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강> 벽
옛 돌담은 꼬불꼬불, 지금의 콘크리트는 일직선
우리 삶에 금 그은 모습, 또 그 안과 밖은 어떨까

영화 ‘거룩한 계보’를 보면 운동장에 있던 죄수들이 교도소를 탈출하기 위해 담장에 몸을 부딪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은 죄수 몇 십 명이 어깨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금이 갈 리가 없습니다. 분명한 탈옥시도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교도관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비아냥거립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표현이 아주 적절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우연히(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일어나야 우연입니다.)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그 충격으로 담장이 무너지고 몇몇 죄수들이 일단 탈옥에 성공하게 됩니다.
영화 ‘거룩한 계보’의 교도소 탈출을 보면…

이번 테마 ‘벽’을 제시하면서 많은 벽 중에서 첫 예제로 하필이면 교도소 담장을 택했을까요? 벽의 원래 목적을 생각해보면서 벽 자체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떠올렸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선 벽은 없어지면 더 좋을 만한 것으로 인식을 하는 쪽이 더 우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벽은 비, 바람, 열, 소리, 빛 같은 자연의 거친 공격을 차단해 인간의 거주공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짐승, 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 더해졌습니다.
어떤 쪽이든 벽 안을 지키기 위한 것이 원래 의도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것이란 점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리장성은 대표적인 성벽입니다. 외부 오랑캐의 침입을 막겠다는 방어용 벽입니다. 그러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위압적으로 보이고 공격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부잣집들은 높은 벽을 쌓고 삽니다. 지킬 것이 많을 것이고 노리는 세력도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호화아파트는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성이며 벽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와도 뚫고 들어갈 재간이 없을 것입니다.
옛날로 돌아갈수록 그리고 지금도 시골로 갈수록 벽은 낮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살았던 동네의 골목엔 담 너머 풍경이 보일 정도로 집의 벽이 낮았던 기억이 납니다. 현대인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벽을 쌓아두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지킬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곳에 공간의 구분을 위해 무턱대고 쌓아둔 담벼락들이 있습니다. 헛된 권위의식에서 출발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계층을 나누려는 담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관공서, 학교, 아파트와 연립주택의 단지와 단지 사이에 쓸데없는 금긋기 용으로 만들어둔 담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담장을 허물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것도 이제 10년이 넘었습니다. 최초의 담장 허물기 운동은 1998년 대구에서 벌어졌습니다.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바로 곁엔 선교 의료박물관이 있고 담장과 종탑이 있습니다. 이곳에 전국담장 허물기 첫 행사로 의료원 옛건물에서 허문 벽의 일부를 기념으로 세워두었습니다. 선교박물관은 자체로 선과 모양이 예쁘기 때문에 대구에선 알려진 사진출사장소이기도 합니다.
담장 허물기 사업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녹지공간이 늘어나고 경관도 좋아지는 효과가 생겼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소득은 담을 사이에 두고 고립되어있던 거주민들 사이에 신뢰감이 회복되었다는 점입니다. 담 너머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던 이웃들이 얼굴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어렵고 높고 먼 곳으로 인식되던 관공서에서 담과 벽을 없애자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란 원래 취지가 쉽게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맨 앞에 든 영화 속 교도소 담장처럼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벽도 있습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단 한 명의 죄수도 없는, 그런 날이 오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겠습니다. 또한 가정에서도 추위와 열과 소음과 도적을 막아주는 벽은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벽과 필요없는 벽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고 여러 가지 기능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도 있습니다. 대뜸 가수 신형원이 부른 ‘유리벽’이 기억납니다.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였네
나는 느낄 수 있었네 부딪히는 그 소리를
우정도 사랑도 유리벽 안에 놓여있었네
유리벽 유리벽 아무도 깨뜨리지 않네 모두 다 모른 척 하네”
아기자기한 예술로 재탄행한 벽화마을도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은 눈에 보이는 실제의 담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사람끼리, 민족끼리, 사상과 신념과 피부색과 종교와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벽을 쌓아두고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1989년에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독일의 분단시절 서로 대립하던 서독과 동독의 경계였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갖가지 담과 벽과 철조망으로 분리되어있습니다. 이런 지형적인 구분의 실제 벽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고립이 우리 사회 곳곳에 흩어져있습니다.
