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522곳 5일장터, 정이 불러 정을 찍다

곽윤섭 2015.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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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전국 5일장 순례기'

소설 쓰다가 빠져들어 30년 동안 샅샅이…부부 사진전도
“나에겐 놀이…사람도 기다리고 나물도 방긋방긋 눈맞춤”

 

 

5-005.jpg » 2010 영천장/정영신

 

 30년 동안 전국의 522개 장터를 빠짐없이 훑고 다닌 정영신씨(58)의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가 나왔다. ‘전국 5일장 순례기’는 2012년에 정씨가 펴낸 사진아카이브 ‘한국의 장터’의 속편에 해당한다. 경기 강화 풍물장의 “안녕하시까? 여기 세 그릇 주시겨” “오셨시까?”부터 경남 의령장의 “와 이리 헐노? 이 고추 때깔 좀 바라. 올메나 곱노”와 순천 아랫장의 “아따메 징허요, 여그 앉을 자리 없어라”를 거쳐 제주 모슬포장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좋쑤과. 일 킬로에 얼마우꽈”에 이르면 시장 냄새가 팍팍 난다. 책에 든 사진도 모두 정씨가 직접 찍었으므로  현장감이 100% 전해진다.
책이 나온 날에 맞춰 부부 다큐멘터리 사진가 정영신씨와 조문호씨(69)가 함께 만든 사진전 ‘장에 가자’가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되었다. 정영신씨는 사진 이전에 소설가이며 조문호씨는 ‘전농동 588번지’, ‘87 민주항쟁’, ‘인사동사람들’ 등 열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최근에는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사진집’을 낸 베테랑 사진가다. 두 사진가를 20일 눈빛출판사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5-017.jpg
 
 -5일장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언제인가? 사진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이며 남편 조문호씨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쓰다 보니 사람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다. 어릴 때 우리집에서 조금만 가면 장이 었고 차 타고 조금만 가면 함평장이어서 장날에는 엄마 따라 장에 가곤 해서 익숙했다. 그 후로 힘들고 뭐가 잘 안되면 장터를 찾곤 했다. 84년에 시작했고 조세희선생이 쓴 ‘침묵의 뿌리’를 보고 ‘사진이 이런거구나’라고 첨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 낙원동에 있는 ‘한국사진학원’에서 인화하는 것까지 배웠다. 그 때 선생님들이 ‘길을 찍으면 어떠냐?’고 안내하기도 했는데 나는 신춘문예에 자꾸 떨어져서 낙담도 되었고 또 소설의 소재도 찾을 겸 장터를 찍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조문호씨가 이어갔다.
 “나는 70년 후반 부산에서 국악 하는 술집 ‘한마당’을 경영했다. 단골손님 중에 최민식선생이 있었는데 어느날 ‘휴먼2집’을 들고 보여주더라. 그래서 사진을 시작했고 신세 조졌다. (하하) 최민식선생 따라 다니곤 했는데 이분이 뭘 이래라 저래라 짚어주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어깨 너머로 배운 셈이다. 최민식선생이 술집 말고 사진학원을 하나 여는게 어떠냐고 그래서 서울에 있는 ‘한국사진학원’에서 구경을 좀 했으나 별로 도움이 안되었다. 최선생 덕에 사진에 빠졌으니 사람을 찍으러 다녔다. 자갈치도 가고… 장사는 주인이 해야 하는 법인데 맨날 사진 찍고 다니다 보니 그 잘되던 술집이 망했다. 그래 먹고 살기가 막막해서 81년에 야반도주하듯 서울로 갔다. 월간사진 발행인 황성옥씨를 만났는데 편집장을 하라고 그래서 한 4년 했고 다음엔 ‘한국사협’ 편집장을 했다. 이무렵에 인사동에 암실(지금의 스튜디오) ‘꽃나라’가 있었고 동아리로 ‘진우회’가 있었는데 회원들이 다들 술을 좋아해서 ‘진로회’라고 소문이 났다. (하하) 신희순선생이라고 계셨는데 인화를 잘하셔 사협이나 국전에 사진을 내면 대상을 받게 해주는 분이었다.”
 
