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와 탐욕이 일상을 유린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곽윤섭 2015.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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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 사진전 ‘살기 품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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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밀라 자말(42)은 서럽게 울었다.
 생각보다 훨씬 처참한 폐허로 변해버린 집 앞에서 며칠 전 잃은 가족들 생각이 밀려든 듯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동부 샤자이야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남편과 12살 딸을 잃고 대피소에 머물던 그는 지난 26일 12시간의 임시휴전이 발표되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 20일 하루 만에 샤자이야 마을 한 곳에서 7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피의 일요일’, 무시무시한 공격에서 살아남은 난민들은 이날 임시휴전을 맞아 가재도구를 챙기러 황망히 마을로 돌아갔지만, 보이는 모든 것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어디가 길이고, 어느 집이 누구 집인지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임시휴전이라고는 하지만 머리 위로는 무인정찰기가 끊임없이 맴돌며 감시했고, 바로 옆 국경의 이스라엘군은 가깝게 접근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살피며 위협사격을 했다. 자말을 비롯한 주민들이 상심에 잠길 여유도 없었다. 언제 갑자기 폭격이 재개될지 몰라 서둘러 다시 대피소로 향했다. 많은 주민들은 자기 집도 찾을 수 없었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빈손으로 피난소에 돌아왔다.                    김상훈 강원대 교수·사진가

 (2014년 8월 1일치 한겨레 13면) 
 
 위의 기사는 지난해 7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김상훈 사진가가 보낸 르포 <울부짖는 가자>의 마지막 회다. 김상훈 사진가는 다섯 차례에 걸쳐 글과 사진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몇 안되는 한국의 진정한 분쟁지역사진가인 김상훈의 사진전 ‘살기 품은 풍경’이 서울 충무로 ‘갤러리 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12일(일요일)까지. 갤러리 브레송은 충무로에 있고 서울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5번 출구에서 걸어갈 수 있다. 이 전시는 갤러리 브레송이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다큐멘터리사진가의 풍경사진전> 14번째다. 때를 맞춰 김상훈의 사진집 ‘가자전쟁-미로의 벽’( 책 구입 바로 가기 )이 눈빛사진가선 14번째로 출판됐다.  

 

김상훈 사진가의 작가노트를 옮긴다. 


중동의 전쟁터에서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은 한국에서 보던 일상의 평화로운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폭기가 공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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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며 만든 하얀 항적운도 사실 서울 하늘에서 종종 보는 여객기의 항적운과 크게 다르지 않고 가자지구의 노을도 영종도의 노을만큼이나 아름다우며, 레바논의 옥색 바다는 삼척의 바다 못지않게 맑고 곱다.

 하지만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는 미사일 소리와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면 곧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바다에 떠 있는 것은 어선이 아니라 함포를 쏘는 군함이고, 마치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밤하늘을 수놓으며 떨어지는 것은 백린탄이다. 포탄이 떨어진 구덩이엔 불에 탄 차가 처박혀 있고, 재개발현장을 닮은 건물 잔해 사이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다시 고개를 들어 먼 풍경을 바라보면 이제 모든 풍경이 달리 보인다. 붉은 흙 아래에는 생명의 씨앗 대신 죽음의 지뢰가 묻혀있고 산속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따라가면 따뜻한 밥 대신 차가운 시체가 있음을 깨닫는다.
 전쟁터에서는 인간의 증오와 탐욕이 버무려진 살기가 아름다운 풍경을 유린하고 협조마저 강요한다. 전쟁터 풍경은 그렇게 강압적으로 만들어진다.
 인간의 살기를 강제로 품게 된, 무력해서 측은한 풍경.           

 김상훈                        

   

kish01.jpg » ⓒ 김상훈 [KISH] ‘살기 품은 풍경’

kish02.jpg » ⓒ 김상훈 [KISH] ‘살기 품은 풍경’

kish03.jpg » ⓒ 김상훈 [KISH] ‘살기 품은 풍경’

kish04.jpg » ⓒ 김상훈 [KISH] ‘살기 품은 풍경’

kish05.jpg » ⓒ 김상훈 [KISH] ‘살기 품은 풍경’

kish06.jpg » ⓒ 김상훈 [KISH] ‘살기 품은 풍경’

kish07.jpg » ⓒ 김상훈 [KISH] ‘살기 품은 풍경’       

 

 

 사진가 김상훈[KISH]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미국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시각디자인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김상훈 [KISH]은 1993년부터 각종 국내외 프리랜스 기자 일을 시작하면서 줄곧 디자인과 사진작업을 병행해왔다. 2003년부터 프랑스에 본사를 둔 뉴스사진 에이전시인 시파프레스 뉴욕지부 프리랜스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면서 2006년부터는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Science지 표지를 비롯하여 Time, Newsweek, U.S. News and World Report, Der Spiegel, Stern, Le Figaro, La Presse 등에 사진을 실었다. 현재, 강원대학교 멀티디자인학과에서 사진과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www.kishkim.com


   

  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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