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진도 사진인가

곽윤섭 2013. 09. 10
조회수 21988 추천수 1

2013 진짜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찾는다

추상사진이 한국사진의 전부는 아니다

 

  
 사진가 최민식(1928~2013)을 기리는 ‘최민식 사진상’접수가 시작됐다. 이 상은 협성문화재단과 국제신문이 공동 주최하고 부산광역시와 고은사진미술관이 공동 후원한다.
 공모는 10월 18일까지. 심사는 10월 21부터 10월 31일까지 진행되고 심사 발표는 11월 5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하고 개인통보한다.
 지원대상은 최민식 선생의 예술혼과 사진철학을 지향하는 전업 사진가 및 아마추어 사진가로 정해졌다. 총지원금 규모가 4천만원으로 한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사진상이 될 것이다. 본상과 특별상 부문으로 나눠서 심사하는데 두 부문 모두 “사진가 최민식의 사진철학을 지향하며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작업중인 사람”으로 못 박고 있다.
 세부 규정에서 본상은 전업사진가로 동일 주제의 개인전 1회 이상 또는 기획 초대전 2회 이상인 자이며 나이 제한이 없다. 특별상은 아마추어사진가이며 나이 및 경력에 제한이 없다고 규정되어있다. 사진상 운영위원회가 제시한 공모요강의 전문은 맨 아래쪽에 링크를 걸었다.
 
 최민식의 이름이 붙은 사진상이니 기대가 대단히 크다. 과연 어떤 작가가 상을 받게 될 것인가. 동시에 우려도 대단히 크다. 과연 심사가 제대로 될 것인가. 그래 이 글을 쓰게 되면서 한국에는 어떤 사진상이 있었고 어떤 사진이 상을 받았는지 궁금했다. 이런 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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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SKOPF, 스코프)의 ‘올해의 작가’  권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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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다음작가상 수상자 금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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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주목할만한 작가’ 유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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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사진상 수상자 이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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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SKOPF, 스코프)의 ‘올해의 작가’  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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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SKOPF, 스코프)의 ‘올해의 작가’  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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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주목할만한 작가’ 최영만

 

 

 

2013년 박건희 문화재단 12회 다음작가상 수상자 금혜원
심사위원: 구본창(사진가 경일대 교수), 백지숙(평론가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이상일(사진가 고은사진미술관 관장), 임혜진(아트선재센터 전시팀장), 박영미(박건희문화재단 학예실장) 1차 포트폴리오 심사, 2차 인터뷰
 
 2013년 동강사진상 수상자 이정진
 심사: 동강사진마을운영위원회(위원장:김영수)
 
 KT&G 상상마당의 제6회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SKOPF, 스코프)의 ‘올해의 작가’ 권지현, 정지현, 지영철.
 심사위원 이영준(계원예술대학교 교수), 강홍구(사진가), 송수정(사진기획자), 신보슬(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이상일(고은사진미술관 디렉터), 정주하(백제예대 교수)
 
 2012년 12월 제4회 일우사진상 ‘올해의 주목할만한 작가’ 출판부문 윤지선, 전시부문 김태동
 심사위원
 탠 붕휘(Tan Boon Hui 싱가포르미술관 관장), 브릿 샐브젠(Britt Salvensen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신수진(사진심리학자 연세대 교수), 주명덕(원로 사진가), 문영민(메사추세츠 앰허스트 주립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출판부문: 마커스 하트만(Markus Hartmann 독일 핫제칸츠 출판사) 프로그램 디렉터참가.
 
 **한미문화예술재단에서 2005년에 제정한 한미사진상이 있었다. 2005년 시작하여 2007년까지 수상했으나 지금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2007년 제 3회 수상자 천경우
 심사위원 2007년 제3회 송영숙, 이경률, 이기명, 최봉림, 성남훈


  
 
 다음작가상, 동강사진상,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 올해의 작가, 일우사진상 등이 상금의 규모면에서 그리고 상을 주는 단체의 지명도에 있어서 한국의 유력한 사진상이라고 불러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럼 이 사진상에서 최근 선정된 사진가 혹은 사진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해보겠다. 과연 이중에 몇 명이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라.
 금혜원, 이정진, 권지현, 정지현, 지영철, 윤지선, 김태동(윤지선과 김태동의 사진은 일우사진상 공식 홈페이지(http://photo.ilwoo.org/main.php)에서도 찾을 수 없어 3회 수상자인 유현미와 최영만의 사진을 올린다)
 대부분의 상은 “미래를 위해 재능 있고 유망한 작가를 발굴, 지원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다. 따라서 대단히 유명한 사진가들이 아닐 수도 있으므로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이 위의 수상자들 이름을 몰라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다.
 
 그럼 다음의 명단은 어떤가. 정희승, 노순택, 이동근, 유현미, 최영만
 이들은 한 해전인 2012년 각 상의 수상자 명단이다. 노순택을 제하고 나면 2013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엔 2013년 명단에 오른 사람들의 사진을 살펴보자. 아무리 다큐멘터리의 개념이 확장 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다큐멘터리가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물론 위의 상을 주는 주최쪽에서는 예술과 다큐멘터리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문호를 개방해서 심사했다고 할 수도 있으므로 역시 문제삼을 수는 없다.
 
