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운명, 기록할 운명

곽윤섭 2014.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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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기획연구소 별의별-최명희문학관 주최 

전면 철거 앞둔 구 전북도청사 찍기 공모전


 

jeonju-011.JPG » 사진/서진영

 

 전북의 생활사진가들이 구 전북도청사(이하 구 도청사)를 찍고 있다. 예술기획연구소 <별의별>과 최명희문학관이 주최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전라북도 (구)청사 사진공모전’으로 연결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문화예술인 100명이 선물을 기부하고 시민 1,000명이 1만원씩 후원하여 만들어진다. 공모전에 올라온 사진들중에서 100장을 선정하여 6월 28일 구 도청사 일대에서 사진전을 열고 시상 후 구 도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상영과 음악, 무용을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판이 펼쳐질 예정이다. 주최쪽은 2015년에 사진이 포함된 기록집을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발송한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공모전 마감은 6월 14일까지. 옛날에 찍은 사진도 가능하다. 이름, 주소, 전화번호와 함께 gang-u@hanmail.net로 보내면 되고 인화된 사진은 전주시 완산구 최명희길29 최명희문학관으로 보내면 된다.

 지난 10일 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에 있는 구 도청사를 찾았다. 도청사는 조선시대 때 전라감영이 있던 곳이며 일본강점기 때 지어져 이후 1950년 지하에 쌓아두었던 경찰 무기고의 로켓 탄이 터지는 바람에 전소되기도 했다. 도청은 2006년에 완산구 효자동의 신청사로 이전했고 그 후 여러 단체가 입주해 있다가 이전 중이며 2014년 5월 현재는 5개 단체가 남아 있다. 전북도와 전주시는 2013년에 구 청사를 철거하고 전라감영을 복원하기로 결정했고 2014년 6월에 철거가 시작될 예정이다. 전북의 문화예술인들 400여명은 지난 4월 “(구)도청사는 일제강점의 시대와 해방공간, 그리고 전주의 근대화를 한눈에 지켜본 역사의 현장이다. 전면철거 계획을 당장 취소하고, 존치와 활용방안을 적극 강구하라!”라고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송석기 군산대 건축학과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구 도청사 철거는 전북도와 전주시의 합의사항인가? 철거 결정과정에 공청회등을 거처 학계 시민단체 등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인가?
 =공감대 형성이라는 것은 좀 애매한 표현이다. 구 도청사 부지의 활용에 대한 논의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제가 개인적으로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만 2005년에 전북도청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기 때문에 최소한 8~9년 동안 논란이 되어왔다고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구 도청사의 철거 및 활용 여부, 전라감영의 복원 여부, 전라감영의 복원 규모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공감대가 얼마나 형성되었는가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전라감영의 복원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전라감영을 복원한다면 자료는 얼마나 있는 것인가?
 =전라감영의 가장 중심 건축물은 선화당이고, 이 건물은 사진이 남아있다. 현재의 전라감영 복원 계획에서도 가장 먼저 추진되는 중심 부분이 선화 당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라감영의 복원은 선화당을 중심으로 한 부분 복원이라고 볼 수 있다. 선화당의 위치는 확인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화당의 복원 위치가 현재의 구 도청사 건물과 겹쳐지기 때문에 선화당의 복원을 위해서는 구 도청사 건물의 철거가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라감영 전체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 작성된 회화식 지도 등도 남아있다.
 -구 도청사 건물은 역사적 공간적 의미가 있는가?
 =구 도청사 건물은 건물 자체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건축미를 표현하고 있거나 특정한 시대 또는 지역적 성격을 대표할 만한 양식적, 기술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그 건축물 역시 60년 이상 역사가 있고 20세기 중후반 전라북도 현대사의 주무대였고 그 기간 동안 전주시의 중심에 위치하면서 전주시민의 일상생활과 그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선화당을 포함한 전라감영 일부를 복원하는 것이 전주시를 상징하고, 전주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더 의미 있다고 보는 입장에 대비하여 이미 사라진 과거의 건축물을 모사하여 다시 짓는 것보다는 그동안 시민들의 기억과 생활 속에 있어왔던 그 건물을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 도청사를 보존한다는 전제하에 개인적 의견을 들려달라.
 =구 도청사의 철거와 선화당을 중심으로 한 부분 복원이 결정되어 추진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보존 방향을 말한다는 것이 다소 무의미할 수도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여러 겹의 역사가 층층이 쌓여 형성된 도시 공간이 그곳에 사는 시민들에게 편안함과 소속감, 그리고 더 풍부한 기억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도시가 사람이 살기에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구 도청사 부지에 쌓인 최근 몇 십년의 또 다른 역사를 깨끗하게 지우고 그 이전의 역사를 모사한 새것을 만들어 놓는 것보다는 구 도청사를 그 일부분이라도 보존하면서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여 사용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jeonju-001.jpg » 김동성

