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렇게 쉽게 보여?

곽윤섭 2013. 09. 25
조회수 15076 추천수 1

어렵다고 좋은가, 쉽다고 다 쉬운가, 글은 꼭 필요한가

이상엽 사진전 <변경>을 계기로 모두에게 묻는다.
 

 

 
 이상엽의 사진전 <변경(邊境)>이 10월 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류가헌에서 열린다. 지난번 ‘최민식 사진상에 바란다’란 글을 쓴 이후부터 지금껏 다큐멘터리사진이 뭔지 나도 잘 모르는 상태로 변했다. 사진이 뭔지, 다큐사진이 뭔지….
 
 어렵다. 이상엽의 이번 전시사진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나 같이 보내온 글이 어렵다. 아. 이러다가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도 어려워지면 곤란하다. 한 마디 한 마디 쉽게 풀어보자.
 
 1. 이번 전시 사진이 어렵지 않다.
 어려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뜻인가? 글쎄 난감하다. 너무 난해한 사진은, 사기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가길 원한다. 그런데 너무 쉬우면 “쉽게 찍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싫다. 무슨 사진이든 쉽게 찍은 것처럼 보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순서상 가장 앞선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통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생산되는 작품이란 숙명 때문에 늘 가볍게 보이는 것을 피해야한다. 그렇지 않아도 뚝딱 찍어낸 것 같은데 결과물마저 그렇다면 곤란하다.
 
 어떤 사진은 가볍고 어떤 사진은 무거운가? 가벼운 사진에 대해 짚어나가면 상처를 입을 사람들이 많을 터이니 무거운 사진(적절하게 어려운 사진)만 말해본다. 찍기 어려운 상황에서 찍은 사진은, 비록 그 결과물이 쉬워보여도 무거운 사진이다.  로버트 카파가 찍었던 전쟁터의 사진-쓰러지는 병사, 낙하산 타고 뛰어내리며 찍은 사진 등은 어려운 상황이다. 한겨레신문 초대 사진부장이었던 임희순의 사진-광복절 경축식장의 총격사건은 어려운 상황이다. 총알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순간 그 자리에 서있는 것만 해도 어렵다. 경찰과 시위대의 공방전, 투석전 현장도 어렵다. 그 외 예상 가능한 현장이 또 있을 것이다.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그 사진이 찍힌 곳이 어딘지를 살펴보면서 이해하려고 들면 보인다. “이곳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지….” 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존경해야한다.
 
 또 하나의 어려운 상황은 찍는 자리나 방법의 문제다. 절벽에서 강하하는 독수리를 크게 찍는 것은 찍는 사람도 높은 곳에 올라갔다는 것을 뜻할 수 있으니 고단한 일이다. 높은 곳의 벼랑 틈바구니에서 외줄에 의지한 채 밤을 보내는 등반가를 찍은 사진도 어려운 일이다. 사진가도 높은 곳에 올라갔다는 뜻이다.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고래를 찍은 수중사진도 역시 어렵기 짝이 없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자동차, 운동선수를 찍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다. 초점을 놓치기 쉬운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존경할 만하다. 그 외 또 상상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은 또 있다. 독수리 앞의 소녀를 찍었던 케빈 카터, 대규모 기아사태가 벌어지는 아프리카 샤헬지방의 난민을 찍었던 세바스티앙 살가두가 여기에 해당한다. 인간적으로 가슴 아픈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자칫 카메라를 들 용기가 없을 수도 있으나 그들은 기록하여 보도하는 것이 더 숭고한 가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셔터를 눌렀다. 이런 사진들은 어려운 것이다.
 
