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위령과 증오 사이 거리, 웃음만큼이나 묘한

사진마을 2016.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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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사진집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이젠 괜찮다’고 하지만 역사는 기록해야 한다,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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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갑의 사진집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이 눈빛사진가선 24번째로 나왔다. 강력한 사진들이다. 비키 골드버그의 명저 ‘The power of photography‘ 는 사진의 정체성에 대해 정제된 논거를 펼쳐보인다. 사진은 목격자의 역할을 하고 발견한 것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사진이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가서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남극이나 에베레스트산 정상의 광경을 믿지 못할 것이다. 보는 것을 모두 믿을 것인지는 조금 있다가 생각해보자.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에서 말하는 전쟁은 한국과 깊은 관계가 있는 ‘월남전(베트남전)’이다. 두 개의 기억이란 것은 베트남 사람들의 기억과 한국 사람들의 기억이 서로 다르게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갑의 이 사진집은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다. 아직 국내엔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퇴역군인들이 수십만 명 있다. 또한 베트남에는 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들이 수만 명 있을 것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베트남 양민학살에 대해서는 ‘한겨레 21’이 1990년대 후반부터 줄기차게 보도해서 이제 꽤나 알려졌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마저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되는 이 묘한 한국에서는 베트남전에서 발생한 한국군의 양민학살을 부정하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전의 과거에 대해 사과를 했고 그 뒤의 대통령들도 호치민 묘소에 참배하고 사과에 준하는 발언을 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학살한 양민 숫자가 9,000명에 이른다. 베트남 전체에 세워진 위령비, 증오비는 80여 개가 있다고 한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혼을 위로하는 것이 위령비라면 학살의 주체인 한국군을 증오하고 죄악을 후세에 알리기 위한 것이 증오비, 죄악증거비다. 베트남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한국군은 증오의 대상인 것이다.
 
   국내에는 베트남 참전 기념비가 상당수 있다. 참전했던 한국군이 32만 명이니 지역별로 기념비도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트남에 세워진 위령비, 증오비와 한국에 세워진 참전기념비는 하나의 전쟁을 두고 “서로 다른 기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양민학살의 증거가 있고 한국정부가 시인한 건도 있으며 외국 언론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군의 학살에 대해 보도를 했으니 지금 와서 “양민 속에 숨어든 베트콩을 잡아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변명은 이제 진부하다. 지금 짚어봐야 할 것은 하나의 전쟁을 두고 두 개의 서로 다른 기억이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거대한 강처럼, 거대한 장벽처럼 별도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면 이해를 못 할 것도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너는 누구의 편이냐”는 이야길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 사건이 있다면 당대엔 치열한 손익관계에 얽매여 왜곡된 역사관을 가졌다 하더라도 후손들은 점차 바로잡아가야 한다. 그래서 일본 안에도 야스쿠니신사를 부끄러워하는 (한국에서 볼 때는) ‘양심 있는’ 지식인이 있는 것이다. 한국 안에서도 베트남전의 진실에 대해, 또는 양민학살에 대해 밝히려는 노력이 있는 것이다.
 
  베트남에 있는 위령비와 한국에 있는 베트남참전 기념비는 하나의 전쟁을 놓고 서로 다른  집단기억을 형성하려는 세력이 만들어내는 산물이다. ‘양심 있는’ 한국사람들이 모금운동을 하여 베트남 현지에 위령비를 세우는 것도 집단기억 형성과정이다. 먼 훗날 베트남 사람들에겐 이 빗돌을 누가 세웠는지 남겨졌으면 하는 바램이 녹아있다. 한편 초기에는 “돈을 벌기 위해” 월남으로 떠밀려갔고 전쟁 후반에는 “돈을 벌기 위해” 앞을 다퉈 달려갔던 32만 명의 젊은이들 중에서 5천여 명이 전사했고 1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왔다. 고엽제와 전쟁이 후유증으로 아직도 고생하는 ‘참전용사’들이 숱하게 있다. 참전기념비는 이들을 위한 기억의 정표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엔 지배이데올로기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계층이 있고 그들에게 참전기념비는 특정한 목적의 집단기억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다.

