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상상으로 자연 재구성하면 누구나 피카소

곽윤섭 2013. 0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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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여고 이성원 선생 ‘창의력 샘’ 자연미술 수업 현장

‘그냥’ 묻고 답하고 운동장 나가서 ‘그냥’ 작품 창작

보고 듣고 만지고, 건드려보고, 옮겨보고, 바꿔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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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에서 야외수업을 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한 이성원선생과 1학년 2반 학생들.       사진/곽윤섭 기자

 

 

 

 서산여고 미술교사 이성원은 2003년부터 자연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이성원선생은 2010년에 학생들과 자신의 자연미술작품을 사진으로 찍어서 ‘자연미술이 뭐지’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책에서 이선생은 “자연미술은 특정한 계획 없이 산이나 들, 강이나 바다 등 자연 속에 머물거나 거닐면서 눈앞의 자연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느껴보면서 그 속에서 떠오르는 느낌대로 무엇을 건드려보고, 옮겨보고, 바꿔보고, 나열해보는 등의 작업을 하고는 사진이나 동영상 등 기록으로만 남겨오는 미술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선생은 또한 장 자크 루소가 “우리의 첫 번째 철학 스승은 우리의 발”이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바깥으로 나가 걸을 것을 강조한다. 자연미술은 실내에서 할 수 없다. 사진도 그렇다. 걷다가 발견하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자연미술과 사진과 철학은 모두 통한다.

 

 지난 9월 12일 충남 서산시 서산여고 미술실에 들어섰다. 넓은 교실의 왼쪽 벽에는 석고상 4개가 맨 위에 자리한 나무 장식장이 있고 칸막이마다 찰흙 조각 작품들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맞은편엔 거울이 있고 거울위에 흥미로운 한 문장이 적혀있다.
 ‘습관적으로 상상하자’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1학년 2반이 수업하는 날이다. 먼저 자리에 앉은 학생도 있고 조금 늦게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다. 5교시는 점심시간에 이어지기 때문에 늦어진다고 이성원선생이 말한다. 가볍게 교탁을 몇 번 두드려서 집중시킨 다음 수업이 시작됐다. 미술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편하게 이야기를 듣는다. 지리적으로 선생과 가장 멀리 자리한 학생이 몸을 뒤틀면서 책상에 엎드렸다가 앉았다가 한다. 이야길 듣긴 듣는것인가 싶었는데 선생은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듯 예전 학생들과 이성원선생 본인이 했던 자연미술 작품을 섞어가며 보여주고 설명한다. “선생님이 30대 후반때 다른 동호인들과 함께 야외에서 작품을 하고 있었는데 다 큰 어른들이 개울가에서 모래장난을 하거나 나뭇잎, 나뭇가지를 들고 뭘 만들고 하는 짓이 좀 우스웠나 싶었던 모양으로 동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오해를 한 적도 있었어요. 같은 곳을 여러번 가도 늘 다른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바로 작년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했던 작품을 봐도 상관없어요. 힐링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그냥’하세요. 그냥. 어떻게 하라고 했죠?”
 학생들이 합창하듯 대답한다. “그냥” 수업이 계속된다. 대형 화면에 반쯤 얼룩덜룩 갈색으로 변색된 나뭇잎 사진이 등장했다. 선생은 “이게 뭐로 보이느냐?”라고 묻고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쏟아낸다. “지도요”, “고양이요”, “물고기”, “강아지”, “다람쥐”……. 어 저게 저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구나 싶었다. 교실에 있는 모든 이들은 자연미술이 뭔지 슬슬 감을 잡아간다.
 “자연미술의 소재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자연이 아니어도 좋아요. 운동장, 무, 카트, 자동차, 하늘, 꽃, 나무…. 또한 여러분이 관찰하고 상상한 작품을 다른 학생들이 인정하거나 동의하지 않아도 좋아요. 여러분들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면 최소한 한 명의 동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선생님입니다. 제가 동의해줄터이니 모든 이들에게 다 인정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세요. 그냥”
 다음은 어떤 사진을 보고 학생들이 생각해낸 단어들이다. 과연 뭘까 짐작해보시라.
 “양, 해태, 카멜레온, 유니콘, 두꺼비”
 
 창의적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나 싶다. 교사의 이야기, 학생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 등이 모두 수업을 이루는 요소들인데 몽땅 창의적이었다. 학생들은 계속 편한 자세로 앉아서 점점 수업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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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박솔정, 멋쟁이, 2013 태안 몽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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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김하영, 얼굴, 2013 태안 몽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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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이승현, 창문이 있는 집, 2013 태안 몽산포


 
 “설명적이지 않아도 되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되요. 그냥…. 시인이 자기가 쓴 시를 직접 설명하면 김이 새요.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별짓을 다 하세요. 그냥….”


