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면 행복해지는 북극곰 바이러스 아세요?

곽윤섭 2013. 08. 23
조회수 36560 추천수 1

 
18년 동안 북극곰 사는 동네에서 같이 살며 찍은 사진
북극 여우, 썰매개도 함께 호소한다. 환경을 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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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르트 로징


 
  
 멋진 사진집 한 권을 소개한다. 이 책의 사진과 글을 담당한 저자는 글도 참 잘 쓴다. “좋은 글이란 눈에 보이는 것(여기서 ‘눈에 보인다’는 감각의 한 부분인 시각을 가리키는 것으로 다른 감각도 빼놓을 수 없다. 냄새를 맡거나 바람을 느끼거나 손과 발과 온몸으로 부딪히는 촉각, 그리고 동물과 곤충들의 소리를 듣는것도 모두 포함한다)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쓰는 글”이란 교훈은 일찍이 대학시절 글쓰기공부를 할 때 읽었던 금과옥조의 하나다. 저자 로징이 그 금과옥조를 알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그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보이는 것을 친구에게 말하듯 쓴다”는 것 정도는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꽤 많긴 하지만.
어쨌든 로징의 글은 구체적인, 전혀 추상적이지 않은 명사를 나열하여 눈에 쏙 들어오게 하는 기술을 알고 있는 글이며 중간 중간 자신의 감상을 과장하지 않고 솔직히 표현한다는 기술도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낮추려는 자세도 쭉 유지하고 있다.
 위에서 든 세 가지가 모두 자연의 이치에서 왔음을 여러분도 알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이름을 부르고, 자연 앞에선 솔직해질 수밖에 없고 몸을 낮출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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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으로 로징의 사진은 장관이다. 뒤표지 말고 책의 맨 끝페이지인 ‘판권페이지’엔 영화의 엔딩크레딧같은 것이 실리기 마련이다. 이 책도 그렇다. 제목 나오고 초판 찍은 날짜 나오고 저자, 옮긴이, 펴낸이, 편집, 디자인 담당자의 이름과 함께 출판사의 전화, 주소, 팩스, 이메일, 페이스북 주소, ISBN, 가격 같은 것이 한글과 영어로 쭉 자막처럼 이어진다. 무단복제를 금한다는 이야기도 당연히 있다. 그 밑에, 그러니까 판권페이지의 맨 끝에 작가의 말이 또 실려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은 어떠한 디지털 수정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서 보는 장면은 작가가 찍은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노베르트 로징은 사진도 솔직하게 찍었다. 다음은 서문에 실린 내용이다.
 “극북지역을 처음 방문한 이후 저는 취미생활로 즐기던 초보 사진가에서 전문 사진가로 진화했습니다. 사진작가의 삶이란 현장에서 보내는 몇 시간 동안 완벽한 절망감과 완벽한 환희의 순간을 모두 경험하는 것입니다. (중략) 야생에서 사진을 찍는 데는 250분의 1초 정도가 걸립니다. 하지만 적절한 빛과 제대로 장비를 갖춘 상태에서 정확한 장소와 정확한 시간을 만나려면 몇 주가 아니라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사진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와 야생동물 전문가, 그리고 인내심 덕분이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이야길 하자. 이 책은 북극에 사는 북극곰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사진집이며 환경교과서다. 북극곰이 사는 환경, 날씨, 이웃하고 사는 다른 동물들의 사진도 심심찮게 들어있다. 물론 이웃 동물에게 북극곰은 포식자인 경우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북극곰과 같이 장난을 치는 상대를 다음 중에서 골라볼까요? 1 새끼곰, 2 썰매개, 3 북극여우, 4 폐타이어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사람과 달리 동물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자꾸 잊어버린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다. 어떤 콜라회사의 광고에서 나오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온갖 긍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북극곰은 사납다는 이야길. 근 20년 가까이 극북지역에서 살다시피 하며 사진을 찍은 사진가 노베르트 로징은 누구보다 더 북극곰을 잘 안다. 배가 고프거나 화가 났거나 위협을 느꼈을 때만 사납다는 것을.
 책 148쪽엔 1990년대 초 어느날 북극곰 한 마리가 썰매 개 무리에게 접근한 이야기와 사진이 실려있다. 모든 개들이 짖었는데 유독 한 마리가 가만히 있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나흘동안 매일 20분씩 만나서 뒹굴고 놀았다고. 짐작이 된다. 아마도 짖지 않던 그 개는 겁을 먹었을 것이고 곰이 쓱 몸을 문지르자 아마 경기가 났을 법하다. 그러다가 끝내 물지 않으니 이제 안심하고 같이 뒹굴고 장난을 친게 아닐까……. 킥킥킥  이건 혼자 생각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썰매개는 (무리지어) 북극곰과 맞짱을 뜰 정도로 용감하다고 하니 쫄았을리는 없다. 썰매개도 곰이 좋았던 모양이다. 북극곰의 교우관계는 생각보다 더 넓다. 172쪽엔 북극여우와 북극곰이 나란히 서있는 사진과 글이 있다. 북극여우는 북극곰이 남긴 먹이에 의존하기도 하는 공생관계라고 한다. 그러므로 여우는 곰을 따라 해빙 위로도 이동하고 필요하면 헤엄도 친다고. 가끔 북극곰이 여우를 잡아먹기도 한다는데 문제는 잡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여우가 곰을 물어뜯는 장면도 가능한 모양이다. 곤혹스러워하는 곰의 표정이 재미있다. 요즘 메이저리그에서 날아오는 사진들 중에서 류현진의 장난기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엘에이 다저스의 내야수 유리베처럼 보인다. 물론 여우의 덩치는 작지만 표정이 딱 그렇지 않은가.
 책에는 북극곰과 환경을 공유하는 다른 동식물의 사진도 많이 들어있다. 북극여우, 바다표범, 흰돌고래, 사향소, 토끼. 또 오로라를 비롯해 불타는 일몰, 하얀마녀의 궁전 같은 얼음나라의 풍경사진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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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르트 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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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르트 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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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르트 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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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베르트 로징


