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역사 현장 기록한 남편에게 헌정합니다"

사진마을 2017. 11. 11
조회수 2300 추천수 0

【짬】 사진기자 남편 사진집 기획한 부인 이영순씨


박용윤씨 15년간 ‘신동아’ 연재 인물사진
‘어제와 오늘의 한국인’ 묶어 펴내 


 김수환·천경자·김정한 등 200여명

필름·원본 없어 3개월간 잡지 사진 스캔 


 미수맞아 출간기념 사진전도 열어
“알츠하이머 투병에 더 서둘렀죠”


pyy003.JPG »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인사들이 박용윤씨 부부와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기자 출신인 원로사진가 박용윤(88)씨가 1979년부터 1994년까지 15년 동안 매달 ‘오늘이 한국인’이라는 테마로 월간지 ‘신동아’에 연재했던 인물사진을 엮은 사진집 <어제와 오늘의 한국인>이 눈빛출판사에서 나왔고 출판기념 사진전이 7일 서울 종로구 류가헌에서 열렸다. 이 사진집은 문화예술인(소설가 김정한, 화가 유영국, 천경자) 학자(이희승, 최태영, 이기백) 성직자(김수환 추기경) 출판인(정진숙, 한만년) 등 당시 한국사회를 이끌어간 사람들의 인물사진을 통해 각 인물의 내면과 시대상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전시는 12일까지 이어진다. 전시장에서 열린 조촐한 출판기념회엔 박용윤 선생, 가족들과 더불어 동아일보의 동료 및 후배 기자들이 자리를 함께해 박씨의 첫 출판이자 첫 전시 개막을 축하했다. 박용윤 선생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60년 마산의 3 15부정선거 사태 때 마산시위대가 마산경찰서장 지프에 불을 지른 현장 사진을 찍어 ‘동아일보 박용윤’이라는  크레딧으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게재되었으며 4·19혁명 때 이승만 하야를 주장하는 전국 대학교수들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장면을 찍기도했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을 들은 계엄사단장이 시민들과 함께 탱크 위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극적인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고 1964년 도쿄올림픽 때는 북한 신금단 선수가 남한의 아버지와 상봉하는 장면을 찍었으며 그 외 숱하게 많은 역사적 순간을 기록했다.


 사진집은 부인 이영순(71)씨의 간절한 바람에서 시작되었다. 전시장에서 이영순씨를 만나 사연을 들었다. 이씨는 평소 남편의 사진작업에 자부심이 있었으나 단 한 권의 책도 내지 않았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고 한다. 이씨는 “한 남자가 태어나서 평생 몸바쳐서 취재하고 뛰어다녔는데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면 너무 허무하다 싶었다. 알츠하이머 증세로 투병중이다 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큰딸을 시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으려 했는데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이런 내 생각을 남편의 신문사 후배인 전민조(73)씨가 전해들었고 신속하게 일이 진행되었다.”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전씨가 말을 이었다. “박 선배는 신문지면을 빛내는 취재는 많이 했지만 남아 있는 사진이 별로 없었다. 역사의 순간을 담은 필름과 사진이 대부분 소실된 것이다. 궁리하다가 눈빛출판사 이규상 사장과 함께 안산에 있는 동아일보 서고를 찾아가 신문사 후배들의 도움도 받아 과월호를 몽땅 뒤져 사진으로 스캔해냈다. 한 3개월 걸렸다.”


pyy001.jpg » 박용윤씨과 부인 이영순씨

pyy002.JPG » 가족대표로 외손녀 최유진양이 할아버지인 박용윤씨게에 꽃다발을 건넸다.



  다시 부인 이씨에게 물었다.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심경이 어땠을까?
 “감격스러웠다. 남편이 현역에 있을 때도 ‘신문사 일이 힘들구나’라고 느꼈지만 사진집을 보니 새삼스러웠다. 남편이 이런 일을 했구나. 책으로 낼 수 있는 일을 했구나. 자랑스럽다. 좀 더 일찍 책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남편이 워낙 그런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이제라도 책이 나왔으니 기쁘다.”


  -훌륭한 기자였는데 가정에선 훌륭한 남편이었나?
 “성실했다. 가족에 대해서도 충실히 하려고 했는데 기자라는 직업이 그게 잘 안되었다. 출장을 밥 먹듯 가고 일요일도 없고 새벽에 가면 퇴근은 밤 12시가 넘었다. 그 시절은 몸으로 뛰어다녔다. 조금 원망도 있었지. 한번은 휴일인데 또 출근해버렸다. 그래 오기가 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 셋을 나 혼자 데리고 관광버스 타고 민속촌에 갔다. 그런데 거기서 누굴 만났느냐 하면……. 남편 회사 후배인 김수남기자를 만났다. 휴일인데 거기서 굿판을 취재하고 있더라. 하하 그런 시절이었다.”


  -책에 실린 인물들을 직접 만나 본적도 있는가?
 “남편은 친화력이 강했던 모양이다. 책에 실린 사람들, 그러니까 당시 신동아에 연재된 사람들과 남편은 취재 후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를 불러서 같이 식사도 하고 그랬다. 정명훈 선생은 콘서트에 우리를 초대하기도 했다. 균학자 김삼순(1909~2001)선생도 기억난다. 여기 실려있는 강신명(1922~2006)선생은 각별한 분이다. 이 분이 산부인과 의사셨는데 우리 집 아이 셋을 다 받아주셨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님도 취재하고 인간적으로 친해졌던 모양이다. 회사도 찾아가고 그러더라. 아! 이 분은 장윤석(86)씨다. 의사셨다. 우리 남편이 당시 촌지를 안 받는 기자로 널리 유명했다. 취재를 하고 나니 장윤석 선생이 ‘봉투는 줘 받자 안 받을 것이니 이건 꼭 받아가시라’라며 한복 옷감을 주더라는 것이다. 남편이 ‘이건 어쩔 수 없이 들고 왔다’라고 했다. 집에 그대로 있다. 한복 아직 안 했다. 하하”


  이날 출판기념식에서 가족을 대표하여 할아버지인 박용윤 선생에게 꽃다발을 건넨 외손녀  최유진(기흥고 1년)양에게 할아버지의 사진집과 전시회를 본 소감을 물었다. 유진양은 “멋있다. 교과서에서 본 소설가의 얼굴 사진이 저렇게 벽에 걸려있는데 그걸 우리 할아버지가 찍었다니 놀랍다. 어느 소설가? 아. 박완서도 있고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도 있다. 이거 친구들에게 자랑할 일인 것 같다”라고 즐거워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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