추운 겨울 지하철역으로 밀려들어 온 노숙자들은 겉으로는 같은 공기를 숨 쉬고 있지만 그 곁을 지나는 사회인들과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외계어를 쓰면서 바쁘게 엄지를 놀리는 10대 청소년과 기성세대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큰 벽이 있습니다. 신촌로터리 안쪽 현대 백화점 옆에 있는 놀이터는 10대들의 공간입니다. 가끔 그곳을 지나가다 보면 그들과 저 사이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모든 10대와 모든 기성세대 사이에 늘 벽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취재를 위해 10대들을 이따금 만납니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이런 표현 자체가 이 글을 읽는 10대들에겐 ‘구린’것으로 받아들여질 법도 합니다만 최소한 대화의 소재는 공유해야 말이 통하는 것은 맞습니다.
벽과 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공간이며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경남 남해의 가천마을을 찾았을 때 그 마을의 담장은 어떤 사진가가 찍은 마을의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외에도 전국엔 옛 궁과 절과 건물의 성벽과 담이 많이들 남아있습니다. 고궁의 돌 이끼 낀 벽은 시멘트벽과 비교할 수 없는 아취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엔 하나하나 돌로 쌓아올린 정겨운, 그러나 숱한 태풍을 이겨낸 담이 있습니다.
서울 이화동, 부산 문현동 안동네, 청주 수암골을 비롯해 우리나라 곳곳에 아기자기한 벽화마을이 생겼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색과 질감의 거친 시멘트나 블록 담장에 아마추어, 프로 가릴 것 없는 솜씨로 벽화를 그려두자 그 마을들은 각각 고유한 곳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몇 년 지나자 비바람에 물감이 떨어져 나간 곳도 있지만 그런 풍화작용 또한 그 벽화와 마을의 모습을 규정짓는 조건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옛 돌담은 꼬불꼬불, 지금의 콘크리트는 일직선
우리 삶에 금 그은 모습, 또 그 안과 밖은 어떨까

영화 ‘거룩한 계보’를 보면 운동장에 있던 죄수들이 교도소를 탈출하기 위해 담장에 몸을 부딪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은 죄수 몇 십 명이 어깨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금이 갈 리가 없습니다. 분명한 탈옥시도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교도관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비아냥거립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된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표현이 아주 적절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우연히(설득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지만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일어나야 우연입니다.)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그 충격으로 담장이 무너지고 몇몇 죄수들이 일단 탈옥에 성공하게 됩니다.
영화 ‘거룩한 계보’의 교도소 탈출을 보면…

이번 테마 ‘벽’을 제시하면서 많은 벽 중에서 첫 예제로 하필이면 교도소 담장을 택했을까요? 벽의 원래 목적을 생각해보면서 벽 자체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떠올렸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선 벽은 없어지면 더 좋을 만한 것으로 인식을 하는 쪽이 더 우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벽은 비, 바람, 열, 소리, 빛 같은 자연의 거친 공격을 차단해 인간의 거주공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짐승, 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 더해졌습니다.
어떤 쪽이든 벽 안을 지키기 위한 것이 원래 의도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것이란 점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리장성은 대표적인 성벽입니다. 외부 오랑캐의 침입을 막겠다는 방어용 벽입니다. 그러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위압적으로 보이고 공격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부잣집들은 높은 벽을 쌓고 삽니다. 지킬 것이 많을 것이고 노리는 세력도 많다는 것을 뜻합니다. 호화아파트는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성이며 벽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와도 뚫고 들어갈 재간이 없을 것입니다.