 이 시점에선 사진의 본질은 무엇이며 예술사진과 다큐멘터리사진의 차이는 무엇인지 규정을 해야한다. 아니 한발짝 앞서 예술사진과 다큐멘터리사진의 구분이 타당한지부터 따져야한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큐멘터리사진은 다큐멘터리사진가의 창작혼이 보편성을 담보로하고 내용을 갖춘다면 예술성을 획득할 수 있다. 따라서 다큐멘터리사진은 예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름하여 예술사진은 절대로 다큐멘터리가 될 수 없다. 한걸음 옆으로 가서 생각하면 사진의 본질은 기록이며 기록이란 본질을 벗어나면 사진이라 할 수 없다. 예술사진이라고 이름붙이는 순간, 그것은 사진이길 포기하거나 거부한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을 밝힌다. 신설되는 ‘최민식사진상’에 바란다. 최민식선생이 추구했던 작품세계를 요약하면 거창할 것도 없이 ‘셔터를 눌러 찍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수시로 “사진은 방안에서 컴퓨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셔터를 눌러 찍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최민식사진상의 개요에 들어있는 “최민식의 예술혼과 사진철학을 지향하는” 이란 규정은 자칫 잘못 읽힐 가능성이 있다. 예술이란 표현이 사진계에선 유난스러운 마술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사진이 예술을 향해 구애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현재, 누가 만든 표현인지 알 수도 없는 ‘예술사진’으로 구분되는 사진 중엔 진짜 사진이 없다. 말장난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진이 아닌 것을 사진이라고 부르는 현 상황이 개탄스럽다. 위에서 살펴본 한국의 유력한 사진상 수상작들 중에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사진가는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찬성할 수 없는 표현이지만 ‘예술사진’을 선호하는 재단에서 위의 수상작들같은 작품(사진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도 있다)에 상을 주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사진인구 1,000만명 시대의 한국사회에서 찍어서 나오는 사진이 아니라 만드는 사진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큰 문제다. 왜 문제인가. 1,000만 명의 사진 애호가들은 의아해한다. 그들이 셔터를 아무리 열심히, 진지하게, 오랫동안 눌러도 위에 언급한 2013년도 수상자들의 사진 중 일부는 절대 생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의 수상작들은 연출하지 않으면 안나오는 사진이며 또 일부의 수상작들은 유일성을 찾기 힘든, 풍경에 가까운 관념적인 사진이다. 
 
 다음에 좀 정식으로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인간가족’전의 일부가 머지않아 한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1955년 개막된 뒤 전세계를 돌며 900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이 전시는 그 영향력 덕분에 전시 자체가 사진사에서 신화가 되었다. 당시의 관객들이 열렬하게 호응했던 이유는 그전까지 미술관에서 걸리던 추상적인 회화를 이해할 수 없어하다가 사진, 특히 대부분 다큐멘터리(포토저널리즘 사진이라고 불러도 좋다)로 구성된 ‘인간가족’의 사진들이 눈높이에 맞았던 덕분이다. 미술계의 엘리트들만이 이해하던, 쉽게 말해 일부의 권력층만이 향유하던 ‘예술’이 대중에게 문을 열었던 것이다. 예술이 일부 왕족이나 귀족의 손을 떠나 제의가치에서 전시가치를 획득하는 시대적 변화를 부정하는 이들에겐 이 글은 아무런 도움이 안될 것이다. 그 사이에 많은 세월이 흘렀고 많은 변화가 생겼다. 포토저널리즘(다큐멘터리사진이라고 불러도 좋다)의 전성기는 텔레비전의 등장에 따라 점차 쇠락기로 향해갔다. 다큐멘터리는 간신히 숨만 붙어있었다. 디지털시대가 오면서 폭발적으로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누구나 손에 카메라를 휴대하고 있는 시대가 왔고 그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어떤 전문가보다 빠르게 찍고 전송하여 순식간에 전세계로 현장을 사진으로 공유하는 시대가 왔다. 9.11테러사건을 보면서 전문가들은 포토저널리즘의 부활을 예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50년의 공백기 동안 사진계는 다시 소수의 권력층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다. 일부만 이해할 수 있는, 과연 (그 일부도) 이해를 하긴 하는지 궁금한 ‘예술사진(추상사진)’이 갤러리에 걸리고 비싼 값에 거래가 되고, 회화나 조각을 하던 이들이 사진을 차용해 사진 아닌 사진으로 뛰어들었다. 사진교육계과 사진을 다루는 언론과 사진이 사고 팔리는 시장이 맞물려서 돌고 돈다. 그 틈바구니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생활사진가들은 길이 어딘지도 모르니 헤매지도 못하고 빛을 따라 우왕좌왕 몰려다닌다.
 