 이 대목에서 다시 정영신씨가 말을 받았다.
 “당시 진우회엔 여자 회원이 드물었다. 그 신선생이 ‘조문호는 여자가 옆에만 가면 손끌고 여관으로 직행하는 사람이니 손도 잡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마라’고 해서 피해다녔다. 그때부터 25년 넘게 나를 쫓아다녔다는데 그건 알 수가 없고 결국 인연이 이렇게 되었다. 2005년 무렵 엄마가 입원을 했는데 간병인 같은게 없어서 내가 홀로 병실을 지켰다. 그때 조문호씨가 두 달 반을 매일같이 병원에 와서 밤을 새더라. 녹번동 서부병원 10인실 그 좁은 곳에서 ‘여자 좋아하는’ 조문호씨가 여관가자는 소리 한번 안하고 버티더라. 여관 가기 싫어서 우리 집으로 데려갔다. 지금도 고민하는게 그 때 여관 한번 갔었으면 지금 이렇게 안되었을 건데…” 조문호씨 부부와 눈빛 이규상 사장이 함께 박장대소했다.

 

5-001.jpg » 1987 담양장/정영신

5-002.jpg » 1988 순창장/정영신

5-003.jpg » 1988 진천장/정영신

5-006.jpg » 창녕 이방장 2011 /정영신

5-008.jpg » 2013 진도장/정영신

5-009.jpg » 2013 해남 송지장/정영신

5-010.jpg » 2013 완주 삼례장/조문호

5-011.jpg » 2012 울산 언양장/조문호

5-012.jpg » 2013 나주 세지장/조문호  

5-014.jpg » 2012 정선아리랑시장/정영신        

5-015.jpg » 2013 정선아리랑시장/조문호

5-016.jpg » 2014 정선아리랑시장/조문호
 
 -30년간 장터는 어떻게 변했는가?
 “가장 큰 변화는, 장옥이 다 바뀌었다. 규격화한다면서 시멘트로 발라버려서 다 망쳤다. 겨울엔 (시멘트가) 썰렁해서 사람들이 안들어간다. 옛날엔 장이란게 장에 나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최고모습을 보여주는 무대같은 곳이었는데 텔레비전이 시골 구석구석 들어온 이후론 변했다. 옛날엔 도시사람이나 낯선 사람을 보면 신기해했는데 이젠 텔레비전에서 다 보셨으니… 어르신들이 카메라를 보면 초상권을 말씀하실 정도다. 기업화된 장돌뱅이가 많아져서  장에 나온 물건이 평준화되어 이 장이나 저 장이나 비슷비슷해졌다. 기동력이 좋아져서 차로 싣고 들어오니 시골장 하곤 맞지 않는다. 요즘 시골장엔 할머니들이 거동이 불편하셔서 유모차나 카트를 밀고 다니시는 것도 풍경의 변화다. 80년대에 처음 찍을 때는 장보따리 이고 다녔는데 점차 가방으로 바뀌다가 이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갓을 쓰시고 장에 나오시는 멋쟁이 할아버지들도 찾아볼 수 없다. 아. 담양장하고 창평장에 가면 찍을 순 있다. 일부러 한복을 입고 장사하시는 할아버지가 나오시는데 ‘한복할아버지’라는 컨셉이다. 고창, 논산, 구례, 안동장에도 상투에 갓 쓴 분들은 없다.”
 
