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사진마을 2018.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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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02.JPG » 2009년 10월 뉴칼레도니아


서울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아는가?  적어도 20년 전의 나에겐 몹시 힘든 일이었다.
  그 일을 설명하는 것은 지금도 별로 유쾌한 일이 못된다. 그게 학교에서 종로로 가던 길이었는지 아니면 돌아오던 중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때 지방에서 갓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입학하기 불과 몇 달 전에 가고 싶었던 대학교에 입학 원서를 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것이 생애 최초의 서울 구경이자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렇다. 나는 경상도 출신이다. 경상도 사람에게 서울말이 얼마나 웃기게 들리는지 “우리나라에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서울말을 구사하는” 이들은 짐작도 못할 것이다.
  지방에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주 가끔 전학 온 “서울내기”들을 먼발치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주변이 온통 본격 서울말로 뒤덮인 곳에서 살게 된 것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서울말은 웃기게 들렸지만 ‘우습게도’ 내가 따라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대학 오기 전까지 12년을 표준어로 된 교과서를 보고 공부했기 때문에 단어구사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억양과 발음이었다. 나중에 영어를 공부하다가 역시 문법이나 단어가 아니라 억양과 발음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지만 다른 말을 배울 때 가장 힘든 것은 ‘그 나라 사람’처럼 말하는 것이었다. 단어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단어를 이어주는 조사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경상도식 억양으로 표준어를 구사하는 것은 더 웃기는 일이며 열 마디 잘하다가도 한마디 사투리 단어가 섞이면 바로 폭소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곤 했다. 그런 한두 번의 기억들이 아주 입을 얼어붙게 하고 있었다.


  신입생 환영회 땐 별로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냥 술만 잘 마셔주면 박수를 받고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첫 수업이 열리던 무렵에 입학 동기들이 모두 강의실에 모이더니 자기소개를 하자고 했다. 그 학교는 다행히도 시골출신이 절반을 넘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망신을 당하진 않았지만 군데군데 등장하는 ‘서울내기’들은 보기에도 우아한 서울말로 자기소개를 하곤 했다. 게다가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지방 사람들이 다 사투리를 나처럼 하는 것도 아니란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남도 쪽 사람들 몇몇을 빼고 나면 강원도나 충청도 친구들은 내가 보기엔 거의 서울말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고 그들은 그 뒤 몇 달 안에 서울말에 적응했다. 나와 같은 곳 출신이라고 다 나처럼 말을 못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당당하게 사투리를 구사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완벽한 것을 지향하는 성격상 대충하는 게 싫었다.
  대학교의 국어수업에도 일어나서 책읽기를 시킨다는 사실을 난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것은 머리 짧은 학생들만 하는 줄로 알고 있었으나 교수들은 이사람 저 사람을 불러 책을 읽게 했다. 어쩌다가 경상도 친구가 일어나 “한국 사람들은 살을 주식으로 먹고 삽니다....” 라고 읊조리게 되는 날엔 그야말로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자네 ‘쌀’이 안 되나?”
 “되는데요. 살, 살, 살”
 이럴 땐 난 조용히 혼잣말로 “쌀, 쌀”을 발음해보곤 했다. 한 5년을 한국에서 산 동남아 사람이 우리말을 하는 것처럼 경상도 출신이 맞춤법은 다 맞게 하면서도 이상하게 교과서를 읽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땐 심각했다.
 그렇지만 시험에서 틀릴 것은 없었고 다른 지역과 서울의 친구들도 이내 우리에게 적응이 되더니 나중엔 별로 재미있어 하지도 않게 되어서 정말 고마웠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대화가 더욱 난제였다. 가장 어려운 단어중의 하나가 “밥을 먹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지금도 “밥 묵다. 밥 무러 가자. 밥 뭇나?” 식으로 술술 나온다.
 강의가 끝나고 무엇인가로 배를 채우기 위해 친구에게 말을 건넬 때면 십중팔구는 “누구야 밥 물래?” 였는데 서울친구들은 어쩜 사투리도 잘 따라 해서 “뭐 물라꼬?” 로 응수하며 나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이 또한 자주 얼굴을 보게 되는 과친구들은 재미삼아 넘길 수가 있었다.
 