 그럼 너무 난해한 사진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생각이 깊어서, 너무 깊어서 보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진들을 말한다. 빛이 부족하여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상황도 포함되지만 빛도 좋고 형체도 뚜렷하여 지나치게 명백한 대상을 찍는 사진도 난해하다. 나무 한그루, 잎 하나, 돌멩이 하나, 비누 하나, 동전 하나, 포크 하나를 찍은 사진은 누가 봐도 나무, 잎, 돌멩이, 비누, 동전, 포크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명백한 대상을 찍어놓고 글로 잔뜩 배경설명을 하는 사진은 난해한 사진이다. 글에 의존하여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그것도 개인적인 고찰을 통해 풀어나간다면 곤란하다. 여러차례 밝혔듯이 글과 사진의 결합은 좋은 일이고 여전히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야겠지만 최소한 글과 사진이 각각 독립적으로 비중 또는 의미를 가지면서 결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례를 들자.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The American)’ 작품 사진 중에서 단 하나만 떼놓고 거기에 세 페이지짜리 케루악의 글을 붙여서 발표한다면 지나친 것이다. 케루악의 글은 ‘미국인들’ 전체와 맞물려야 제격이다.  여러 장의 사진을 놓고 긴 페이지의 글이 붙거나, 혹 사진 한 장과 글 몇 줄의 형태가 매번 반복되면서 책을 만들거나 전시한다면 격이 맞다.

 

lee-01.jpg

1번

 

lee-02.jpg

2번

 

lee-03.jpg

3번

 

 첫 문장에서 이상엽의 이번 사진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럼 이상엽의 사진은 어디에 해당한다는 말인가. 1번은 바다에서 찍은 어선처럼 보인다. 바다에 가면 찍을 수 있겠다. 2번은 어떤 시설을 막고 있는 경찰관 혹은 용역(아니면 둘 다)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의 조명이 과도한 가운데 노플래시로 처리해서 얼굴들을 못알아보게 한 것이 살짝 어려울 뿐이다. 3번은 사창가로 보인다. 눈높이로 지나가면서 찍었다면 어려운데 그렇지 않고 이 사진처럼 높은 건물에서 찍는 것은 들키지 않으니 쉽다. 나머지는 일일이 토를 달지 않겠는데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총알이 난무하거나 몇 천미터 등산을 해야하거나 스쿠버 장비를 달고 바다에 뛰어들거나 한 사진은 아니다. 또한 앞을 가리는 눈물을 참으면서 현장에 개입해야 하나 아니면 찍어서 보도해야하나 고민하면서 찍는 사진들도 아니다.

 

lee-04.jpg

 

lee-05.jpg

 

lee-06.jpg  
 
 눈에는 잘 보여서 쉽고, 그 장소에 가기만 하면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무 쉬운 사진에 해당할 것 같지 않은가? 그렇진 않다. 전시의 제목, 변경이 말해주듯 이 사진들은 모두 대한민국의 어떤 변경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다. 옛날 코미디드라마의 한 코너이름이었던 ‘변방의 북소리’가 기억난다. 낙도, 오지, 아무 거들떠 보는 이 없는 곳, 귀양살이, 좌천…. 그런 단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변경이다. 4대강, 재개발현장, 장애인 시위, 강정마을 등은 모두 대한민국의 변경이며 상황상 오지이며 정서상 낙도이다. 곁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많이들 외면한다. 이상엽이 언제부터 몇 년동안 이런 변경을 찾아다녔는지 정확하겐 모르겠다. 얼추 5년은 넘어보인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피해다니는, 모른 척하는 현장을 5년씩 지켰다면 그것으로 명분이 선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눈에 잘 보여 쉬운 것 같지만 쉬운 사진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2. 같이 보내온 글이 어렵다.
 아래 따로 보도자료와 작업노트를 첨부하니 읽어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나로서는 어렵다. 자신의 사진이 쉽게 보일까봐 우려가 되었을까? 잔뜩 의미를 부여하는 글들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꼭 분석하거나 의미를 달고 싶으면 본인의 육성으로 풀어나가면 좋겠다. 사진은 본인의 몸으로 다리품 팔면서 찍어놓고 왜 글은 다른 이의 입을 빌어서 쓰는가. 작업의 내용을 설명하고 싶은 충심은 이해하지만 현학적으로 쓰다가는 자칫 ‘구별짓기’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관객과 가까이 가야지 멀어져서야 쓰겠는가.
 게다가 이런 글들은 사진 평론가들이 쓸 일이다. 물론 평론가가 썼다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읽을 재간이 없고 읽을 생각도 없다.  

 

 

 

    보도자료
 
 ‘저항은 영(零)으로, 강요된 침묵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항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만약 이루어진다면, 작은 승리가 있다. 그 순간은, 다른 순간들처럼 지나가겠지만, 지울 수 없는 가치를 얻는다. * 그 순간은 지나가지만, 이미 출력이 되었다.’
 존 버거가 한 이 말을, 사진가 이상엽의 이번 전시작 <변경邊境>에 관한 내러티브가 된다.
 
