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눈으로 읽어낸 ‘사진 속의 사진’

ylight20 2011. 03. 16
조회수 13205 추천수 1

브레히트 사진시 ‘전쟁교본’
신문·잡지에서 오려낸 사진에 자작 4행시 붙여
히틀러의 전쟁 광기 심판, 사실 뒤의 진실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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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 전쟁교본-표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는 20세기에 활동했던 독일의 극작가, 시인, 그리고 연출가다. 주로 사회주의적인 작품을 연출했으며, 소격효과라는 개념을 연극연출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8년 연극 <서푼 짜리 오페라>의 성공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전쟁체험을 통해서 자기의 계급에 등을 돌려 차츰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간 브레히트는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여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 <서푼 짜리 소설>을 집필하는 좌파작가로 활동했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미국에서도 1947년 매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의 광풍에 직면하여 다시 분단된 독일, 그 중에서도 동독으로 이주했다. 좌파 작가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관료주의적인 동독 공산당 간부들의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고 1953년 동독의 노동자 봉기 진압을 비판하기도 하는 등 평탄치 않은 생을 살았던 것 같다.
 

 

시인이며 극작가이자 극연출가로 부르주아 탐욕 폭로

 

그의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한국에선 1980년대 민주화의 바람과 더불어 모든 분야에서 이념의 해빙기가 오면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고 ‘브레히트 붐’이라고 이를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기 시작하자 좌파 이데올로기와 더불어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인물이다. 한국의 냄비 같은 반응과 상관없이 독일에선 예나 지금이나 적절한 대접을 받고 있는 ‘현대의 고전작가’중 한 명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21세기의 독자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는 브레히트를 끄집어내는 것은 그가 사진에 깊이 빠져들었던 이력이 있고 사진과 관련된 책을 한 권 냈기 때문이다. 2011년 눈빛출판사에서 브레히트의 ‘전쟁교본’이 나왔다. 전쟁교본은 사진시집이다. 브레히트가 사진에 찍히길 즐겼던 것 같지만 이 책엔 그가 찍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시인 브레히트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 한 장 옆에 자신이 쓴 4행시 한 편씩을 병렬배치하는 방법으로 사진시집을 낸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 시집이 출판된 이듬해인 1956년에 출판사에 편지를 보내 이 시집이 모든 도서관과 학교에 비치되어 학생들의 사진 학습에 사용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한 뒤 3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 전쟁교본의 후속작으로 준비하고 있던 평화교본은 딱 한 편의 시만을 남기고 말았는데 그 사진이 이 책의 뒤표지에 실려있다.

브레히트의 전쟁교본이 출판된 1955년, 바로 그해에 미국에선 초대형 사진전 ‘인간가족’ 전이 시작되었고 책자로도 발간되었다. 전 세계 68개국에서 모은 503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인간가족’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은 지구촌 인류들의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주는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같은 형태의 사진시집은 아니지만 평화교본은 전쟁교본을 출판되었을 당시에 이미 나와있었던 것이다. 브레히트는 인간가족을 알고 눈을 감았을까? 그랬다면 어느 정도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떴을 것이다.
 

 

상형문자 같은 사진 해독 가르치려고 가위와 풀 들어
 
전쟁교본의 서문을 쓴 이는 루트 베를라우라는 여성으로 덴마크의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고 코펜하겐에서 연극배우와 신문기자를 했던 인물이다. 베를라우는 브레히트와 만난 뒤 애인이자 생산적인 동료로 평생 브레히트의 주변에 머무르며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고 그 뒤로도 동독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베를라우의 서문을 읽으면 전쟁교본을 만드는 브레히트의 목적과 과정을 고스란히 알 수 있다.

