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자란다

사진마을 2017.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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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이자 안양 동안초등학교 교장인 이보령(61) 선생님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에서 생애 첫 개인전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자란다’를 열고 있다. 7일까지. 개막에 맞춰 같은 이름의 사진집이 눈빛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선생님의 이번 사진전은 그가 최근 6년간 호원초등학교와 동안초등학교의 운동장에서 체육수업과 놀이를 하는 학생들을 찍은 사진으로 구성이 되었다. 이보령 선생님을 지난 3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 선생님은 1978년부터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중간에 8년 6개월간 장학사로 일했고 2010년부터 교장으로 다시 교육현장에 돌아왔다. “교육청에서 일할 때 심신이 지쳐있었는데 학교로 돌아오니 아이들과 운동장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예뻤다. 바로 카메라를 들고 싶었지만 1년간lbr0001.jpg » 전시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이보령 선생님은 교장생활에 적응하느라 자제했다”라고 운을 뗀 이 선생님은 “2012년 호원초등학교에서 전체체육대회를 하던 날 아이들이 날쌘 말처럼 운동장을 누비는 것을 보면서 참다 참다 기어코 카메라를 들고 운동장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교장선생님이 체면도 없이 나댄다는 소리를 들을까 조바심이 났는데 학부형들의 반응이 뜻밖으로 좋았다. 저학년 아이들은 졸졸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고 했다.
  왜 운동장을 주제로 잡게 되었는지 묻자 이 선생님의 운동장 예찬이 시작되었다. 운동장은 놀이터이자 체육교실이다. 여기서 아이들은 축구, 피구, 달리기, 줄넘기를 한다. 과학시간에 볼록렌즈로 태우는 실험도 운동장에서 하고 비가 오는 날엔 흙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동안초등학교가 안양시에서 중심가에 자리 잡았는데 주변이 아파트 천지다. “이렇게 뛰어놀 수 있는 것도 초등학교시절이 마지막인데 그나마 이 학교 운동장이 넓은 편이라서 아이들에게 너무 다행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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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선생님은 아침 출근길마다 운동장을 돌면서 학교 시설 주무관과 함께 큰 돌멩이나 과자 막대 같은 이물질을 줍는다. 아이들이 놀다가 다칠까 봐 염려하는 것이다. 1년에 한 번씩 운동장 흙은 소독을 한다. 2년에 한 번씩은 물이 잘 빠지게 복토를 한다.
  전시장에서 크게 걸린 사진 한 장 앞에서 발을 멈춘 이 선생님은 “이 사진은 피구경기를 하는 장면이다. 운동장 바닥에서 보통 눈높이로 보니 몇 명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가만히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옥상으로 올라갔더니 확 달라졌다”라고 했다.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 역할이 있고 서있는 것 같지만 경기 전체에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는 것이다. 교육현장의 철학이 새삼 떠올랐다. 숲도 보고 나무도 봐야 한다.
  사진 한 장마다 모두 이런 교육철학이 스며들어있었다.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한다는 것은 늘 옳은 말이지만 사진 이외에 한 가지를 더 겸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남다를 수밖에 없음도 진리다. 새벽마다 신문을 배달하면서 길고양이를 찍는 김하연씨, 여수에서 우편배달하며 사진을 찍는 명재권씨, 그리고 드럼연주자인 손대광씨의 작업을 보면 그들이 사진만 잘해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사진세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여실히 증명이 된다. 이 선생님에겐 교육현장이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제 내년이면 정년퇴임을 하게 되는  이 선생님은 폐교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학생 수가 갈수록 줄어들어 문을 닫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 학교를 찾아가 사진을 찍을 것인데 폐교라고 스산하게 표현하진 않을 것이다. 비어있는 운동장이지만 한때 아이들이 쌩쌩 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발랄하게 다시 북적거리는 느낌이 들도록 찍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옆 사진으로 옮긴 이 선생님은 모든 사진에 대해 애정이 가득한 눈빛과 목소리로 사진 속 아이들 이야기를 풀어lbr001.jpg » 사진집 표지놓았다. 저기 혼자서 하늘을 향해 소리치는 아이는 3학년이다. 학년체육대회를 하는 날 모두 스탠드에 앉아서 응원을 하고 있던 차에 이 아이가 갑자기 운동장으로 내려가더니 “3학년 3반 이겨라”라고 맹렬히 응원구호를 외쳤다. “아. 나는 한 번이라도 저렇게 열정적인 적이 있었던가?”라고 돌이켜보게 되었다고 한다. 또 치마 입고 줄넘기 하는 아이는 피구부였기 때문에 늘 바지만 입고 다녔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가서 말을 붙여보니 (여학생이니) 예쁘게 치마를 입고 다니고 싶었던 마음이 늘 있었는데 그날이 피구연습이 없는 날이라 치마를 입을 수 있었다며 본인도 너무 만족해하더라고 했다.
  이 선생님의 고민이자 딜레마는 체육관이다. “미세먼지가 늘어나서 올해엔 세어보니 운동장에 나갈 수 있는 날이 1주일에 이틀밖에 안되더라. 더운 여름이나 비 오는 날을 생각하면 체육관을 짓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운동장을 누비는 아이들을 영영 볼 수 없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다. 자연을 벗 삼고 서로 몸을 부딪치며 즐거움과 자유를 배우는 것이 아이들인데 운동장이 없어지면 이런 놀이와 활동이 사라질까 걱정이 많다”라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류가헌 (02-720-2010)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 류가헌 제공, 책 표지 사진 눈빛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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