 이상엽은 비무장지대인 DMZ부터 제주도 강정마을과 연평도 NLL, 4대강 건설 현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재개발지역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현장’들에 어김없이 있어왔다. 존 버거 식으로 말하자면 ‘영으로, 강요된 침묵으로 떨어지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알지 못해서 지나치는, 혹은 알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는 이 모든 변경들의 의미와 풍경을 자신의 시선 안에, 카메라 앵글 안에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렇게 10년의 시간 안에서 그가 목도한 모든 순간들은 지나갔지만, 그러나 다시금 존 버거의 표현에 빗대자면 ‘이미 출력되었다.’ 이상엽의 아홉 번째 개인전 <변경邊境>을 통해 보여주는 사진들은 바로 그렇게 ‘출력’된 결과물의 총합인 것이다.
 
 알다시피 ‘변경(邊境)’은 나라의 경계가 되는 변두리 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넓은 의미로는 지리적인 경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경계까지를 포괄한다. 지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중심에서 멀리 가장자리로 쫓겨 점차 잊혀져가고 어두워져가는 곳이 변경이다.
 
 비무장지대라는 지리적 변경을 다룬 2010년의 개인전 <이상한 숲 DMZ>이 서곡이었다면, 그때로부터 더욱 심화 확장된 총합이 바로 이번 전시 <변경邊境>이다. ‘눈에 보이는’ 변경을 찾아 시작했던 작업이 점차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현실 속에 존재하는 변경으로 옮아간 것이다. 지리적 가장자리는 아니어도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변경화 되어버린 지역들, 즉 서울의 재개발지역을 비롯하여 4대강 개발 지구까지가 ‘심상적 변경’이라면, 비정규직노동자들, 거대 자본에 쫓겨 설자리를 잃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가장자리로 존재하는 변경이 ‘신자유주의적 변경’이다.
 
 이처럼 지리적 변경, 심상적 변경, 신자유주의적 변경이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뉜 전시 사진들은, 사진설명을 보지 않고는 현장과 그 사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들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거나 기묘하다. 다큐멘터리 사진이면서도 단순한 기록사진이 아니라, 그 모든 변경의 현장에 치열하게 카메라를 들고 뛰어들며 스스로를 ‘늘 찍고 쓴다’고 말하는 사진가 이상엽의 사회의식과 심상이 오버랩된 때문이다. 각각의 현장이 다르지만 ‘변경’이라는 점에서는 일관되듯, 세상의 모든 ‘잊혀져가고 어두워져가는’ 가장자리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냉혹하면서도 쓸쓸한 서정을 품고 있다. 
 
 ‘저항의 본령은 어떤 대안, 좀 더 공정한 미래를 위한 희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아주 사소한 구원이다. 문제는 이 ’사소한‘ 이라는 형용사를 안고 어떻게 시간을, 다시 살아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서두의 문장과 이어지는 존 버거의 이 말은, 앞으로 사진가 이상엽이 이어나갈 삶 또는 그 삶과 분리되지 않을 사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상엽 사진전 <변경邊境>은 10월 1일부터 13일까지 갤러리 류가헌에서 볼 수 있다.
 
 
 작업노트
 
 변경을 찾아서/이상엽
 
 변경. 변경은 내 안에 있었다. 멀고, 황량하고, 긴장이 느껴지는 변경. 변경은 머나먼 저곳에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풍경 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변경은 공간적으로만, 즉 지상에만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변경은 내러티브를 통해 사람들에게 공통의 경험, 역사적 기억에 관한 의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관행과 담론 속에서도 구축된다. 그 변경을 가장 발견하기 쉬운 곳은 남한의 북쪽 비무장지대다.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2킬로미터씩. 거대한 벨트를 형성한 이곳이 우리의 상식적인 변경이다. 하지만 이 비무장지대가 비무장은 커녕 거대한 무기 집합소임을 안다. 우리는 철조망과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보며 변경을 실감한다. 멀리 민간인 들어갈 수 없는 비무장 지대 안은 자연의 장벽처럼 느껴진다.
 
