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일터, 눈으로 먼저 찍고 유서 쓰듯 눌렀다

곽윤섭 2013. 07. 29
조회수 13126 추천수 1

 

내일이 없는 희귀병 통증, 차라리 잊고자 마지막처럼 찍고 또 찍고

그냥 스쳐 지나는 풍경은 무의미...가장 잘 아는 곳이 가장 큰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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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연이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3년쯤 되었다.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그동안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1998년 서울도시철도공사에 기관사로 입사한 그는 8년 뒤 회사 전직프로그램에 따라 정비쪽으로 옮겼다.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과 1인 승무제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몸을 좀더 쓰는 일을 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몸이 상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고통이 찾아왔다.  그는 원래 요가와 명상에 심취해있었다.  
 2005년부터 해마다 한 달씩 요가 수행자들의 성지라는 티베트 수미산에 오를 정도로 요가를 좋아했고 지도자 교육까지 이수했다. 명상을 통해 바깥세상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길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신통증이 심해졌다. 너무 아파 명상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같은 기간 정태연은 말기암 판정을 받은 모친의 병간호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5년의 투병 끝에 2010년 어머니가 세상을 떴다. 회사와 동료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르면서 “늦게 철이 든 것 같다”라고 했다. 이 무렵 회사를 출퇴근하면서 일터를 찍어봤는데 10년도 훨씬 넘게 다닌 곳이라 그런지 풍경의 깊이가 다른 것이 보였다. 카메라 장비를 구입하기 시작했고 혼자서 카메라와 사진을 공부했다. “공돌이라 그런지” 카메라는 쉬웠다. 라이카 엠 시리즈, 핫셀 등 남들이 만져보고 싶다고 하는 장비는 모두 질렀다. 한 1억 넘게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통증이 너무 심하다 보니 그땐 돈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가도 병명조차 나오지 않은 나날속에서 “내일이 없을 것” 같은 통증이 왔고 일하다 쓰러져 실려가기도 여러차례. 매일 다이어리에 유언을 쓰고 살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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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없이 찍어보자”
 정태연은 구상을 오래하는 편이다. 두 번의 전시에 등장했던 사진은 대부분 그의 일터 모란차량정비기지에서 찍었다. 24시간의 변화를 지켜본 곳이니 어떤 계절에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햇볕이 나는지 그가 가장 잘 아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사진을 찍을 순 없다. 일하면서 계속 변화를 관찰했고 “어디서 이렇게 저렇게 찍으면 되겠다”라고 구상만 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되거나 야근 다음날 휴일이 오면 삼각대를 세워놓고 기다렸다. 렌즈의 화각을 잡아두고 리모컨을 든채 풍경을 감상하면서 변화를 기다렸다. 전동차의 등장, 전동차의 위치를 배경으로 하여 해와 달, 구름, 바람, 풀, 별이 지나가는 변화를 기다리면서 토닥토닥 셔터를 눌렀다. 가장 잘 아는 곳에서 감동이 나온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정태연은 일터외의 그 어디에서도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에선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찍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다니는 내 조카가 찍은 사진이나 내가 찍은 사진에 차이가 없는데 그걸 사진이라고 할 수가 없더라.”
 2012년에 용인세브란스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하고 섬유근통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의사가 얼마나 앓았느냐고 묻기에 6년 넘었다고 했더니 믿지 않는 눈치였다. 1~2년 앓고나면 너무 힘들어 자살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통증이 있는 병이란 것이다. 통증만 따진다면 현대의학에서도 높은 순위에 들어간다는 병이었다. 병명이 밝혀지고 나니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의 배려로 휴직에 들어갔고 지금은 요가와 명상, 침과 뜸, 그리고 휴식으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다. 복직하면 어떤 사진작업을 할 것인지 물었다.
“일단 복직하면 발령받는 부서에서 일을 열심히 할 거다. (사진찍는 현장보다) 내 일터와 동료들을 먼저 볼 것이다. 일에 몰두하면서 내 속에서 찍고 싶은 것이 끓어넘칠때까지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사진이 먼저일 수가 없다. 그동안의 작업처럼 일터와 내가 한 몸이 되고 나야 다시 카메라를 들 것이다. 그때까진 카메라를 아예 들지 않고 지금처럼 다만 일터의 풍경을 마음속에서 그릴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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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로 돌아오던 날 

 

 

일터로 돌아왔다

짙푸른 티벳의 하늘과 황량한 고원

가슴이 터질 듯 한 고산증과 생사를 넘나들던 수미산

이제는 더이상 이곳엔 없다

   

 

익숙하기는 하나 행복하지 않았던

편리하기는 하나 평안을 찾을 수 없었던

머물기는 하나 항상 떠나고 싶었던

일터로 다시 돌아왔다

 

   

또 하루하루 지나면서

이곳에 다시 익숙해져갈 것이고

짧았던 순례의 기억들은

차츰 잊혀질 것이다 

 

 

잠시 꿈을 꾼 것같다

꿈에 스승님이 나왔고

도반들이 나왔고

눈 덮힌 하얀 산이 있었다 

 

 

이제는 알았다

파랑새가 살기에는 수미산이 너무 높다는 것을

오늘 나는 그 새의 날개짓을 보았다

나의 일터에서

 

 

정태연/2006년 티벳 수미산 순례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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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사진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에게 사진이란 행복. 또한 돌아가신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며 직장 동료들을 향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어렸을 때 집이 어려웠다. 엄마는 파출부로 일했고 집에 오면 엄마 몸에서 식용유, 반찬 냄새가 났다. 내가 일하는 일터에 가면 그리스 냄새가 난다. 그게 바로 엄마 냄새다. 동료의 냄새, 현장의 냄새다. 힘들게 삶을 영위해가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일터에 들어서면 엄마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마치 어린시절 엄마의 품과 같은 곳이다. 내 일터와 동료에 대한 고마움을 엄마가 돌아가시고 사진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정태연은 2014년 5월 복직할 계획이다. 그는 건강해진 노동자로, 사진가로 다시 현장에서 일하고 현장을 사랑하면서 일터를 기록하는 날이 올 것을 희망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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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일터, 눈으로 먼저 찍고 유서 쓰듯 눌렀다

  • 곽윤섭
  • |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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