옛날로 돌아갈수록 그리고 지금도 시골로 갈수록 벽은 낮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살았던 동네의 골목엔 담 너머 풍경이 보일 정도로 집의 벽이 낮았던 기억이 납니다. 현대인들은 필요하지도 않은 벽을 쌓아두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지킬 것도 없고 가져갈 것도 없는 곳에 공간의 구분을 위해 무턱대고 쌓아둔 담벼락들이 있습니다. 헛된 권위의식에서 출발해 경제적, 사회적으로 계층을 나누려는 담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관공서, 학교, 아파트와 연립주택의 단지와 단지 사이에 쓸데없는 금긋기 용으로 만들어둔 담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담장을 허물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것도 이제 10년이 넘었습니다. 최초의 담장 허물기 운동은 1998년 대구에서 벌어졌습니다. 대구시 중구 동산동에 있는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바로 곁엔 선교 의료박물관이 있고 담장과 종탑이 있습니다. 이곳에 전국담장 허물기 첫 행사로 의료원 옛건물에서 허문 벽의 일부를 기념으로 세워두었습니다. 선교박물관은 자체로 선과 모양이 예쁘기 때문에 대구에선 알려진 사진출사장소이기도 합니다.
담장 허물기 사업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녹지공간이 늘어나고 경관도 좋아지는 효과가 생겼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소득은 담을 사이에 두고 고립되어있던 거주민들 사이에 신뢰감이 회복되었다는 점입니다. 담 너머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지내던 이웃들이 얼굴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어쩐지 어렵고 높고 먼 곳으로 인식되던 관공서에서 담과 벽을 없애자 국민들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란 원래 취지가 쉽게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맨 앞에 든 영화 속 교도소 담장처럼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벽도 있습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단 한 명의 죄수도 없는, 그런 날이 오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겠습니다. 또한 가정에서도 추위와 열과 소음과 도적을 막아주는 벽은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벽과 필요없는 벽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고 여러 가지 기능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벽도 있습니다. 대뜸 가수 신형원이 부른 ‘유리벽’이 기억납니다.
“내가 너의 손을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었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슬프게 하였네
나는 느낄 수 있었네 부딪히는 그 소리를
우정도 사랑도 유리벽 안에 놓여있었네
유리벽 유리벽 아무도 깨뜨리지 않네 모두 다 모른 척 하네”
아기자기한 예술로 재탄행한 벽화마을도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은 눈에 보이는 실제의 담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사람끼리, 민족끼리, 사상과 신념과 피부색과 종교와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벽을 쌓아두고 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1989년에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독일의 분단시절 서로 대립하던 서독과 동독의 경계였습니다. 한반도는 여전히 갖가지 담과 벽과 철조망으로 분리되어있습니다. 이런 지형적인 구분의 실제 벽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고립이 우리 사회 곳곳에 흩어져있습니다.
추운 겨울 지하철역으로 밀려들어 온 노숙자들은 겉으로는 같은 공기를 숨 쉬고 있지만 그 곁을 지나는 사회인들과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외계어를 쓰면서 바쁘게 엄지를 놀리는 10대 청소년과 기성세대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큰 벽이 있습니다. 신촌로터리 안쪽 현대 백화점 옆에 있는 놀이터는 10대들의 공간입니다. 가끔 그곳을 지나가다 보면 그들과 저 사이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모든 10대와 모든 기성세대 사이에 늘 벽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취재를 위해 10대들을 이따금 만납니다.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이런 표현 자체가 이 글을 읽는 10대들에겐 ‘구린’것으로 받아들여질 법도 합니다만 최소한 대화의 소재는 공유해야 말이 통하는 것은 맞습니다.
벽과 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공간이며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경남 남해의 가천마을을 찾았을 때 그 마을의 담장은 어떤 사진가가 찍은 마을의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외에도 전국엔 옛 궁과 절과 건물의 성벽과 담이 많이들 남아있습니다. 고궁의 돌 이끼 낀 벽은 시멘트벽과 비교할 수 없는 아취가 있습니다. 제주도의 바닷가 마을엔 하나하나 돌로 쌓아올린 정겨운, 그러나 숱한 태풍을 이겨낸 담이 있습니다.
서울 이화동, 부산 문현동 안동네, 청주 수암골을 비롯해 우리나라 곳곳에 아기자기한 벽화마을이 생겼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색과 질감의 거친 시멘트나 블록 담장에 아마추어, 프로 가릴 것 없는 솜씨로 벽화를 그려두자 그 마을들은 각각 고유한 곳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몇 년 지나자 비바람에 물감이 떨어져 나간 곳도 있지만 그런 풍화작용 또한 그 벽화와 마을의 모습을 규정짓는 조건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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