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남자를 기어가게 했나?

사진마을 2016.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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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사진전-이 한 장] 4. 2006년 5월 5일 카나리제도 푸에르테벤투라

 
 ‘로이터 사진전-세상의 드라마를 기록하다’가 개막되었다. 9월 25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열린다.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은 휴관.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오후 7시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다.

 

rt04.jpg » ⓒ로이터/후안 메디나, 스페인 카나리제도 푸에르테벤투라섬의 그란타자할 해변에서 이민자인듯한 한 남자가 임시로 만든 배를 타고 해변에 도착한 후 해변을 기어가고 있다.
 
 
 약간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진에서 금방 뭘 느낄 수 있다.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제시한 스투디엄적인 사진의 기본 형태라고 할 수도 있다. R.B가 말하기로는 지식과 교양으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스투디엄이라곤 했지만 이 사진은 너무나 간단하다. 배를 타고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불법 이민자가 해변에 도착을 했는데 이제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지, 잡혀가는 것이나 아닌지 불안한 모양으로 엉거주춤하고 있다. 이대로도 충분히 절절하지만 이 사진의 완성은 뒤에 있는 해수욕객들에게 달려있다. 같은 해변에서 누군가는 모래밭에서 휴식을 즐기고 누군가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 좌불안석이다.   천양지차의 대비를 보여주는 이 순간, 만인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신화는 여지 없이 깨진다. 무릇 사진이 탄생한 직후부터 대비는 많은 사진가들이 즐겨 사용한 방법이다. 병사와 수녀, 꽃을 든 여자와 경찰, 아이와 돌고래, 흑인과 백인…. 로이터사진전이 열리는 예술의 전당에도 이런 보도사진이 숱하게 있다. 이건 아는 만큼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성의가 있으면 누구나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불현듯 브레히트의 ‘전쟁교본’이 떠오른다. 특히 보도사진이라면 정확한 사진설명의 동반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브레히트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사진 아래에 붙은 사진설명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고 독자적으로 주석을 붙였고 이를 사행시로 표현했던 것이 전쟁교본이다. 브레히트가 말하는 정확한 사진설명이란 정확한 문장을 뜻하거나 정확한 상황묘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사진은 눈 앞에서 벌어지는 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그 순간을 넘어서는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로버트 카파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찍은 ‘오마하해변을 상륙하는 해병대원’의 사진이 있다.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고 전해지는 그 유명한 사진에 붙인 브레히트의 주석을 보면 통렬한 정도가 아니라 소름이 끼친다. 과연 우리는 신문에 나오는 사진에 전후 맥락에 대해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 것일까?
 
    브레히트의 주장은 “부르주아의 수중에서 진실에 역행하는 무서운 무기가 되었다. 매일 인쇄기가 뱉어내는 엄청난 양의 사진자료들은 진실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의 은폐에만 기여해왔다. 사진기 역시 타이프라이터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이 사진 자체의 설명 “스페인 푸에르테벤투라 카나리섬의 그란타자할 해변에서 이민자인듯한 한 남자가 임시로 만든 배를 타고 해변에 도착한 후 해변을 기어가고 있다”에는  거짓이 없을 것이다. 2006년 무렵 한해 2만 여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이 카나리제도 쪽으로 밀입국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진을 보면서 왜 아프리카인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가는지를 생각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내전, 기아 등 가까이 보이는 문제가 있겠지만 그 너머의 먼 역사에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독한 아프리카 수탈이 자리 잡고 있다. 백인문명이 아프리카 흑인 문명을 흔들어놓은 원죄가 시작이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덴마크, 독일, 이탈리아, 벨기에 등 유럽의 대부분 국가가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외면하지 말고 한번 더 이 사진을 보자. 흑인은 맨발로 모래밭에서 엎드리고 있다. 배를 타고 어렵게 건너왔으니 기진맥진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노예처럼 보이기도 한다. 저 뒤로 초점이 나간 상태의 백인들은 이 노예의 주인처럼 보인다면 과한 해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엔 맥락이 있고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 선조들이 남긴 역사적 유산을 후손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브레히트가 이 사진을 전쟁교본에 썼다면 뭐라고 주석을 달았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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