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니까 예술이다

곽윤섭 2013. 08. 22
조회수 11302 추천수 1

 김문호 사진전과 사진집 'SHADOW'

 골목, 지하철역, 술집 등에 검은 덩어리…오늘을 사는 도시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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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이제 막 찍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흔들린 사진’은 악몽이자 언젠가는 극복해야할 과제다.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재생화면을 보면 흔들려있는 것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사체를 보면서 절망한다. 셔터속도가 뭔지, 감도(ISO)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나면 비로소 흔들리는 사진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사진가 겸 번역가인 김문호의 사진전 ‘섀도(SHADOW)’가 오는 26일까지 서울 혜화동 ‘이앙갤러리’에서 열린다. 같은 이름의 사진집도 나왔다. 김문호는 1989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 후부터 시대적 호흡을 같이 찍어내는 동료들과 함께 ‘사진집단 사실’을 만들었고 활동했다. 2009년 김문호의 사진전이자 사진집 ‘온 더 로드(On the road)’와 이번 작업은 겉보기엔 대단히 달라졌으나 뜯어보면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달라졌다고 단정하는 이유는 ‘섀도’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흔들렸다는, 외형적 특성이 몹시 강렬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은 지 오래된 작가가 기본기를 몰라서 흔들었을 리는 없으니 그는 의도를 가지고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흔들면서, 혹은 걸어가면서 이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사진이 흔들리는 이유는 찍히는 대상이 흔들리거나 카메라가 흔들렸기 때문인데 김문호의 사진에선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작가 자신의 표현처럼 ‘검은 덩어리’가 곳곳에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주로 사람들인 이 ‘검은 덩어리’는 골목,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술집 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스르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빛이 있으니 어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시의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덩어리’는 흔들리고 빛은 찢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작 ‘온 더 로드’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은 사진들이 말하는 내용 때문에 그렇다. 김문호는 사진을 통해 “도시, 혹은 그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이 서성거리면서 쭈뼛거리면서 제자리가 아닌 곳을 지키는 것 같은 불안감을 던져주고 있다. ‘섀도’의 검은 덩어리들을 보다가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미하일 엔데의 작품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시간도둑)다. 시간도둑들은 모모의 친구들을 꼬드겨 시간을 저축하게 하고 결국 시간을 뺏긴 사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인간성을 잃은 채 삭막하게 살아가게 한다. 김문호의 사진 속에서 방황하는 검은 덩어리들은 어느 틈엔가 다시 우리 주변에 잔뜩 모여들기 시작하여 호시탐탐 시간을 노리는 시간도둑들이며 그들에게 시간을 뺏겨 좀비처럼 흔들거리며 어딘가로 비척비척 걸어가는 현대인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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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빛출판사의 이규상 대표는 지난 8월1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한국의 다큐 사진가들은 지금까지 시위현장의 투쟁에 주목하였다. 과정을 외면하고 다 드러난 결과에만 매달려온 것이다. 다큐 사진가가 갈 곳은 투쟁의 현장이 아니라 삶의 현장이다.”라고 했다. 시위현장의 사진은 날이 서있으므로 더 강력하게 시선을 끌 수가 있다. 그러나 사안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읽었다. 김문호의 사진도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또 다른 각도의 다큐멘터리라고 하겠다. 2013년 오늘 한국의 도시에서 어둠이 어떻게 뭉쳐 다니는지, 현대인들은 그 어둠 속에서 뭘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시도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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