 사서 걸어 둘 만한 사람이 꽤 있지 않을까?
 
 
 

곽윤섭선임기자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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