 

nb001.jpg » 꽝아이성 선띤현 띤하사 하떠이 학살(1966) 위령비와 마을 풍경 2012. 8

nb002.jpg » 푸옌성 동호아현 호아히엡남사 다응으촌 봉따우 학살(1966) 증오비 2013. 8

nb003.jpg » 꽝아이성 빈선현 빈호아사 빈호아 학살(1966) 증오비 2012. 8

nb004.jpg » 꽝남성 유이쑤엔현 유이응이아 학살 위령비 2012. 8
 
  이재갑의 사진집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은 용기 있는 작업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사과하거나 참배를 하고 한국의 기업이 베트남에 공장을 짓고, 한국의 양심세력이 모금운동을 해서 베트남 현지에 위령비를 몇 개 더 세운다고 하더라도 베트남 사람들에게 1960년대 한국군의 학살사건이 “없었던 것”이 되진 않는다. 이것은 한국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거의 백 년 전에 일본 식민지배를 받았던 고초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진집에 실린 사진가의 작가노트에서 이재갑은 베트남 촬영 경험담을 이렇게 쓰고 있다.
 “별다른 반응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들의 눈빛과 행동에서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적개심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베트남 꽝아이성 빈호아 마을에서 실제 겪은 일이다.
 마을 한가운데 큰 나무가 한 그루 있고, 주변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위령비 근처에서 놀고 있었다. 간단하게나마 향을 피우고 절을 했다. 주변에는 어린아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 마음에 가지고 있던 막대사탕을 주었다. 그 중 한 아이는 받지 않았다. 우리들의 행동이 악의가 없던 것을 안 것인지 마을 어른이 거들었다.“이젠 괜찮아. 어서 ‘고맙습니다’하고 받아”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싫어요! 한국사람이잖아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리친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촬영을 마무리하고 장비를 챙겨 뒤돌아 오는데 마중인지 안내인지 모를 모호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선 가해자의 나라에서 온 사진가 이재갑이 위령비를 촬영하는 것이 어떻게 보였을까? 한국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에서 온 사진가 아무개씨가 소녀상을 촬영하는 것이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보자.
 
   사건이 있고 이것이 역사가 되었는데 그 역사가 이해당사자가 아닌 이해당사자들을 이용하려는 어떤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한다면 그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뒤따라야한다. 진실이 밝혀지고 사죄가 나왔으니 이제 화해를 모색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역사의 물결을 거슬러가려는 집단기억을 형성하지 않아야 한다.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책무로 이보다 더 엄중한 것이 또 있겠는가. 이재갑의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은 이 땅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역작이다. 이재갑이 그동안 본인의 말처럼 “한국전쟁 직후, 미국이 주둔하며 생겨난 혼혈인들에 대한 사진 작업과 경산 코발트광산에 대한 민간인 학살 그리고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물에 대한 작업과 일본 내 흩어져 있는 조선인 강제연행과 관련된 작업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결과를 일회성으로 한 것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 심지 깊은 작업으로 계속 이어지길 지켜볼 것이다.
 
 추신: 이 책을 펴낸 눈빛 출판사의 이규상 사장은 페이스북에서 ‘곡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이렇게 썼다. “한밤중에 편집을 위해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은 사람 없는 그의 사진에서 나는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곡성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으스스한 경험이었다.” 영화 곡성처럼 책을 홍보하기 위한 미끼를 던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규상 사장이 사람 없는 사진에서 사람을 보고 곡성을 들었을 수도 있다고 판단한다. 왜냐하면 책에 있는 이재갑의 ‘사진가의 노트’에서 결정적인 오자가 몇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이규상 사장이 못 잡아낸 것이 너무 이상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21’을 ‘한겨례 21’로 표기했고 ‘한겨레신문사‘를 ’한겨례신문사‘로 틀리게 썼다. (물론 나는 2000년 평양의 사진현상소에서 현상을 맡겼다가 필름봉투를 찾으면서 현상소 직원이 ’한겨례신문‘ 이라고 썼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귀신에 씌였거나 몸이 허해진 나머지 집중력이 떨어진 탓이라 생각한다. 보약이나 한 첩 보내드릴까 생각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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