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늙어빠진 얼굴 찍어 뭐하게 하셨던 ‘백수 어르신’이 첫 모델이죠”

사진마을 2016.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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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50603001_20160212.JPG » 포내리 상곡보건진료소장 박도순씨.
[한겨레 짬] 무주 포내리 상곡보건진료소장 박도순씨

시골마을 보건진료소장이 사진 에세이집을 냈다. <포내리 사람들>. 한가로운 지역이어서 취미삼아 찍은 사진이 전혀 아니다. 2년 반 동안 전북 무주군 적상면 포내리 8개 마을에서 돌봐온 어르신들이 “내 평생을 책으로 내면 몇 권은 될거야”라며 털어놓은 내용을 구술체로 받아 적은 26편의 이야기를 어르신들의 얼굴 사진, 포내리 구석구석에서 찍은 생활용품, 농가 풍경 등과 함께 묶어낸 것이다.

중학교까지 다녔던 고향 마을
30년만에 공중보건 간호사로
“술타배기 만배 딸래미” 반겨

2013년부터 어르신 200여명 촬영
저마다 가슴 담아둔 사연도 구술
“보물처럼 끌어내줘 고맙다고들”

포내리 상곡보건진료소장 박도순(49)씨가 저자다. 원광보건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무주군에서 26년간 공중보건 간호사로 일하던 박 소장은 2011년 포내리로 발령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포내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으니 포내리의 어르신들은 그의 아버지, 어머니,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친구이자 이웃들이다. 5년 전 그가 동네를 돌며 인사하자 마을 사람들은 “도순이? 그 아버지가 술타배기였지? 만배 딸래미? 치목 울래미?”라고들 반겼다.

설날인 8일 박 소장과 전화로 인터뷰했다. 2013년께 백수를 바라보는 동네 어르신 김승준씨가 폐렴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해서 보건진료소를 찾아왔다. 다시 만난 반가운 마음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찍어두고 싶어 청했다. “다 늙어빠진 것을 찍어서 뭐하게 찍어” 하던 김씨는 커피 한 잔을 대접했더니 “살아나서 다시 이런 것을 마시게 되니 좋다”라면서 이내 촬영에 응했다.

박 소장이 사진에 대한 애정을 되찾은 계기였다. 2000년 무렵 열심히 독학하며 봄 보성녹차밭, 여름 순천만, 가을 선운사 등 ‘국민포인트’를 답습했던 그는 어느 날 “이게 뭐 하는 사진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어 카메라를 내려놓고 있었다. 다시 용기를 낸 그는 포내리 8개 마을에서 65살 넘은 어르신 350여명 가운데 동의를 해준 200여명을 촬영했고 속살 같은 사연들을 녹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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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쟁이가 울 친정 엄마를 꼬신 거지. 훌륭한 신랑감에게 한 가지 흠이 있는디 하면서 하는 말이, 좀 멀어서 그렇지…. 그것이 흠이라는 거여. 내가 살던 영남에서 여기 전라도가 멀긴 멀지. 친정 엄마랑 아버지는 사윗감이 잘 생기고 부자란 말에 시집 가면 배불리 먹을 것이라고 했어. 나는 결혼식 날 처음으로 새 신랑 얼굴을 봤으니까…. (중략) 첫날 밤이 지나고 아침에 봉게, 글쎄 신랑이 봉사인 거라. 당살 봉사. 눈이 멀어서 앞을 못 보는…. 난리를 쳤어요. 친정 엄마가 찾아가서 항의를 했더니 중매쟁이 하는 말, ‘경상도에서 전라도가 먼 것이 아니라 총각 눈이 멀었다. 그 말이오! 나는 분명히 말 했는데…’라고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가더래요. 근디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살면서 보니 우리 영감이 불쌍해 보이는 거라. 그래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시집온 지 60년이 넘었지만 친정에는 자주 못 가. 멀긴 멀지. 우리 친정이. 뭐, 멀어서 그렇지.”(33쪽 ‘멀어서 그렇지’)

저마다 가슴에 담아둔 사연들을 마을 어르신들은 ‘만배 딸래미’ 박 소장에게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해줬지만, 책에 있는 이야기는 ‘닭 울고 꽃 피면’, ‘울게 해주오’, ‘소가 잘 먹나’ 등 제목만 봐도 하나하나 절절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야기와 조화를 이루는 사진들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자물쇠가 아닌 꼬챙이가 꽂힌 곶간 사진은 “정말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와서 먹으라”는 은근한 배려가 담겨 있고 가마솥 사진에선 밥 냄새가 풍기는 듯했다.

“머리 아프고 배 아프다는 분들에게 두통약, 배 아픈 데 먹는 약만 드리곤 했다. 왜 머리가 아픈지…. 자식이 사업을 하다가 망했다니 밤새 소화가 안 되어 배가 아프겠지. 부모들의 속 상한 아픈 감정을 건드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니 그 분들의 내밀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헛간도 열어주고 장롱도 보여주고 삶의 깊은 이야기도 꺼내 보였다. 이 책을 포내리 사람들에게 바친다.”

박 소장은 지난 연말 전주에서 ‘포내리 사람들’ 사진전도 열었다. “마을 노인회장을 비롯한 어르신들이 오셨는데 사진을 보시더니 ‘하마터면 땅 속에 묻힐 뻔 했는데 보물처럼 끄집어내줘서 고맙다’고들 했다”고 그는 전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박도순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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