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더러운 전쟁 사진증언, 4인방의 회고담

곽윤섭 2013. 0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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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뱅클럽

 무용담보다 사진의 본분과 본질에 대한 성찰

 

                                                                                                                2005년 글 케빈 카터를 위한 변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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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뱅뱅클럽’이 나왔다. ‘뱅뱅’(Bang-Bang)은 ‘요란스러운 총격전’을 뜻한다. ‘뱅뱅클럽’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활동했던 4명의 포토저널리스트 그레그 마리노비치, 주앙 실바, 케빈 카터, 켄 오스터브룩를 가리키는 용어다. 이들은 넬슨 만델라의 석방부터 1994년 4월에 치러진 역사적인 민주 선거에서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기간 동안에 영웅적인 취재활동을 벌였다. 이 시기는 남아공 백인정권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막바지로 치달으며 폭력과 학살이 난무하던 때였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6%의 백인이 84%에 달하는 비백인을 차별한 정책으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격리, 분리, 고립시킨 야만적인 역사다.  
 
 남아공의 백인 정권은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을 벌여온 만델라가 이끄는 ANC(아프리카민족회의)의 집권을 막고 흑인 사회에 분열과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극우 백인 단체 그리고 백인 정권의 지원을 받은 남아공 줄루족의 정치조직인 잉카타를 부추겨서 습격, 살인 등을 자행하는 ‘더러운 전쟁’을 일으켰다. 1990년부터 1994년 4월까지 무려 1만4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의 서문을 데스몬드 투투(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명예 대주교)가 썼다.

 

 “가장 불안정한 시기인 선거 직전에 두 정당이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총격살해를 벌였다는 설명은 더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집단거주지 주민들을 혼란해 빠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넬슨 만델라의 ANC가 더 이상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다고 믿게 하여 흑인 집단거주지에서 ANC의 지지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고안된 작전이라는 것이 훨씬 설득력있게 들린다. 결국 이들은 흑인들간의 폭력사태를 유도하여 여전히 흑인들이 민주주의와 정치권력을 가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떠들어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중략)
 이제 세상은 이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재능이 뛰어난 저널리스트와 사진가의 도움으로 숨겨진 이야기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많은 이미지를 필름에 남겼다. 이들을 통해 잔인한 네클리스를 비롯한 분쟁지역에서 힘없는 이들에게 자행된 야만적인 집단폭행이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들중 한 명은 수단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를 뒤쫓고 있는 콘도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사진은 어느정도 자기만족에 빠져있던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우리는 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종종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광적인 대혼란의 현장에서 어떻게 이런 이미지들을 포착할 수 있었을까? 놀라운 담대함과 전문성을 가지고 데드존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이들은 하늘로부터 놀라운 용기를 부여받았음이 틀림없다. 또한 이들은 현장의 모든 것들을 일상처럼 받아들이기 위해서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해야만 했을 것이다. (중략)
 우리 사회가 억압에서 민주화로, 불평등에서 자유로 전이되는 과정에서의 이들의 공헌은 분명하며,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네 명의 포토저널리스트 중에서 케빈 카터는 자살했고 켄 오스터브룩은 취재중 총을 맞아 사망했다. 살아남은 그레그 마리노비치와 주앙 실바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이제 더 이상 아무 생각없이 ‘타인의 고통’ 운운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좋겠다. 그러니 제발 뭘 좀 알고나서 “사진가의 윤리, 사진보다 목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길 바라면서 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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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켄 오스터브룩을 개리 버나드와 남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이 함께 돕고 있다.(주앙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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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18일. 토코자에서 주앙실바가 개리 버나드를 촬영하는 동안 부상을 입은 그레그 마리노비치를 제임스 나트웨이가 부축하고 있다.

뒤에는 크게 부상을 입은 켄 오스트브룩이 남아프리카 평화유지군에 의해 옮겨지고 있다. (주다 엔그웨냐/로이터)

 

 

책은 그레그 마리노비치의 회고담형식으로 진행된다. 네 명 중 두 명은 죽었지만 이 책은 네 명의 심정을 대변하며 진행된다. 그레그 마리노비치 자신도 여러 차례 총에 맞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첫 에피소드가 바로 자신이 중상을 입은 1994년 4월 18일에서 시작된다.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나를 엄습해왔다. 그래 이것이다. 난 마땅히 치러야할 일을 치렀다. 그동안 다치거나 죽은 누군가를 뒤로하고 탈출하는 수많은 구사일생의 순간을 경험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원하는 사진을 건지는 행운의 여정을 계속해왔던 것에 대해 속죄했다”


 “그동안 우리 네 사람은 방탄조끼를 거의 입어본 적이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기 직전 마을 초입에서 케빈은 방탄조끼를 꺼내입었다. 이제 우리 네사람도 더 이상 전설의 불사조가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백인정권은 흑인과 유색인종 그리고 인도인까지 포함한 모든 남아공 사람들이 처음으로 1인1표를 행사하는 선거를 주장하는 ANC의 기반을 무너뜨리기를 원했다. 백인정권과 협력하고 있던 잉카타는 비밀리에 무기를 지원받고 비밀조직으로부터 군사훈련을 받았다”

