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외로운 늑대처럼

곽윤섭 2015. 02. 01
조회수 18884 추천수 1

 

  일본 20년 청산하고 귀국한 권철

  한센병 회복자를 알리는 사진전

 

kc0001.JPG » 외로운 늑대의 표정을 지어달라고 하자 활짝 웃는 권철 kc0002.JPG » 이것이 원래 권철의 표정이다.

 

 

 해병대 저격수 출신 사진가 권철(48)씨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전시실에서 사진전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을 열고 있다. 같은 이름의 포토에세이집은 지난해 연말에 나왔다. 권씨를 1월 31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공학도 출신인 권씨는 1986년 무렵 학생 시절 88고속도로와 댐 등의 건설현장에 산업시찰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연일 언론에 공사와 관련된 비리가 보도되는 것을 보고 한국의 구조적인 모순에 환멸을 느꼈던 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군 제대 후 1994년에 홀연히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사진예술전문학교에 들어갔는데 히구치 겐지교수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첫눈에 ‘외로운 늑대’ 같았다는 히구치 겐지는 후쿠시마원전 등에서 40년 넘게 피폭노동자를 찍은 다큐멘터리사진가였다. 늑대가 늑대를 알아봤다. “너무 강해서”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싫어하던 히구치 교수와 권철은 죽이 맞아 존경하고 사랑받는 사제지간이 되었고 권철 사진인생의 출발점이자 영원한 사표가 되었다.

 

 권철은 학교 과제 겸해서 가부키초와 한센병 회복자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텟짱과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텟짱(사쿠라이 테츠오)은 아오모리현의 비교적 유복한 과수원농가에서 태어났으나 17세에 한센병 환자로 판명되어 1941년 군마현 쿠사츠 한센병 요양원에 강제 격리 수용되었다. 요양소 원내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나 한센인의 출산이 금지됨에 따라 부인은 강제낙태를 당했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떴다. 텟짱도 한센병 신치료제 프로민의 부작용 탓에 신경통, 결절, 궤양, 연쇄상구균으로 인한 고열로 손은 뭉개지고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시각장애인 장기를 배우면서 활로를 찾았고 이 때의 끈기와 기억력을 바탕으로 50대 후반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눈도 보이지 않고 펜을 쥘 손가락도 없어서 점자도 못 쓰는 그는 일주일에 한번 장애우회관 직원이 찾아오면 머릿속에 저장했던 시를 구술하여 대필시켰다. 1988년에 첫 시집 ‘쯔가루의 자장가’를 출간하는 등, 모두 6권의 시집을 냈다.

 

kc01.jpg

kc02.jpg

kc03.jpg

kc04.jpg

kc05.jpg

kc06.jpg

kc07.jpg

kc09.jpg

kc10.JPG kc11.jpg

kc13.jpg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 12월에 87세로 세상을 뜬 텟짱의 파란만장한 생이 권철의 사진 속에서 살아남아 있다. 한센병 회복자 중에서도 텟짱은 유난히 후유증이 심해 외모가 많이 망가진 상태다. 누구든지 처음엔 사진을 찍는 것은 고사하고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힘들어 한다. 권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차츰 대화를 하다 보니 공통점이 많았다. 유학생으로 타향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권철의 집도 어릴 때 과수원을 했고 7남매로 형제가 많았다. 고향에서 격리되어 수용된 텟짱도 과수원집 아들이었고 11남매로 형제가 많았다. 일본 북부 지방과 경북 산골의 추운 지방에서 자란 것도 같아서 둘이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번 전시는 텟짱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측면이 강하다고 했다. 권씨는 “내가 텟짱을 찍는 것에 의심스런 시선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텟짱이 직접 나서 ‘촛불처럼 자신을 희생시켜서 세상에 한센병을 알려야한다. 나를 찍어라’고 하셨다. 지난해 책으로 나와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고 이렇게 전시를 열 수 있게 되어 기쁘다”라며 “2016년이 소록도에 병원이 들어선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소록도에서 전시하려고 한다. 그 다음엔 전국을 돌면서 순회전을 하고 싶다. 10대~30대 젊은 사람들은 한센병이 뭔지 모르고 그들이 역사의 피해자라는 것도 전혀 모른다. 한센인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이제 한센병 환자는 거의 없는 셈이다. 완치가 되었으니 한센병 회복자라고 부르는 것이 맞고 계몽운동이라고 해야한다. 기회가 된다면 강연도 많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kc003.jpg

 

1994년 4월 5일 일본으로 갔던 권철은 우연히도 정확히 20년 만인 지난해 4월 5일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계기가 뭔지 물었다. “1999년 처음 한센병 회복자사진으로 잡지에 데뷔했다. 가부키초, 오오쿠보의 코리아타운 한류, 야스쿠니 등을 찍었고 일본에서 잘 나가는 사진가가 되었다. 2012년 ‘헤이트스피치’가 일본 사회를 휩쓸면서 처음 ‘조센진’이라는 비하 발언을 들었다. 그전까지 일본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는데…. 아이도 어리고 해서 귀국을 결심했다. 일본생활 정리 차원에서 냈던 책 ‘가부키초’가 2013년 일본 최고 권위의 고단샤출판문화상을 받는 바람에 좀 흔들렸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앞으로 뭘 찍을지 묻자 “일본에서 한 마리 외로운 늑대처럼 버텼다. 한국에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고 사진작업을 할 것이다. 제주도에서 중국자본에 팔린 이호테우해변의 해녀들을 만났다. 이들은 해변이 매립되어 양식장에서 물질을 하더라. 중국자본의 잠식이 어떻게 한국사회를 바꾸는지 볼 것이다. 또한 기장과 울진, 영광의 바닷가를 가보려고 한다. 원전은 긴급한 테마다. 홍대 앞 문화도 찍을 것이다. 앞으로 15년~20년 사이에 홍대 앞은 신주쿠의 가부키초 같은 환락가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마약과 폭력배와 권력이 유착되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라고 했다. 권철은 올해 안으로 야스쿠니를 다룬 사진집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대가 크다. 서울대 전시는 2월 6일까지 열린다.

 

 

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전시회

한 마리 외로운 늑대처럼

  • 곽윤섭
  • | 2015.02.01

일본 20년 청산하고 귀국한 권철 한센병 회복자를 알리는 사진전  해병대 저격수 출신 사진가 권철(48)씨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전시...

뭘까요

5월 정답 발표-6월 문제 출제 [1]

  • 곽윤섭
  • | 2014.06.24

 5월치 ‘뭘까요?’ 정답은 ‘화장실안내표시’입니다. 인천 송도에 있는 뉴욕주립대의 건물에 있었습니다. ‘화장실’도 정답입니다. 문제가 많이 어...

전시회

시로 쓴 노동과 사진으로 쓴 노동, 30년 세월의 강 [7]

  • 곽윤섭
  • | 2014.02.10

박노해 <다른 길> 나눔과 평화 화두, 아시아 빈국 삶의 현장 담아 ‘사진’ 이외의 말로 하는 ‘전시 군더더기’ 아쉬움  박노해의 사...

전시회

시인이 찍은 사진엔 시가 흐른다

  • 곽윤섭
  • | 2012.08.10

박노해 사진전 <노래하는 호수> ‘아픈 땅’ 버마에서 건져올린 ‘노동의 새벽’ 노래하는 다리. 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박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