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네 집’ +α, 전몽각의 재발견

곽윤섭 2010. 12. 16
조회수 11766 추천수 1
생활사진가 면모 뒤 작가적 솜씨 사진들 첫선
“생업으로 사진을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프로”

 

img_04.jpg
 
 

2010년 1월 1일, 20년 만에 복간되자마자 사진코너 베스트셀러가 되어 한 해 동안 상위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윤미네 집>의 가장이었던 윤미네 아빠가 전몽각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12일 <전몽각 그리고 윤미네 집> 사진전이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개막됐다. 전시는 2011년 2월 19일까지 열린다.

 
사진집 <윤미네 집>의 성공은 좀처럼 사진집이 팔리지 않는 한국의 출판시장을 고려하면 아주 특별한 사건이다. 윤미 씨가 결혼한 다음해인 1990년에 첫 책 <윤미네 집>이 나왔으나 금세 절판되어 어떤 중고서점에서도 찾을 길이 없이 사진애호가들의 애를 태웠던 그 책이다. 내용은 널리 알려진 그대로 윤미 아빠 전몽각 선생이 큰 딸 윤미 씨가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찍은 가족사진들로 구성되어있다.
 

 
“50~60년대 사진의 최전성기 한복판에 사진가로 발 디뎌”
 
이 전시를 계기로 한국의 사진계는 전몽각 선생을 재평가해야 할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에 참여했던 토목학자, 가족사진을 잘 찍었던 생활사진가 정도로 알려졌던 전몽각 선생의 이번 전시는 내용에 있어 사진집 <윤미네 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이다. 전시는 크게 네 부문으로 나뉜다. 윤미네 집이 전시의 가장 큰 부분이며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의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 사진이 두 번째.

 
세 번째는 전몽각 선생이 1960년 카메라를 막 구입하고 사진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참여했던 ‘현대사진연구회’와 ‘싸롱 아루스’ 시절의 작품들이며 사진미술관 20층에 별도 전시된 네덜란드 유학시절의 유럽사진들이 네 번째 부문을 구성한다. ‘윤미네 집’ 외의 나머지 사진들은 모두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인다. 전몽각 선생의 가족들, 그리고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미사진미술관과 주명덕 선생을 비롯한 사진계의 몇몇 인사들을 제외한 일반 대중들에겐 존재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던 사진들이다.

 
전시개막일에 앞선 11일 열린 공개강좌 ‘가족과 일의 기록-전몽각의 사진’에서 강연한 박주석 교수(명지대·기록정보대학원)는 이번 전시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진역사 전반에 걸쳐 최전성기는 1950년대와 60년대라 할 수 있다. 이 시기가 사진가들에게 화려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사실주의와 조형주의의 양극단 사이에서 치열하게 정반합을 거듭하며 다양한 미학적 시도가 이루어졌었다. 전몽각 선생은 바로 이 전성기의 한복판에 사진가로 발을 들여놓았고 체계적으로 사진을 공부해나갔던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이상적인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img_03.jpg
img_02.jpg

 
완성도나 앵글과 구성은 브레송 등 유명 작가 수준
 
개막일에 다시 전시장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촬영된 시간 순서로 보면 전시장의 맨 안쪽에 있는 ‘현대사진연구회’ 시절의 사진이 가장 초기의 작품들이다. 조형미를 중시한 당시 풍조에 따라 세련된 선과 흑백의 콘트라스트가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있어야 할 곳엔 반드시 구성요소가 있고 불편한 곳은 말끔히 치워진, 이름하여 ‘살롱사진’이라 부르는 단순명쾌한 리듬감이 극대화된 사진들이다. 내용을 떠나서 눈으로 보기엔 가장 예쁜 사진들이다. 다만 사실감이 부족하니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고민을 전몽각 선생도 했고 1960년대 초반, 그의 동료 사진가들도 그랬다. 이 무렵 윤미가 태어났고 26년짜리 장기프로젝트 ‘윤미네 집’을 찍기 시작했다. 기초가 탄탄했고 추상주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전몽각은 윤미네 집의 초기부터 사실적 시각을 도입했다. 1989년까지 이어진 ‘윤미네 집’ 연작 중에는 곳곳에 살롱시절이 연상되는 예쁜 사진도 들어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이미 사실주의로 돌아서 있었다. 아빠로서 딸과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애정이 듬뿍 묻어있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가족다큐멘터리를 찍는 전몽각의 솜씨는 치밀한 연대기적 구성으로 뒷받침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img_07.jpg