 -장터는 어떤 곳인가?
 “요즘 장터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할머니들이 콩 한 두되 가져와서 가용해서 쓸려고 나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로 바구니를 툭 건드리면서 ‘이거 중국산이죠? 할머니’ 이리면서 지나간단다. 아니라고 해도 사람 말을 믿지 않고. 시장 할머니들이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인데 너무 속상해 하신다. 그래서 차라리 물건끼리 바꿔가는 게 낫고 그렇게들 많이 하더라. 아는 사람하고 ‘너나 좋은 거 먹어라. 필요한 게 뭐냐’ 이렇게 하는 게 속이 편하단다. 콩 한 되 가져와서 아는 신발집에서 발에 맞는 구두 한 켤레 가져가는. 어떻게 보면 옛날 장터가 딱 그랬다. 오히려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장이란 게 꼭 판다기보다는 하루 생활이다. 구경도 하고 얘기도 하고 친구 만나 동네 소식도 듣고. 그런 역할을 하던 곳인데…”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기억나는 사람도 참 많겠다.
 “지난해 5월에 팽목항에서 십여 분 거리인 진도 십일시장(임회장)에 갔다. 한 상인이 ‘시방  진도가 초상집이여. 영감이 잡아오는 생선 팔아 가용도 쓰고 병원 댕기고 하는디, 요샌 뭍에도 못 나가, 장이 쪼까 휑-하지라. 젊은 여자들은 모다 팽목항으로 봉사 갔어. 첨엔 장바닥에 퍼져앉아 아까운 새끼들 어짜쓰까 함서 막 울고 그랬제. 어찌것는가 이렇게 꼼지락거리면서 이겨내야제. 슬픔이 이 늙은이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이참에 배웠당께’라고 하시더라. 가슴에 와닿았다. 2013년에 북평장에서 만난 한국에 온지 5년 된 베트남출신 또티호완(30)씨는 한국말도 잘했다. 직접 밭에서 키운 오이, 가지, 고추 등을 팔았는데 오이를 사가는 할머니에게 두 개나 얹어주는 우리나라 덤문화까지 알고 있어 정겨워보였다. ‘한국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남자들이 장사하는 거래요’라고 하더라. 영동장엔 한 열 번 갔는데 곰방대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자주 갔다. 한 장만 빼먹으면 ‘왜 안왔니…’ 하셨다. 순창장도 여러 번 갔는데 찍을 거리도 많고 장옥도 참 좋았는데 지금은 바뀌었지. 임방울 명창의 친구라며 쑥대머리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분이 계셨었다.”
 
 정영신의 포토에세이집 ‘전국 5일장 순례기’에는 이런 에피소드들이 가득 들어있어 독자가 장에 직접 가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글과 사진이 술술 읽힌다.
 
 -21세기의 5일장에 예전의 느낌이 살아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5일장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장터를 찍는 것은 나에게 놀이와 같다. 꼭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장에 가면 영동할매가 나를 기다리고 사람이 아니라면 나물이 나를 방긋방긋 기다린다. 이 달에, 어디에 가면 뭐가 나와 있을 것이고 나를 부른다. 나는 아직도 어딜 가든 옛날 장터의 모습을 본다. 머리와 옷과 가방의 스타일은 급속도로 변했지만 그래도 장이란 공간에선 어느 한 구석에 반드시 그 지역이 보이는 곳이 있다. 우리 장의 정이 남아있다. 장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는 여전히 30년전 장날의 흔적이 남아있다. 앞으로도 계속 찍을 것이고 여유가 생기면 서울의 전통시장을 찍을까 한다.

5-018.jpg » 20일 인터뷰를 마친 조문호 정영신 부부가 상암월드컵파크 4단지에 선 장을 둘러보고 있다. /곽윤섭
 
 5일장을 찍고 싶어하는 초보자들을 위해 장터 추천을 부탁했더니 부부가 경쟁하듯 줄줄 불렀다.
 “부산 노포역 맞은편 언덕에 오시게장(2, 7일장)이 규모 있게 펼쳐져서 볼만하다. 예산장도 장옥 없이 난장으로 펼쳐져서 한 눈에 들어온다. 파라솔이 계절마다 다르다. 여름에는 햇볕 때문에 서있다가 겨울에는 바람 들어오는 허리를 가려야하니 누워있다. 포항 송라장, 경주 건천장, 성주장도 좋았지. 12월 구례장엔 산수유가 나오고 청양장에 구기자가…제일 활기찬 장은 추운 겨울날 새벽이다. 추우니 활기가 차다. 여름은 햇볕도 강하지만 사람들도 늘어져서…….”
 31일까지 열리는 전시장엔 간이 스튜디오를 만들어 정영신, 조문호 사진가가 매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관람객 모두에게 인물사진을 찍어주고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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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522곳 5일장터, 정이 불러 정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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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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