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와 사람의 경계, 일탈과 공감

곽윤섭 2013. 04. 02
조회수 40007 추천수 2

  김혜진 개인전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몸으로 묻는 원초적 질문, 먹이사슬 끝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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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몸을 보여주는 사진가로 신디 셔먼이 있다. 현재까지 가장 비싼 사진으로 거래된 바 있는 ‘무제 96’의 모델이자 작가다. 작품은 2011년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42억에 팔린 바가 있다. 왜 자신의 몸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사진 혹은 회화에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접근이다. 금방 이해할 수 있으면 사진을 잘 찍을 것이고 이해는 하지만 동의할 수 없다면 그런 사진을 찍기는 어려울 것이다.

 

 안양 예술고등학교 사진과를 나왔고 국립순천대학교 사진예술학과를 거쳐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한 김혜진의 개인전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 4월 5일부터 17일까지 인천에 있는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열린다.
 (070-4142-0897) http://www.uram54.com/
 
 사진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 사진들을 보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할 상식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왜 이런 작업을 하는가?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좋아한다.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진. 무슨 질문인지 안다. 이것은 개인적인 고민에서 나온 어떤 일탈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한 고찰에서 나온 작업이기도 하다.
 -김미루의 작업과 비슷한 것도 있다. (김미루는 2011년 돼지 두 마리와 104시간동안 우리 속에서 같이 지내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는 예술가다. 도올 김용옥의 딸)
 =그런 이야길 들었다. 그런데 내 사진 중의 3장은 이미 대학교 4학년때 시작한 것이다. 김미루씨의 작업을 본 적이 없었다. 내 작업의 모티브는 2차 세계대전 종전후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길 다룬 최양일 감독의 영화 ‘피와 뼈’에서 나왔다.
 (작업 노트에 김혜진이 상세히 써뒀다. 이 글의 말미에 전문을 소개한다)
 -사진에 찍힌 모델은 모두 본인인가? 그렇다면 셔터를 누가 누른 것인가?
 =컨셉을 정하고 미리 드로잉을 그려서 촬영을 도와준 분에게 건넸다. 셔터를 누른 것은 그분이지만 이것은 온전히 나의 작품이다.
 (모든 설정을 끝낸 뒤에 카메라를 넘겨줘서 다른 사람이 셔터를 누르는 작업방식에 대한 논란은 이미 끝났다. 브레송의 사진집을 보면 브레송이 찍힌 기념사진이 있는데 “브레송의 카메라로 촬영”이라는 설명이 있을 뿐 누가 찍었다는 말이 없다. 그것은 브레송의 사진인 것이다)
 -돼지 머리를 쓰고 진달래 꽃 옆에서 찍은 사진이 있더라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이 작업의 전체를 관통하는 의도가 있다. 도살장에 끌려와 자연 속으로 나갈 수 없는 돼지와 나를 동일시했다. 그래서 돼지는 꽃밭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일탈을 꿈꾸는 돼지와 나의 동일시.
 -다른 사람을 모델로 써서 찍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것은 ‘나’ 안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느낀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찍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달라진다.
 -사진인가? 퍼포먼스인가? 다음 작업은?
 =둘 다. 다음 작업은 아직 구상중이다. 다음 작업도 사진과 퍼포먼스가 결합한 형태일 수도 있지마나 결정된 것은 없다.
 -촬영공간은 어디인가? 작업이 쉽진 않을 것 같다.
 =순창과 광양의 실제 도살장에서 찍었다. 암모니아 냄새가 독했다. 그리고 오래갔다. 작업이 끝나고 난 뒤에도 한동안 냄새가 몸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돼지머리? 시장에서 샀고 머리에 쓰기 위해 돼지머리속의 뼈를 다 발라냈다.
 -혹시 돼지고기를 먹는가?
 =잘 먹는다. 1주일에 한 번꼴로 삼겹살을 먹는 것 같고 족발도 곧잘 먹는다.


 
 김혜진은 그의 작업노트에 아주 상세하고 친절하고 솔직하게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읽어봐야한다. 그런데 그보다는 사진전을 꼭 봐야한다. 김혜진이 밝힌 것처럼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 스스로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른 어떠한 글이나 말보다도 효과적으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는데 동의한다. 사진전을 보고 느끼는 것은 작업노트를 보고 느끼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전시장에서 사진을 보는 것은 시각적인 행동만이 아니다. 걸어서 가야하고 전시장의 공기를 맡아야 하고 다른 관객의 술렁거림도 들어야한다.
 
 

 


작가노트 

 
  인간은 불의 발견을 시작으로 유사 이래 여러 기술을 발달시켜 왔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인류는 다른 동물과의 길고 지루한 먹이 피라미드 관계에서 비교적 상위, 혹은 최정상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인류는 그 피라미드의 최정상에 이른 순간부터 관대하게도 먹기를 위한 종을 몇 가지로 선별하였고 그 외의 종은 먹는 것을 포기하였다.
 
