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어서 역사가 되고 실어서 기록이 되다

곽윤섭 2013. 09. 04
조회수 17698 추천수 0

화보잡지 <라이프> 사진전 

1959년 사상계, 1977년 한국일보 주최 이어 36년 만에

브레송 카파 등 거장들 작품...김구 등 한국 담은 사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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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 사망 후 경교장 앞에 모여든 민중들  Carl Mydans, 1949,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포토저널리즘의 맹아였던 화보잡지 ‘라이프’를 기억하고 있다. 라이프의 창간과 더불어 포토저널리즘은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라이프가 시들 무렵 포토저널리즘도 기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포토저널리즘이 부활하고 있다는 주장도 대두하고 있지만 인쇄매체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는 9월 6일부터 세종문화회관 전시관에서 ‘라이프사진전’이 열린다. 11월 25일까지. 위에서 말한 화보잡지 ‘라이프’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이번 전시에 포함된 사진을 하나둘씩 넘겨보노라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느낌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라이프지에 실렸던 사진들은 말 그대로 세계사의 한순간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 아돌프 히틀러 같은, 이제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정치인들부터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같은 권투선수까지 다양한 유명인들의 사진이 이번 전시장에 걸린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한국전쟁, 베를린 장벽, 베트남 전쟁 같은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굵직한 사건들도 모두 라이프에 실렸고 뉴스로 전달됐다. 텔레비전이 아직 대중화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사진으로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사람들이 뉴스사진에 열광한 이유는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뉴스로 전달되는 내용은 사실상 “어떤 사람이 자기가 눈으로 본 상황”을 옮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라디오를 들으면서도, 혹은 신문을 읽으면서도 그 내용에서 영상을 떠올리는 것이다.
 동굴벽화의 들소 그림, 신문에 실린 물난리 현장, 더위가 서서히 물러가고 눈에 띄게 높아진듯한 파란 하늘, 교과서에 실린 대동강철교의 피난민행렬사진 등이 모두 이야기가 아닌 눈으로 본 것을 전달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효과도 컸다.
 
 라이프는 1936년에 창간되어 주간지로서의 생명은 1972년에 끝이 났다. 종이에 고정된 사진이 아닌 움직이는 사진(동영상)이 대부분 가정의 안방에 쳐들어온 것이 텔레비전이었고  더 이상 잡지와 사진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강력했던 라이프의 명성에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1978년에 월간으로 복간되었으나 이마저 2000년에 문을 닫았고 2004년~2007년 사이에는 신문의 부록형태로 다시 발간되기도 했다. 현재는 웹상(http://life.time.com)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38만으로 시작했던 라이프는 최전성기때 주간 부수 1,300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창간호의 표지는 마가렛 버크 화이트가 찍은 거대한 포트 팩 댐사진이 장식했다. 위대한 사진가들이 위대했던 라이1605301250097090.jpg프의 전성기를 가꿔나갔다. 로버트 카파, 유진 스미스, 알프레드 아이젠스태드, 데이비드 던컨 등이 경쟁하듯 라이프에 사진을 공급했다.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도 당연히 라이프에 사진을 실었다. 매그넘은 사진가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었으며 라이프는 그 시절 전세 계 사진가들이 실력을 발휘하고 정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마당이었으니 실력자들이 앞을 다투었던 것은 당연하다. 표지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던 사진가는 할리우드 배우들과 살바도르 달리의 사진으로 유명한 필립 할스먼인데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선 볼 수 없다고 한다. (2013년 겨울에 할스먼의 사진전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있다.)
 
 사진 한 장에 역사가 담겨있다는 말은 지나친 수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라이프에 실렸던 사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의 가치를 옹호했고 미국의 취향을 반영했지만 미국이 세계사를 주도하던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이프에 실리면 역사가 되었고 어떤 역사의 순간을 찾기위해선 라이프의 사진을 일별하는 것이 빨랐다. 라이프의 창간인 헨리 루스(헨리 루스는 1923년에 시사 주간지 타임을 창간한 사람이기도 하다)의 창간사는 자신감에 차있었고 직설적이다. ‘인생을 보기 위해, 세상을 보기 위해(To see the life, To see the world)
 
 라이프의 아카이브는 방대하다. 주최쪽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1959년과 1977년에 열린 이후 36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다고 한다. 전시에는 한국의 역사가 많이 포함되어있다. 1949년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 백범 김구선생의 경교장 앞에 애도하고 있는 민중을 포착한 사진은 칼 마이던스가 찍었다. 유리창의 총알 구멍이 선명하다. 그 외 이승만, 육영수의 사진도 포함되어있는데 전체적으로 한국을 담은 사진은 10여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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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Alfred Eisenstaedt, 1946,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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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으로 가는 길, W. Eugene Smith, 1953,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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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레와 같이 있는 마하트마 간디, Margaret Bourke-White, 1946,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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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데니스 스톡, Andreas Feininger, 1955,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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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병의 키스, Alfred Eisenstaedt, 1945,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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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 1969,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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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 슈바이쳐, W. Eugene Smith, 1954,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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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츠강, Dmitri Kessel, 1946, (c) The Picture Collection Inc

 

 
 이 전시를 봐야할 진정한 이유는 전설 같은 순간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속에 들어있다. 사진 한 장을 보고 얼마나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이번 전시가 증명할 것이라고 전시기획사에서 강조한다. 이를 위해 40여점 정도는 역사적 배경을 곁들였다고 하고 30여점 정도는 오디오 가이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한다. 가서 확인해보자.
 