  버스이야기를 하려던 참이다. 난 내가 살던 곳에선 매우 착한 학생이었다. 버스를 타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 노인이 올라오면 얼른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있었다. 야간 자습으로 지옥 같았던 고3시절의 등하교 시간 버스 안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어른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할무이 여 앉으이소”
 괜찮다고 한번 빼면, “전 괘안심더. 마 앉으이소” 라고 버티며 끝내는 자리를 내주곤 했던 것이다.
  대학 1학년이 되어 주로 학교와 기숙사를 왔다갔다 하는 모범생이었던 나는 버스나 지하철을 탈 일이 자주 없었다. 기숙사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기숙사엔 지방출신만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탁월한 판단에서 나온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중간고사를 치르고 나자 주변에서 미팅이란 단어가 오고 갔다. 대학가면 하게 된다던 그 미팅. 미팅을 위해선 버스를 타야했는데 거기에 또 처음 닥치는 장애물이 숨어 있었다.  서울서 버스를 처음 탄 것은 몇 달 전이었다. 입학 전에 원서 들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정말 길을 잃어버릴까 긴장해서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영어를 배우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여러 가지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임을 이젠 안다. 회화책들이 “공항에서, 식당에서, 상점에서…….”식으로 꾸며져 있는 것이 그 때문이다. 서울말이란 것에 조금 익숙해졌다고 방심한 나는 “버스에서” 라는 특수한 상황에 접하고는  말문이 떨어지질 않게 되었다. 마치 미국교수가 수업관련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갑자기 야구 이야기를 꺼냈을 때처럼 정확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물론 억양은 여전히 엉망인 상황인데. 요금을 내는 것은 말이 필요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돈이 없이 버스에 올랐다면 꽤나 긴 대화가 필요하겠지만 그런 일은 다행히 없었다. 그렇다고 버스에 탄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볼 일은 정말 없었고 버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도 거의 영에 가까웠다. 친구와 같이 버스를 탄 일은 있었지만 난 언어 상의 문제 때문에 다른 말을 쓰는 친구를 거의 사귀지 않았고 지금도 서울출신의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어느 날 미팅을 위해 다른 대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가 용케 자리를 차지한 나는 잘 다려서 입은 바지가 구겨지지나 않을까 신경 쓰며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엔가 내 앞엔 할머니 한분이 서계셨다. 본능처럼 번쩍 일어서며 “앉으이소” 했는데 그게 아주 웃겼던 모양이다. 이곳저곳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실제론 아무도 웃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내 귀엔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나 스스로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는 것이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비실비실 자리를 옮기다가 다음 정거장에서 자연스럽게 내렸지만 몇 정거장 일찍 급히 내렸다는 것을 모두가 아는 것만 같았다. 뒤차를 탔고 빈자리가 있었지만 외면하면서 끝까지 서서 갔다. 당시엔 모 드링크 광고도 없었고 그냥 서있는 것이 민망했지만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그날 미팅을 어떻게 했는지는 당연히 기억에 없다. 그날부터 맹훈련에 들어갔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너무 명령조인가?
 “할머니 여기 앉으시겠어요?”
 “할머니 여기 자리가 있습니다.”
 “할머니 여기 앉으시겠습니까?”
 여러 가지를 연습해 보았지만 주변에 널려있던 서울출신의 원어민 친구들에겐 절대로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가 되었는지 당시에 나는 이상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을 뒤져서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할 때 쓰는 말”을 검색해보기라도 했겠지만 그 땐 내가 아는 어떤 책에도 그 용례가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할머니 여기 앉으시겠습니까?”였다. 상대방의 의견도 반영하겠다는 최대한의 배려가 담긴 표현이었다.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난 곧 만나게 될 미팅상대가 어떤 여학생이 될지는 생각하지 않고 계속 입속에서 상황에 따른 서울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내가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마땅해 보이는 연배의 노인은 버스에 오르지 않았고 실전에서 새 어휘를 구사할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게 될 때, 각자의 기준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당시 19살이었던 나는 50세가 넘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어서지 않기로 하고 있었다. 물론 임산부나 장애인의 경우엔 지체 없이 일어났다. 퍼머넌트 머리를 한 여성들의 경우엔 몹시 혼란스러웠다.
 
