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의 녹색, 자연의 녹색, 혹은 경계의 스밈

곽윤섭 2012. 04.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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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 개인전 <The Shaded Scenery>

언뜻 보면 단순하지만, 뜯어볼수록 독해 코드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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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_The shaded scenery 백령도_ Archival pigment print_100cmx80cm_2011 

 

 

 

정지현의 개인전 <The Shaded Scenery>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4월 10일까지. 갤러리 룩스 02-720-8488, www.gallerylux.net

 

작가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하여 사진을 여러 번 들여다보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어떤 경우엔 빨리, 여름날 뙤약볕 아래에 오랫동안 노출된 상태의 모래밭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그렇게 빨리 와 닿는 경우도 있다. 사진 스무 장을 보자 말자 씩 웃음이 나오면서 눈치를 챌 수 있었단 얘기다. 그러다가 몇 달이나 몇 년 후에 다시 그 사진과 만났을 때 의미가 확 달라져보이는 일도 있었는데 그럴 땐 섬뜩했다.

 

대개의 경우엔 한두 번 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직까지 왜 찍었고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사진도 있다. (나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럴 땐 사진도 종교 같다는 생각이 들 곤했다. 믿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현재 교회나 성당이나 절에 다니지 않는다. 물론 그 외의 어떤 신앙생활도 하지 않는다.

중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 철없이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만 2년 쯤 되었을 때 문득 내가 왜 교회에 다닐까 싶어서 목사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기억이 정확치 않다면 거꾸로 였을 수도 있다. 목사님이 나에게 교회에 왜 다니는지를 물었던가? 어쨌든) 모르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성경도 좀 읽어봤는데 도무지 성경의 이야기와 예수님 말씀이 믿기질 않았노라고 말했다. 누가 운을 뗐는지는 정확치 않아도 목사님의 말씀은 확실히 기억난다. “믿음이 없다면 굳이 지금 교회에 다니지 않아도 좋아. 나중에 마음이 생기면 그 때 다시…….” 교회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자그마한 곳이었다. 목사님도 인자하게 생긴 중년의 아저씨 같은 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얼굴에서 머리를 깎고 중복을 입혀도 똑같은 분위기가 났을 것 같다.

 

그래도 꼭 이해를 해야 하는 사진이 있다면 줄기차게 사진을 들여다본다. 상상하려 들고 쪼개서 보려고 하거나 마음을 비우고 가슴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솔직히 ‘가슴으로 본다’는 표현은 그냥 표현에 가깝지만 무슨 뜻인 진 알고 있다. 그 외에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과학적, 비과학적 방법으로 사진을 뜯어본다. 끝내 머리만 아플 뿐, 꽉 막혀서 돌아선다.

딸아이가 들려준 놀라운 해법이 있다. 앵그리버드를 하다보면 100여 차례 앵글과 힘을 다르게 조절 해봐도 별 세 개짜리 점수를 못 받는 단계가 있다. 그럴 땐 그냥 덮고 잊어 버린 채 다른 단계로 건너뛰거나 아예 아이패드를 꺼버리란 것이다. 딴 일을 하다가 무심히 그 단계를 다시 시도하면 우습게도 한 번에 해결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신통하게도 몇 번 그렇게 해법을 찾았다. 앵그리버드는 참 잘 만든 게임이다. ㅋㅋ

 

정지현의 개인전 <The Shaded Scenery>에 나오는 사진들은 어떤 경우에 해당할까? 겉으로 보기엔 너무 쉬워 보인다. 녹색이 계속 등장한다. 자연이 칠한 녹색이 있고 사람이 만들어낸 녹색염료의 결과물이 있다. 자연은 나무, 풀, 이끼 등을 통해 녹색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람들은 가림막, 펜스, 그물, 벽에다 녹색염료로 칠을 했다. 두 녹색은 전혀 다른 성질이지만 눈으로 볼 땐 같은 빛으로 보인다. 색은 대상의 표면이 반사해낸 빛이다.

작가는 두 가지의 녹색이 사람 눈에 같이 보이도록 찍었다. 자연이 녹색을 만들어낸 이유는 광합성을 하기 위함이다. 생존이 목적이다. 가림막과 벽의 녹색은 위장을 위함이다. 눈속임이 목적이다. 생존과 눈속임은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사진에 등장하는 녹색들은 비슷비슷하게 보인다. 어떤 경우엔 저게 천연 잔디의 녹색인지 인조잔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공적인 녹색을 자세히 살피면 나눌 수 있다. 골프연습장의 녹색 그물, 개발현장에서 드러난 황토를 덮은 녹색 페인트 혹은 녹색 비닐, 공사장의 녹색 펜스, 건설현장의 녹색 외장마감 등은 모두 원래 녹색이었던 곳을 허물고 새로운 뭔가를 만들면서 녹색이 사라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적인 녹색은 원래의 녹색을 대체하는 눈속임이다.

상암동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위에 조성된 하늘 공원의 녹색은 그런 점에서 자연의 녹색임에도 불구하고 가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십 미터 높이로 쌓인 쓰레기 산에 흙을 덮고 잔디를 심고 나무를 심었다. 쓰레기의 악취는 거의 사라져간다. 1978년에 쓰레기 매립이 시작되었고 약 15년간 서울의 쓰레기를 받아들였던 난지도는 이제 공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앞으로 다시 20년 정도가 지나면 한때는 이곳이 쓰레기장이었다는 사실을 문헌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난지도 하늘공원의 녹색은 가림막이 아니다. 1978년 이전의 난지도는 지금 보다도 더 아름다운 곳이었다. 난초와 지초가 피어나는 섬이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정지현의 작품에서 보는 난지도 하늘공원의 녹색은 개발과 성장과 소비의 부산물인 쓰레기 때문에 잊혀졌던 그 녹색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의 녹색이라고 하겠다.

 

색의 유혹(에바 헬러, 2002, 예담출판사)에서 녹색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녹색은 자연스러운 색, 생명과 건강의 색, 봄과 번영, 신선함, 미성숙과 젊음을 상징한다. 한편으로는 이슬람의 예언자 마호메트가 가장 좋아했던 색이 녹색이었다. 사막 민족에게 천국은 오아시스가 있는 녹색세상이었을 터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정지현의 개인전 <The Shaded Scenery>는 외형적으로는 자연과 인공의 녹색을 거리풍경에서 발견해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서 쉽게 다가오는 전시다. 하지만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자연의 녹색이 가림막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고 인공이라고 생각했던 녹색이 자연의 녹색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다. 고속도로의 비탈면의 인공녹색은 풀씨를 포함하고 있어 성공적으로 성장한다면 2~3년 안에 자연의 녹색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정지현의 개인전 <The Shaded Scenery>에는 작가의 고민이 많이 드러나 있다. “어떻게 읽어야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이다. 그런데 이 고민은 사실상 작가와 관객이 같이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정지현의 사진은 겉으로는 우선 쉽게 다가설 수 있다. 독법에 있어선 쉽지 않지만 이 고민은 최소한 불편한 고민은 아니다. 1년 있다가 다시 보게 된다면? 장담할 수 없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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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_The shaded scenery 백령도_ Archival pigment print_150cmx12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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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_The shaded scenery 서울_ Archival pigment print_125cmx100cm_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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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현_The shaded scenery 하남_ Archival pigment print_100cmx8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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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_The shaded scenery 파주_ Archival pigment print _150cmx120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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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현_The shaded scenery 서울_ Archival pigment print_150cmx12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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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_The shaded scenery 천안_ Archival pigment print_100cmx80cm_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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