jeonju-002.JPG » 서진영

jeonju-012.JPG » 서진영    

 
 10일 구 도청사 안에서 사진을 찍었던 서진영(36·특수교육지도사)씨는 “버려지기에는 공간이 많이 아깝다. 향후 시민들이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며 “보존이 필요하다면 건물 자체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날 사진을 찍었던 또 다른 생활사진가인 임희정(37·교사)씨는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다크 속담 중에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외모보다는 사람의 내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지 낡고 허름하고 버려진 건물이었다. 지금 보니 제가 호랑이의 줄무늬만 본 셈이었다. 중앙 계단을 이용해 이층이나 삼층에 오르면 일층과는 다르게 복도마다 낡은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빛으로 가득했다. 버려진 것들이 만드는 공간도 빛을 품은 창도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막상 사진을 찍기 위해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물건도 오래되면 격이 생겨난다고 낡았지만 나름의 인격이 있는 나이든 사람처럼 건물이 다가왔다. 모르는 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렇듯 일종의 탐색전으로 건물 안을 천천히 걸어보고 카메라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내가 이 건물이라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 도청사를 찍는 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구도청사가 바라보는 세상을 통해 건물의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다. 내가 너를 보고 있으니 너도 나를 봐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만 비로써 저도 건물의 줄무늬를 보게 된 것이다. 구 도청사는 전주한옥마을과 풍남문을 앞에 두고 뒤로는 구 도심을 둔 곳에 위치한다. 최근에 풍남문 광장이 정리가 되면서 한옥마을, 경기전, 전동성당, 풍남문을 잇는 관광지가 형성되었다. 주말이면 말 그대로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관광객이 전주한옥마을을 찾고 있지만 동시에 서울의 인사동처럼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어서 오래전부터 한옥마을을 좋아했던 저는 아쉬운 점이 많다. 건물의 리모델링을 통해 지역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활동할 수 있고 이들과 함께 관광객이 전주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면 관광객을 구 도심까지 연결하면서 구도심까지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다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물이 하나로 전체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래서 따로 한 공간이나 장소가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굳이 마음에 들었던 곳을 들라면 건물의 ㄴ자 날개로 뻗어있던 2층 복도다. 어둡고 습한 일층과는 다르게 낡아서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던 녹슨 창틀 사이로 비추던 햇살과 그 창으로 보이던 건물의 외관, 사람 사는 풍경들이 잘 다듬어진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옛 시간의 정취같이 아련한 마음이었다. 또 3층에 있던 격자무늬 바닥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강당도 눈에 띄는 공간이었다. 강당에 서면 창을 통해 경찰청이 보이고 두 건물이 마주보고 서서 하나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지만 하나는 본래 소임을 다한 두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강당도 인상 깊은 장소였다.” 3층 강당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는 김동성(자영업·43)씨는 “도청사가 철거되고 새 건물이 들어서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전북 전주의 전통문화거리 한옥마을과 발맞추어 전라북도 전통문화 역사박물관으로 자리 잡아, 뿌리의 맥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아름(21)씨는 “지금은 사람이 없어 쌩한 공간이지만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이 이용한다면 충분히 그 공간은 활력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건물 외관을 보니 식물과 건물이 공존하는 것같아서 보기에 좋았다”고 말했다.

 

jeonju-005.jpg » 임희정

jeonju-006.jpg » 임희정

jeonju-007.jpg » 임희정

jeonju-008.jpg » 임희정     
 

 1964년 베니스에서 열린 ‘제2차 역사적 기념물의 건축가 및 기술자의 국제회의’에서 기념물과 사적지의 보존과 복권을 위한 국제헌장이 채택되었는데 이를 ‘베니스 헌장’이라 부르고 전세계의 문화재 보존에 관한 기본 정신이 되었다. 베니스 헌장의 제9조는 “복원 과정은 고도의 전문적 작업이다.(중략) 원래의 재료와 출처가 분명한 문헌들을 중시하는 바탕 위에 둔다. 추측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은 중지되어야 한다.(후략)”고 명시되어 있다.