전몽각 선생은 1966년에 네덜란드로 유학을 간다. 그 시절의 사진은 그야말로 전시가 임박해 급히 발굴된 탓에 장소와 연도가 누락된 채 전시되고 있다. 사진의 완성도나 세련된 앵글과 구성은 카르티에 브레송이 바라본 유럽, 윌리 호니스가 바라본 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 유럽과 미국 사진가들의 동향을 공부하고 있었던 전몽각 선생이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전시장에서 가장 크게 인화된 사진들은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이다. 생업의 일터가 곧 사진거리가 된다는 것은 여러모로 유리한 점이 많다. 게다가 그 일터가 역사의 현장이라면 금상첨화다. 당시로선 천지가 개벽하는 국가차원의 큰 공사였던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담은 사진에는 사진가로서도 무르익은 작가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갓을 쓴 채 불도저를 바라보는 촌로들을 찍은 사진을 보면 시대에 대한 공간적 정보와 시간적 정보를 모두 포함하려는 세심한 배려를 발견하게 된다. 
 
 
img_01.jpg

 
수백만의 생활사진가들에게 뚜렷한 등대
 
박주석 교수는 “생업으로 사진을 하지 않았지만 전몽각 선생은 충분히 프로라고 불릴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박교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들은 본인들이 지질학자, 생물학자인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뛰어난 토목공학자인 그는 대상에 대한 전문가였기 때문에 대상을 읽어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어 다른 사진가들보다 더 탁월했다. 전문성이 확보되어있고 남들과 다른 차별화전략이 있었으니 프로라고 불러도 좋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중들이 가장 많이 사가는 사진집은 추상적 내용들을 담은, 미술과 결합한 사진들이 아니다. 전몽각의 가족과 더불어 김기찬의 골목, 최민식의 인간, 김영갑의 제주, 준프로급의 생활사진가들이 찍은 고양이 등이 사진집 시장을 끌어가고 있다. 그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스스로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사진책을 사보는 소비자인 생활사진가들에게 가장 친숙한 대상과 공간인 바로 우리 주변의 생활공간을 기록한 작업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친근하게 와닿는 것이다.

수백만의 생활사진가들이 사진을 찍는 이 시점에 재발견되어 최초로 전시되는 전몽각 선생의 다큐멘터리사진들과 32년 만에 다시 전시장에 등장한 윤미 아빠 전몽각의 ‘윤미네 집’은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수백만의 생활사진가들에게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정년 퇴임한 남편과 함께 취미로 사진을 찍는 복덕월 씨는 “예전에 우리가 살던 집과 똑같다. 저게 바로 내가 살던 모습, 저렇게 애기를 업고 엎드려서 쪽잠을 자던 시절이 있었지. 남자들은 애기 엄마들의 심정을 전혀 모를 거야”라면서 “너무 편하다. 사진이 너무 편해서 좋다”라고 웃었다. 대부분의 관객이 부담없이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장점이다. 
 
 

img_05.jpg

img_06.jpg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강의실

[1월, 이달의 사진]눈썰미와 상상력 허, 이럴 수가! [2]

  • 곽윤섭
  • | 2011.01.20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김용태(울산 울주군 범서읍)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한겨레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응모하실 ...

뭘까요

12월치 ‘뭘까요’ 정답 발표

  • 곽윤섭
  • | 2011.01.20

12월치 ‘뭘까요’ 정답은 ‘장화’입니다. 부츠, 장화신은 고양이가 신던 장화 등을 모두 정답으로 인정합니다. 이번엔 문제가 비교적 쉬웠든지 정답...

취재

낚시하듯 눌러둔 셔터, 시간이 흐르다

  • 곽윤섭
  • | 2011.01.20

[생활사진가 고수] 강태환  장노출 즐기는 이유 기다리고 무심하게… 강태환(39 회사원)씨는 낚시하는 기분으로 사진을 시작했답니다. -사진의 좋은 ...

사진책

‘기륭 노동자’ 1895일 동안의 ‘먼 길’ 기록

  • 곽윤섭
  • | 2011.01.12

정택용씨 다큐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 펴내 “철문 사이로 엄마에게 손 내민 아이 보고 시작”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

취재

홍대 정문앞 풍경

  • 곽윤섭
  • | 2011.01.10

총학생회부터 각 단과대까지 일일이 이름을 내걸고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2011년 1월 10일 오후의 풍경입니다. 공공노조의 '따뜻한 밥 한 끼의 ...

