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풍경, 풍경인 사람, 그리고 나인 그

곽윤섭 2014. 01. 28
조회수 13458 추천수 1

 박대원 사진집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

 정년퇴직 뒤 ‘입사’한 사진기 들고 날마다 거리로

 말 붙이고 맘 붙이니 그가 렌즈로 걸어 들어왔다


p117.jpg » 117쪽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금융노조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노동운동도 하다가 정년퇴직한 박대원(72)이 손주가 태어나면서 장롱 속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 10여년 찍은 사진과 글을 묶어 첫 사진집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을 냈다. 여기까지 보면 전몽각이 딸을 찍어서 만든 ‘윤미네 집’같은 가족앨범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제목부터 범상치 않고 책의 내용도 판이하다. 

 사진집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은 정년 후 매일같이 동묘, 인사동, 황학동 등지로 출근하는 그 나이 또래의 다른 노인들처럼 대중교통수단으로 서울 도심을 다닌 결과물이다. 다른 노인과 차이가 있다면 그의 손에는 늘 카메라가 들려 있었고 그의 카메라는 꽃이나 풍경이 아닌 평소 동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진마다 사람이 꼭 들어가야 한다는 그의 사진철학은 어떤 풍경에 사람을 넣는다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사람이 있는 풍경이 아니라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기 위해선 다가서야만 한다. 

 박대원은 “내가 속해 있는 동호회 ‘라이카클럽’에선 ‘쉽게 사람에게 접근해서 잘 찍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누구든지 스스럼없이 접근해서 이야길 건넨다. 처음부터 카메라를 들이대선 안 되지. 이걸 몇 년씩 반복하면 웬만하면 다 찍을 수 있었다. 특별한 재주 같은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사진집의 처음과 끝은 박대원이 ‘황학동에서 만난 첫 친구’ 김창복의 얼굴 사진이 3년의 간극을 두고 등장한다. “첫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아주 나쁘진 않았다. 나날이 병이 깊어가고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사진집에는 이처럼 거리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화재현장에서 만난 소방관, 레미콘 타설후 쉬고 있는 노동자, 노점상, 뭔가를 지키는 경찰, 잃어버린 10살짜리 시베리아 허스키 ‘꼬마’를 찾는 전단을 붙이는 이, 그리고 동묘 옆 골목길에서 정담을 나누는 노인들 등이 이어진다. 

 중간에 손녀도 한 컷, 암투병하던 동서도 한 컷, 그리고 불쑥 유리 진열장 속에서 카메라를 든 박대원 본인의 반영도 한 장 들어있는데 자화상마저도 타인처럼 찍혀있다. 노숙자는 좀처럼 찍지 않으려고 피해왔는데 “한 장 찍어주소”라고 말을 먼저 건네와서 알게 된 이름 모른 사내의 넋두리가 절절하다. 박대원은 “아마도 지금은 세상을 떴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책의 후반부엔 이처럼 박대원이 사진을 찍기 전후에 사람들과 나눈 사연을 따로 모아 두었으니 사진을 보고 느낀 감정을 글에서 찾아서 확인해보면 이해에 더 도움이 된다. 사진들을 보면 책을 낼 만한 수준이 충분하다. 하지만 일흔 넘은 나이에 뜬금없이 첫 사진집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박대원은 “지금도 작품의 완성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손주에게 할아버지가 들려주고 싶은 사진과 글이란 점은 인식하고 있다. ‘세상살이는 이런 것이다’라는 이야기다”라며 “일흔 넘은 나도 이렇게 하는데 사진에 뜻을 둔, 아직 젊은 누군가에게 제 책이 용기와 희망을 주는 한 줌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고 밝혔다.


p115.jpg » 115쪽

p23.jpg » 23쪽

p63.jpg » 벌건 대낮에도 나는 틀이 무섭다. 내 사진이 아직도 없기 때문이다. 63쪽

p71.jpg » B&W Single Image Contest Award 2013 당선작

p81.jpg » 81쪽

p83.jpg » 83쪽

p99.jpg » 99쪽

p105.jpg » 지하철 바꿔 타고 내리는 역은 알겠는데..... 105쪽        

 

