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페인트 사건’, 온라인 바다의 편집자

곽윤섭 201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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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뒤집어보기]
  신문에는 안 실리고 인터넷에 올라와 누리꾼들이 유포
 “봉사로 덧칠한 선거용” 몰매, 언론 의제설정에 ‘한 방’

 

우리는 지금 신문을 안 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전히 신문을 찍고 있지만 영향력, 부수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신문을, 특히 한겨레신문을 구독해달라는 이야길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구독신청을 하시겠다면 kwak1027@hani.co.kr 로 연락 바람^^) 신문을 안 본다고 해서 뉴스를 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뉴스를 소화한다. 학생들에게 얼마나 사진(특히 뉴스사진)을 자주 보는지 물어봤다. 기말고사를 대신하는 조별 발표시간을 마치고 나서 설문지를 돌렸다. 학점 입력을 할 무렵이면 설문지도 정리가 될 것이고 결과를 소개할 생각이다.

 

‘버스 위의 기자’로 날마다 달라야 하는 사진 강박

 

지난번 <스티브 잡스의 1면 사진>에 이어 또 한 번 학생들이 보여준 사례를 소개한다. 관심이 있다면 대학의 도서관에 신문이 날마다 들어오니 굳이 돈을 안내고도 신문을 볼 순 있다. 어쨌든 신문을 안 보는 것 같은데 인터넷의 포털을 통해서 사진을 보기는 하는 모양이다. 물론 수업시간에 뉴스사진 이야길 자주 했고 중간고사에서도 뉴스사진의 내용을 맞추는 문제를 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사진을 보긴 했을 것이다.

 

<보도사진 이론과 실습>과목의 핵심은 뉴스사진을 찍는 것과 보는 것이다. 찍는 것은 워낙 쉬우니(학생들이 이 글을 보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정말 쉬운데….) 훈련을 거듭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보는 것. 그냥 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사진을 이해하고 행간을 읽어야 한다. 사진은 대단한 상징이다. 롤랑 바르트가 “사진은 코드 없는 기호”라고 했는데 글쎄 완전히 동의하긴 어렵다. 사진에도 코드가 있고 그 코드는 상징으로 연결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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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뉴스사진이 있으면 발표해보라고 했더니 한 학생이 “나경원 페인트”라고 검색어를 넣고 사진을 찾아냈다. 서울시장 선거를 며칠 앞둔 지난 10월 21일의 사진이다. 뉴시스 통신사에서 제공한 그 사진의 캡션은 이렇게 되어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동 신목노인요양센터를 방문해 페인트칠 봉사를 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그 시점으로부터 대략 한 달 전에 나경원씨는 ‘장애인 목욕사진’으로 된통 혼줄이 난 적이 있다. 그 사건은 워낙 많이 알려졌으니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어떤 선거든지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들은 이런저런 사진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1997년 대선 정국 때 국회출입기자였던 필자는 야당인 국민회의를 전담하고 있었다. 선거운동이 마감되는 투표일 하루 전 12월 17일 자정까지 필자는 100 일 동안 꼬박 김대중 후보를 따라다녔다. 지역에서 유세를 할 때는 전세버스를 타고 다녔으니 이름하여 “버스 위의 기자”였던 셈이다. 날마다 너덧 건의 사진취재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매일 달라야한다는 것이 가장 골치를 썩인 대목이다. 그러다 보니 후보의 동선에 대해 아주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 시장, 골목, 대도시의 광장, 상인과의 악수, 포옹, 학교운동장 등 배경과 움직임이 날마다 달라야 사진이 달라지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그 사진만 골라 퍼나르고 ‘댓글놀이‘


 
학생이 제시한 나경원의 ‘페인트칠 봉사활동’ 사진은 인터넷에서 또 몰매를 맞고 있었다. 개인들이 블로그에 그 사진을 퍼 나르고 자신의 의견을 달면 방문자가 다시 댓글을 다는 식으로 여론이 확산하는 방식인데 “페인트칠의 달인”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많았다. 즉, 어떻게 했으면 얼굴과 옷에 페인트가 한 방울도 묻지 않고 페인트칠을 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사진에서 보듯 나경원후보는 기자들의 카메라를 깜짝 놀란 듯이 바라보고 있다. 깨끗한 것도 의심스럽지만 왜 카메라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느냐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유사한 현장 경험이 제법 있는 필자는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됐다. 아마도 기자들이 “여기 한번 봐주세요”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뉴시스가 당시 웹에 올린 다른 사진을 보면 카메라를 외면한 채 열심히 페인트칠을 하는 장면도 분명히 있다. 밝은 표정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다. 정말 봉사활동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다른 유세현장에서 다른 후보들의 표정을 보면 묵묵히 일하는 타입도 있고 싱글벙글 기분 좋게 일하는 타입도 있는데 이건 그 후보의 성격일 터이니 문제 삼을 순 없다. 다만 대체로 볼 때 남성후보의 경우, 웃으면서 일하면 “놀고 있다. 건성건성 일한다”라는 느낌을 줄 가능성이 (여성후보에 비해) 조금 더 높다.