 모든 변경은 역사적이며 인위적이다. 어떤 경계들은 바다나 사막, 산맥, 강과 같이 분명한 지리적 특징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들은 역시 역사적으로 구축된 것이며 우연적인 것이다. 자연적 국경은 허상이다. 최근에 정치권에 쟁점이 되었던 NLL은 어떤가?
 
 해상에 그어진 북방한계선(NLL)은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변경이지만 그 선이 마치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불가침의 신성한 선으로 인지된다. 여기서 변경 연구의 핵심어, 지리적 신체, 국민-국가 개념이 암시하는 것이 있다. 즉 시간의 경과 속에서 지속되는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통합된 영토적인 단위를 말한다. 국민-국가라는 유기적인 신체의 그 어떤 부분이라도 절단하는 것(자연적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인체의 일부를 절단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은 신체의 나머지를 영구히 불완전하게 방치하는 상실로 이해된다.*1 마찬가지로 물속 깊이 잠겨있는 이어도 역시 암초가 아니라 현실의 영해 기준이 된다.
 
 내셔널리즘과 국민성이라는 언어는 하나의 국민과 세계의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심리적인 장벽을 만든다. 경계를 분명히 하는 일은 타자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런 이분법은 타자에 대한 불필요한 적대감을 유발하고, 상상된 국민에 부합하는 특징의 정체성이나 집단 사람들을 주변부적이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 국민성이라는 것은 국경을 초월해 상호 이해의 길에 장애를 만들고 개인들에게 하나의 국민국가에 헌신할 것을 강요함으로써 작동한다. 그것은 고립적이고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2
 
 나의 작업은 우리 눈에 보이는 변경을 찾아 비무장지대와 서해 5도 제주도 강정까지 이어졌다. 우리 눈에 변경처럼 보이지 않지만 실제 변경화 된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9년 철거민들이 죽었던 용산도 그 변경 중 하나다.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다가 5명이 불에 타 숨진 사건이다. 경찰도 한명 사망했다. 이 사건이 벌어진 이유는 용산개발이라는 거대한 자본의 투기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명확하다. 용산의 재개발지역은 변경이며 그들은 게토의 디아스포라들이다. 그들은 개발에 혈안되어 있는 자본들에게 변경이며 타자들이다.
 
 4대강은 또 어떤가? 5공화국 이후 잦은 개발로 몸살을 앓는 강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면서 속으로는 대운하의 거대 토목공사를 벌였다. 20조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되었고 소수의 건설마피아들이 이 돈을 챙겼다. 흐르지 못하는 강은 썩어갔고 강 주변에서 살던 이들은 쫓겨났다. 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사는 이들에게 이곳은 변경이었고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돌아보는 이가 없었다.  우리 안의 ‘심상적 변경’들은 이렇게 자본이라는 구심력에 의해 굴종해갔고 저항이라는 원심력 속에 사라져갔다.  
 
 우리 사회의 변경화 작업은 비단 땅과 바다, 재개발지역과 강을 넘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다. 국가와 자본을 그렇게 이야기 했다. “사용자에게는 비용절감 및 노동인력조정의 신축성을 제공해 주고, 근로자에게는 시간 스케줄, 능력, 기술수준에 따라서 근로할 수 있게 해주며, 국가경제 전반적으로는 노동의 효율적 이용과 생산성의 향상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서도 이런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비정규직노동자는 사회 안 어느 곳에 존재하더라도 변경화 됐다.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으며 점점 더 가난해졌다. 그들은 더 이상 생산의 주체가 아니었으며 미래를 꿈꿀 수 없었다. 최초의 불안정성은 차츰 무겁게 심연으로 가라앉아 더 이상 중심과 변경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사회전체를 유동하게 만든다.
 
 따라서 변경은 끊임없이 늘어난다. 땅에서도 확대되고 사회에서 발생하며 우리의 마음에서도 피어난다. 질서라는 것을 본질로 여기는 중앙은 끊임없이 확대되는 변경을 통제하려 한다. 중앙은 예측가능하고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확실성을 원한지만 그것은 변화가 없는 죽은 세상이다. 따라서 지금 자본과 권력이 통제하는 중앙은 외견상 질서정연해 보여도 진짜 세상을 갈구하는 변경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중앙의 구심력을 약화시킨다.
 