취재

체 게바라 불멸의 사진, 딱 두 컷

  • 곽윤섭
  • | 2011.01.04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8> 르네 뷔리 유명한 사진 찍어 유명해지거나 유명해서 유명한 사진을 찍거나    유명한 사진가가 되는 방법...

취재

사진 속으로 오랜 동행, 사진이 말하다

  • 곽윤섭
  • | 2011.01.03

 한겨레의 ‘올해의 사진가’ 심사평  섬세한 관찰-파격적 앵글로 인연과 사랑 포착    ‘한겨레포토워크숍 연말 어워드’에는 총 18명이 각 1...

취재

강화~목포 1400km 바다 삶과 풍경

  • 곽윤섭
  • | 2011.01.03

[한겨레가 뽑은 2011년 올해의 사진가] 캐논상-신병문  ‘사진의 중심’ 한겨레가 ‘2011 한겨레포토워크숍 어워드’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겨레...

취재

마음도 고쳐주는 노동의 행복

  • 곽윤섭
  • | 2011.01.03

 [한겨레가 뽑은 ‘2011년 올해의 사진가’] 캐논상-류정호 ‘사진의 중심’ 한겨레가 ‘2011 한겨레포토워크숍 어워드’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

피보다 진한 동거, 쪽방촌 가족

  • 곽윤섭
  • | 2011.01.03

 [한겨레가 뽑은 ‘2011 올해의 사진가’] 한겨레상-이강훈  ‘사진의 중심’ 한겨레가 ‘2011 한겨레포토워크숍 어워드’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

취재

10대의 천재성, 50년 뒤에 빛 보다

  • 곽윤섭
  • | 2010.12.28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7> 라르티크 열 살에 첫 사진 찍고 암실 작업까지 섭렵 그후 평범한 일상 살다 69살에 겹친 ‘기적’  “6번을 ...

취재

‘위험한’ 누드 사진으로 전세계 눈길 끈 ‘변태의 제왕’

  • 곽윤섭
  • | 2010.12.24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6>헬무트 뉴턴 남창, 성도착증 경력에 ‘남자들이 보고싶은 누드’ 집중 세계적인 미인 찍으면서 성적 요소, 위험, 폭...

취재

슬픔 속에서 ‘동정심’ 아닌 ‘동료애’ 끌어내

  • 곽윤섭
  • | 2010.12.22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5> 세바스치앙 살가두 경제학자에서 ‘사진기를 든 환경운동가’ 변신 어려운 상황 속 밝은 미소 포착…공감 이끌어...

취재

내 사진으로 나만의 달력

  • 곽윤섭
  • | 2010.12.17

꿩 대신 닭이라고 사진집 대신 달마다 ‘추억’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면 생활사진가들도 1년의 사진활동을 정리하는 행사를 준비합니다. 함...

취재

‘윤미네 집’ +α, 전몽각의 재발견

  • 곽윤섭
  • | 2010.12.16

생활사진가 면모 뒤 작가적 솜씨 사진들 첫선 “생업으로 사진을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프로”   2010년 1월 1일, 20년 만에 복간되자마자 사진...

강의실

[12월, 이달의 사진] 우연적인 필연 입이 딱 벌어졌다

  • 곽윤섭
  • | 2010.12.16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김민수(서울 송파구 가락2동)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한겨레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응모하실 ...

뭘까요

11월 정답및 12월 문제 나갑니다.

  • 곽윤섭
  • | 2010.12.16

11월치 문제 정답은 트램(노면 전차) 안에 있는 손잡이였습니다. 호주 멜번의 트램 안에서 찍었습니다. 정답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돌고래 꼬리, ...

취재

상상력과 사상의 렌즈로 보이지 않는 것에 초점

  • 곽윤섭
  • | 2010.12.10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4>로버트 프랭크 미국의 신분·인종 차별 포착, “대충 찍은 사진” 혹평 미국인들이 싫어한 ‘미국인들’ 결국 미국...

취재

1/125초, 본능이 삶과 현실 순간 포착

  • 곽윤섭
  • | 2010.12.07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3> 마크 리부 “나의 최고 걸작은 바로 내일 찍을 예정” 거리사진가로 여유와 낭만과 위트 녹여   미국이 베트...

취재

그날 ‘역사’를 찍고, 그후 한평생 ‘오늘’ 기록

  • 곽윤섭
  • | 2010.12.03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2> 요세프 코우델카 그때 그 시계, 피 흘리는 조국의 프라하의 봄 증언 유럽 떠돌며 끔찍한 파괴의 비참한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