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의자
임자 따로 있기도 하고, 앉으면 주인이기도 하고
나무토막·깡통이면 어떻고 맨바닥이면 어떠한가

지난해 연말 아도비사에서 주최한 포토샵월드코리아 행사장의 기자간담회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한 잡지사 편집장과 명함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곤 잊어버렸는데 보름쯤 있다가 회사로 날렵하게 생긴 잡지가 배달되었습니다.
제호가 <정글>(jungle)이었는데 디자인에 관한 모든 것을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문외한에 가까운 저로서는 표지부터 광고까지 잡지 전체가 기상천외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기사의 형태, 제목이나 본문의 글꼴, 사진이나 그래픽 처리가 발랄하기 이를 데 없어서 끝까지 다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 편에 이르러 어떤 이가 만든 의자가 특히 시선을 잡았습니다. 사람의 신체곡선을 그대로 반영한 형태여서 앉았을 때도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 밖에도 특이하게 생긴 의자 디자인이 많았습니다. 탁자 같은 의자, 종이접기의 각진 선을 그대로 접목시킨 의자, 피아노처럼 생긴 소파 등등. 실용성을 뛰어넘어 미적인 우수성을 가진 가구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세상이므로 디자인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구디자인 중에서도 유난히 의자가 자주 눈에 띈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의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엔 실용과 미 섞은 기묘한 형태들

이번 테마는 ‘의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이 글을 읽을 여러분은 지금 대부분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 것 같은데 지난해부터 저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선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립니다. 사람이 머무는 모든 공간엔 의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 발로 걷던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부터 다리의 부담감이 커졌고 그래서 의자가 필요해졌을 것 같습니다. 의자는 다리를 쉬게 하는 공간입니다.
2010년 새해 벽두에 고양시에 있는 아람누리미술관에서 세바스티앙 살가두의 사진전 ‘아프리카’가 열렸습니다. 어느덧 내일이 폐막일입니다. 국내에서 열린 살가두의 전시 중 제대로 된 크기의 것으로는 거의 처음입니다. 반드시 볼 전시 중의 하나입니다. ‘노동자들’(Workers) 연작에서 보여준 규모 있는 전경사진과 현실감이 넘치는 현장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살가두를 떠올리며 이번 전시작들을 둘러보다가 뜻밖에도 아기자기한 재미를 발견하고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아직도 기억나는 하나가 바로 이 사진입니다. 살가두가 1997년 앙골라에서 찍은 것으로 학교의 교실처럼 보입니다. 학생들이 집에서 의자로 쓸 만한 것들을 직접 들고 와 교실에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가난한 나라이니 학교시설이 오죽 열악하겠습니까? 아이들은 갖가지 형태의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온전한 의자도 보이고 나무토막, 깡통도 있습니다. 앉을 수만 있으면 모두 의자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불편할 터인데 아이들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진지하게 수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 녀석은 살가두 혹은 살가두의 카메라를 보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나무로 만든 책걸상을 썼습니다만 어디에 앉든, 무엇을 의자로 쓰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1997년이라면 여전히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던 시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니 어려운 여건에서도 학업을 이어나간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현재 청년이 되어 앙골라의 미래를 개척해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걷다 걷다 고단함 내려놓는 곳, 잔디밭이나 맨바닥도 아늑
사진을 찍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많이 걷는 것이 좋다는 이야길 자주 합니다. 부지런한 발로 찍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도 하루종일 걸어다닌 적이 자주 있습니다. 취재 현장뿐 아니라 생활사진가들과 어울려 명소를 찾아나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걸어야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자가 절실해지곤 했습니다. 반나절을 걷고 나면 잠시라도 어디 앉아서 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처음엔 공원의 벤치 같은 품위 있는 의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멀쩡하게 생긴 의자가 보이지 않고 오후가 되어 피로도가 심해지면 엉덩이를 걸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자로 삼습니다. 사무실을 나가 거리를 걷다가 공원으로 가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의자와 마주칩니다. 버스정류장의 의자, 공원의 벤치, 동네 슈퍼마켓에서 나그네들에게 제공하는 간이 의자가 있습니다. 계단은 의자와 아주 유사하게 생긴 공간입니다.
유럽의 사원과 광장을 방문하면 계단 같은 곳에 편하게 앉아 쉬면서 그곳을 사색하는 관광객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땐 “품위 없게 뭐 저런 곳에서 앉을 순 없지”라고 했지만 최근에 나갔을 땐 저도 슬쩍 계단에 앉았고, 그제야 현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몽마르트언덕, 퐁피두광장 앞에 즐비하게 주저앉아 따뜻한 햇볕을 즐기면서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기억납니다. 물론 지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멍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계단도 안 보이고 꼭 앉아야겠다면 잔디밭도 좋고 시멘트바닥도 편합니다. 겉옷이나 신문지를 대충 깔고 앉으면 됩니다. 여름엔 서울의 시청 앞 잔디밭도 가끔 개방을 합니다만 서울시의 관광명소 앞에 쉴 수 있는 계단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우리나라의 명소를 직접 다니면서 그 앞에 있는 의자나 계단이나 휴식공간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옮기면 좋은 테마가 될 것입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임자 따로 있기도 하고, 앉으면 주인이기도 하고
나무토막·깡통이면 어떻고 맨바닥이면 어떠한가