 변경은 밖으로 튀어나가려 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시간의 화살은 모든 것을 질서에서 무질서로 바꾼다. 하나의 세계가 다원적인 세계로 진화한다. 변경은 무질서의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 자궁이다.   
  
 주) *1 테사 모리스-스즈키, *2 크리스 윌리암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취재

한-중 역사 겹치는 곳에 한국을 알리자 [1]

  • 사진마을
  • | 2018.11.01

[중국 광저우 교환학생 설동준·남다희씨] 한국·중국어 팸플릿 300부 만들어 최근 ‘리지샹 위안소 진열관’에 기증 ‘아시아 최대 일본군 위안소’...

전시회

사진이 말을 건다

  • 사진마을
  • | 2018.03.19

<라이프>사진전 4월 8일까지 부산문화회관에서 역사를 바꾼, 역사를 기록한, 역사와 함께한 순간  ‘라이프 사진전-(빛나는 시작, 눈부신 기억)’이 ...

사진책

함부로 말할 수 없다

  • 사진마을
  • | 2017.10.25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도 축복이다. 이 둘을 다 한다는 것은 단순한 축복이 아니라 뛰어난 재능이다. 세상엔 사...

전시회

달리든 걷든... 길 위에서

  • 사진마을
  • | 2016.11.21

김문호 사진전 '인더시티' 갤러리브레송에서 김문호의 사진전 ‘인더시티’가 21일부터 30일까지 갤러리브레송에서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갤러리브...

전시회

사진 찍으면 오래 산다

  • 사진마을
  • | 2016.11.16

대전 국제 포토저널리즘전, 옛 충남도청사에서 '오늘 비극의 기록… 내일 희망을 그린다' 부제 올해 100살 데이비드 던컨 '한국전쟁' 최초 공개 ...

전시회

씩씩하게 싱글 싱글

  • 사진마을
  • | 2016.10.27

싱글 우먼, 어떻게 살고 있나 백지순 사진전 '싱글우먼 2' 백지순의 사진전 ‘싱글 우먼 2(Single Women Ⅱ _ Single or Single Again)’가...

취재

영어 배워서 남도 주고 팝송 노래도 멋지게 한 곡조

  • 사진마을
  • | 2016.01.13

[내 나이가 어때서] <3> 서울노인복지센터 잉글리쉬클럽 1. 강명준 강사가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잉글리쉬클럽 회원...

전시회

56년만에 다시 한국에 온 <인간가족>-전시 취소 [2]

  • 곽윤섭
  • | 2013.10.04

전시가 취소되었습니다. 공식 발표가 없어서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획사에서 조만간 입장을 표명한다고 하니 기다려보겠습니다. 서...

취재

사진, 그렇게 쉽게 보여? [8]

  • 곽윤섭
  • | 2013.09.25

어렵다고 좋은가, 쉽다고 다 쉬운가, 글은 꼭 필요한가 이상엽 사진전 <변경>을 계기로 모두에게 묻는다.      이상엽의 사진전 <변경(邊境)>이...

강의실

눈을 바꾸면 사진이 바뀐다

  • 곽윤섭
  • | 2013.05.03

[곽윤섭 사진클리닉 TV특강] <9> 앵글 TV특강 8편 <노출 > 바로가기 TV특강 7편 <움직임> 바로가기 TV특강 6편 <패턴> 바로가기 TV특...

사진책

사진으로 쓴 수필, 수필로 그린 사진 [10]

  • 곽윤섭
  • | 2013.03.27

김담의 새 책 '숲의 인문학' 우산나물 김담 사진책을 소개하면서 책 저자의 이름 뒤에다가 ~님을 붙이는 경우는 잘 없었다. 이번 ‘숲의 ...

사진책

작가와 시대 넘나들며 ‘순간’들의 맥락 짚어 [1]

  • 곽윤섭
  • | 2013.03.12

제프 다이어의 사진비평서 <지속의 순간들>  1800년대부터 현재까지 활동한 42명 사진작가들 다뤄  맹인 누드 모자 등 테마별로 어떻게 왜 찍었...

취재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 곽윤섭
  • | 2012.02.10

[사진뒤집어보기] 채용박람회 긴 줄-공고판-손 등 앵글이 승부수 전체를 다 보여줄까, 부분으로 전체를 보여줄까 사진기자로 입사한 필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