 “케빈은 군중들이 그녀를 차고 때린 후 휘발유를 붓고 태우는 장면을 촬영했다. 케빈은 이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수년후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고 놀랐고 이런 현장에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한번 더 놀랐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진들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했던 일들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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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소웨토 이라자네. ANC 지지자 한명이 몸에 불이 붙은 린지에 차발랄라를 내려찍고 있고, 어린 소년 한 명이 자리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이 사진은 1990년 스팟 뉴스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리즈 사진들 중 한 장이다. (그레그 마리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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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3월 남부 수단의 아요드 마을에서 콘도르 한 마리가 굶주린 아이를 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진으로 케빈 카터는 기획사진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케빈 카터/코비스 시그마)

 

   

“케빈은 꿈속에서 나무들보에 십자가형을 당한 채 바닥에 누워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죽음 직전까지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거대한 렌즈를 장착한 텔레비전 카메라가 그가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날 때까지 점점 더 크게 클로즈업하면서 다가왔다는 것이다. 케빈은 이 꿈이 이제 사진을 그만두어야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세보켄은 우리 같은 백인 저널리스트에게 가장 위험한 지역일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 지역에서 발생하는 일을 외부세계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AP와 뉴욕타임즈에 내 사진들을 전송했다. 우리가 없었다면 대학살에 관한 유일한 정보원은 경찰과 정당들의 대변인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사진의 한계에 대해서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 사진들은 피해자들이 비상연락망을 통해 도움을 청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나서야 경찰이 현장에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 공격에 비밀특공대가 개입되었다는 절대적인 확증도 드러내지 못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그 장면이 이어진다.
 “뉴욕타임즈가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낸시 리는 수상사진이 기아의 상징으로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케빈의 사진이란 것이 기뻤다. 사진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원조단체들에서 기금 모금을 위해 이 사진을 포스터에 사용했다. 또한 전세계의 수많은 신문과 잡지들도 이 사진을 게재했고 독자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내왔다. 수단에 있는 많은 원조기구들에 후원금이 답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다음과 같은 의문점을 불러왔다. 이 작은 소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사진가는 이 소녀를 돕기 위해 어떻게 대응했는가? 콘도르는 조금이라도 생명이 붙어있는 상대는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는 콘도르로 인해 직접적인 위현에 처해 있지 않았다. 그리고 100미터도 안되는 곳에 급식소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굶어죽을 일도 없었다. 처음에 케빈은 자신이 콘도르를 쫓아내고 나무 아래에 앉아 울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질문은 계속 쏟아졌고 그는 아이가 일어나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을 다듬었다. 그의 말에 대부분 수긍하는 편이었지만 정작 케빈은 도덕적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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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고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가 바이도아에 있는 NGO센터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방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아이들을 수용하는 곳으로 이들에게는 더 이상의 식품과 약품이 제공되지 않는다. (그레그 마리노비치)

 

 


 책에도 나오듯 수단의 어려운 사정을 알리는 기자로서의 사명은 완수되었고 그 이상의 일까지 해낸 케빈 카터는 과연 아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인가.
 “주앙과 내(그레그 마리노비치)가 1992년에 충격적인 기아를 취재하기 위해 소말리아에 갔을 때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보았지만 한 명도 구조한 적은 없었다. 우리가 직접 도움의 손길을 내민 적은 없었다. 우리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들의 사진을 촬영했다. 자신의 아이가 무릎 위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기아에 허덕이는 아버지가 지켜보는 사진을 촬영하면서 무기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사진들 비극과 폭력은 분명히 강력한 이미지를 만든다. 이런 사진을 통해 우리는 돈을 번다. 그러나 사진 한 장 한 장 만다 우리는 대가를 치른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 연약함 그리고 동정심이 셔터를 누를 때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간다”


 케빈 카터는 왜 자살했을까?
 “이 시기에 케빈은 혼란스러워했고 늘 분노했다. 단 2주 사이에 그는 음주운전으로 체포되고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직장을 잃었다가 퓰리처상을 받아 다시 일을 되찾았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로이터가 다시 케빈을 고용했다는 것을 케빈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케빈은 많은 잡지사를 비롯해 시그마와도 계약을 성사시키고 뉴욕에서 돌아왔다. 퓰리처상을 받은 그를 모든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심지어 그는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과 영부인 힐러리로부터 축하편지까지 받았다. (중략) 케빈은 카메라를 들 때마다 콘도르 사진 수준의 작품을 찍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고 사진가의 상투성이 그를 괴롭혔다.”


 그리고 케빈 카터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차안으로 연결해 자살했다.
 “케빈이 자살하던 날 아침에는 케빈의 수단 사진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적어서 보낸 일본학생들의 편지다발이 그의 부모집에 도착했다. 장례식에서 편지의 일부가 낭독되었다.

 

 제가 만약 이런 험악한 상황에 처한다면 난 당신의 사진을 기억하고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거에요.
 저는 이제까지 참 이기적인 사람이었어요.
 이 사진을 본 이후로 저는 어떤 것이든지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난 사진을 찍지 않고 이 소녀에게 물을 가져다주었을 거에요
 난 떨리는 손으로 한 장의 사진을 찍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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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 백인 우익들에 의해 크리스 하니가 암살된 후 소웨토 거주자들이 프로테아 경찰서 밖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총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케빈 카터가 현장에 있던 켄 오스트브룩을 찍기 위해 그를 향해 카메라를 조준하고 있다. (켄 오스트브룩/더 스타)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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