 실내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한 학생에게 물었다.

  “이제 운동장에 나가서 작품을 만들 시간인데 뭘 할지 생각해 둔 것이 있어?”
 이성원선생의 수업을 제대로 이해한 학생만이 할 수 있는 답이 나왔다.
 “그냥 나가보는거죠”
 쉬는시간이 끝나고 6교시가 됐다. 학생들과 함께 바깥으로 나가다가 들어올땐 눈에 안 보였던, 교실문 안쪽에 붙은 한 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It is wisdom which is seeking for wisdom”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고 3언니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급적 조용히 해주고 학교를 벗어나지 말고 선생님이 걸어가는 동선에서 벗어나지 말고 잘 따라와주세요. 쉬고 싶으면 동선 안에 있는 장소에 한해서 잠시 시원한 그늘에서 쉬어도 좋아요.”라는 당부와 함께 학생들은 저마다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수업이 시작될 때 맨 뒷자리에서 엎드렸다 앉았다하며 한 눈을 파는 것처럼 보였던 그 학생이 가장 열심히 자연미술거리를 찾아낸다.
 
 다 듣고 있었구나!
 
 “쌤, 선생니임~~” 곳곳에서 교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실외 수업은 이렇게 진행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뭔가를 발견하면 교사가 달려가서 사진을 찍어 기록한다. 학생은 37명인데 교사가 한 명이니 이성원선생의 카메라는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10분, 20분이 지나자 학생들이 뭔가에서 뭔가를 관찰하고 상상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선생은 웃으면서 푸념한다. “내가 여러분들 하인입니다. 하인” 그도 그럴 것이 학생들은 왜 자기 작품을 찍으러 빨리 오지 않느냐고 귀엽게 투덜거린다. 부드러운 흙으로 된 운동장에 있는 네모난 하수구 맨홀 뚜껑아래에 동그라미가 두 개 그려지고 오른쪽에 연기가 그려지지 금세 뚜껑은 자동차로 변했다. 찰칵찰칵…. 널따란 학교 전체가 점점 작품으로 가득차올랐다. 처음엔 그냥 운동장이었는데 학생들이 나뭇가지혹은 운동화코로 질질 끌면서 지나가니 분명 보이지 않았던 사막이 나타나고 은하수가 나타났다. 건물 벽 아래에 붙은 시멘트 물받이는 벼루로 변했고 빗자루를 타고 점프하는 학생은 호그와트학교의 마법사가 되었다. 운동기구인 ‘트위스트머신’에 학생이 붙어서 팔다리를 펼치자 천사로 변신했다.
 몇 학생과 인터뷰를 했다. 평소에 랩을 좋아하고 작사도 잘한다는 이효주는 “메기, 우산, 천사, 빗을 만들었어요. 창의적으로 나온 것이에요. 사람이나 상황을 대상으로 작품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조금 있다가 운동장 축구골대에서 동물원에 갇힌 나무늘보나 원숭이를 형상화해볼까해요”라고 말했다. 장윤희는 “소화전으로 거북이를, 전봇대와 나무에서 웃는 얼굴을 운동기구로 시계를 만들었어요. 자연으로 뭘 만들 수 있다는게 신기하네요. 창의력, 관찰력이 생기면 다른 수업에도 도움이 되겠네요. ‘이미지화’한다는 것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안효진은 “음악 수업도 좋았는데 미술도 참 좋아요. 집에서도 자연미술을 해본적이 있어요. 사과를 먹을 때 사과에서 미소를 봤어요. 그러고 나서요? 사진찍고 먹었죠. 저는 ‘유혹하는 나뭇잎’을 친구와 같이 만들었고 ‘운동장 속 사막’도 제 작품이에요.”
 
