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현실에서 건진 실재, 상상은 자유!

곽윤섭 2014.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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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깁슨 초현실주의 사진전

찍기 전-후 손을 안 대도 초현실

이름을 버리니 이름이 태어나다


 

 rg06.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50.8×40.6cm, 1969

 

 

 초현실주의 사진가 랄프 깁슨(1939~ )의 사진전이 부산에 있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1월 19일까지. 9월 21일에 작가와의 대화가 준비되어있다.
이번 전시는 베르나르 포콩과 독일 현대 사진에 이은 고은사진미술관의 세 번째 해외교류전이다. 초현실주의 사진의 계보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역사를 따지기보다는 왜 초현실주의 사진이 등장하게 되는지가 더 중요하므로 잠시 짚어보자. 

 사진이 탄생하여 기존의 회화를 점차 추상으로 보내 버린 다음 사진 스스로는 예술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일찌감치 회화주의 사진이 등장하였고 20세기 초반 회화 등 다른 장르의 ‘다다’와 초현실주의 흐름에 때를 맞춰 만 레이나 라슬로 모호이너지 같은 초현실주의 사진이 나타난 것이다. 이보다 앞선 시대의 사진가인 으젠느 앗제(1857~1927)의 사진을 초현실주의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만 레이나 모호이너지의 사진은 셔터를 눌러서 나오는 사진이 아니다. 몽타주같은 기법으로 사진을 합성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도 기법인 시퀀스(연속)로 알려져있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은 초현실주의와 다르지 않다. 

 21세기에 다다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지만 기존가치의 전복을 보여주는 초현실주의 사진은 현시점에서도 유효하다. 1985년에 태어난 에릭 요한슨의 초현실적 사진은 경이롭다. 그런데 역시 카메라 셔터를 눌러서 획득된 사진은 아니다. 사진마을에 소개한 적이 있는 스칼렛 호프트 그라플랜드의 개인전 ‘현실같지 않은 풍경(Unlikely Landscape)’도 초현실주의에 속한다. 다만 스칼렛의 경우엔 셔터를 누르기 전에 모델을 현장에 세워두고 다른 소도구를 설치하여 찍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어쨌든 찍고난 사진을 오리거나 덧붙이지 않았다.
 랄프 깁슨의 경우는 아주 독특하다. 이 초현실주의사진은 대부분 찍기 전이나 찍은 후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만 레이나 스칼렛이나 에릭 요한슨이나 랄프 깁슨은 각각 다른 방식의 초현실을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본적으로 다다이스트와 같다. 손을 대거나 대지 않는 것에 내가 민감한 이유는 중요하다. 셔터를 누르는 것으로 끝낸 것은 사진이며 셔터를 누르고 난 다음에 후작업을 한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이용한 다른 예술이라는 지론 때문이다. 

 손을 대서 추상을 표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굳이 카메라를 쓸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랄프 깁슨의 사진이 소중하다. 이번 전시엔 모두 80여점이 걸리는데 깁슨이 1970년대에 발표한 <몽유병자>, <데자뷰> 등의 주요작품과 21세기의 최근 작품도 포함되어있다. 

 고은사진미술관의 이미정 큐레이터는 “고은쪽에서 랄프 깁슨의 모든 시기에 걸친 작품들중에서 직접 선택했으며 깁슨은 2014년 고은사진미술관의 전시를 기점으로 그동안 개별 시리즈에 붙였던 작품명을 (의미가 없어졌으므로) 버리기로 했으며 모든 작품의 이름을 ‘언타이틀드(untitled)’로 통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rg01.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35.5×27.9cm, 1960

 

rg02.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35.5×27.9cm, 1977

rg03.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40.6×50.8cm, 1970

rg04.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40.6×50.8cm, 1974

rg05.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40.6×50.8cm, 2004

 rg07.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50.8×40.6cm, 1972

rg08.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50.8×40.6cm, 1974

rg09.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50.8×40.6cm, 1980

rg10.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50.8×40.6cm, 1980

rg11.jpg » ⓒ Ralph Gibson 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60.9×50.8cm, 1980

  rg12.jpg » ⓒ Ralph Gibson_Untitled, Gelatin Silver Print, 50.8x40.6cm, 2012          

  
 
 랄프 깁슨의 사진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말하지 않겠다. 힘들게 현실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내가 어떤 식이든 규정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관객들이 보고 판단할 일이다. 깁슨이 몽유병자, 데자뷰 같은 이름붙이기에서 벗어나려는 이유도 아마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진이든 기묘하다. 사람을 찍은 것도 있고 손을 찍은 것, 건물을 찍은 것도 있는데 모두 현실에서 벗어나고 있다. 비슷비슷한 사진들을 보다가 싫증나져서 심드렁한 요즘에 신선한 충격이다. 부산까지 가서 볼 가치가 충분한 전시다. 

 독립 큐레이터 최연하씨는 “ “랄프 깁슨의 사진은 한마디로 ‘언캐니(Uncanny)함’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억압되어 있었던 것들의 사진적 회귀. 이성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질서와 규범 및 정체성에 균열을 내는 것. 광기와 무의식, 꿈의 세계를 표상한다면 형식적인 방법론으로 강렬한 흑백의 콘트라스트, 광각렌즈를 활용한 왜곡된 시각,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극단적인 프레이밍, 서사가 아닌 시적인 포착(즉, 한장의 사진을 보고 도저히 내러티브가 형성되지 않는)이 될 것입니다. 이성과 법의 질서를 벗어나 ‘예외상태’가 일상이 되어버린 한국의 현재에, 수면아래로 침몰되어가는 실재들을 랄프 깁슨의 사진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부산 가자!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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