 사람을 찍다보니 난처한 경우도 많아서 영문도 없이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스스로 ‘제3의 다리’라고 이름 붙인 에피소드다. 강남의 어느 치과에서 이빨을 뽑고 나오다가 지하철 입구에 있는 잡동사니 좌판이 눈에 들어와서 그 앞에 주저앉았다. 면봉을 두 통 사고 담배 하나 태우면서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하고 한참 대화하다가 “다음에 또 뵙죠”라며 인사하고 물러나오는 길이었다. 역무원이 “여학생의 치마를 찍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면서 역무실로 끌려갔다. “필름을 현상해보면 알 거 아니냐”고 여러 차례 말했으나 결국 파출소를 거쳐 경찰서까지 4시간 넘게 ‘잡혀’ 있었다. 전과가 있냐고 묻기에 없다고 했더니 하나 나왔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1960년대 초 한일협정 반대 시위때 집시법 위반 전과가 한 번 있었다. 정확히 4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필름을 현상해서 가져오더니 “찍힌 게 없으니 집에 가시라”고 해서 석방되었다. 억울했지만 어떻게 보상받을 방법도 없었다. 나중에 파출소에 다시 가 왜 그 시점에서 필름현상을 안해봤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필름을 카메라에서 꺼내면 망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어이가 없었다. 하하….
 인터뷰를 마친 박대원은 현상을 맡겨놓은 필름을 찾기 위해 눈발이 세차게 날리는 거리로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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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후반부에는 사진집에 맞춰서 쓴 박태희의 에세이가 들어있다. 일부를 발췌해서 소개한다

 

<내 안에 있는 나보다 더 나 자신인 어떤 존재에 관하여>

                                                           박태희
 
  
 인간이 가는 길은 결과적으로 그 길이 인도하는
 어디에라도 도달하게 될 것이고,
 중요한 점은 그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단지 그가 가고 있다는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아이스께끼 파는 여인>에는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이 세상의 모습이 끊임없이 얼굴을 바꾸는 건지, 자신의 영혼에 여럿의 얼굴을 부여한 건지, 박대원이 카메라로 포획한 장면들은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며 우리를 바라본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도 자기 자신을 똑같이 바라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사진집에 실린 무수한 사진들이 결국 박대원의 자화상들인가? 그리하여 이 사진들을 바라보는 독자 또한 수없이 변하는 스스로의 얼굴을 확인하게 되는 것인가? 마치 우리가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볼 때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모든 위대한 작품들을 대면할 때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경험이 촉발되는데, 그 사진에 사로잡혀 그곳에 있는 장면이나 얼굴들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바라보는 내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그들을 직접 눈 앞에 보고 있다고 믿게 되고 그 사진에 표출된 영혼의 상태를 곧 내 영혼과 동일한 상태로 감지해버리는 것이다. 마치 실제의 경험인양 끊임없이 사진 속 인물과 시선을 교환하다 보면 그를, 그곳을, 그 햇살을 기억하게 되고 그 기억 속에서 망각하고 싶어도 망각할 수 없는 질문들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이다.
           
 대체 저 검은 두 눈, 수수께끼처럼 인생의 비밀을 가득 담은 저 눈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운명처럼 따라오는 슬픔을 등에 업고 그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바라보는 동안 모든 걸 용서하게 만드는 그녀의 눈빛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왜 사람들은 이토록 집요한 고통에 시달려야만 할까? 잠시만이라도 나 자신으로 머무를 수 있었던 적은 언제인가? bdw.jpg
 
 이제 떠나야 하는 순례의 길을 가듯이 나는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본다. 이 사진가는 그곳이 어디건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몇 시간이고 걸었을 것이다. 좌판의 헌 옷가지들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코를 찌르고 온갖 잡동사니들이 먼지를 풀풀 날리는 거리를 지나, 메마른 풀잎과 길들여지지 않는 개들이 떠도는 황폐한 거리를 지나, 차가운 맨바닥에 드러누워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빈민의 거리를 지나, 청춘의 영광이 초라한 폐지로 떠도는 젊음의 거리를 지나 한번만이라도 그를, 그녀를, 그 아이를, 그 청년을, 그 어머니를 다시 볼 기대감에 부풀어 눈을 부릅뜬 채 말이다. 그의 가방 어딘가엔 그들에게 줄 사진들이 담겨 있을 테고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들과 만나는 시간 그 자체인 것이고 행여 그들이 있었던 자리가 비어있기라도 하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거나 덜컥 자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다음 날도 해가 뜨기 무섭게 큰 길로, 작은 길로, 골목 길로 찾아 헤매고 다니며 함께했던 그 짧은 시간이 생명 잔처럼 소중히 담긴 사진들을 손 안에 쥐어 주고서야 일흔이 넘은 이 사진가는 그늘아래 쉴 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중략>
 
 이제 나는 깨닫는다. 서로 다른 얼굴들을 들여다보면서 결국 나 자신의 얼굴을 찾게 만드는 것이 이 사진가의 굳건한 의지였다는 것을. 내게 남은 과제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바라보듯이 이 사진들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그리하여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안에서 낯선 표정을 발견하듯이 내 안에 있는 나보다 더 나 자신인 어떤 존재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진심으로 내 자신의 다른 얼굴들을 인정하고 내 안의 모순들을 어루만지고 그래서 내 안의 불화를 견뎌낼 수 있게 된다면 이 사진들의 의미는 완성된 것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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