지난해 연말 아도비사에서 주최한 포토샵월드코리아 행사장의 기자간담회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한 잡지사 편집장과 명함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곤 잊어버렸는데 보름쯤 있다가 회사로 날렵하게 생긴 잡지가 배달되었습니다.
제호가 <정글>(jungle)이었는데 디자인에 관한 모든 것을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문외한에 가까운 저로서는 표지부터 광고까지 잡지 전체가 기상천외한 내용들이었습니다. 기사의 형태, 제목이나 본문의 글꼴, 사진이나 그래픽 처리가 발랄하기 이를 데 없어서 끝까지 다 훑어볼 수 있었습니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 편에 이르러 어떤 이가 만든 의자가 특히 시선을 잡았습니다. 사람의 신체곡선을 그대로 반영한 형태여서 앉았을 때도 편할 것 같았습니다. 그 밖에도 특이하게 생긴 의자 디자인이 많았습니다. 탁자 같은 의자, 종이접기의 각진 선을 그대로 접목시킨 의자, 피아노처럼 생긴 소파 등등. 실용성을 뛰어넘어 미적인 우수성을 가진 가구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세상이므로 디자인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구디자인 중에서도 유난히 의자가 자주 눈에 띈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의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엔 실용과 미 섞은 기묘한 형태들

이번 테마는 ‘의자’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와 이 글을 읽을 여러분은 지금 대부분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 것 같은데 지난해부터 저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선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립니다. 사람이 머무는 모든 공간엔 의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네 발로 걷던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부터 다리의 부담감이 커졌고 그래서 의자가 필요해졌을 것 같습니다. 의자는 다리를 쉬게 하는 공간입니다.
2010년 새해 벽두에 고양시에 있는 아람누리미술관에서 세바스티앙 살가두의 사진전 ‘아프리카’가 열렸습니다. 어느덧 내일이 폐막일입니다. 국내에서 열린 살가두의 전시 중 제대로 된 크기의 것으로는 거의 처음입니다. 반드시 볼 전시 중의 하나입니다. ‘노동자들’(Workers) 연작에서 보여준 규모 있는 전경사진과 현실감이 넘치는 현장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살가두를 떠올리며 이번 전시작들을 둘러보다가 뜻밖에도 아기자기한 재미를 발견하고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아직도 기억나는 하나가 바로 이 사진입니다. 살가두가 1997년 앙골라에서 찍은 것으로 학교의 교실처럼 보입니다. 학생들이 집에서 의자로 쓸 만한 것들을 직접 들고 와 교실에 앉아 있는 장면입니다. 가난한 나라이니 학교시설이 오죽 열악하겠습니까? 아이들은 갖가지 형태의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온전한 의자도 보이고 나무토막, 깡통도 있습니다. 앉을 수만 있으면 모두 의자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불편할 터인데 아이들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진지하게 수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 녀석은 살가두 혹은 살가두의 카메라를 보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엔 나무로 만든 책걸상을 썼습니다만 어디에 앉든, 무엇을 의자로 쓰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1997년이라면 여전히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던 시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니 어려운 여건에서도 학업을 이어나간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현재 청년이 되어 앙골라의 미래를 개척해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걷다 걷다 고단함 내려놓는 곳, 잔디밭이나 맨바닥도 아늑

처음엔 공원의 벤치 같은 품위 있는 의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멀쩡하게 생긴 의자가 보이지 않고 오후가 되어 피로도가 심해지면 엉덩이를 걸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자로 삼습니다. 사무실을 나가 거리를 걷다가 공원으로 가는 동안에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의자와 마주칩니다. 버스정류장의 의자, 공원의 벤치, 동네 슈퍼마켓에서 나그네들에게 제공하는 간이 의자가 있습니다. 계단은 의자와 아주 유사하게 생긴 공간입니다.
유럽의 사원과 광장을 방문하면 계단 같은 곳에 편하게 앉아 쉬면서 그곳을 사색하는 관광객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외국에 나갔을 땐 “품위 없게 뭐 저런 곳에서 앉을 순 없지”라고 했지만 최근에 나갔을 땐 저도 슬쩍 계단에 앉았고, 그제야 현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몽마르트언덕, 퐁피두광장 앞에 즐비하게 주저앉아 따뜻한 햇볕을 즐기면서 책이나 신문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기억납니다. 물론 지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멍하게 시간을 보내거나 아이스크림을 물고 있기만 해도 좋겠습니다.
계단도 안 보이고 꼭 앉아야겠다면 잔디밭도 좋고 시멘트바닥도 편합니다. 겉옷이나 신문지를 대충 깔고 앉으면 됩니다. 여름엔 서울의 시청 앞 잔디밭도 가끔 개방을 합니다만 서울시의 관광명소 앞에 쉴 수 있는 계단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우리나라의 명소를 직접 다니면서 그 앞에 있는 의자나 계단이나 휴식공간과 사람들을 카메라에 옮기면 좋은 테마가 될 것입니다.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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