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민족의 섬 조선학교, 통일 씨앗이 자란다

곽윤섭 2013.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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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지진 이후 조선학교는 어떻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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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고우면하지 않고 힘있게 밀어붙이고 있는 사진가 김지연의 사진전 <조선학교>가 8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류가헌>에서 열린다. 그는 한국에서 몇 안되는 다큐멘터리사진가 중에서도 정말 몇 안되는 여성 중 한 명이다. 여성이라서 뭐 어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다큐멘터리’는 돈안되고 고단한 작업인데 여성이라서 더 고단할 것 같다는 안쓰러움이 떠오를 뿐이다. 그동안 김지연이 해왔던 작업의 면면을 볼 필요가 있다. 그는 2000년에 사진집  ‘연변으로 간 아이들’을 낸 이후로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2001), ‘나라를 버린 아이들’(2002), ‘러시아의 한인들’(2005), ‘거대공룡과 맞장뜨기’(2008)등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산(디아스포라)에 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도 같은 맥락이다. 재일조선인을 찍고 있던 김지연은 2011년에 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도후쿠에 있는 조선초중급학교를 찾아갔다. 대지진은 일본 전체에 대재앙이었지만 복구과정에서 조선학교들은 지진피해 복구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었으므로 이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짧게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조만간 전시장에 나가 작가를 만나보려고 한다.
 -사진은 언제부터?
 =1990년쯤 시작했다.


 -작업에 일관성이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기획한건가?
 =가장 첫 작업이 탈북아이들에 대한 것인데 우연히 중국에 갔다가 만나게 되었다. 이름하여 ‘꽃제비’라고 언론에 자주 언급되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이 아이들도 우리동포”라는 관점에서 작정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때부터 계속 한국에서 핍박받는 외국인노동자, 외국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 등으로 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편이다.

 
 -다음 작업은?
 =사할린동포를 다룰 생각이다.


 -사진찍어서 먹고 살 수 있나?
 =회사에 다닌다. 그냥 일반회사의 홍보실에서 사진과 무관한 업무를 하고 있다.kjy0001.jpg

 
 -그럼 사진작업은 언제 하나?
 =3박 4일 정도 휴가를 내서 사진을 찍으러 간다. 긴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은 회사를 관두고 쉴 때 가능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동안 7~8번 정도 회사를 옮긴 것 같다.
 
 회사를 옮겨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말이 쉽지 참 막연한 일이다. 역시 고단한 일인 것 같은데 김지연은 가볍게 넘긴다. 이력이 난 모양이다.
 
 이번 전시와 사진책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김지연이 직접 쓴 작가노트를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아주 상세하게 잘 정리했으므로 굳이 토를 달 필요가 없다. 전시와 때를 맞춰 사진집 <일본의 조선학교>이 눈빛에서 나왔다. 날로 보수화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일본 정부의 차별 속에서 꿋꿋이 우리말로 배움을 이어가고 있는 조선학생들을 사진전시와 사진집을 통해 만나보자.

 

 

 

사진집 구입  

 

