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천재성, 50년 뒤에 빛 보다

곽윤섭 2010. 12. 28
조회수 12715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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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7> 라르티크
열 살에 첫 사진 찍고 암실 작업까지 섭렵
그후 평범한 일상 살다 69살에 겹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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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번을 단 경주용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바퀴가 휘어져라 달리고 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길가에 선 사람들과 가로수들이 뒤로 휙휙 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바퀴가 휘어지도록 달린다는 표현과 가로수들이 뒤로 넘어지는 것 같은 표현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워낙 빠르다 보니 그렇게 보인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은유적 표현이다.
 자크 앙리 라르티크가 1912년에 찍은 이 사진엔 문학적이면서 만화 같은 모습이 실제로 찍혀 있다. 지금처럼 컴퓨터를 이용한 손쉬운 후보정프로그램도 없었던 1백 년 전의 사진이다.
 
 1백년 전에 어떻게 이런 사진을?, 그것도 18살짜리가…
 
 대가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처음엔 초보였다. 프로작가라고 하더라도 시작할 때는 아마추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추어와 프로의 정의를 내리기 힘든 사진가 한 명이 있었다. 자크  앙리 라르티크(1894~1986)는 일곱 살에 첫 카메라를 받았고 열 살에 첫 사진을 찍었다. 자신의 방, 장난감 등을 찍었고 차츰 집, 정원, 가족, 거리에서 만난 여인 등으로 대상을 확대시켜나갔다. 자동차, 비행선, 비행기 등도 찍었다.
 요즘 같으면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도 휴대폰카메라나 콤팩트카메라로 곧잘 사진을 찍으니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1백 년 전이라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다. 라르티크는 대형부터 35mm까지 당시 거의 모든 종류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1900년에 막 발명이 되었던 원시적 형태의 컬러(그러나 상태는 요즘의 컬러만큼 뛰어난)였던 오토크롬까지 섭렵했다. 또 직접 암실 작업까지 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을 너무 일찍 접했던 탓인지 그의 사진작업은 거기까지였다. 한두 번 잡지에 사진이 실린 것을 제외하고 나면 전시를 하거나 책을 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의 사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로 라르티크의 젊은 시절은 끝났다. 그는 그림을 그렸고 이 또한 가끔 팔리기만 했을 뿐, 직업적 화가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평범한 인생으로 돌아갔다.
 
 뉴욕현대미술관 사진부장, 한눈에 가치 알아차려
 
 그가 69살이 되던 해인 1963년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뉴욕 여행길에서 사진에이전시인 ‘라포’에서 일하는 라도(Charles Rado)에게 우연히 사진을 보여주게 되는데 라도는 그 사진을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연결시켜주었다.
 뉴욕현대미술관이 어떤 곳인가? 1955년 지구촌의 모든 인류들에게 큰 감동을 준 인간가족전을 기획했던 사진계의 거목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사진부서의 부장으로 있던 곳이며 이 무렵엔 스타이켄의 후임인 사코우스키가 부장이었다. 한눈에 사진의 가치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훌륭한 육상선수처럼 경제성과 우아함, 단순한 정밀성을 가지고 똑바로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마치 카르티에 브레송의 아버지가 찍은 숨겨진 초기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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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부턴 일이 술술 풀려나갔다. 1963년 7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라르티크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10대에 찍었던 사진들이 50년이나 지난 다음에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16개 도시에서 순회전을 열었고 당대 최고의 화보 잡지 라이프에선 그해 11월29일치 지면을 열어주었다.
  
 케네디의 암살 덕에 하룻밤 사이에 유명 사진가로
 
 이때 또 한 번의 기적이 겹쳤다. 같은 해 11월22일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하는 세기적 사건이 일어났다. 큰 뉴스가 있으면 다른 뉴스는 묻히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라르티크도 모처럼 자신의 작품들이 라이프에 소개될 기회가 묻혀버릴까 아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전개는 예상과 달랐다. 케네디의 암살과 관련된 비극적 사진들과 함께 라르티크의 사진도 예정대로 실렸다. 라이프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호 가운데 하나였다. 케네디 덕에 하룻밤 사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시기는 여전히 사진, 화보잡지의 전성기였다. 라르티크의 사진 ‘프랑스 자동차클럽 그랑프리’는 거듭 인화, 복제되어 퍼져나갔다. 로베르 델피르가 펴낸 포토 시리즈 ‘라르티크’편의 표지도 당연히 이 사진이었다.
 그 인연으로 이번 델피르와 친구들 전시에서 라르티크의 사진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진은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아 있다. 그 후 이 사진과 더불어 대부분 그가 10대에 찍었던 작품들이 서서히 세상에 공개되었다. 라르티크는 여생을 유명한 사진가로서 살 수 있었다. 
※ 참고 문헌: 포토아이콘(Art & Books)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사람이 찍었나, 사진기가 찍었나
 
 이 사진의 힘은 역동성에 있다. 정상적인 카메라로는 찍힐 수 없는 묘한 장면이다. 단순히  흔들린 정도가 아니라 상의 왜곡이 크게 일어났다. 이런 현상은 전적으로 사진을 찍은 사람이 아닌 카메라의 기능 때문(‘~탓’ 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 이라고 해야 할지 한참 퇴고했다)에  생긴 일이다.
 사진에 등장한 자동차는 오른쪽으로 달리고 있다. 바퀴가 오른쪽 위로 더 긴 타원형 모양으로 질주한다. 실제 타이어가 저렇게 생긴 자동차는 없다. 라르티크가 이 장면을 찍을 때 쓴 카메라는 수평 포컬플레인 셔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셔터막이 좌에서 우, 혹은 우에서 좌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포컬플레인 셔터는 한 번에 셔터가 열렸다가 닫히는 것이 아니라 커튼 같은 셔터막이 움직이면서 화면의 한쪽부터 다른 한쪽으로 차례대로 훑어나가는 방식으로 개방된다. 스캐너나 복사기를 떠올리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진을 보면 카메라는 오른쪽으로 패닝이 되고 있다. 자동차와 레이서는 정확히 초점이 맞아있고 배경이 흐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패닝으로 찍으면 배경은 화살이나 물결처럼 흐른다. 그런데 사람과 가로수가 왼쪽으로 누워있다. 빠른 피사체를 따라 급하게 패닝이 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셔터속도 때문에 가로수와 사람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어지면서 순차적으로 찍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사람의 머리가 찍혔고 아직 셔터가 다 닫히기 전에 얼굴, 목, 가슴, 허리, 다리의 순서로 차례대로 조금씩 노출이 먹힌 것이다. 패닝이 되지 않은 사진에선 움직이는 자동차의 바퀴만 휘어져 있을 뿐 배경은 정확히 있는 그대로 찍힌다. 비교적 최근의 카메라 중에서는 니콘의 기계식 SLR인 F3가 수평식 포컬플레인 방식이다.
 곽윤섭기자
 
한겨레신문사는 12월 17일부터 2011년 2월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을 개최합니다.

델피르는 사진계의 거목으로 출판인, 전시기획자, 예술감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60여 년 활동해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델피르와 인연을 맺은 사진가들이 델피르에게 헌정하는 전시입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요세프 쿠우델카, 세바스치앙 살가두, 헬무트 뉴턴, 로버트 프랭크, 로베르 두아노 등 세계 최고의 거장들이 참여합니다. 

곽윤섭기자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7> 라르타크
 <6> 헬무트 뉴턴
 <5> 세바스치앙 살가두
 <4> 로버트 프랭크
 <3> 마크 리부
 <2> 요세프 코우델카
 <1> 로베르 두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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