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과 사상의 렌즈로 보이지 않는 것에 초점

곽윤섭 2010. 12. 10
조회수 7925 추천수 0
img_01.jpg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4>로버트 프랭크
 미국의 신분·인종 차별 포착, “대충 찍은 사진” 혹평
 미국인들이 싫어한 ‘미국인들’ 결국 미국서 ‘신화’로

 
1947년 한 스위스 남자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프리랜서 사진가가 되어 하퍼스바자 같은 패션잡지를 위해 일했다. 미국으로 이민 온 많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처음엔 미국을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생활은 눈알이 핑핑 돌아가듯 정신없이 빨랐고 지나친 황금 숭배주의, 물질만능주의에 질려버렸다.
 

img_02.jpg

 
나치 박해 피해 이민, 2년 동안 미국 전역 돌며 2만8천장 찍어
 
이 사내는 곧 미국을 황량하고 고독한 곳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의 사진시각도 그렇게 변했다. 몇 년 뒤 사진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을 펴내게 되는 이 사람이 바로 로버트 프랭크였다. 프랭크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워커 에반스의 도움을 받아 미국의 재벌가에서 설립한 ‘구겐하임 재단’의 후원을 받게 된다. 1955년부터 2년간 프랭크는 중고차 한 대를 몰고 전 미국을 주유하면서 사진작업을 했다. 모두 2만8000장을 찍었고 최종적으로 83장을 추려냈다. 1957년 뉴욕으로 돌아온 프랭크는 우연히 비트소설가 잭 케루악을 만나게 되었고 미국을 담은 사진을 보여줬다. 사진에 반한 케루악은 ‘미국인들’의 서문을 쓰게 된다.  
 
그러나 미국의 사진계는 프랭크의 사진을 노골적으로 싫어했고 책을 낼 수도 전시를 할 수도 없었다. 우선 미국이란 나라에는 눈에 보이는 신분의 계급이 있고 인종차별이 있다는 사진들의 내용을 싫어했다. 정작 비평은 형식에 꼬투리를 잡고 나섰다. 불확실한 초점, 빛의 부족, 주류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엉뚱한 잘라내기(크로핑) 등을 물고 늘어졌다. 미국의 사진잡지 ‘파퓰러 포토그래피’는 프랭크가 찍은 ‘미국인들’에 대해 “아무 의미도 없이 사진이 흔들렸고 입자가 거칠고 노출은 부족이며 술에 취한 것처럼 수평을 어겼으며 한마디로 말하자면 “대충 찍은 사진”이라고 평했다.

 
로버트 프랭크는 파리로 건너갔고 1958년 사진의 참모습을 알아본 델피르가 책을 펴냈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왔고 미국재벌이 만든 재단의 후원으로 미국을 찍었으나 미국이 거부했던 ‘미국인들’은 그래서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된 것이다.
한 해가 지나서 미국의 한 출판사에서 미국판 ‘미국인들’을 펴냈다. 초기의 판매는 부진했지만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잭 케루악의 서문 덕에 점차 책이 입소문을 타게 되었다. 이윽고 미국인들은 ‘미국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곧 신화가 되었다. 미국 사진계와 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사진책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img_03.jpg


파리에서 먼저 책 나와…마음고생 끝에 미국 사진잡지에 기고
 
사진작업은 마쳤으나 미국에서 책을 내지 못해 애를 먹던 1957년과 1958년 사이에 로버트 프랭크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눈빛 출판사에서 펴낸 ‘사진가의 사진론(나탄 라이언스 저)’에 로버트 프랭크가 1958년 미국의 한 사진잡지에 기고했던 글이 실려있다. 그의 사진에 대한 세간의 비평과 비난에 대한 해명성의 주장이 많이 들어있다. 주류의 반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동시에 이해를 구하고 있다.
 
 “나는 구겐하임 재단이 나를 신뢰하고, 기간을 연장하여 자유롭게 작업하도록 보장해 준 데 대해 감사한다. (중략) 나는 이 사진들로 미국 민중의 단면을 보여주려 시도해왔다. 나는 그것을 단순하게-혼동 없이-표현하려 노력했다. 그 관점은 개인적이고, 따라서 미국생활과 사회의 다양한 단면들이 무시되어 왔다. (중략) 이 사진들을 실은 나의 작품집은 1958년에 파리에서 로베르 델피르에 의해 간행된 것이다.
 나는 나의 관점에 따라 주제를 의도적으로 왜곡한다는 비난을 자주 받아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사진가에게 삶이란 무관심한 문제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견은 흔히 일종의 비평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비평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아마도 희망의 표정이나 슬픔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을 낳은 것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순간적인 반응이다. 나의 사진들은 계획되었던 것도 아니고, 사전에 구성된 것도 아니며, 구경꾼들이 나와 관점을 같이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의 사진이 감상자의 마음에 이미지를 남겨놓을 수 있다면 성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내가 잡지에 게재하기 위해 일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나의 눈이 사진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사진 중에서 잡지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재생될 것은 어느 것인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편집자의 정신과 눈이기 때문이다. (중략)
  상상력이 결여된 포토저널리즘과 사상이 결여된 사진의 대량생산은 익명의 상품이 될 뿐이다. 공기는 사진의 ‘냄새’에 감염된다. 사진가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자기의 사상을 구멍가게에서 하루 만에 발전시키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나는 비관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진잡지들을 보면 사진의 발전에 대해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이하 생략)”
 