 작가노트
 
 이제 함께 꿈꾸자
                  
 “나의 국적은 ‘조선’입니다. 고향은 경상도입니다. 그런데 왜 조선이냐구요? 우리 할아버지는 분단되기 이전에 일본에 왔습니다. 우린 다시 조선을 기다립니다. 남조선, 북조선이 아닌 하나 된 조선을 기다리며 민족정신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말은 딱히 누구의 말인지 내 수첩에 적혀있지 않다. 아마도 조선학교와 관련된 많은 분들이 이와 비슷하게 얘기를 했기 때문에 따로 적어놓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이 말을 할 때면 하나같이 눈빛에 흐트러짐 없이 조용하지만 단호한 어조였던 것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 어느 때보다 과학문명의 혜택을 신나게 누리며 살고 있는 21세기에 고운 치마저고리를 입고 예쁘게 입을 모아 통일된 조국의 그리움을 노래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은가? 그것도 고난과 원한의 눈물로 얼룩진 일본 땅에서 말이다.  
 “남도 북도 어디가 더 좋고 나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다만 분단된 현실이 안타깝고 빨리 하나 된 조국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2012년 도후쿠조선초중급학교 졸업식장에 홀로 선 김령화 학생의 말이었다. 학생 수가 겨우 20명 남짓한 이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기를 마친다. 학생이 한명이어도 학급은 돌아간다. 기숙사 생활을 통해 아이들은 공동체 정신인 상생과 배려를 배운다.
  이 학교는 1965년 개교 이래 1973년 860여 명의 학생이 있었던 때도 있었다. 이번 조선학교 작업에 물꼬를 터준 윤종철 교장도 이 학교 출신이다. 조선학교가 가장 번성했을 1948년도에는 534개교에 5만7천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했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 당국의 폐쇄령 등의 탄압과 차별, 그리고 자연적인 인구 감소 등으로 학교 수는 많이 줄었다. 2012년 11월 10일 조선대학교 조선문제연구소 설립 1주년 기념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현재 138개교만 남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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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 11일, 이들에게 커다란 재앙이 닥쳤다. 일본 도후쿠지방에서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강진이후 지상으로 밀려든 대규모의 해일이 도시를 덮쳐 2만여 명이 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냈다. 그 당시 나는 무고한 동포들이 표적이 되어 무참하게 살해됐던 관동대지진을 떠올렸다. 이번에도 누군가 표적을 삼는다면 그 대상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학교 학생들이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급히 짐을 꾸려 지진피해 지역으로 향했다. 피해지역엔 도후쿠 조선초중급학교와 후쿠시마 조선초중급학교가 있다. 후쿠시마는 방사능 피해로 학생들을 딴 곳으로 대피시킨 상태였기 때문에 도후쿠 학교로 일단 향했다. 하지만 지진으로 만신창이가 된 도시에 들어가는 일도, 학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도 그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무관심의 세월이 쌓아놓은 벽은 높기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허가를 얻어 방문하게 된 도후쿠학교에서 나는 우리 조상들이 심어 놓은 통일의 작은 씨앗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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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내 조선학교의 역사는 ‘차별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은 우리말 공부방에서 출발한 조선학교는 해방 전부터 일본의 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민족성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교육을 원했던 동포들이 만든 학교이다. 1957년 무렵은 일본의 민족교육 탄압에 맞서 동포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때부터 북측에서 보내온 교육지원금은 조선학교와 조국을 잇는 끈이 되었다. 이로 인해 총련계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로 인식돼 지금까지 남측에서는 조선학교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인 것이 사실이다. 현재는 그간 3번의 교육개혁을 거치며 동포들이 일본사회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쪽으로 교육방향을 전환했다. ‘민족성, 과학성, 현실성’을 담은 커리큘럼은 일본 학교의 교육수준에 비해 손색이 없으며,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과학과 외국어 수업을 강화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을 ‘일본제국의 신민’인 일본 국적자로 규정하고 그들의 자녀를 일본학교에 취학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광복 이후에도 외국인(광복국민)이지만 ‘일본국적’을 가진 자로 간주하여 일본학교 취학 의무는 여전했다. 그러나 일본은 1947년 5월 ‘신헌법’이 시행되기 하루 전에 최후의 칙령으로 ‘외국인등록령’을 공포, 구 식민지 출신자를 “외국인으로 간주한다”며 재일조선인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 보장을 거부한다. 이후 일본학교에 취학하려는 자는 학교의 지시에 거스르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라는 조건을 붙였다. 취학은 의무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베푸는 은혜라는 태도였다. 