 전라감영 혹은 구 도청사 문제와 관련해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안창모교수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문화재나 건축물의 복원에서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복원의) 당위성이 일단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학계뿐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여러 의미로) 사용할 일반인들을 포함해 이 시대에 (복원이 필요한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전에 각계 인사와 시민들도 참여하는 공청회를 충분히 열고 결정해야 진정성이 있는 복원이 된다. 복원을 하면서 원래의 것과 똑같이 될 수 없다면 문제다. 문화재라면 원모습으로의 복원을 위해서는 충분한 자료, 고증, 복원기술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전라감영의 경우 원모습대로의 감영복원이 이 시대에 의미가 있는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 전라감영터 위에는 일제강점기에 처음 짓고서 93년이 되었고 대형폭발사고로 전소해 재건축한 것은 62년이 된 구도청사 건물이 있다. 현지의 사람들에게 구도청사에 대한 일반적 정서는 어떤 것인지, 의미가 없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해야한다. 예를 들어보자. 1995년 김영삼정부때 조선총독부의 건물을 철거했다. 식민지배의 상징물에 대한 민족감정이 고려된 작업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전문가들이 놓친 부분이 있다. 어쨌든간에 그 건물은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 출범한 장소다. 애국심에 불타서 없앴지만 현재 그 장소는 사라져버렸다. 당시 전문가들이 반대를 많이 했으나 ‘치욕의 역사 청산’이라는 정치적 해법에 밀렸다. 총독부건물은 일제가 20년 사용했고 우리 정부도 50년이나 사용한 곳이다. 당시에도 공감대의 형성과정이 없었다. 현재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추모의 공간이 없는 것이다. 전북도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라감영터가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구 도청사 자리도 일제가 20여년 썼지만 대한민국도 60년 사용한 곳이다.
 
 -다른 복원사업에서 잘못된 사례가 있다면?
 =(잘못된 사례는) 직접 참여한 것이 없으므로 전해 들은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원주의 강원감영 복원이 (제대로) 안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원주감영을 잘 아는 분이 확인할 일이다. 일반적으로는 고증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확보된 예산을 써야하니…. 시간싸움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어딘가의 감영을 복원하더라도 감영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지 않으면 껍데기만 복원하는 모양새가 되기 쉽다. 감영이란 곳이 조선시대에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해 접근하여야 한다. 자칫하면 관광자원으로 발굴해내듯 하니 희화화되는 경우가 많아서 복원한 곳을 보면 유원지 건물처럼 되는 경우도 많다.
 
 -전주의 경우에 조언을 한다면? 전주감영의 선화당만 복원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그 쪽분들이) 잘하시겠지만…. 일제가 이 땅에 왔을 때 처음엔 감영의 관찰사 건물을 그대로 썼으니 사진이 남아있을 것이다. 발굴하면 주춧돌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초지정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면 가능하다. 물리적으로 사진이 없다면 창문의 표정, 지붕의 모양 등을 그대로 복원할 수가 없다. 전주감영의 경우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면 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가 동원된다.
 