 니가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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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안효진,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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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신지연, 백조가 되고 싶은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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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유하연, 공항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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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윤예슬, 피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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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윤수정,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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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이슬기, 서핑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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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이효주, 폭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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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달팽이                                                              윤예슬, 바닷속

김정은, 꽃만 꽃이 아니다                                                 윤예슬, 벼루

성다현, 산                                                                    윤예슬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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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은, 눈물                                                                 유혜원, 잠자리

김나연, 지문                                                                 이슬기 온천

이서영, 열기구                                                              김나연, 도레미파솔라시도

  
 
 자연미술은 공동작업도 가능하고 하나의 대상을 놓고 두 개의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관점, 경험, 인식, 학습, 각도에 따라 대상을 각각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6교시가 금세 끝나버렸다. 수돗가에서 손을 씻던 학생들도 물방울 튀는 것이 멋있다면서 ‘선생님~’을 불러댔다.
 
 자연미술은 한국에선 1980년대 초반에 임동식이 창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성원선생은 1990년 공주사범대학교 학생시절 ‘자연미술사계절연구회’에 동참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연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후 교사가 되어 학교수업시간에 도입한 것은 2003년 해미중학교 시절이 처음이다. 이선생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미술감상시간에 우연히 자연미술작품을 보여주었는데 애들이 마구 웃었어요. ‘그게 작품이면 우리는 피카소다’는 식이었죠. 조건이 좋았습니다. 학교 바로 옆이 해미읍성이었는데 천혜의 자연미술교실인거죠. 아이들이 척척 작품을 만드는데 정말 잘 하더군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10년 넘게 이 수업을 하면서 많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자연미술의 핵심은 기존 선입견을 배제하고 판단을 중지하는 것입니다. 사물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물의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미술은 한번 수업하고 실습한번 토론 한번만 하면  체득이 되요. 그 다음부터는 혼자서도 지속가능하죠. 사람들은 힘들 때 자연을 찾습니다. 바람을 쐰다는 표현이 있죠. 자연과 가까워지면 힐링이 됩니다. 해봤더니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 사이에서 가장 효과가 있었어요. 어른들은 좀 어렵더군요.”
 
 수준 같은게 있을까 궁금했다.
 “처음에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사람의 얼굴형상을 발견하는 단계입니다. 2차 3차 수업이 진행되면 ‘손을 움직여요.’ 제작까진 아니지만, 예를 들어 우연히 떨어져있는 솔잎의 배열을 보고 거기다가 작은 돌멩이를 두 개 주워와 놓고 잠자리를 만드는 식입니다. 관찰과 상상력과 응용입니다. 반드시 이게 작품질의 수준 순서는 아니겠지만요.”
 10년 넘게 수업을 해왔으니 다른 곳으로 널리 알려졌을 것 같다.
 “특히 3년 전 책을 낸 뒤에 많이들 시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수련원, 각종 캠프에서 체험프로그램으로 쓴다고 합니다. 미술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해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잘 되는곳도 있지만 안되는 곳도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쉬운데 안가르치는 것이 어렵다는거죠. 방치, 방임하는 것이 안되면 못하는겁니다. 시간을 주고 기다려야 하는데 빨리 성과를 내려고 한다거나 그냥 두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연미술은 자연 그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연 속에 있는 것을 우리들이 보느냐 안 보느냐의 차이에 따라 유무가 결정되는 것이다.
 자연미술의 재료는 자연에 있고 자연은 변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운동장에 만든 여러 걸작품들은 바람불거나 비가 오거나 혹은 다른 학생이 쓱 지나만 가도 없어진다. 자연미술은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고 그 발견 그 자체와 창의력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사진의 도움을 받아 기록으로 남길 뿐, 실체는 강물 흘러가듯 없어진다. 이선생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이 작가다. 농사가 예술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미술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잘 그리려고 하다가 못그리게 된다. 잘 그릴 필요가 없어지면 쉽게 그린다.”
 학생들 두 세명이 결혼식장을 형상화했다고 해서 가봤다. “교장선생님이 아끼시는” 꽃밭에서 꽃을 몇 개 뜯어와서 신랑신부를 만들었고 솔방울로 주례와 하객을 만들었다. 그럴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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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이다혜, 꽃들의 결혼식

 

추신:  교장선생님께 “혹시 기사보시더라도 아이들이 꽃보다 더 예쁘니 야단치지 마세요~”

추신: 서산여고 1학년 김나연학생의 작품으로 9월 뭘까요 퀴즈 나갑니다. 이곳으로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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