재일 1세들의 피 흘린 투쟁을 통해 1953년 5월 교토조선학원을 시작으로 1975년 10월 상인조선학원 등 총 17개 학교법인이 인가를 받으면서 조선학교는 정상화에 들어서게 되었다. 1965년 한일조약의 체결로 한일간 국교가 수교되면서 재일조선인의 국적은 한국적(籍)과 조선적(籍)으로 나뉘게 되었다. 또 다른 ‘분단’의 슬픈 역사가 시작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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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조선학교의 문제는 동포들의 국적문제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 침탈로 인한 강제이주의 역사 속에서 재일조선인들의 지위는 일방적으로 일본 정부에 의해 부여됐다. 또한 분단된 한반도의 역사를 이용해 그들의 신분을 한국적인지, 조선적인지 강요하고 이를 차별에 이용하고 있다. 이때 한국이나 일본으로 국적을 옮기지 않고 남아 있는 조선적들을 북측과 연관 지어 일본인 납치사건, 연평도 사건, 핵실험 문제가 야기 될 때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보내는 증오를 이들에게 대신했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등교하던 여학생들의 교복이 찢긴 연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일본 정부 당국과 보수주의자들은 민족교육 문제를 교육문제로 보지 않고 치안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최소한 외국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마이너리티 민족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이유로 2010부터 실행하고 있는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했다. 이번 대지진으로 피해를 받은 학교들의 복구를 지원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조선학교에는 무국적으로 난민이나 다름없는 조선적(籍)과 한국국적, 일본국적이 다양하게 있으며 그 중 한국국적이 가장 많기 때문에 북측 학교로 취급하며 온갖 차별을 일삼는 일본정부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일본은 일찍이 화이사상을 깨고 탈아시아권을 형성하기 위해 서양의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자 각고의 노력을 했다. 일본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할 때 그들을 얼마나 철저히 연구하고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는 이미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반면 조선은 유교의 본국인 중국보다도 더 유교적 규범에 집착하며 세상 변화의 흐름을 관조하고만 있다가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다. 그런 사이 힘없는 국가의 궁민(窮民)들은 일본 땅까지 건너가게 된 것 아닌가? 지금 재일조선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일본의 만행에 항거했듯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제도적 차별과 정신적 식민상태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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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에 대소사가 있을 때면 인근의 동포들은 너도나도 모여 학교일을 내 일처럼 돕는다. 학교가 곧 고향인 이들은 그곳에서 ‘나는 조선인’임을 배웠다. 우리말과 문화를 배우고 조선인의 자긍심을 배운 그곳이 있었기에 아직까지 일본 땅에서 기죽지 않고 가슴 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마음의 고향이 하나 둘씩 없어지고 있다. 일본의 의도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3.11 대지진 이후 불길했던 예감대로 일본은 우경화의 깃발 아래 결속하고 있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보상은커녕 일본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의 군대 전환추진,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의 행보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일본의 정세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지 한국정부는 파악은 하고 있는 것인지, ‘조용한 외교’만을 이야기할 뿐 대책이나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묶여 재일조선인들의 눈물어린 싸움을 외면만 하고 있다. 
 그 옛날 조선학교를 지키기 위해 고투할 당시 북측의 교육지원금이 동포들의 가슴을 울렸듯이, 이제는 우리가 조선학교를 생각하고 함께하는 것만이 이제까지 무관심했던 우리의 자세를 사과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디아스포라 작업 중 재일조선인 작업만큼 방대한 작업은 없었던 것 같다. 재일조선인들의 고립된 삶을 여러 갈래로 작업을 하다가 3.11을 계기로 조선학교 이야기로 압축했다. 조선학교에 모든 함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에서 컬러도 압축했다.

 재일조선인들의 지난한 역사에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이번에도 흔쾌히 출판에 힘써주신 눈빛 출판사에 감사드리며, 만났던 모든 동포들께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조선학교에 관심을 갖고 지원을 원한다면 몽당연필?(www.mongdang.org)로 마음을 모으자!
 
 2013년 8월
  그리워하는 고향에서 드림
 김지연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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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윤섭
  • | 2013.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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