 

여성후보들이라고 다 같진 않다. 특히 이번 서울시장선거는 ‘이미지정치, 이미지선거’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후보의 얼굴은 가장 강력한 이미지요 상징이다. 평소에 늘 웃는 이미지였던 나경원후보로선 웃으며 일하는 것이 별문제가 되질 않을 법한데 비난을 받고 있었다. ‘장애인 목욕사건’의 여파가 컸을 것이다. 1997년 대한항공 괌 사고 현장을 방문한 국회의원들이 항공기 잔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이 장면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지면에 보도되는 바람에 많은 독자와 국민들의 비난을 샀던 사건을 비롯해 ‘인증샷’을 찍었다가 혼이 난 사례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진용 연출’이라고 밝히면 되지만 그래도 독자는 거부감


핵심은 이렇다. 봉사활동을 하러 간 것인지 사진 찍히려 간 것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페인트칠을 얼마나 오래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사진만 찍고 자리를 떴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확인을 하지 않으면 기자도 아니다. 그러므로 당시 현장에서 취재활동을 했던 통신사의 사진기자에게 물어봤다.
“원래 방송사의 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만들어진 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방송사 카메라만 들어가고 사진기자들은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후보 쪽에서 주장했지만 현장에서 사진기자들의 항의를 받았고 현장 pool로 한 명이 들어갔던 것 같다. 시간? 당연히 5분도 안 걸렸다. 사진 찍고 방송국 카메라를 위해 몇 번 칠을 하고 바로 그만 뒀다”

무슨 소리냐면 즉석에서 만들어진 포토세션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포토세션이란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들어진 행사를 뜻한다. 미국의 백악관에서도 대통령행사 때 포토세션은 종종 만들어진다. 뉴스에 보도하기 위한 대통령의 움직임이 필요하니 배경과 포즈까지 요구해서 공식적으로 사진촬영을 위한 행사를 만드는 것이다. 언론과 당사자들 간의 공생을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포토세션이라고 밝히는 것이 기본적인 정석이다.
 

자, 그럼 나경원후보의 페인트 사진은 어떤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언론 쪽에서 먼저 요구했으므로 언론의 잘못인가? 후보가 이용당한 것인가? 양쪽의 합의였고 관행이니 언론의 잘못이라고 볼 수도 없고 후보가 이용당했다고도 볼 수 없다. 다만 포토세션이란 것이 밝혀져야 하고 그런 관행에 대한 독자, 시청자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 행사는 사진과 동영상을 위해 잠깐 만들어졌다고 해두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다. 봉사활동하는 척하는 포토세션 같은 것은 기자가 아니라 독자 입장에서 거부감이 든다. 오바마가 다른 나라의 정상을 만나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정도가 포토세션이다. 정말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런 사진 찍기용 봉사활동은 후보 쪽의 불찰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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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나경원 만남’, 조선 동아는 싸늘한 외면-한겨레는 어색하지만 밝은 눈인사 장면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문제의 ‘나경원 페인트’ 사진은 어떤 신문에도 실리지 않았다. 사진이 어색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날 일정에 박원순후보와 나경원후보가 만나는 동선이 있었으니 당연히 그 사진의 뉴스가치가 더 높았다. 위에 나온 여섯 매체의 사진을 보면 재미있다. 조선과 동아의 사진에서 두 후보는 싸늘하게 외면하고 있다. 원수지간처럼 보인다.

 

이날 직능단체연합회 간담회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저렇게 굳어있었을까? 한겨레의 사진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어색하긴 하지만 둘은 밝은 표정으로 눈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과 서울의 경우엔 아예 두 후보가 사이좋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도대체 뭐가 진실이란 말인가?

 

사진이란 것, 참 묘한 물건이다. 사진이란 것 참으로 대단한 상징이다.
 
마지막 관전포인트는 사진을 보는 경로에 대한 것이다. ‘나경원 페인트’는 어떤 신문에도 실리지 않았다. 다만 웹상에서 포털 혹은 통신사의 사이트에서 유통되었다. 블로그에서 퍼 날랐고 여론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뉴시스와 연합은 여러 표정의 사진을 모두 공급했음에도 누리꾼들은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는 사진만 지목했다.

 

신문사에서 사진을 결정할 때 통상 사안별로 수십~수백 장의 사진에서 하나를 골라낸다. 여러 기준이 있지만 그 이야긴 다음에 차근차근 풀어나가겠다. 스티브 잡스의 1면도 하나의 사례가 된다. 문제의 핵심은 신문사의 사진선정은 편집의 과정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신문사의 의제설정을 수용해 온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최신 커뮤니케이션 효과이론에선 뉴미디어시대를 맞아 다시 소효과론의 시대로 가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미디어의 선택에서 수용자가 가지는 이니셔티브와 선택성이 점점 증가한다는 것이다. 수용자와 미디어의 관계에서 출발점은 수용자의 선택이다. 더 이상 미디어는 광범위한 여론 형성과 효과를 창출해내지 못한다. 송신자-수용자 패러다임은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경원 페인트’ 사진의 경우 여러 사진 중에서 한 장을 골라낸 것은 누리꾼들이었다. 명백한 편집행위다. 그리고 의미부여로 하고 해석을 하고 전파시킨 것도 누리꾼들이었다. 명백한 언론활동이다.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의제설정을 누가 하는지가 결정된다. 의제설정이 아니라 역의제설정모델이 적합한 사례였다. 신문을 포함해 기존 언론의 역할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래저래 신문사에겐 참 어려운 시절이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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