img_01.jpg

 
매그넘사진가 엘리엇 어윗 “그림엽서와 다르다” 명쾌한 옹호
 
글을 읽다 보니 마치 로버트 프랭크가 미국 사진 주류인사들이 개최한 청문회장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작업이 어떤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반대여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프랭크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다. 후반부에 보이듯 오히려 그들을 나무라면서 계도하려들고 있다. 적당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지만 일본인들의 재판정에 선 조선의 독립운동가를 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출판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하다가 매그넘사진가 엘리엇 어윗이 로버트 프랭크를 옹호하는 발언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의) 품질이란 것은 짙은 검은색이나 사진의 계조 따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사진의 질이 아니고 사진질의 한 종류밖에 안된다.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들이 어떤 사람들에겐 대충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은 계조가 적절치 않아. 구시렁 구시렁….’ 그러나 내가 볼 때 사진 질을 따지자면 안셀 애덤스의 사진보다 프랭크의 사진이 훨씬 우월하다. 왜냐하면 안셀 애덤스의 사진품질은 그림엽서(*한국식으로 하자면 달력사진)의 품질이기 때문이다. 그와 비교하자면 프랭크 사진의 질은 작가의 작업과 사상과 어우러지는 그런 품질이다. 프랭크 사진의 질은 하늘과 모래의 톤을 조화시키는 따위가 아니다. 프랭크 사진의 질은 작가정신과 관련된 것이다”

역시 어윗이다. 명쾌하다.
로버트 프랭크에게 델피르는 잊지 못할 은인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 파리에서 나왔던 초판본 ‘미국인들’이 온다. 사진사에 길이 남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직접 봐 둘만 하다.
  
 

img_05.jpg
 
img_04.jpg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한겨레신문사는 12월 17일부터 2011년 2월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을 개최합니다.

델피르는 사진계의 거목으로 출판인, 전시기획자, 예술감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60여 년 활동해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델피르와 인연을 맺은 사진가들이 델피르에게 헌정하는 전시입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요세프 쿠우델카, 세바스치앙 살가두, 헬무트 뉴턴, 로버트 프랭크, 로베르 두아노 등 세계 최고의 거장들이 참여합니다. 

곽윤섭기자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4>로버트 프랭크
 <3> 마크 리부
 <2> 요세프 코우델카
 <1> 로베르 두아노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강의실

[1월, 이달의 사진]눈썰미와 상상력 허, 이럴 수가! [2]

  • 곽윤섭
  • | 2011.01.20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김용태(울산 울주군 범서읍)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한겨레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응모하실 ...

뭘까요

12월치 ‘뭘까요’ 정답 발표

  • 곽윤섭
  • | 2011.01.20

12월치 ‘뭘까요’ 정답은 ‘장화’입니다. 부츠, 장화신은 고양이가 신던 장화 등을 모두 정답으로 인정합니다. 이번엔 문제가 비교적 쉬웠든지 정답...

취재

낚시하듯 눌러둔 셔터, 시간이 흐르다

  • 곽윤섭
  • | 2011.01.20

[생활사진가 고수] 강태환  장노출 즐기는 이유 기다리고 무심하게… 강태환(39 회사원)씨는 낚시하는 기분으로 사진을 시작했답니다. -사진의 좋은 ...

사진책

‘기륭 노동자’ 1895일 동안의 ‘먼 길’ 기록

  • 곽윤섭
  • | 2011.01.12

정택용씨 다큐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 펴내 “철문 사이로 엄마에게 손 내민 아이 보고 시작”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

취재

홍대 정문앞 풍경

  • 곽윤섭
  • | 2011.01.10

총학생회부터 각 단과대까지 일일이 이름을 내걸고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2011년 1월 10일 오후의 풍경입니다. 공공노조의 '따뜻한 밥 한 끼의 ...

