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90%는 아이디어, 작가는 뭣으로 기획하나

사진마을 2017. 04. 26
조회수 8695 추천수 0

[사진가들이 밝히는 노하우]




   유명 사진교육가 필립 퍼키스
 “거의 모든 것은 사전 계획
 10%만이 물끄러미 바라본 결과물”
  
 인터넷으로 유적·전통문화·행사 검색
 관련 책을 보고 자료조사도 하고
 산문집이나 역사·철학서에서 영감도
  
 거리 떠돌다 듣는 단어 적어 놓고
 영화 보고 비슷한 곳 어슬렁
 그림 보다 음악 떠올라 이미지로
 
 촬영 현지 오래된 맛집 반드시 검색
 그 지역 물산으로 만드는 음식엔
 그들만의 정서와 문화 고스란히 배어
 
 

photo5.jpg » 종로 3가에서 촬영 중인 필립 퍼키스 (사진 박태희)


날씨가 좋으면 경치가 좋은 곳에 가서 눈에 보이는 대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있다. 책상에 앉아 책과 인터넷을 통해 사전조사하고 기획한 다음 원하는 것이 있는 장소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경우든 빛은 여전히 중요하므로 시간과 계절에 따라 재촬영을 해야 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사진을 진지하게 찍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가들은 어떻게 기획하고 어떻게 작업하는지 살펴봤다.
 사진가이자 사진교육가인 필립 퍼키스는 책 <필립 퍼키스와의 대화>에서 기술 변화와 사진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존 자코우스키는 기술이 사진의 미학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기술은 문화 변동의 반응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피터 플레이젠스는 이렇게 말했지요. ‘예술은 이제 사회학의 새로운 얼굴이다.’ 지금의 사진은 90퍼센트가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아이디어로 끝납니다. 사진가는 아이디어를 갖고 주제를 찾아 나서거나 아이디어를 완성해냅니다. 나머지 10퍼센트의 사진들만이 카메라를 들고 어딘가로 가서 눈앞에 있는 대상을 물끄러미 바라본 결과물이지요”라고 했다. 책에서 대담을 나눈 존 브레이버맨 리바인이 “예전보다 사진의 자유 연상적 측면이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군요”라고 묻자 퍼키스는 “거의 모든 것이 계획된다고 보면 됩니다. 매체 자체가 변화하고 있어요. 로버트 카파, 유진 스미스, 도로시아 랭이 세상 밖으로 나가 노동자와 전쟁과 가난한 사람들을 보여주던 사진의 시대는 베트남전쟁으로 종지부를 찍었어요. (중략) 지금 우린 방 안에 앉아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보지 못한 실제는 어디에도 없어요”라고 답했다. 이미지 홍수의 시대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여 씁쓸한 여운도 있지만 사진가들에게 기획이 더 중요하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다.
 <한겨레> 사진 전문 웹진 ‘사진마을’ 작가마당에 연재하고 있는 김준호, 강미옥, 손대광, 김성훈, 정석권, 이은숙씨 등의 작가들과 현재 스페이스22에서 사진전 ‘또 하나의 경계’를 전시하고 있는 엄상빈 작가, 그리고 ‘한국의 발견’ 3년차 작업을 위해 부산을 찍고 있는 임재천 작가와 인터뷰를 하여 그들의 사진 작업 방식을 들었다. 이들은 한겨레 사진마을 독자들을 위해 ‘영업비밀’을 빼곤 모든 노하우를 공개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여러 작가들이 사전 조사를 위해 책을 본다고 했다. 1년에 한 지역씩 정해서 찍고 있는 임재천 작가는 2017년 작업지를 부산으로 결정하자마자 가장 먼저 80년대에 출판된 <한국의 발견-부산 편>과 <답사여행의 길잡이>를 다시 꺼내들었다. 과거 부산이 어땠는지를 살피자 함이며 어떤 문화 유적이 있는지 보자는 뜻이다. 인터넷을 통해 그 지역의 전통문화를 검색한다. 불교 유적, 행사 등을 사전조사하는 것이다.  

photo2.jpg » 제주에서 촬영 중인 임재천 작가 (사진 김우석)

photo3.jpg » 러시아 캄차카에서 촬영 중인 김준호 작가(사진 천석진)

photo4.jpg » 부산 목욕탕 광진탕에서 촬영 중인 손대광 작가 (사진 김두익)

photo1.JPG » 창신동에서 촬영 중인 엄상빈 작가 (사진 김현숙)