  어찌되었든 그날도 미팅에 관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기말고사를 앞두고는 마지막 미팅을 하게 된 날이 왔다. 오늘만 놀고 시험공부하자고 생각을 다잡은 나는 그날도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세 정거장만에 연세가 무르익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앞쪽 출입구로 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침내 때가 왔다”고 생각한 나는 할아버지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 것과 시기를 맞추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말문이 막힌 채 다음에 내리는 것처럼 물러서고 말았다. 보름 정도 사이에 전혀 진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번엔 누가 봐도 “저 학생이 내릴 때가 되니까 내리는구나”라고 보이게 자연스럽게 내리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 것만으로도 흐뭇해하며 다음 버스를 탔다.


kwa01.JPG » 2001년 2월 서울 만리동 언덕에서 버스가 눈길을 오르지 못하자 시민과 경찰이 함께 버스를 밀고 있다.
  기말고사를 대충 넘기고 또 버스를 이용할 일이 있었다. 그게 30번이었는지 38번이었는지는 지금 잘 기억에 나진 않는다. 어찌되었든 종로와 학교사이의 길이었다. 다른 학교에 가는 길이었는지 종로에 있던 서점에 가는 길이었는지도 정확치 않다. 그러나 시험이 끝나 홀가분했고 벌써 서울 온지 반년가량 되어 그동안 말도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마음에 자신감이 있었다. 처음 버스에 올랐을 땐 빈자리가 없었지만 한 정거장이 지나자 운전기사 바로 뒤의 자리가 비었고 얼핏 보아도 주변에 (나이로) 나와 경쟁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 앉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30분 넘게 가야할 버스길이면 나도 늘 자리에 앉고 싶다. 이럭저럭 서너 정거장을 더 지났을 무렵 갑작스레 앞문이 열리고 명백한 할머니 한분이 올라오시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이날은 꼭 성공할 것 같았다.
 “할머니 여기 앉으시겠습니까?” 라고 똑똑히 발음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여성이었는데 양보를 받아서 불쾌했나 싶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60세는 확실히 넘어 보였다. 그렇다면 나의 서울말이 먹히지 않았단 말인가? 아주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는 금세 용기를 냈다. 그리고 아주 또박또박 말했다.
 “할머니 여기 앉으시겠습니까?” 
 이정도면 억양이 약간 부자연스러웠을지는 몰라도 내용은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또 아주 짧은 순간이 지나자 결국 “60세가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는 내가 양보한 자리에 앉게 되었던 것이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는 그때 심정을 서울 원어민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난 이런 경험을 나중에 미국에서 살면서 또 겪었다. 내가 한 주문대로 음식이 나오는 것은 쉬운 편이지만 내가 제기한 내용대로 전화요금이 틀린 것을 바로 잡는데 성공했을 때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어찌되었든 당당하고 흐뭇한 심정으로 자리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양보한 자리 바로 옆에 서있으면 부담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배려였다. 그리고 버스 출발에 대비해 손잡이를 잡으면서 얼핏 뒤를 돌아다보았다. 나의 선행과 서울말 구사에 서울버스에 탄 서울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돌아다 본 버스 뒤편엔 젊은 여학생 두 명이 맨 뒤에 앉아서 이곳을 쳐다보고 있을 뿐 완전히 텅텅 비어있었다.   (2005년)
 

글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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