 전시기획사가 보낸 보도자료를 열었고 준비과정에 대해 인터뷰도 했다. 1959년과 1977년의 전시가 어떤 규모였으며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해서 조사를 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운영하는 옛날신문 아카이브에 검색어를 넣었더니 1959년 월간지 ‘사상계’를 발행하던 사상계사에서 ‘라이프 사진작가걸작전’을 주최했다고 나왔다. 동아일보 1959년 1월 27일치 4면은 머리기사로 전시의 개막과 내용을 전하고 있다. 공보처에서 만든 중앙공보관(당시 덕수궁 안에 있었다고 한다)에서 251점의 사진이 1월 28일부터 2월 4일까지 전시되었다. 두 번째 한국전시는 1977년 8월 1일부터 7일까지 한국일보 타임라이프의 주최로 신문회관에서 열렸다. 1959년의 사상계라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장준하가 발행인으로 있던 그 사상계다. 
 국회전자도서관에 사상계, 라이프 두 단어를 검색어로 넣었다. 59년 4월호에 관련기사가 있다. 신문사 자료실에서 59년치 잡지를 찾아냈다. 놀랍게도 4월~6월호까지 세차례에 걸쳐  100여장의 사진이 지상전시되어있었다. 물론 흑백이고 판형이 작지만 이렇게 파격적인 화보가 실렸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미디어오늘 기사 검색에서 당시 사상계와 장준하 그리고 라이프의 관계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냈다.

 
 “사상계사는 자유당 정권 시기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과 보도사진으로 유명한 <라이프>를 국내에 대대적으로 보급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 사업은 한때 제법 흑자를 내기도 했으나 자유당 때 600 대 1이던 달러 환율이 민주당 정권의 환율 현실화 정책 때문에 1100 대 1로 바뀌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뉴욕의 본사로 송금해야 하는 돈이 엄청나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사상계사는 3천만 환이라는 부채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사상계>의 존립을 위협하는 거액의 빚이었다.”

 
 타임지와 라이프지의 한국내 판권을 사상계가 소유하고 있었으니 전시도 주최할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이 무렵 한국에서도 사진의 열풍이 불고 있었다는 것을 원로사진가들은 증언하고 있다. 2년전인 1957년엔 경복궁 미술관에서 세계적 전시였던 ‘인간가족’이 열렸고 30만명이 넘는 유료관객이 입장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마침 인간가족 사진전도 10월 8일 성남아트센터, 12월엔 서울시민청 지하1층 미술관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959년 라이프사진전에 대한 반응이 궁금했다. 당시의 사진열풍에 걸맞게 당시의 지면에도 분명히 여러차례 소개되었을법한데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았다. 사상계에 ‘라이프사진전의 인상’이란 제목으로 김성진(의학박사)이 쓴 수필이 실려있어 간신히 전시장의 냄새만 맡을 수 있었다. 김성진이 누군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수필의 내용에 본인은 전문가가 아니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취미로 사진을 즐긴 사람이라 짐작할 수 있다. 일부 요약해서 옮긴다. 사진가 이해선이 불쑥 튀어나와서 또 한 번 놀랐다.

 

 “이번 라이프사진전은 또 다른 방향과 각도로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서 사진의 예술성을 재인식하고 다른 미술보다 더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근래 추상파라는 새 경향이 우리나라에도 침투해 들어온 이후 국전을 비롯하여 어느 미술전람회를 가든지간에 내 무식으로 오는 인식부족으로 불만과 반감을 느끼었던 차에 그 반동적 심미로 사진을 더 좋게 평가하는 결과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나는 외우 백오 이해선(1905~1983)군을 고문으로 추대하고서 전람회만 있으면 앞세우고 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라이프 사진전도 백오와 함께 갔다. 전람회장 ‘아아취’에서 나는 사상계사주최라는 것을 알고 마음이 흐뭇하게 반가웠다. 비좁은 장내는 사람의 사태로 혼잡을 이루었다. 근래 사진애호가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었으며 이왕이면 요전 인간가족전과 같이 왜 경복궁안 국전회장을 쓰지 않았나 하고 생각되었으나 부지불식간에 나도 이 인파 속에 휩쓸려 들어가서 제물로 둥둥 떠 돌아가고야 말았다. 장내를 일순하고 나서 내가 직각적으로 받은 인상은 시간과 공간의 축소라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휴매니티’가 흐르는 우수한 예술적 작품임에 틀림이 없으니 그야말로 아아티스틱하고도 뉴스봐류가 있는 문무겸전의 결정적 사진전이라 하겠다. 각국미인사진을 비롯하여 각국풍경을 촬영한 칼라사진도 황홀 찬란했으며 인제는 거의 자연에 가까운 색채를 내는데 성공하였다고 보겠다. 나는 사진전을 다 보고나서 도취한 나머지 나도 다시 취미사진을 계속해 볼가하는 충동에 사로 잡혔다”(당시의 맞춤법 표기를 고치지 않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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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 그 시대를 엿볼 수 있고 전시회장의 현장이 전해지는 괜찮은 수필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번 가을부터 내년 겨울까지 굵직한 사진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차차 소개하겠지만 이런 대형 사진전이 이어지는 일은 근래에 없었다. 게다가 세종문화회관에선 지금 로버트카파전이 열리고 있으니 이렇게 편한 일이 없다. 행여 라이프사진전을 보러 갔다면 지하에 들러 카파를 만나는 것도 빼먹지 않아야겠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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