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이 피해 간 그, 총알보다 빨리 찍다

곽윤섭 2013. 07. 26
조회수 34460 추천수 1

전쟁을 혐오했던 전설적인 전쟁사진가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 기념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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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세고비아전선 스페인/게르다 타로            ⓒ국제사진센터/매그넘포토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사진가로 불리는 로버트 카파의 사진전이 경향신문사 주최로 8월 2일부터 10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로버트 카파의 친동생  코넬 카파가 만든 뉴욕국제사진센터 소장 원본 프린트 160여점과 함께 로버트 카파의 마지막 카메라 등 다양한 소품들도 소개된다. 1913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로버트 카파는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처음 종군했다. 전세계의 지성이 반파시스트대열을 형성하여 참전한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페인에서 자행된 야만성을 고발하기 위해 헤밍웨이는 기자로 종군하면서 훗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고 피카소는 대작 ‘게르니카’를 그려 학살을 전세계에 알렸다. 사진가 로버트 카파는 이 전쟁에서 ‘코르도바 전선에서 쓰러지는 병사’를 찍어 죽음의 순간을 정지화면 속에 얼어붙은 것처럼 묘사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했다. ‘코르도바 전선에서 쓰러지는 병사’를 둘러싼 진위논쟁은 포토저널리즘 사상 가장 유명한 것으로 2013년 현재까지 새로운 주장과 증거자료가 등장하여 “연출인지 아닌지”에 대해 공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로버트 카파는 생전 이 사진에 대해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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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코르도바 전선 스페인/로버트 카파        ⓒ국제사진센터/매그넘포토스

 

 

 이 사진 한 장으로 일찍 전설이 된 카파는 이후 전쟁을 찾아다녔고 용감하게 사진을 찍었다. 총알이 그를 피해다녔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일본이 중국을 침공하자 중국으로 달려갔으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로버트 카파의 또다른 대표작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1944년 6월 6일 총을 든 병사들과 함께 카메라를 든 카파가 첫 상륙정을 타고 독일군의 기관총 세례를 뚫고  해변으로 뛰어들어 찍은 사진이다. 이 상륙작전 첫날 2,400여명의 희생을 내고서 미군은 간신히 작은 교두보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카파는 책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에서 이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쏟아지는 총탄은 나를 둘러싼 바닷물에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근처에 있는 강철 방해물을 찾아야했다. 한 병사가 나와 동시에 그 방해물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순간 총탄으로부터 은폐하기 위하여 그곳에 머물렀다. 그 병사는 방수처리가 된 소총을 꺼내 채 조준도 하지 못한채 연기 자욱한 해변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 총소리가 그 병사에게 기운을 불러일으켰는지 그는 은폐물을 나에게 남겨둔채 해변으로 전진했다. 은폐물은 아주 조금 넓어졌고 나는 나처럼 은폐하고 있는 다른 병사들을 찍을 수가 있었다. 여전히 이른 시간이었고 날씨는 흐렸다. 그러나 회색의 바닷물과 회색의 하늘은 히틀러의 참모들이 만들어둔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상륙저지용 구조물 아래서 몸을 피하고 있는 (작게보이는) 군인들 사진을 아주 그럴싸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사진을 마무리했고 바지속으로 스며든 바닷물은 추웠다. 주저하면서 나는 은폐물에서 빠져나오려고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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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6일 오마하해변 노르망디 프랑스/로버트 카파   ⓒ국제사진센터/매그넘포토스

 

 

 