  “인간은 동물과의 야만적인 관계를 부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관계에 대한 기원을 혐오한다. 인간은 그들을 정복해야만 한다.”                                                                                                                               발터 벤야민
  
  인간은 다른 종을 정복하고,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른 순간부터 마치 스스로는 먹이 피라미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이 행동하였다. 인간은 자연 상태의 동물을 TV로 바라보며 동물의 생존 본능과 먹이피라미드에서 상위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신기한 듯이 보았고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 없이 TV를 바라보는 인간 역시 먹이 피라미드에서 궁극적으로 자유롭진 못하다. 다만 먹이로 이용하는 다른 동물을 지배하는 방법이 다각화되고 전문화되었으며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착각을 할 뿐이다.
   여전히 인간은 피라미드의 상위 생명체로써 다른 동물을 이용하고 오히려 이용하는 빈도 및 깊이는 더 심화되었다. 현대에 이르러 인류는 동물을 단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으로써 이용할 뿐만 아니라, 동물의 가죽을 벗겨 피복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애완동물로써 정서적인 위안을 얻기도 하는가하면, 최근에는 여러 의료목적으로 그들 신체 일부를 사용하기도 한다.
   인류는 동물을 이용함에 있어서 동물들이 어떠한 생명을 가지지 않는 것과 같이 행동한다. 아프리카의 사자에게 가젤이란 존중해야할 생명을 가진  대상이 아닌 단지 생존을 위한 먹잇감인 것처럼, 사실 인류에게 다른 동물이란 사자가 가젤을 대하는 것과 같이 생존을 위해 이용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에 남은 재일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최양일 감독의 영화 피와 뼈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비롯한 동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인간은 고기를 얻기 위해 돼지의 배를 갈라 피를 빼내고 장기를 꺼내는 장면과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장면에서 본인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전쟁 속에서 한 인간이 주변인들에게 비참하게 이용당하며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한편으로 배를 갈라 장기를 빼내어지는 돼지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에서 먹이 사슬 혹은 피라미드 관계는 야생과 반대 개념으로써 문명화되었다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피와 뼈의 주인공은 영화의 극적인 장치로 인하여 타인에게 ‘먹히는’ 장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뿐, 인간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하위단계의 구성원들에게 마치 돼지처럼 희생을 강요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이용하며, 물리적인 혹은 물리적이지 않은 폭력을 행사한다. 나는 사람들 개인이 사회적인 제도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먹이사슬에 의해 희생되는 부분이 인류에게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는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이 물음에서 부터 시작한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차이점이 있는 것인가? 과연 현재 인류는 다른 동물을 먹고 먹히는 피라미드와 같은 야생의 원초적인 부분을 벗어났는가?”
 
   돼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지금까지도 인간의 주변에 근접해 있는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돼지를 오랜 기간 관찰할 수 있었다. 돼지의 특성인 식탐이 강하고, 집에서 사육하는 환경이 더러움은, 인간 스스로 탐욕스럽고 지저분한 사람을 ‘돼지 같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하였다. 돼지는 인간이 생활하며 가까이 보아온 더러운 동물이고 또한 추잡하며 혐오스런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사진 작업을 통해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여기는 인류가, 자신이 무시하고 하등한 존재라 치부하는 돼지 같은 동물과 한 치 다름없음을 본인 스스로의 몸을 통하여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이나 어떤 동물이든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은 결국 스스로의 육체적인 감각기관을 통해서라고 생각한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의 감각으로 인간은 자극을 수용하고, 소리나 몸짓 등으로 그 감정을 표현한다.
   스스로 문제에 대한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 글이나 회화 같은 방법을 이용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나 이해를 전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몸을 통하여 생각을 전달하는 것 또한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때로는 한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상대에게 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듯, 스스로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다른 어떠한 글이나 말보다도 효과적으로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김혜진


 <약력>
 
 <개인전>
 2008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갤러리 瓦(wa)청담   
 <전시>
 2010  동강 사진 박물관 특별기획전 ‘영월바람’
 2010  동강국제사진제 거리 설치 전
 2010  自體_벗음과 몸짓 물파 공간
 2009  중앙예술제 미술 공간 현
 2009  sipa  국제 판화 사진 아트 페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009  ulsan photography festival 초청 전 울산 문화예술회관
 2009  seoul photo fair 코엑스 서울
 2008  asia students and artists art festival 구 서울역사
 2008  art at home wonderful life 두산 아트센터 서울 
 2008  예술가의 sensibility 쌈지 갤러리 서울
 2008  비주얼 아트센터 boda 영 아티스트 선정 
 2007  시대 공감 청년 작가 전 큐브 갤러리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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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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