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어도 사람이 있는 풍경

곽윤섭 2015.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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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호 개인전 ‘웨이스트랜드(The Wasteland)’

  다큐사진가의 숙명인 초상권 탓에 삶의 흔적 포착

 “신음하는 게 사람뿐이랴…산과 강, 바람과 햇빛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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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문호씨의 개인전 <웨이스트랜드(The Wasteland)>가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12일부터 21일까지 열린다. 갤러리브레송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5번 출구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있다. 오프닝행사가 12일 오후 6시 30분에 열리니 작가를 만나려면 시간을 맞춰가길 바란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브레송이 2014년에 시작한 <다큐멘터리사진가가 찍은 풍경>의 16번째  전시다.

  김문호씨의 사진은 2013년에 전시하고 책으로도 나온 <Shadow섀도>로 사진마을에 소개한 적이 있다.  나온 순서로 친다면 2009년의 <온 더 로드>가 먼저인데 <온 더 로드>는 2014년 11월에 눈빛사진가선 10권이 한꺼번에 나올 때 세 번째 사진집으로 다시 나온 적이 있다. <온 더 로드>에서 현대인들은 거리에서 술집에서, 지하철에서 비척거리면서, 그래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심지어 “팁 3만 원kmh001.jpg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2008 서울 사당)” 달리고 있었다. 5년이 지난 <섀도>에서 현대인들은 어둠 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썼던 기사에서 인용했던 사진들을 다시 읽어봤고 사진집을 찾아서 나머지를 보며 확인하려 했다. 섀도가 보이질 않는다. 어디 숨어 버렸는지. 지난 주말, 그러니까 6일, 7일, 8일에 걸쳐 사무실이 이사를 했다. 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진집을 자의반 타의반 치우려고 했는데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하나씩 붙들고 이삿짐 상자에 넣을지 휴지통에 넣을지 고민하며 벌벌 떨었다. 상당량의 책을 잔류시켰으나 몇 권은 떨어져 나갔다. <섀도>를 그 와중에 본 것 같은데 지금 옮겨온 사무실의 책꽂이에서 찾으니 보이질 않는다. 분명히 잔류 쪽에 포함했으니 어딘가에 있을 것인데…. “이게 무슨 소용이람 지금 보이질 않는데” 모든 서류는 파일로 만들어 컴퓨터에 넣어둘 수 있지만 사진집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물론 서가에 있는 사진집을 날마다 꺼내보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눈에 안 보이니 더 찾게 된다.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다른 사진집들이 꼴 보기 싫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섀도 한 권인데….

  섀도에서 현대인들은 익명으로 치환되었다. <온 더 로드>에서도 특정인 아무개는 보이지 않았으나 얼굴은 있었는데 <웨이스트랜드>에선 어둠마저 없어졌다. 그래도 섀도에선 ‘사람’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긴 했다. 이번 전시 <웨이스트랜드(The Wasteland)>에선 최소한 지금 보고 있는 여섯 장의 사진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지구 멸망의 날이 온 것도 아니고 생의 마지막 순간이 온 것도 아닌데 사람이 왜 없겠는가. 다만 사진에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옥수수밭을 키운 것도, 버려진 공장도, 아파트공사현장도 모두 사람의 흔적이다. 경북 안동의 폐가는 사람이 살다 버리고 간 흔적이다. 진도 팽목항의 ‘풍경’이 있는 풍경에도 사람이 없다. 차라리 섀도의 사진들이 더 인간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웨이스트랜드(The Wasteland)>는 살풍경하다. 우리 현대인은 이제 지쳐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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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h6.jpg » 이상/웨이스트랜드 김문호

shadow0005.jpg » 섀도 김문호  

  김문호씨가 쓴 작가노트를 보다가 나의 생각이 지나치게 감상적이었음을 알게 되어 계면쩍어졌다. 초상권 문제 탓으로 “사람과 거리를 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솔직한 작가노트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는 모든 사진가의 공통고민이다. 아래에 작가노트를 전재하니 읽어보길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문호씨의 이번 작업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고 절규고 통곡이며 몸부림이다. 사람을 찍을 수 없어서 못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서 못 찍은 사진들이다. 그의 손에 “아직 카메라가 들려있기에” 빠른 시일 안에 김문호씨의 다음 작업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그동안의 변화가 심했으니 다음번에도 변화무쌍하리라 확신한다.
 

 <작가 노트>


지난 30여 년간 ‘도시와 문명’이라는 화두로 작업을 해왔다. 도시인들의 삶과 그 주변을 다룬 <On the Road온 더 로드(2009년)>가 첫 번째 결과물이다. 4년 후에는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어두운 내면을 상징화한 <Shadow섀도(2013년)>를 세상에 내놓았다. 둘 다 나를 향해 다가온 도시를 내가 가까이 가서 관찰하고 기록한 작업이었다.

  근래 나의 작업에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문제가 발생했다. 사진가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삶의 현장에서 이미지를 잡아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는 더욱 난제인 ‘초상권’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이전처럼 연출하지 않은 스트레이트 사진 작업이 한계에 봉착했다. 초상권과 무관한 먼 오지의 사람들이나 특정한 집단의 인물을 찍는 작업이 아니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찍는 내 작업 스타일이 풀어야 할 큰 숙제였다. 인물을 배제한 작업이 가능할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우선 사람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방법을 찾기로 했다. 사람을 둘러싼 풍경을 중심으로 해나가는 작업이었다. 2013년 ‘Shadow’ 이후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한 풍경, 삶의 배경에 관심을 가져왔다. 작업을 한 기간은 채 2년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사이 예기치 않은 일까지 생겨 작업 기간은 더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이 작업을 지속적으로 치밀하게 해나갈 작정이다. 이 도시와 이 땅을 사진에 담으면서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된다.

  “나는 사진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나의 시선은 언제나 쓰러진 자에 닿아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상처 입고 잊혀져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을 텍스트화하는 것, 그것을 통해 조용히 말을 거는 것이 나의 작업이었다. 아파하며 신음하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산과 들, 강과 바다, 바람과 햇빛마저도 돌이키기 어려운 중병을 앓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나의 작업을 스스로 정당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아침이 되면 ‘오늘은 또 어디로 발길이 향할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내 손에 아직 카메라가 들려 있기에…

  2015년 10월 김문호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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