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녹아든 풍경, 풍경이 배어난 사람

곽윤섭 2014.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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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 사진전 <흙 물 그리고 바람>

낯설다가 익숙해져 버린 기억의 저편, 기본색은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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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진의 개인전 <흙, 물, 그리고 바람>이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10월 22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5번출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브레송이 야심차게 시작한 <다큐멘터리사진가의 풍경사진전> 여섯 번째 편으로 11월에는 강제욱, 12월에는 김지연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는 이름은 딱딱하다. 총을 든 군인들이 달려가거나 마스크를 쓴 시위대가 화염병이나 돌을 던지거나 쓰러지거나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노동자들이 전투경찰과 대치하는 사진들이 먼저 떠오를 수 있다. 혹은 노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등장하는 사진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갤러리쪽에서 다큐멘터리사진가들의 풍경을 기획한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풍경사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편이었던 신동필의 풍경사진과 마찬가지로 임종진의 풍경도 사람이 기본 바탕에 깔려있다.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풍경은 사람이 사는, 사람이 바라본, 사람의 관점에서 시작된 풍경이다.

 거친 삶의 현장도 다큐멘터리의 영역이지만 모든 현장의 위에는 어떤 색깔이든 하늘이 있다. 곳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 사는 곳이라면 으레 산이 있고 평야가 있고 숲이 있고 논과 밭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임종진의 다큐멘터리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기본색이었다. 한국, 캄보디아, 네팔, 티베트,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찍은 이번 임종진의 서정적 풍경사진도 그의 트레이드마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전시장에선 사진 판매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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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위해 쓴 “10월이 되니 소슬바람이 붑니다. 가을인 탓이지요…….”로 시작되는 임종진의 작가노트 또한 이번 전시의 사진과 어울린다. 읽어보니 가을이 아니라 봄처럼 느껴진다. 임종진은 11월 1일에 결혼식을 올린다. 인생의 봄을 맞이하여 기분이 꽤 좋아진 모양이다. 사진전시도 축하하고 결혼식도 축하한다.

 

 

  작가노트/임종진

 

 

  10월이 되니 소슬바람이 붑니다.
 가을인 탓이지요.
 목을 타고 도는 서늘한 기운에 겨워 쓸쓸하거나 허허로울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사지를 늘어뜨린 평온함에 젖어듭니다.
 그 바람에 취해 슬며시 눈을 감아봅니다.
 디뎠던 걸음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니 얼추 취기가 더해집니다.
 기억에 스며들기 좋은 즈음이지요.
 역시나 가을인 탓입니다.
 삶의 향기에 취해 흥겹던 지난 걸음들이 있었습니다.
 나라 안과 밖 여러 곳을 두루 스치거나 머물던,
 뉘 살아온 터 안에서 흙 물 그리고 바람에 섞인 시간들이 그랬습니다.
 삶을 품은 풍경들이 지금 다시 내게 머뭅니다.
 다른 듯 같은 눈빛을 살피려 나선 길.
 가름 없이 같거나 엇비슷한 너른 대지 위에서 품었던 평온이,
 지금 내게 머뭅니다.
 오호라.
 다를 것 없이 같은,
 흙
 물
 그리고 바람.
 낯설다가 익숙해져 버린 기억의 풍경들.
 그리움이 떠받치듯 밀려오는 지금,
 가을.
 소슬바람이 붑니다.                                                                      
 


 

곽윤섭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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