취재

체 게바라 불멸의 사진, 딱 두 컷

  • 곽윤섭
  • | 2011.01.04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8> 르네 뷔리 유명한 사진 찍어 유명해지거나 유명해서 유명한 사진을 찍거나    유명한 사진가가 되는 방법...

취재

사진 속으로 오랜 동행, 사진이 말하다

  • 곽윤섭
  • | 2011.01.03

 한겨레의 ‘올해의 사진가’ 심사평  섬세한 관찰-파격적 앵글로 인연과 사랑 포착    ‘한겨레포토워크숍 연말 어워드’에는 총 18명이 각 1...

취재

강화~목포 1400km 바다 삶과 풍경

  • 곽윤섭
  • | 2011.01.03

[한겨레가 뽑은 2011년 올해의 사진가] 캐논상-신병문  ‘사진의 중심’ 한겨레가 ‘2011 한겨레포토워크숍 어워드’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겨레...

취재

마음도 고쳐주는 노동의 행복

  • 곽윤섭
  • | 2011.01.03

 [한겨레가 뽑은 ‘2011년 올해의 사진가’] 캐논상-류정호 ‘사진의 중심’ 한겨레가 ‘2011 한겨레포토워크숍 어워드’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

피보다 진한 동거, 쪽방촌 가족

  • 곽윤섭
  • | 2011.01.03

 [한겨레가 뽑은 ‘2011 올해의 사진가’] 한겨레상-이강훈  ‘사진의 중심’ 한겨레가 ‘2011 한겨레포토워크숍 어워드’ 수상자를 선정했다. 한...

취재

10대의 천재성, 50년 뒤에 빛 보다

  • 곽윤섭
  • | 2010.12.28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7> 라르티크 열 살에 첫 사진 찍고 암실 작업까지 섭렵 그후 평범한 일상 살다 69살에 겹친 ‘기적’  “6번을 ...

취재

‘위험한’ 누드 사진으로 전세계 눈길 끈 ‘변태의 제왕’

  • 곽윤섭
  • | 2010.12.24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6>헬무트 뉴턴 남창, 성도착증 경력에 ‘남자들이 보고싶은 누드’ 집중 세계적인 미인 찍으면서 성적 요소, 위험, 폭...

취재

슬픔 속에서 ‘동정심’ 아닌 ‘동료애’ 끌어내

  • 곽윤섭
  • | 2010.12.22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5> 세바스치앙 살가두 경제학자에서 ‘사진기를 든 환경운동가’ 변신 어려운 상황 속 밝은 미소 포착…공감 이끌어...

취재

내 사진으로 나만의 달력

  • 곽윤섭
  • | 2010.12.17

꿩 대신 닭이라고 사진집 대신 달마다 ‘추억’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면 생활사진가들도 1년의 사진활동을 정리하는 행사를 준비합니다. 함...

취재

‘윤미네 집’ +α, 전몽각의 재발견

  • 곽윤섭
  • | 2010.12.16

생활사진가 면모 뒤 작가적 솜씨 사진들 첫선 “생업으로 사진을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프로”   2010년 1월 1일, 20년 만에 복간되자마자 사진...

강의실

[12월, 이달의 사진] 우연적인 필연 입이 딱 벌어졌다

  • 곽윤섭
  • | 2010.12.16

한겨레가 뽑은 이달의 독자사진에 김민수(서울 송파구 가락2동)씨의 사진이 선정되었습니다. 한겨레가 마련한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 응모하실 ...

뭘까요

11월 정답및 12월 문제 나갑니다.

  • 곽윤섭
  • | 2010.12.16

11월치 문제 정답은 트램(노면 전차) 안에 있는 손잡이였습니다. 호주 멜번의 트램 안에서 찍었습니다. 정답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돌고래 꼬리, ...

취재

상상력과 사상의 렌즈로 보이지 않는 것에 초점

  • 곽윤섭
  • | 2010.12.10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4>로버트 프랭크 미국의 신분·인종 차별 포착, “대충 찍은 사진” 혹평 미국인들이 싫어한 ‘미국인들’ 결국 미국...

취재

1/125초, 본능이 삶과 현실 순간 포착

  • 곽윤섭
  • | 2010.12.07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3> 마크 리부 “나의 최고 걸작은 바로 내일 찍을 예정” 거리사진가로 여유와 낭만과 위트 녹여   미국이 베트...

취재

그날 ‘역사’를 찍고, 그후 한평생 ‘오늘’ 기록

  • 곽윤섭
  • | 2010.12.03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2> 요세프 코우델카 그때 그 시계, 피 흘리는 조국의 프라하의 봄 증언 유럽 떠돌며 끔찍한 파괴의 비참한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