 -(전주감영) 선화당 복원의 경우 다른 지역의 감영을 참고한다는 것은?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에도 관청의 건물은 다른 곳과 유사하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유서깊은 도시 전주의 역사적 중요성을 생각해야 한다. 다른 지역의 역사와 전주의 역사는 서로 다르다. 역시 복원의 필요성에 대한 지역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카메라를 들고 구 도청사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이제는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마치 한글의 ‘어’자나 ‘우’, ‘애’자를 닮은 선들이 이어지는 옛날식 문양의 유리와 바닥의 도기다시(돌 따위의 표면을 갈아서 광택·무늬 등을 내는 것을 이르는 일본어)가 눈에 들어와서 셔터를 눌렀다. 옛날 관청답게 층높이가 높아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그래서 묘한 향수가 풍겼고 사진가들이 찍으러 오는 이유를 알만했다. 건물은 두꺼운 콘크리트기초위에 지어져서 대단히 튼튼해보였고 아무런 냉방장치 없이도 시원했다. 길게 늘어진, 영화에서나 등장할 듯한 커튼이 이국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촬영의 공간으로 자주 이용된다고 한다. 마침 이 날은 15회째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일. 그동안 전주 일대에서 찍은 영화로서 대박이 난 것이 숱하다. 영화를 찍기 위해 이런 공간을 새로 짓는다면 잘은 몰라도 수십억은 들 것 같다. 2013년 12월에 개봉되어 1,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변호인의 역사적 공간은 부산이다. 그런데 영화를 찍은 실제 공간은 충남도청 구 청사 본관(등록문화재 18호) 라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1932년 준공되어 2012년까지 도청으로 사용된 건물로 충남도와 대전시는 업무협약을 맺어 충남도청 옛 청사를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구 충남도청사는 영화 ‘변호인’을 촬영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옛 도지사 집무실은 사용 물품을 원형 그대로 보존했고 접견실은 역대 도지사와 자손들이 기증한 소장품을 전시한다. 도지사와 외부 인사들이 만나던 접견실에는 역대 도지사와 자손들이 기증한 소장품이 전시되며, 도지사 비서실은 관람객을 위한 카페 등을 꾸며 보존과 활용의 묘를 찾았다. 2012년 총선 때 대전에서 출마한 자유선진당의 한 후보는 당시 공약을 통해 “도청사는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를 상징한다”며 “대전 한복판에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 남아 있는 것은 민족과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로, 도청사 철거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전문화연대 등이 반대하며 공약 철회 등을 요구하자 광복유족회, 중앙로 상인회 등이 잇따라 찬성 성명을 내 찬반 논란이 커지고 있다.(2012년 3월 27일 한겨레 보도) 이 후보는 낙선했고 새누리당의 후보가 당선됐다.
 
 6월 4일 열리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주시장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승수후보쪽에 서면으로 구 도청사에 관해 질문했다. 김후보쪽 담당자의 답변을 요약한다. “그간의 논의 사항이 전문가 등 공론화 과정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라는 생각과 논의의 지점이 시와 도의 예산책임 및 원형복원의 의의 등 한계가 있었다고 판단. 일단 전주시에 이의 철거를 중지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며, 선거가 끝난 후 인수위 과정에서부터 확대되고 일반적인 지점에서(정확한 정보제공과 활용방안을 열어놓고) 시작하려 한다. 첫째는 원안 추진. 둘째는 선화당 위치 조정을 전제로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을 통한 활용(활용에는 시민의 공간, 시립 근대문화호텔 등 고려) 셋째는 기타 시민 제안. 이 부분을 장기적 과제로 다시 가져갈 수는 없는 상황으로 저희 거버넌스 공약중 하나인 현안해결 공시제를 통하여 일정기간안에 (현재로서는 해를 넘기지 않는 선) 결정.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정엽 후보쪽의 담당자의 답변도 요약한다.
 “문화콘텐츠 중심의 실사구시 복원을 통해 관광객과 전주시민들의 활용도를 크게 높인 공간으로 구성. 구 도청건물은 1952년 건립, 역사자원 또는 문화사적으로 ‘보존가치 없다’는 견해가 시민들의 대체적인 의견으로 수렴됨. 일본강점기 건물 아님. 전라감영은 문화콘텐츠 중심으로 복원, 한옥마을과 기능적 연계. 광장조성. 원도심 빈 건물을 활용한 미술인창작공간, 문화배움공간 등 연계. 무엇보다도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가며 순차적으로 복원하겠음.”

jeonju-009.jpg » 임희정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다만, 사진은 세상을 보여줄 수는 있다. 마침 변하고 있는 순간의 세상을” 올해 91살을 맞이한 매그넘 사진가 마크 리부의 말이다. 구 도청사 기록사업과 사진공모전을 담당하고 있는 별의별 대표 고은설씨는 “전라북도(구)청사를 철거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철거인지 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구 청사에 관한 도면이나 자료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소문을 해서 찾아봤지만, 1951년 화재로 선화당을 비롯한 구 청사 건물이 전소되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이후 얼마나 증축이 되었는지, 화재 이전의 흔적은 어디까지인지조차 기록을 담은 것이 없다고 했다.”며 구 도청사 기록사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철거가 진행되고 400억원을 들여 새 건물을 짓든, 50억원을 들여 리모델링을 통해 재활용하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전북의 생활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변하고 있는 순간의 세상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길 순 있다. 전북도와 전주시에 따르면 철거업체 선정을 위해, 계약업체 공고, 적격심사, 계약 등의 과정을 밟고 나면 올해 6월 초에 철거가 시작된다고 한다. 마침 변하고 있는 순간의 세상을 지역의 생활사진가들이 찍고 있다. 사진은 기록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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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운명, 기록할 운명

  • 곽윤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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