 한국의 사진계는 왜곡되어있다. 일부의 사진계인사들이 사진시장을 독점하면서 공생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실력으로 흔드는 것은 좋으나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그들은 권력을 쥐고 갤러리들과 서로 죽이 맞아 사진이 점차 사진이 아닌 것으로 흘러가는 것을 묵인, 방조, 주도했다. 살롱사진이 사진의 전부인양 생각하던 1960~70년대 한국사진계를 보는 듯하다. 그땐 그래도 셔터를 눌러서 찍은 사진이긴 했다. 지금은 설치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 사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작품을 사진인양 취급한다.
 작가의 실력은 독자 혹은 관객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큐레이터 아무개, 교수 아무개, 평론가 아무개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사진계는 자생력이 충분히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진인구가 많다. 그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사진전을 관람하거나 사진집을 사거나, 사진작품을 사서 집에 걸어둘 용의가 있다. 그런데 그들이 찍는 사진과 상을 받는 사진이 다르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예술사진(추상사진)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요약한다. 최민식 사진상 공모가 시작됐다. 필자는 아직 누가, 어떻게 심사하는지 알지 못한다. 바라건대 다른 작가도 아닌 최민식의 이름을 건 상이라면 그에 걸맞은 사진을 찍는 작가가 상을 받아,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수백만의 생활사진가들에게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 이것은 참으로 좋은 기회다.
 
 

한눈팔지 않고 사진관련 책을 꾸준히 내고 있는, 한국 최고의 사진책 출판사 대표 이규상에게 최민식 사진상과 관련된 글을 부탁했다. 전문을 소개한다.  

        최민식사진상에 바란다/이규상(눈빛출판사 대표)
 
 최민식 선생은 생전에 ‘사진은 사상이다’라고 하셔서 나를 곤혹스럽게 한 적이 있다. 사진이 사상이라니 그 막연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은유적 정의가 혼란스러웠다. 평생 길에서 사진을 찍어 오신 분이니 뭔가를 말씀하고 싶으신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곰곰이 헤아려 보니 그것은 ‘사진가의 사상(작가정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진에 사진가의 사상이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줄기차게 펴낸 사진집의 제목이 ‘휴먼’이었으니 그의 사상은 ‘휴머니즘’인 것이 분명하다. 휴머니즘이라 하여 인본주의니 뭐니 애써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인간에 대한 관심’ ‘인간성에 대한 신뢰’ 정도로 이해해도 충분할 것 같다.
 최민식 선생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사진으로 추구하고 실천해 오신 분이다. 당신의 사진사상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선생은 인간의 본성을 규명하고자 한 사진가이자 구도자였다.
 평생 최민식 선생의 사진무대가 되었던 부산에서 ‘최민식사진상’이 제정되어 사진을 공모 중이다. 당신의 사진작업의 근거지였던 부산에서 이 상이 제정되어 무엇보다 반갑고 감사한 일이다. 이 상이 최민식 선생의 사진정신을 기리고 그 전통을 이어가는 후배 사진가들을 격려하는 상이 될 것을 기대하며 몇 가지 제언을 드린다.   
 
 첫째, 최민식사진상은 한국적 정서를 지닌 다큐멘터리 사진에 수여되어야 한다. 한국사진은 한국인의 삶과 정서를 반영한 사진을 말하는데 최민식 선생의 사진은 그 형식과 내용이 완전히 우리의 것으로 토착화했다. 따라서 당연히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삶의 모습을 일관되게 추구해 온 작가정신이 투철한 사진가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상대적으로 침체되고 불리한 구조에 놓여 있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숨통을 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최민식사진상은 한국사진계의 또 다른 사진권력을 지향해서는 안 된다. 한국사진의 발목을 잡아온 고질적인 인맥, 학맥 그리고 네임밸류보다는 사진작품 중심으로 수상자를 선정해야 할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공모자의 이름을 모두 가리고 포트폴리오의 완성도만 보고 결정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최민식사진상은 프로건 아마건 묵묵히 자기만의 독특한 사진세계를 일궈온 사진가를 발굴해 격려하는 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선생이 제자들을 앞세워 사단(寫壇)을 만들려 하지 않고 오직 사진만으로써 일가를 이룬 것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셋째, 최민식사진상은 상의 취지를 명확히 하고 심사에 공개적이고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 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진상 운영재원을 탄탄히 하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수상자 선정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성악가에게 상을 준다고 한다면서 트로트 가수에게 시상하는 식의 터무니없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하는 곳이 한국사진계이기 때문에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필요하다면 본상에 공모제와 추천제를 병행하는 것도 작가 발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최민식 사진의 예술혼과 사진철학을 이 사진상으로써 기리려면 무엇보다도 운영과 시상이 공명정대해야 한다. 최민식 선생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당신의 이름으로 주는 사진상도 가난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주는 최고의 영예이자 격려가 되길 기원한다. 


 

최민식 사진상 공모페이지 링크 바로가기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사진상과 관련된 어떤 의견도 환영합니다. 또한 이 기사와 관련된 어떤 의견도 경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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