그러나 매번 총탄은 나를 따라다녔다. 주검들이 떠다니는 사이에서 나는 다음 은폐물인 탱크로 향했고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해변으로 돌격하기 위해 마지막 용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제 독일군들은 그들이 가진 모든 화력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나는 포탄과 총탄 사이에서 남은 거리를 돌진하기 위한 어떤 틈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탱크 뒤에 머물렀다. 스페인내전시절 내가 읊조리던 구절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이거 참 큰일이군…….’ (중략) 다음 박격포탄은 철조망과 바닷물 사이에 떨어졌다. 파편의 모든 조각들이 몸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다음 포탄은 조금 더 가까이 떨어졌다. 나는 감히 내 눈을 콘탁스에서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한 컷 한 컷 찍어나갔다. 30초쯤 지나자 내 카메라는 고장이 나버렸고 필름이 끝나버렸다. 가방을 뒤져 새 필름을 꺼냈다. 그러나 내 손은 젖었고 떨리고 있었기 때문에 카메라에 필름을 넣기도 전에 망치고 말았다. 나는 잠시 멈췄다. 나는 망쳐버린 것이다. 빈 카메라가 내 손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공포였고 나는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 떨고 있었다. 나는 삽을 꺼내 호를 팠다. 삽끝이 돌멩이에 부딪혔다. 내 옆의 사람들이 통나무 쓰러지듯 넘어졌다. 바닷물엔 주검만이 떠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무작정 보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 나는 내 카메라가 젖지 않게 하늘위로 들어올리고 뛰었다. 해변을 다시 바라보려고 했지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타일렀다. “나는 보트로 가서 내손을 말려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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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6월 6일 오마하해변 노르망디/로버트 카파              ⓒ국제사진센터/매그넘포토스


 보트에 도착했다. 데크에 오르자 나는 쇼크를 느꼈다. 선장은 울부짖고 있었다. 조수의 온몸이 날아가버리면서 선장을 덮쳤고 그는 엉망이 되어있었다. 우리가 탄 보트는 모선으로 향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나는 엔진실로 가서 손을 말렸다. 그리고 두 카메라에 새 필름을 갈아끼었다. 연기로 가득찬 해변을 찍었다. 중상자를 배로 옮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았다. 같이 들것을 옮기느라 바빴다. 16사단의 마지막 상륙팀이 배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배의 데크는 부상자와 사망자로 가득차있었다. 내가 해변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그때였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았다.
 7일이 지나서 나는 내가 해변에서 찍은 사진이 상륙작전에서 최고의 사진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흥분한 암실조수가 필름을 말리다가 너무 심하게 온도를 가하는 바람에 유제가 흘러내려 106컷 중에 단 8컷만 살아남았다. 열 때문에 흐릿해진 나의 필름 아래에 사진설명이 적혔다. “카파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로버트 카파는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하다면 뭐든지 했다. 공수부대와 함께 낙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쟁을 부정하기 위해, 전쟁을 싫어해서, 전쟁의 참상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 전쟁터를 찍었던 그는 1954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퇴각하는 프랑스부대를 찍다가 지뢰를 밟고 세상을 떠났다. 최후의 순간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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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빌바오 스페인. 공습 경보가 울리자 대피소로 향하는 군중/로버트 카파      ⓒ국제사진센터/매그넘포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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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졌다가 1990년대 후반에 우연히 발견된 <멕시칸 수트케이스> 로버트 카파와 카파의 연인이자 사진가였던 게르다 타로와 매그넘의 창설 멤버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세이무어가 스페인 내전 동안 찍었던 필름이 들어있었다. 이 사진들도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장엔 전쟁의 현장 외에도 다양한 사진들이 걸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파블로 피카소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류하면서 찍은 스냅사진들이 흥미를 끈다. 또한 세기의 연인이었던 잉그리드 버그먼과의 연애하던 시절 할리우드를 담은 사진도 찾아볼 수 있다.
 로버트 카파의 사진인생과 사진철학은 카파이즘으로 살아남았다. 카파이즘은 “현장에, 그것도 가까이 있을 것”으로 귀결된다. 위대한 전쟁사진가라는 호칭은 카파가 우연히 그 장소에서 멋진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의 현장이었던 전쟁터는 모두 그가 몸을 던지는 심정으로 찾아간 곳이었고 그 속에서 건져낸 사진이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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