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에서 20년, 통일 염원

사진마을 2018. 0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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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001.jpg » 안씨는 이 사진을 놓고 "어떻게 찍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다시는 이순간을 볼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20년 동안 백두산을 찍어온 사진작가 안승일(72)씨가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사진전 ‘평창에서 백두까지’를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강릉시 문화센터에서 열고 있다. 3월 15일까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후원하고 강원도와 강릉시가 주관하는 이 전시에는 154점의 사진이 걸려있는데 이 중에는 안씨가 1984년부터 10년 동안 찍은 굴피집 사진 70여 점이 포함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안씨는 굴피집도 한 곳만 10년을 찍었고 산도 20년 동안 백두산만 찍었다.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전화로 안씨와 인터뷰를 했다. 안씨는 서울에서도 전시를 열고 싶다면서 전시장소를 찾아줄 것을 당부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사진을 좋아했던 안씨는 1965년에 대한산악연맹에 입회했고 사진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서라벌예대 사진과에 들어갔다가 “별 재미가 없어” 중퇴하게 된다. 1977년부터 2년 동안 주명덕 선생에게서 사진을 배웠고 전업으로 광고사진계에 종사하게 되었다. 안씨는 “김한용 선생이 한국 광고사진의 1세대라면 우리가 2세대쯤 될 것이다. 내가 광고 일을 많이 했다. ‘라도’시계도 찍고 계몽사, 동아제약 광고도 했다”라고 말했다. 광고사진으로 돈을 벌면서 작품 활동에 뜻을 두고 몇 년 동안 틈만 나면 찍을만한 굴피집(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굴참나무 껍질을 벗겨 지붕을 얹은 집)을 찾아다니던 안씨는 1984년에 강원도 양양군 내현리 정족산 골짜기에서 부부가 살고 있는 굴피집을 발견했다. 안씨는 계절이 숱하게 바뀌는 동안에 그 집과 사람들을 찍었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 중에는 남편이 부인에게 설피를 신겨주는 장면, 온통 사방이 눈으로 덮인 곳에서 부인이 물지게를 지고 가는 장면, 봄날에 남편이 일소와 함께 쟁기질하며 밭 가는 장면 등이 들어있다. 안씨는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정겨운 순간들이었다. 자녀 4명을 모두 대학까지 보낸 부지런한 부부였다”라고 회상했다. 굴피집을 10년 찍고 난 1994년에 우연히 백두산에 갔다가 “홀라당” 빠져들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 제치고 백두산 촬영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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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06.jpg asi07.jpg asi08.jpg »  14일 안승일 작가가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강원도 강릉시문화센터에서 자신이 1996년에 4000미터 상공에서 찍은 백두산을 가리키고 있다.


  왜 백두산에 꽂혔는지 궁금했다. 안씨는 “처음 중국 쪽에서 백두산을 바라본 그 순간 운명처럼 ‘찍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한순간에 결정됐다. 저 산 너머에 북녘땅이 있다고 생각하니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백두산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통일을 간절히 원할 것이다. 그렇게 시작했고 이번 사진전도 평창올림픽의 성공과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뜻에서 사진 인화와 액자를 모두 자비로 준비했다”라고 말했다. 안씨는 중국 지린성 장백현의 백두산 아랫마을인 이도백하에 13평짜리 살림집을 아예 마련해놓고 매년 6개월에서 10개월 이상 머무르면서 야영과 등반을 반복하며 백두산의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철마다 달라지니 살면서 찍는 수 밖에 없다.” 수시로 헬기를 타고 항공촬영을 했다. 안씨는 “이도백하의 집에서 보면 창 밖으로 백두산이 보인다. 날마다 눈을 뜨면 오늘은 산의 어느 쪽으로 갈까 설계했다. 광고사진을 하면서 번 돈을 20년 동안 백두산 다니면서 다 까먹었다”라고 했다. 여름과 겨울이 다르므로 겨울에도 산에 머물면서 사진을 찍어야 했다. 가을에 미리 쌀이나 통조림 같은 것을 지고 올라가 텐트에 쌓아두고 겨울에 오면 텐트 위와 사방에 눈을 두툼하게 덮어 이글루처럼 만들었고 그곳에서 20일씩 먹고 자며 산을 찍었다. 헬기를 숱하게 타면서 항공촬영을 했는데 어느 날 이름 아침에 해가 떠올라 천지에 비친 순간이 왔다. “그 땐 몰랐다. 다 필름이었으니. 내려와서 현상해보니 떡 하니 찍혀있는데 내가 찍었는데 어떻게 찍었는지 몰랐다. 그 후에 아무리 다시 찾으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다”라며 안씨가 작품 하나를 소개했다. 굴피집도 한 곳, 산도 한 곳만 찍은 것에 대해 안씨는 “사진 제대로 하려면 10년은 찍어야 하는 것이다. 이곳 저곳 옮겨다니면서 어떻게 사진을 찍나? 굴피집도 10년 보니 겨우 좀 보이더라. 백두산은 훨씬 크고 웅대하니 20년 걸린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안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북한 쪽으로 백두산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작가노트에 이렇게 썼다. “이제 우리는 만났습니다. 평창에서 만났습니다. (중략) 우리가 한 핏줄의 형제라는 걸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청년 남녀들이 한데 어울려 아무 탈 없이 잘 노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나는 북녘의 동무들이 보고 싶습니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함께 사진전도 했고 묘향산도 같이 올라 갔었던 조선인민예술가 김용남 동무는 지금도 열심히 백두산을 찍는지…. 술자리에선 언제나 ‘심장에 남는 사람’을 열창하던 딸 바보 장건철 동무네 늦둥이 딸내미는 얼마나 예쁘게 자라고 있는지. (중략) 통일을 하는 날, 그날 나는 당장 내 차에 고추장, 된장, 솥단지 싣고 개성 평양 신의주로 해서 유라시아로 떠나겠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하나가 되었다고 아주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겠습니다”
 안씨는 “전 재산을 다 백두산 찍는데 바친 셈이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방문해주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다”라고 당부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사진/안승일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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