사진과 문자 텍스트의 결합에 관심이 많았던 브레히트는 1920년대부터 신문과 잡지를 보다가 쓸 만한 사진이 있으면 가위질을 했다고 한다. 사진시를 처음 쓴 것은 1940년도였고 1949년에 브레히트는 베를라우에게 사진시집 출판을 맡겼다. 1955년 초판을 찍었다. 아래는 서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나는 자주 그가 손에 가위와 풀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보고 있는 것은 이 작가의 가위질에서 얻은 결과입니다. 그것은 전쟁에 대한 사진들입니다. 브레히트는 이 전쟁교본을 일종의 저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4행시들을 사진에 대한 주석이라고 불렀습니다. 과거를 잊는 사람은 그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책은 사진을 해독하는 기술을 가르치려 합니다. 그 이유는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사진 해독이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가 세심하면서도 야비한 방법으로 유지시키고 있는 사회의 연관관계에 대해 사람들은 너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로 인해 잡지에 실리는 수천 장의 사진은 그야말로 상형문자로 그려진 그림들이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해독 불가능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부르주아의 수중에서 진실에 역행하는 무서운 무기”
 
동시대를 거치면서 브레히트와 서로 지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역시 사진에도 관심이 많았던 발터 벤야민은 그가 쓴 글 <생산자로서의 작가>에서 다음과 같은 요구를 했다.
“우리들이 사진작가에게 요구해야 하는 것은 사진에 글을 붙이는 능력이다. 이를 통해 사진작가는 유행을 따르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사진을 구해 내 그 사진에 혁명적 사용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그 3년 전인 1931년 브레히트는 <노동자-화보신문>창립 10주년 기념사에서 아래와 같이 썼다.
“르포사진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술은 세상을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사진은 부르주아의 수중에서 진실에 역행하는 무서운 무기가 되었다. 매일 인쇄기가 뱉어내는 엄청난 양의 사진자료들은 진실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의 은폐에만 기여해왔다. 사진기 역시 타이프라이터처럼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을 보면 브레히트는 사진을 진실을 말하는 도구로 되돌려 놓기 위해, 사진을 예술적 재생산의 수단으로 개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며 벤야민의 주장을 그대로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그 전부터 가위질을 시작했으니 브레히트의 소신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진에  글을 붙이는 경우가 그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신문과 잡지의 뉴스사진엔 늘 사진설명이 따라붙는다. 교과서, 교본, 안내서의 사진에도 설명이 붙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사진에 글을 붙인다고 해서 사진이 바로 진실을 말하는 수단이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쉬운 예를 들면 사진기자들의 사진설명에서 알 수 있다. 사진설명을 쓴 사진기자들의 주관적 입장, 세계관, 철학, 경험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이 되며 여기서 더 나가게 되면 사진기자는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진이 해독되도록 유도하는 사진설명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아마도 브레히트가 놓쳤을 것 같은 대목이 있다. 사진설명을 늘 사진기자들이 쓰는 게 아니란 점이다. 간혹 취재부서의 글 기자들과 데스크들, 어떨 땐 편집자들도 이 주관적인 사진설명을 쓴다. 물론 브레히트의 입장에선 “그게 그거”라고 할 수 있겠다.
 

 

궁극적 목표는 사진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
 
사진과 사진설명의 이런 속성 때문에 브레히트는 원래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사진과 사진설명 너머에 숨어있는 4행시를 첨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브레히트의 4행시는 사진, 사진설명 이상의 해석을 제공한다. 기존의 사진과 설명이 보지 못했던(혹은 보지 않으려 했든) 측면의 진실을 독자들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브레히트의 사진시-전쟁교본은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해석(해독)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과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 즉, 사진시는 사진을 눈에 보이는 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해독(해석)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사진을 해독하는 기술을 습득하게 하려는 교육적 목적과 의도가 깊이 깔려있는 것이다. 사진에 4행시를 덧붙여 둘이 보완관계가 아닌 하나의 새로운 매체-사진시가 탄생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사진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이었다. 브레히트가 보기에 사진은 모호하게 읽히기 십상이었던 나약하고 불완전한 매체였던 것이다.

실제로 브레히트 외에도 당대 여러 지성들의 사진에 대한 입장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앞뒤 맥락을 전혀 추측할 수 없는 사진의 단절성, 그리고 사진에 담긴 상황이 그 순간이 지나자마자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에선 영원히 전달되고 살아남는 영속성 때문에 사진은 늘 모호하게 읽히곤 했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1839년 이래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의도적인 경우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3제국’은 히틀러와 그 국민들의 합작품임을 드러내

 

이 책은 히틀러로 시작해 히틀러로 끝이 난다. 히틀러와 나치가 일으킨 전쟁에 대한 맹렬한 비난이 쏟아진다. 전쟁이 불러온 광기의 역사에 대한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다.

책에 들어있는 사진과 4행시를 같이 보면 브레히트가 어떻게 사진을 해독하는 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브레히트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내용이 드러난다.
 