 
 주인공은 북극곰이다. 눈밭에서 잠을 자다 일어난 곰의 스트레칭은 정말 귀엽다. 어미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새끼의 모습은 또 어떤가. 이런 사진을 찍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진은 유난히 오래 기다렸던 모양이다. 사진설명에 “추위 속에서 한참을 기다린 대가로 건진”사진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게 귀여운 사진들이 잔뜩 들어있는 사랑스러운 사진집이다.
 
 이런 사진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환경 위기의 절박함을 보여주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책의 곳곳에 이 책을 보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당부의 말, 협조요청의 말, 그리고 덕담이 실려있다. 특별히 한국판을 위해 준비된 ‘한국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노베르트 로징은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극북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행복한 체험을 하게 된다면 왜 이 지역을 보존해야 하는지 더욱더 절실히 느끼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이 이 책을 보면서 행복해지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한다. 보장한다.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또한 서문(작가의 말)에서 ‘북극곰 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북극곰 바이러스는 감기와 비슷합니다. 단순한 존경심을 포함해서 다양한 증상을 보이지요. 그중에 특히 지속되는 증상은 모든 북극지역에 대한 깊은 고마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이제 알았다. 22일 오후에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었다. “서평을 쓰려고 책 한권을 받았다. 내용을 보고 있자니 글을 쓰기도 전에 눈물이 막 날라고 그런다. 좀처럼 ‘잘 쓰려고’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정말 잘 써야겠다….”라고. 그땐 사진만 훑어보던 참이라 서문같은 것은 채 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랬구나. 책을 만지기만 해도 ‘북극곰 바이러스’에 감염되는구나.
 
 이 책엔 추천사도 있다. 이안 스털링(왕립화학자협회)박사는 “하지만 지금, 세상에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북극곰과 끝이 없어 보이는 북극의 서식지는 몇 세기 전만 해도 상상활 수 없었을 정도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중략)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환경 위기의 절박함을 너무 늦기 전에 깨닫는 데 노베르트의 감동스러운 사진들이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라고 호소한다.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가 그러지 않았는가. “지금 여러분이 움직이면 가능하다고” 늦지 않았다.
 
