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강의실 시즌2] 인물에도 풍경에도 사람 향기 밴 36.5℃

곽윤섭 2010. 06. 03
조회수 7206 추천수 0
<제14강> 따뜻함
월급봉투, 잘 나온 성적표, 휴가통지서 공통점
웃음이나 눈물, 사랑이나 연민에도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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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는 계절을 훨씬 앞서 나갑니다. 가을엔 다음해 봄과 여름의 패션을 선보이고 봄엔 가을과 겨울의 패션을 소개하는 식입니다. 패션업계만큼은 아니지만 신문사의 사진기자들도  계절의 변화를 선도해나가야 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 봄에 대한 사진을 신문에 실어야 ‘먹힙니다’. 이미 봄이 와버린 다음엔 봄은 더 이상 ‘새로운 소식(뉴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가오는 절기인 입춘과 경칩 같은 날을 앞두면 따뜻한 봄 소식을 전달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립니다. 날씨는 춥지만 일단 사진에서라도 봄을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얼음이 녹기 전이고 사람들은 아직도 시커먼 외투와 목도리로 무장하고 다니니 봄을 연상시키는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갖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얼음을 뚫고 꽃을 피우는 복수초를 찾기도 하고 나뭇가지에서 눈을 밀고 나오는 연두색 잎눈을 찍기도 합니다. 얼음 밑으로 졸졸 흘러가는 시냇가를 찾기도 하고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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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서린 포장마차에 ‘어묵, 국수’라는 글씨는 보일 듯 말 듯

 
이번 테마는 따뜻함입니다. 따뜻하다는 것은 느낌일 뿐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주제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따뜻함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선 비교적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 상황을 사진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추상적인 테마인 따뜻함을 찍는 길입니다. 어떤 사진강좌를 통해 따뜻함을 찍어볼 것을 주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막연해하는 분들을 위해 기본적인 접근방식을 놓고 토론식 수업을 했습니다.
 
사진강의실-시즌 1의 노랑 편에서 말씀드린 내용들이 거기에 일부 포함됩니다. 무채색 일변도인 겨울의 색상에 비해 봄이 오고 따뜻해지면 밝은 계통의 옷들이 거리로 나옵니다. 이때 특히 노란색의 옷은 따뜻함을 떠올리는 데 제격입니다. 빛이 잘 드는 카페의 창가 자리에서 편한 자세로 앉아 커피나 차를 마시는 사람을 찍어온 수강생이 있었습니다. 노란색이 없었지만 따뜻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 청과시장의 모닥불 앞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사진도 따뜻합니다. 봄이란 테마와 달리 따뜻함은 언제든지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 수강생들은 다양한 상황과 소재를 찍어왔습니다. 어머니가 털실로 스웨터나 장갑, 머플러를 뜨고 있는 모습은 따뜻합니다. 추운 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위해 양말을 이불 속에 넣어 따스하게 데워두는 장면도 따뜻합니다. 호빵, 군고구마, 붕어빵은 먹음직스럽고 따뜻합니다. 김이 서린 포장마차에서 웅크리고 앉아 한잔하거나 뭔가를 먹는 모습은 유혹적입니다. 이때 포장에 어묵, 국수라고 쓰여 있으면 한결 더 자극적이며 시각적인 사진이 됩니다. 다만 글씨가 온전히 다 드러나게 보이면 시선을 먼저 잡아채버리니 살짝 가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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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게 목도리 풀어주는 인터넷사진 감동
 
따뜻함을 잠에서 찾아낸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벤치에 앉아 졸고 있는 사람, 양지바른 곳에서 활개를 편 채 곯아떨어진 고양이나 강아지의 사진이 그런 경우입니다. 동물원에 가면 졸고 있는 맹수류를 수시로 볼 수 있습니다. 호랑이, 사자 할 것 없이 하품을 해댑니다. 때에 맞춰 먹을 것이 척척 나오니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유난히 동물원의 짐승들은 잠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 사진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따뜻함은 고정되어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신선한 발견도 많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이를 발견한 경우입니다. 유치원 수업을 마친 동무들이 손을 잡고 어딘가로 내달립니다. 떡볶이집 앞에서 서로 어깨를 들이밀면서 식도락을 즐기는 중학생들의 뒷모습도 따뜻해 보입니다. 물론 동시에 소란스런 느낌도 들긴 합니다. 따뜻함을 물리적 온도의 상승에서 찾기보다는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에서 찾는 것이 더 쉬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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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음이 따뜻해진다”라는 말을 씁니다. 어미 개나 돼지가 누워 있고 다섯 마리, 열 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올망졸망 젖을 빠는 모습을 보면 모정이 느껴져서 따뜻해집니다. 이때 빛이 좋다면 금상첨화가 되는 것은 사진의 기본입니다. 구세군냄비에 돈을 넣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몇 년 전인가 노숙자에게 목도리를 풀어서 목을 감싸준 사람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본인은 공개되길 원하지 않았겠지만 그 학생의 실명이 드러나고, 진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온 사회를 얼마나 따스하게 만들어줬는지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오드리 헵번이나 김혜자씨의 얼굴만 봐도…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사진은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용산역 앞 노숙자에게 무료급식하는 장면은 찍기에 따라서 슬퍼 보이기도 하지만 희망도 엿보입니다.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IMF 경제 위기 때 국민들이 줄을 서서 금모으기 운동을 하던 장면은 우리 자신을 감동시켰습니다. 따뜻한 사진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자극해 선행의 릴레이를 불러오는 힘이 있습니다.
 
따뜻함을 찍는다는 것은 그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진가의 감성이 차갑거나 굳어 있어서는 어떤 것을 보더라도 따뜻함을 전달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진가들 중엔 휴머니티가 넘치는 사람들이 많고 사진을 사회개선의 도구로 삼아 이웃과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인물을 찍어도 풍경을 찍어도 따뜻하게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뿐 아니라 찍히는 인물의 감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제3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해 말년을 보냈던 오드리 헵번 같은 배우와 한국의 김혜자씨 같은 탤런트는 그 얼굴만 봐도 따스한 마음을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웃고 있는 모습은 유쾌하고 따뜻합니다. 젖먹이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는 그 자체로 예술입니다. 웃음을 잊어버린 지 오래된 어른들은 스마일 교육이란 것을 받아야 겨우 얼굴의 근육이 풀립니다. 처음엔 억지로 따라하다가도 강사의 도움을 받아 차츰 웃다 보면 어느새 잠재되어 있던 폭소를 터뜨리면서 웃음의 미학을 깨닫게 됩니다. 월급명세서는 직장인들을, 잘 나온 성적표는 학생들을, 휴가통지서는 병사들의 마음을 각각 따뜻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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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 금주의  미션 ㅣ 따뜻함을 찍어라
 
따뜻함은 곳곳에 있습니다. 병아리들의 털에 있고 포장마차의 문틈으로도 삐져나오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의 멋쩍은 표정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따뜻해져야 따뜻함을 찾기가 쉬워집니다.  올해 봄은 유난히도 짧게 지나가버렸습니다. 하지만 따뜻함은 봄에만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주변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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