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아프리카, 검은 동백꽃

곽윤섭 2013. 07. 16
조회수 11017 추천수 1

김민호 사진집  <동백꽃 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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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진집이 나왔다. 출판사는 ‘안목’이며 책 이름은 ‘동백꽃 아프리카’다.
 사진집을 소개하는 글을 쓰려면 그 책에 들어있는 사진을 이해해야한다. 이해도 하고 동감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으므로 그냥 이해하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어떤 사진들은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땐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영 잘못 읽어낸 경우도 있었다. 오독하여 이해가 아닌 오해를 했다는 뜻인데 참 난감하다. 그러므로 보고 또 보고 생각을 정리하길 여러 차례 반복하고서야 비로소 손가락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보도자료로 날아온 사진 파일을 열고 크게 키워보고 순서없이 이것저것 연이어서 넘겨보고 다시 덮는다. 만약 보도자료와 함께 사진집도 보내준다면 좀 낫다. 책에 든 모든 사진을 다 보고 글을 쓰는 것과 서너장만 보고 글을 쓰는 것은 천지차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면 고맙겠는데 그렇지 않은 때도 있다. 사진집이라면 내가 주문해서 볼 수도 있고 맘에 드는 책이라면 서너권 구입하기도 했다.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에 미셸 투르니에의 글을 결합한 ‘뒷모습’은 세 권 샀고 윌리 호니스의 ‘그날들’은 다섯 권 샀다. 지인들에게 선물로 줬다. 그냥 주는 경우도 있지만 과제로 제출된 사진을 보고 상품으로 주기도 한다. 책을 받은 적이 없다면 지인이 아니거나 과제로 제출한 사진이 별로 좋지 않아서 등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제 사진 등수 매김은 내가 하지 않고 수강생들끼리 투표해서 정한다.     
 
 그런데 사진책이 없는 사진전이라면 좀 경우가 다르다. 기껏 10장 안쪽의 사진만 보고서 눈감고 밤길 걷듯 조마조마하게 전체 사진을 읽어내야 한다. 전시는 책과 다르다. 그러므로 원칙을 지키려면 전시가 개막된 뒤에 직접 발품을 팔아 전시장의 공기도 맡으면서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해독하여 전시를 소개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사례도 많았다. 빨리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앞서서 어쩔 수 없었다. 소개하고 전시가 열리면 가서 보고 내가 쓴 글에 오류가 있으면 보완하거나 수정하곤 했다.
 
 이야기가 빗나갔다. ‘동백꽃 아프리카’를 받아들고 이러저리 살펴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느낌이다. 첫 느낌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한 것이 아니다. 어림잡아 대여섯번은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는데 첫 느낌과 두 번, 세 번째 펼쳤을때의 차이를 가늠하려면 첫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에 책이 왔다고 하면 일단 봉투에서 꺼내놓고 저만치 던져두고 힐끔 겉표지를 보기만 한다. 그러다가 무심한 척 집어들고 몇 장 넘겨보다 닫는다. 다음날 아침에 또 몇 장 열어본다. 점심을 먹기 전에 또 열고 밥 먹고 와서 또 열어본다. 아주 다르다. 2013년 7월 한국은 장마철이다. 비가 올 때 사진을 보는 것과 잠시 소강상태에서 다시 습기와 열기가 치밀어 오를 때 보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kmh-01.jpg
 
 ‘동백꽃 아프리카’의 독서가 어려웠던 이유는 글이 있기 때문이다. 78장의 사진과 31편의 글이 공존한다. 사진이 두배 이상 많고 글이 그리 길지 않으므로 처음엔 사진위주의 사진책으로 보였지만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저자 김민호가 직접 쓴 글을 읽어야만 사진도 읽힌다는 점에서 이는 새로운 형태의 사진집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나의 결론은 이러하고 아직 바뀌지 않았으며 당분간 바꿀 생각도 없다. 글과 사진이 결합한 형태의 사진집을 만든다면 사진과 글이 각각 독자적으로 완성도를 가진 상태에서 나열되어야 좋겠다는 결론이었다. 아주 초기엔 (어떻게든) 나도 사진을 하는 사람이므로 사진을 더 위주로 놓고 글은 사진을 보완하는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책으로 만들어진 상품가치를 생각하다 보니 글과 사진 양쪽 모두 튼튼한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사진을 보거나 글을 읽을 때 둘이 뚝 뚝 끊어지는 기분이 들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책 ‘동백꽃 아프리카’는 어느 한쪽만 봐서는 다른 한쪽을 이해할 수가 없으므로 어렵다.
 
 본격적으로 사진 이야길 해보자. 멀다. 아주 멀리서 먼 풍경을 찍었다. 여러 탓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서 먼 풍경일 수도 있다. 잘 모르면 가까이 가지 못한다. 가까이 가서 잘 보이게 되면 더럭 겁이 날까봐 가까이 가지 못한다. 멀리서 찍다보니 나무, 사람, 바위, 코끼리, 집이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더 쓸쓸한 버전의 필립 퍼키스가 떠오른다. 아프리카로 간 박태희의 시선이 떠오른다. 황량하고 먼지 풀풀나는 차안에서 유리창 탓에 희미하게 보이는 풍경도 있다. 사람을 찍은 사진도 간혹 있으나 그 역시 풍경처럼 보인다. 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를 못보고 자신의 마음을 본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동백을 봤다는 것이다. 서른한 편이나 되는 글을 다 읽어야한다. 그래야 사진이 보인다. 사진만 봐서는 사진이 보이질 않는다. 이것은 분명히 저자의 의도이니 뭐랄 일은 없다. 사진과 글의 조합에 대한 새로운 시도다. 핵심은 이런 것 같다. 이 사진집을 다 보고 나서 뭐가 남을까. 글이 남을까? 사진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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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은
 
 어떤 바람에 떨어지던 동백은
 
 삶의 한바탕 소란함을 조용한 낙하로 삭히고
 
 어떤 흙먼지에 구르던 동백은
 
 꽃잎을 여미는 처연함이 있고
 
 어떤 돌무덤에 의지하던 동백은
 
 붉은 덩어리 한 올도 놓지 않으니
 
 비로소 동백다운 동백이 되듯
 
 나타났다가 홀연 사라지는
 
 아프리카 사람은
 
 어느 곳 어느 순간에 놓여도 그들다움이 있다.
 (165쪽)
 
 <저자소개> 
 
 김민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2011년, 인사아트스페이스에서 사진전 Marginal land(변이의 땅)을 전시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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