 동해안의 철조망을 통해 분단을 보여주고 있는 엄상빈 작가는 1986년에 어떤 단체전에 갔다가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어떤 사진가가 ‘사회적 풍경’이란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가슴에 와닿았다고 했다. 또 그 무렵에 홍순태, 육명심, 이명동 등이 강사로 참가하는 워크숍에 갔다가 <아메리칸 이미지스>라는 미국 사진집을 당시 거금을 주고 샀는데 거기서 사회적 풍경 작업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전까진 예를 들어 눈 내린 풍경을 찍는다면 눈밭에 발자국 하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선호했었다면 그때부터 확 달라진 것이다. 바로 이듬해인 1986년photo01.jpg » 피터 터너가 엮은 책, 아메리칸 이미지스부터 철조망을 찍으면서 빨래든 오징어든 삶의 흔적을 넣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해수욕객이 지나가는 등 인물이 들어 있는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30년 만에 철조망 작업으로는 처음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책을 보긴 하지만 직접적인 자료 조사라기보다는 영감을 얻는 작가들도 많다. 손대광 작가는 소설가 윤대녕의 산문집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거기 등장하는 목욕탕, ‘점빵들’, 레코드가게 같은 공간들이 선하게 그려지면서 현재 부산 인근에서 찍고 있는 어떤 마을 기록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마을에서 ‘김성훈의 라운드박스’를 연재하고 있는 김성훈 작가는 “주로 신심리주의 소설, 한겨레 금요판 섹션 ‘책과 생각’, 바로크 음악 등에서 실마리를 찾는다”고 했고 ‘애오개’를 연재하는 김준호 작가는 “주로 신화, 역사, 철학 서적에서 작업적 힌트를 얻고 있다”고 했다.
  
 

 

 책 밖에도 길이 있다

 
 책이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영감을 얻는 작가들이 있다. 드럼 연주자이기도 한 손대광 작가는 “‘터미널블루스’도 그랬고 ‘일본 인 아리랑별곡’도 그랬는데 마음에 끌리는 음악을 듣다가 뭔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어떤 미술작가가 슈퍼마켓을 그렸더라. 그 그림엔 사람은 없었으나 사진의 장점인 즉물성과 생동감을 위해 슈퍼에 사람이 들어 있는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트로트가 떠올랐다. 현철의 ‘싫다 싫어’가 될 수도 있고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 될 수도 있다. 최근에 본 영화 <행복목욕탕> <캐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이 모두 사진 작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 영화를 보다가 우리 주변에서 저런 곳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찾기도 한다”고 말했다. 손대광 작가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주제에 맞는 장면을 찾기 위해 어떤 공간을 돌아다니다 새롭게 듣는 단어가 있으면 메모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손씨는 어떤 모임에서 “남의 긴말 하기 싫어서 화투놀이를 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다른 사람들을 흉보기 싫다는 표현인데 와닿았다는 거다. 쌓아둔 메모는 어떤 작업을 하다가 막히면 꺼내 보는데 뿌리를 잡아당기면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려나오듯 아이디어가 이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임재천 작가는 촬영을 가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일 중 하나로 현지의 맛집 검색을 꼽았다. 오래된 맛집을 찾는 것이 사진 촬영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사오십년 된 집은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산으로 음식을 만들 것이고 그 지역의 정서를 고스란히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임 작가는 “부산의 경우 밀면, 돼지국밥, 어묵 등이 유명한데 6·25전쟁 때 구호물자로 나온 밀가루와 감자전분을 섞어서 만들었던 게 밀면의 시작으로 알고 있다. 60년 넘게 부산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부산이 다르게 보일 것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오래된 맛집에는 그 흔적도 남아 있고 관점도 남아 있다. 올해 가을에 부산 작업 사진집과 사진전을 보게 되면 내 사진에서 내 말을 확인해보라”고 홍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자신만의 감성을 찾아서
 
 사진마을에 ‘정석권의 소소풍경’을 연재하는 정석권 작가는 회화의 영향을 이야기했다. 미국 19세기 풍경화가 그룹 허드슨강화파의 화풍처럼 웅장하고 신비로운 자연 풍경을 찍기도 하고 그 풍경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생활을 함께 그려내는 것이 사진찍기의 의도라는 것이다.
 역시 사진마을에 연재하고 있으며 최근에 디카시집 <기억의 그늘>을 펴낸 강미옥 작가는 “내가 살고 있는 양산의 통도사를 촬영하고 있으며 겉모습이 아닌 수행의 공간, 즉 구도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김성훈 작가는 “주로 생활 근거지에서 찍는다. 개인 심리를 반영한 피사체를 찾는다. 자신의 정서와 감성을 표현한 사진찍기는 심리적 치유, 성찰과 명상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여행지에선 명소보다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곳을 찾는다”고 이야기했다. ‘지리산 둘레길’을 연재하고 있는 이은숙 작가는 “아직까지 최대 관심사는 꽃이며 꽃의 아름다움을 통해 사랑, 그리움, 꿈, 희망, 그리고 슬픔 등의 감성 표현에 주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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