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동안 미공군 폭격훈련장이었던 매향리
주민들의 힘으로 되찾은지 10년, 기념 사진전
» 고온동풍경/윤승준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매향리를 기억하는가. 이곳엔 미군부대가 즐겨 이용하던 쿠니사격장이 있었다. 미 공군은 1951년부터 2005년에 쿠니사격장이 폐쇄될 때까지 54년 동안 폭격훈련을 하며 이곳 매향리 일대에 포탄을 쏟아부었다. 10년이 지났다. 언론에, 특히 한겨레신문에 연일 오르내리던 그 ‘매향리’는 잊혀지고 있다. 잊어도 되는 일이 있고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잊지 말자는 뜻에서 쿠니사격장 폐쇄 10주년 기념 매향리평화예술제 사진전 ‘못살, 몸살, 몽상’전이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매향리 미군부대 반환 터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화성시가 주최했다.
일어났던 일의 증거자료인 사진은 잊어버린 것,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것을 기억하는데 최고의 수단이다. 만들어진 사진이 아닌 존재했던 사실을 기록한 사진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다. 매향리 주민들은 50여 년 동안 강제로 헐값에 징발당했던 그들의 어장과 토지와 임야에 하루에도 수십 차례 포탄이 쏟아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만 했다. 벌써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매향리의 미군사격훈련장이 폐쇄된 것은 미군이 관용을 베풀어서가 아니다. 주민들이 수차례 점거 농성을 했고 국회와 정부에 청원서를 냈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해서 쟁취한 성과물이다.
그래서 이번 사진전이 소중하다. 이곳에 미군의 폭격훈련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 훈련장을 주민들의 힘으로 폐쇄시켰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전시에는 강용석, 국수용, 노순택, 윤승준, 이영욱, 정진호(가나다순) 작가가 참여했다. 모두 60여 점이 걸린다. 강용석은 1999년에 발표했던 ‘매향리 풍경’의 사진을 내놓았으니 6명 중 가장 옛날 매향리를 보여주고 있다. 황량한 풍경이다.
국수용은 2000년에 매향리를 방문하여 주민들의 사연을 듣고 주민들의 얼굴을 찍었다. 6명의 사진가들 중 가장 직설적으로 매향리의 아픔을 전달하고 있다. 2000년 당시 매향리에 거주하던 88세 이춘분 어르신의 증언이 절절하다. 50여 년 전 당시 “16세였던 어린 아들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미군의 폭격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남편마저 화병으로 죽은 후 미군에게 항의 한마디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노라” 전시장에 걸린 주민들의 얼굴사진은 저마다 사연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사진의 힘이다.
노순택은 2000년에 찍은 매향리의 야간폭격훈련 장면을 보여준다. 보도자료에 첨부된 또 한 장의 사진은 전형적인 노순택 표다. 20세기 후반에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마틴 파처럼 개구쟁이 같은 사진을 즐겨 발표했을 노순택은 불행하게도 20세기 후반에 그것도 한국에서 태어나는 바람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치기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편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사진가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 매향리 풍경/강용석
» 매향리 풍경/강용석
» 국수용
» 국수용
» 뤙아일랜드/노순택
» 뤙아일랜드/노순택
» 고온동풍경/윤승준
» 쿠니의 기억/이영욱
» 쿠니의 기억/이영욱
» 이상한 바닷가/정진호
» 이상한 바닷가/정진호
윤승준은 2015년에 찍은 ‘고온동 풍경’을 걸었다. 매향리는 2005년에 폐쇄되었는데 2015년에 어떻게 매향리를 찍을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사진을 보면서 바로 감을 잡을 것이다. 윤승준은 매향리 주민들의 오래전 흑백사진을 이 마을의 집 벽에 환등기로 비추고 2015년 현재의 주민들을 그 옆에 세워 사진을 찍었다. 지금의 주민이 흑백 사진 속에 들어있다. 역시 사진의 힘이다. 사진 아닌 어느 매체로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나.
이영욱도 2015년에 매향리에서 작업을 했다. 사실상 강용석이나 국수용, 노순택은 편하게 이번 전시에 가담한 편이다. 옛날 사진을 꺼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이 또한 사진의 힘이다. 동시에 사진의 취약함이다. 그러므로 이영욱은 대단히 고민을 했을 것이고 ‘쿠니의 기억’으로 대처했다. 쿠니사격장 안에 있었던 미군기지의 방치된 건물 안에서 간접적으로 미군, 미군폭력의 흔적을 살펴보고 있다. (관객더러) 살펴보라고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에서 직접 매향리, 사격, 폭격의 폭력, 아픔을 읽어낼 수는 없다. 그런데 추측하라는 것이고 다른 5명의 사진가와 함께 전시를 하기 때문에 읽어낼 수 있다. 이 사진만 덜렁 걸었다면 뜬금없는 일이 될 수 있다. 단체전 기획의 묘미다.
정진호도 2015년에 매향리 작업을 했다. 이영욱과 달리 명쾌하고 가볍게 풀어냈다. 주민들이 승리하여 되찾은 매향리는 이젠 관광지로 변해버린 것인가? 철조망 옆으로 카우보이모자 또는 승마모자를 쓴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간다. 배경 쪽엔 교회건물이 있다. 불균형, 엉뚱한 것들의 조합, 비현실성 등을 보여주면서 2015년의 매향리를, 매향리의 역사를 비틀고 있다. 벌서듯 철조망을 들고 있는 군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제목이 ‘이상한 바닷가’다. 또 다른 차원에서 사진의 힘을 보여준다. 무슨 말이냐면 1951년에 사격장이 만들어지고 54년 동안 섬과 바다에 포탄이 떨어지고 주민들이 점거농성을 하고 2005년에 이곳을 오염시켜놓은 채 미군이 떠났던 일들은 모두 과거의 매향리다. 2015년 현재의 매향리는 정진호의 사진에서 가장 정확하게 보인다. 과거는 있었던 일이다. 그렇지만 현재는 현재의 모습이다. 물론 이 또한 2025년에는 10년 전의 사진이 된다. 사진의 힘이며 “사진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전시 기획자의 몫이 큰 전시다. 만약 강용석의 ‘매향리 풍경’ 단독으로 전시를 채웠다면, 혹은 강용석과 같은 시대에 매향리를 찍었던 수많은 사진가, 사진기자들의 사진으로 전시를 채웠다면 이런 분위기를 내지 못한다. 국수용도 노순택도 마찬가지다. 단독으로 해도 의미가 있지만 지나간, 이미 발표된 작업이다. 그래서 사진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다.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뜨고 그 빛이 있으니 내일엔 내일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빛과 내일 빛은 다르고 오늘 사진과 내일 사진이 다르다.
2015년에 작업한 3명의 작가들이 있었으니 전체가 빛을 발휘했다. 전시 기획자 최연하는 “별도로 주문하진 않았는데 결과물이 다양하게 나와줘서 좋았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한국사람들은 유난히 잘 잊어버린다. 잊어도 좋은 것이 있고 잊어선 절대 안 되는 것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사진의 힘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