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 노동자’ 1895일 동안의 ‘먼 길’ 기록

곽윤섭 2011. 01. 12
조회수 7072 추천수 1
 
 정택용씨 다큐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 펴내
 “철문 사이로 엄마에게 손 내민 아이 보고 시작”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잘 만든 다큐멘터리사진집이 나왔다. 민노당의 기관매체인 ‘진보정치’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고 있는 정택용씨가 2005년 8월부터 1895일 동안 한 현장을 지키면서 찍은 사진으로 엮었다. 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는 기륭전자 비정규직투쟁의 작은 역사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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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보여줄 수는 있다”
 
 정택용은 이렇게 말했다. “2005년 8월이 처음이다. 그 한 달 전인 2005년 7월에 노조가 막 생겨 현장 점거 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문자로 해고 받은 첫 사례일 것이다. 그때 본 게 기륭의 철문이었다. 철문을 사이에 두고 안에는 농성하는 사람들이 있고 밖에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한 사람들이 지켜서 있었다. 마침 밖에 있던 아이 하나가 철문으로 다가가 농성 중인 엄마에게 손을 내밀어 인사하는 것을 봤다. 순간 말로만 듣던 1970년대 노동현장이 떠올랐다. 그게 지금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에 찍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날 이후 정택용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현장에 있었다. 길거리 천막농성, 단식, 삭발, 몸싸움, 삼보일배, 포클레인농성까지 노동자들 곁에는 정택용의 카메라가 함께했다.

 
 
포토저널리즘이, 다큐멘터리사진이 전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가난 구제도, 질병 퇴치도 못한다. 그러나 사진이 아닌 그 어떤 다른 매체도 무력하긴 마찬가지다. 어쨌든 사진은 미국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베트남전쟁의 추악함을 세상에 알렸고 굶주림으로 수백만 명이 죽어가던 아프리카, 수은중독으로 고통받던 일본 미나마타의 참상도 지구촌 전역에 전달할 순 있었다. 사진가 마크 리부는 이런 말을 했다. “사진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다만, 사진은 세상을 보여줄 수는 있다. 마침 변하고 있는 순간의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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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먼 길 돌아 현장은 없어졌지만 사진집은 남아
 
정택용이 5년 2개월을 길바닥에서 보내면서 찍은 사진들은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민중의 소리’, ‘진보정치’ 같은 소수의 온라인 매체를 통해서, 그리고 민주노총의 행사장에서 초라한 사진전을 통해서 간헐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한겨레나 경향을 제외한 주류신문과 거대 공중파의 채널에서 기륭전자의 현장을 보도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지난해 11월 1일 기륭전자 노사는 “너무도 먼 길을 돌아” 전격적으로 타협했고 1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합의했다. 기륭사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이제 한 권의 사진집이 남았다. 그동안 세상에 널린 신문과 방송에서 외면했던 그 현장의 생생한 순간들을 사진집에서 만나야 한다. 기륭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9백만 명에 달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사진은 사람을 떠나서 성립할 수 없다. 사진을 찍는 방식이야 작가들의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 다양하게 풀어나갈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이야기는 이 땅에서 숨을 쉬는 사람들과 그 주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서 사회적 기능을 충실히 하는 다큐멘터리사진가와 작품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본다면 금세 실망하게 된다. 열 손가락을 채우기가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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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편한 것은 모두 거기 있었으면서도 정작 그곳에 부재했기 때문”
 
이런 풍토에서 정택용의 다큐멘터리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만나게 된 것은 가뭄 끝의 단비와 같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하고 힘겨운 농성장을 함께 버텨준 정택용이 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들에게 해준 역할과 같은 것이다. 사진집엔 여러 사람들의 추천사와 글이 실려있다.

소설가 조세희씨는 추천사에서 “어떤 난장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난 후 30여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사람들은 용산에서 불태워지거나, 쌍용에서 토끼처럼 몰이를 당하거나, 기륭에서 쓰레기처럼 내버려지고 있다. 그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다시 보라고 그가 지금 소리없이 외치고 있다. 이 사진들을 보며 우리가 불편한 것은 우리 모두가 거기에 있었으면서도 정작 그곳에 부재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두고 우리 모두는 안녕했는가”라고 썼다.

사진책은 기륭전자 카페 http://cafe.naver.com/kiryung 와 인터넷 서점 알라딘 http://www.aladin.co.kr/  에서 구입할 수 있다. 수익금은 비정규투쟁기금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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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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