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불멸의 사진, 딱 두 컷

곽윤섭 2011. 01. 04
조회수 27968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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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8> 르네 뷔리
유명한 사진 찍어 유명해지거나
유명해서 유명한 사진을 찍거나
 
 유명한 사진가가 되는 방법 중에 비교적(그야말로 비교적일 뿐) 쉬운 길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진실력이야 기본을 넘기고 나면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잘 나가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늘 무명의 사진가다. 그렇다면 비교적 쉬운 방법은 무엇일까?
 
처칠을 찍기 전에는 그저 그런 사진관 주인
 
 한겨레신문사가 2009년에 개최했던 사진전인 ‘인물사진의 거장-유서프 카쉬전’의 주인공 유서프 카쉬는 가난한 이민자였고 사진의 기본기는 충실하게 닦았지만 그저 그런 사진관 주인에 지나지 않았다. 유서프 카쉬는 어느 날 인연이 닿아 당시 세계를 뒤흔들던 윈스턴 처칠을 찍게 되었고 “존경하는 인물의 초상사진을 찍는데 담배가 거슬릴까 봐” 처칠의 입에서 시가를 쑥 잡아빼고 찍었을 뿐인데 담배를 뺏겨 화가 난 처칠의 일그러진 표정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서방진영의 선두에서 호령하던 노 정치가의 이미지와 어울린다는 평판을 받아 일약 유명해진 경우다. 즉, 유명한 사람을 찍고서 사진가가 유명해진 것이다.
 이런 사례는 지금도 찾을 수 있다. 잘 나가는 사진가들의 작품 이력을 보면 유명 연예인들이 줄줄 이어진다. 사진이 좋아서 잘 나가는 진 잘 모르겠고 단지 유명한 인물들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그 사진가도 덩달아 유명해진 경우가 많다. 살짝 돌려 표현하면 유명인을 대놓고 찍을 기회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먼발치에서 지나가는 명사들을 찍을 일이야 있겠지만 똑 부러지는 조명 아래 포즈를 연출해가면서 그들을 찍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사진가들이다. 그걸 실력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선 두 곳에서 한 인물의 사진이 동시에 전시되고 있다. 그 인물은 44년 전에 볼리비아의 밀림 속에서 총탄세례를 받아 유명을 달리한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다. 체 게바라는 옛 인물이지만 아직도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 아이콘은 불분명한 형태가 아닌 정확한 사진으로 무한 복제되어 떠돌아다니고 있다. 책이나 잡지에 실리거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것은 기본이며 모자, 티셔츠, 술병, 포스터, 담요, 치마 등 별별 형태의 매개체를 통해 체의 이미지를 찾아 볼 수 있다.
 
사열대 잠깐 나타난 모습 우연히 찰칵
 
zzz2.jpg 체가 사망하기 전, 그러니까 쿠바 혁명에 가담한 1955년부터 게릴라전에 뛰어들었던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를 찍은 사진가는 아주 많다. 그는 젊었고 참여적이었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베레모와 군복, 그리고 시가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으며 매력적인 이상주의자의 외모 덕분에 당시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 많은 이미지들 중에 딱 두 컷이 살아남았다. 두 사진가와 사진의 내력은 각각 달랐다.
 하나는 1960년 3월 5일 아바나의 사열대에 나타난 모습으로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었다. 별 하나가 달린 베레모를 썼지만 시가는 없다. 콧수염, 턱수염이 무성하고 사자의 갈기 같은 머리카락이 돋보인다. 자크를 목까지 끌어올린 옷차림은 다소 긴장한 표정을 강화시킨다. 무엇보다도 더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아주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이다. 사열대 위에 있었으니 멀리 봤겠지만 이 사진에서 그의 눈동자는 물리적인 장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미래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코르다는 피델 카스트로가 ‘끝도 없이 긴 연설’을 하는 동안 잠깐 사열대 앞으로 나왔다가 들어간 체 게바라의 이 순간을 딱 두 장 찍었다. 그리고 이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다. 1967년 체가 볼리비아의 밀림에서 쫓기고 있을 때 그의 최후를 내다본 한 술수 좋은 사업가가 코르다를 방문해 ‘그 사진’을 얻어갔다. 그리고 반 년 사이에 2백만 장의 포스터가 팔렸다. 코르다는 한 푼도 원하지 않았고 받은 적도 없다. 대신 불멸의 이미지를 찍은 유명한 사진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 오랜 시간 찍어 


zzz1.jpg

  나머지 한 장은 1963년 1월 아바나의 장관집무실에서 르네 뷔리가 찍었다. 이미 매그넘 정회원이었던 뷔리는 공식 인터뷰 자리를 얻었고 오랜 시간 동안 체 게바라를 찍을 수 있었다. 쿠바의 패션사진가였던 코르다와 달리 뷔리가 찍은 사진은 금세 ‘라이프’, ‘룩’, ‘슈테른’, ‘파리마치’ 등 수많은 유명 매체에 실렸고 매체의 힘을 얻어 코르다가 찍은 사진보다 먼저 유명해졌다.
 3년 사이에 체 게바라는 더 원숙해져 보인다. 이번엔 베레모는 없지만 시가를 물었다. 실내에서 블라인드를 배경으로 찍었다. 의자를 뒤로 젖혔기 때문이겠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앵글이며 이마에 주름살이 보인다. 여전히 시선은 먼 곳,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생각하는 눈길이다. 3년 전보다 수염은 더 무성해졌지만 사납거나 거친 이미지는 절대 아니다. 개성이 더 강해졌지만 아직 귀여운 면도 남아있다. 이상을 꿈꾸는 혁명가의 얼굴이다. 그러나 이 사진도 체 게바라의 사망 후엔 순교자의 초상으로 남게 된다. 예수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것 같다.
 1968년 프랑스를 뒤흔들고 유럽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던 학생혁명부터 체 게바라의 두 사진이 시위의 전면에 등장했다. 사진을 찍은 두 사진가와 사진에 찍힌 체 게바라가 이를 예측했을 리는 없다. 사진은 그런 것이다. 다수의 대중이 원했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라는 명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코르다가 찍은 체 게바라의 사진은 3월 1일까지 삼성동 코엑스 1층 특별전시장에서 열리는 ‘체 게바라와 쿠바, 코르다 사진전’에서 만날 수 있다. 르네 뷔리가 찍은 체 게바라의 사진은 2월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열리는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에서 만날 수 있다.

 
곽윤섭기자kwak1027@hani.co.kr

 
한겨레신문사는 12월 17일부터 2011년 2월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을 개최합니다.

델피르는 사진계의 거목으로 출판인, 전시기획자, 예술감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60여 년 활동해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델피르와 인연을 맺은 사진가들이 델피르에게 헌정하는 전시입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요세프 쿠우델카, 세바스치앙 살가두, 헬무트 뉴턴, 로버트 프랭크, 로베르 두아노 등 세계 최고의 거장들이 참여합니다. 

곽윤섭기자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8> 르네 뷔리
 <7> 라르타크
 <6> 헬무트 뉴턴
 <5> 세바스치앙 살가두
 <4> 로버트 프랭크
 <3> 마크 리부
 <2> 요세프 코우델카
 <1> 로베르 두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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