 사진과 사진 사이에 가끔 나오는 본문 속에서 저자는 또한번 호소한다.
 “또한 자연보호 단체와 북극곰 국제기구는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줄이는 일에 우리 모두가 동참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가지 ‘R‘을 제안합니다. 감소(reduce), 재활용(reuse), 그리고 재생(recycle)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진과 모든 글의 호소와 당부는 반드시 북극곰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란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87쪽에 나오는, 마치 소설 ‘어린왕자’에 나올법하게 생긴 북극여우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그 밖의 이야기
 출판사에 전화해서 책 표지이미지에 더해서 본문에 나오는 사진의 이미지도 몇 장 요청했다. 처음엔 한 스무장 달라고 하려다가 그냥 몇 장만 달라고 했다. 만에 하나 본문의 사진을 너무 많이 보여주면 독자들이 책을 사지 않을까 염려해서 그랬다. rn06.png
 출판사쪽에 물었다. 혹시 이 책의 수익금 일부를 북극곰 보존을 위한 기금으로 쓴다든가 하는 이야긴 없었나요? 없더라고 했다. 하기야 20년 가까이 오지에서 이런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자체가 자연에 대한 기부이자 기여다. 게다가 이런 저자 정도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것이다. 이 책을 낸 출판사의 이름이 ‘북극곰’이다. 그렇다면 책을 내기까지의 에피소드가 없을리 없다. 출판사 ‘북극곰’은 2009년에 생겼고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32종 정도 냈는데 주로 “엉뚱하고 발랄한, 어른이 봐도 재미있을” 그림책을 내는 곳이라고 한다. 출판사 이름이 북극곰이라서 이미지검색을 했단다. 그랬더니 이 표지의 사진을 발견했다. “북극곰이 마치 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자세”라고 판단했단다. 이 사진은 어떤 책의 표지였다. 독일의 야생사진 전문가 노버트 로싱(독일어 표기)이 20년간 북극 지역을 방문하여 찍은 북극곰과 북극곰이 살고 있는 환경의 사계절을 다룬 사진집이었다. 그래서 한국판을 내게 되었다. 표지 사진을 찍게 된 이야기는 책의 본문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출판사 ‘북극곰’이 저자에게 물었다. 그 사연이 ‘북극곰’의 블로그에 실려있다. 
 “이 사진을 찍을 당시는 11월 흐리고 추운 날이었는데 호수는 북극곰의 몸무게를 간신히 지탱할 정도로 얼어 있었답니다. 곰은 멀리서 점점 가까이 오더니 한 30미터 거리 호수 위 얼음에 이렇게 엎드렸다고 합니다. 노버트는 차에서 내려 삼각대를 설치하고 라이카 R 카메라에 800밀리 렌즈를 끼웠지요. 그리곤 찰칵, 찰칵, 찰칵. 딱 세 장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곰은 일어나서 다시 길을 갔습니다. 노버트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늘 그렇듯이 사진에 아무런 디지털 작업을 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잡지사들은 이 사진에 관심rn08.png이 없었다네요. 나중에 이 사진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렸고 갑자기 여기 저기서 사진을 원했다고 합니다. 생생하지도 역동적이지도 않은 이  흐릿한 회색 사진 한 장은 결국 노버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1998년 1월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에 처음 실렸고 같은 해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이 사진으로 포스터 제작을 했으며 한정판 판매로 만 번이나 재제작을 했을 정도입니다. 그 이후에도 전 세계적으로 여러번 사진이 실렸고 2004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잡지의 Collectors Edition 100 Best of Wildlife 이슈에서 커버로 사용되는 영예를 안았답니다. 노버트의 당시 상황을 듣고 나니 저 북극곰은 수심에 잠겼던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제 막 얼기 시작하는 얼음과 다가오는 겨울을 마중하러 나왔던 것 같습니다. 시원한 얼음찜질이라도 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 더운 여름에 출판시장은 한겨울 마냥 꽁꽁 얼어있다. 더위가 조금 누그러지면 책 읽기 좋은 계절이 오니 출판시장도 좀 풀렸으면 한다. 이 책은 많이 팔려야한다. 이런 책을 한 권 자녀들에게 사준 부모들은 안쓰는 전기스위치 내려라, 수도꼭지 잠그고 이빨 닦아라…. 등의 잔소리를 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책이 없는 도서관은 함량미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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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썰매개와 장난치는 북극곰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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