본문의 첫 사진은 히틀러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1939년이 아니라 히틀러가 말의 힘을 빌어 집권한 193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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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결에 이미 그 길을 달려 보았던 사람처럼
 난 그 길을 알고 있네, 파멸로 통한 그 좁은 길을
 그 길은 우리의 숙명
 자면서도 나는 그 길을 찾을 수 있다네. 제군들도 같이 가겠는가?

 
히틀러는 쿠데타 같은 불법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한 인물이다.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입(특히 괴벨스의 도움을 받은)에 현혹되었다고 하지만 독일의 ‘제3제국’은 히틀러와 그 국민들의 합작품인 것이다. 그래서 묻고 있는 것이다. “제군들도 같이 가겠는가” 만약 평범한 사진설명이었다면 그런 역사적 맥락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장갑차도 만들지만 그것을 뚫는 탄환도 만드는 노동자의 모순
 
두 번째 사진은 대형철판 위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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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게 형제들, 지금 무얼 만들고 있나?”- “장갑차라네”
 “그럼 겹겹이 쌓여있는 이 철판으론?”
 “철갑을 뚫는 탄환을 만들지”
 “그럼 이 모든 것을 왜 만들지?”-“먹고살려고”
 
노동자들은 모순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장갑차를 만들지만 그 장갑차를 뚫는 탄환도 만든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장갑과 탄환은 다른 나라의 노동자(민중)들을 해치게 될 것이다. 그들도 먹고살고 싶어할 텐데.
 
마흔아홉 번째 사진은 미국 장군 시어도어 루즈벨트에게 길을 안내하는 시골농부를 담고 있다. 이 사진엔 원래의 사진설명도 같이 있다. 브레히트의 4행시와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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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설명: “‘독일인들은 저쪽 길로 갔습죠.’ 시실리 섬의 한 농부가 미군 제1사단 소속 여단장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말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 주인 나리들은 두 편으로 갈렸었습죠.
 그런데 이젠 낯선 세 무리 군인 나리들이 들어와 싸우고 있습죠.
 메마르고 돌투성이인 우리 농토에서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적대하는 데 있어서만은 의견이 일치합죠.
 

 

카파의 걸작-브레히트의 통찰, 서로는 알았을까
 
쉰세 번째 사진은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브레히트가 로버트 카파를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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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설명: 1944년 6월 6일 미군이 프랑스 북부해안에 상륙하다.
 
 그 유월 어느 이른 새벽 쉘부르 부근
 메인 주 출신 녀석이 바다에서 나와
 루르지방에서 온 녀석과 한판 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사실 그건 스탈린그라드로부터 오는 녀석을 겨냥한 것이었다.
 
오마하해변에 상륙하는 해병대원을 찍은 로버트 카파의 걸작이다. 그런데 브레히트의 4행시를 읽으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이 군인들은 정말 용감하게 상륙했고 많은 병사들이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 군인들은 전쟁에 투입된 진짜 이유가 퇴각중인 독일을 뒤쫓아 내려오고 있던 소련군 때문이었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스탈린그라드까지 밀고 온 독일과 분전하던 소련은 대반격에 나섰고 퇴각하는 독일을 쫓아 계속 서유럽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상륙작전을 망설이던 연합군은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진군하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노르망디상륙을 서둘렀던 것이다. 그나저나 군인들보다 더 용감했던 로버트 카파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후속작 평화교본이 죽기 전에 나왔다면 어땠을까
 
책의 뒤표지사진은 이 글의 앞 부분에서 언급했던 미완성작 ‘평화교본’을 위해 브레히트가 스크랩해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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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지 마라, 너희보다 못할 것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퉜다는 걸
 왜 자신들이 아니라 너희가 이곳에 앉을 수 있느냐고
 책 속에만 파묻히지 말고 함께 투쟁하여라.
 배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라, 그리고 그걸 결코 잊지 마라.
 
브레히트의 사진시집 ‘전쟁교본’은 깊이 있는 사진공부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사진을 읽는 법을 제대로 알아야 잘 찍을 수도 있다. 사진찍기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볼 만한 책이다. 이미지 홍수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사진읽기교본’이다. 눈빛(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집, 이승진 옮김) 25,000원
 
곽윤섭기자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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