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역사’를 찍고, 그후 한평생 ‘오늘’ 기록

곽윤섭 2010. 12. 03
조회수 8785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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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2> 요세프 코우델카
 그때 그 시계, 피 흘리는 조국의 프라하의 봄 증언
 유럽 떠돌며 끔찍한 파괴의 비참한 아름다움 찍어 
 
 
1968년 8월 21일. 한 남자가 왼손을 들어 시계를 보(이)고 있다. 이 남자의 오른손에 든 라이카는 시계와 심도 깊게 처리된 텅 빈 시가지를 찍었다. 이 시간, 이 거리를 주목하고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 순간 이후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제 곧 이 유서 깊은 체코슬라바키아의 수도 프라하 한복판에 소련군(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군대)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짧았던 프라하의 봄이 끝이 나는 순간이다. 이제 곧 이 남자는 카메라로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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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뉴스사진…소련군 탱크 밀려오자 지붕으로

 
요세프 코우델카(1938~)는 이 사진을 찍기 직전까지 단 한 번도 뉴스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사진을 아주 좋아한 항공기 엔지니어였다. 동시에 극장의 전속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나중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될 집시프로젝트를 찍고 있었다. 1968년 소련군의 탱크가 그의 조국을 침공하던 그날, 코우델카는 난생 처음으로 뉴스사진을 찍게 되었다. “나는 뉴스를 찍는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뭔가 큰 일이 벌어질 중요한 순간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겁없이 찍었다. 내가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고 친구들이 이야기해준 것은 나중이었다.”

 
코우델카는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한 건물의 지붕으로 기어올라갔다. 수천 명의 소련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했다. 집들과 버스들이 불타올랐고 총알이 날아다녔다. 시위대는 체코의 영웅 두브체크를 연호하며 소련군과 맞섰다. 돌을 던지기도 하면서 소련군들에게 “고 홈”을 외쳤다. 체코인들은 용감했다. 어느 순간 지붕에 있던 코우델카를 저격수로 오인한 소련군들이 그를 지목하며 체포하러 쫓아왔다. 코우델카는 간신히 달아났다.
   

총에 맞선 맨손의 힘에 세계가 감동
 
그의 필름엔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몇 단계 지인들의 손을 거쳐 문익점이 목화씨 빼돌리듯 필름이 뉴욕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당시 매그넘의 회장이었던 엘리엇 어윗이 이 필름을 받았다. 매그넘의 배려로 코우델카의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소련의 보복을 피하려고 사진가의 이름은 익명(P. P.-Prague Photographer)으로 처리했다. 소련의 야만적인 침공이 생생하게 폭로되었고 체코인들의 용맹스러운 항거는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코우델카는 이렇게 술회했다. “1968년에 찍은 나의 사진들은 체코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인 다큐멘트였다. 그러나 몇 사진들엔 더 큰 의미가 있다. 누가 러시아인이며 누가 체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한쪽은 총을 들었고 다른 한쪽은 맨손이란 점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맨손의 힘이 더 강하다는 사실이다.”     

 
이 사진은 야만의 역사를 목격하려는 한 사내가 긴장감이 감도는 폭풍전야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보여주며 이 사진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는 한 사진가의 시작을 보여준다. 시간과 역사는 흐른다. 그러나 사진 속 사내의 꽉 쥔 주먹과 시계는 1968년 8월 21일을 영원히 전하고 있다.
 

“사진 찍다 실종돼고 그 사실조차 아무도 모르게”
 
요세프 코우델카는 영국으로 건너갔고 1971년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매그넘에 합류했고 10년 넘게 활동했다. 그러나 뼛속 깊은 곳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방랑자였던 그는 한곳에 머무르지 못했고 카메라 외엔 거의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유럽을 어슬렁거리며 다니기 시작했으며 지금도 정확한 거처를 아는 이들이 몇 없다. 코우델카는 1989년 벨벳혁명이 일어난 후에야 고국을 방문할 수 있었다. 코우델카는 유럽 전역을 다니면서 파노라마카메라로 풍경을 찍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파괴되어 황량하게 변한 풍경만을 찍는다. 그는 말한다. “황량한 풍경은 끔찍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끔찍한 것은 풍경이 아닌 파괴다. 나는 그곳에서 비참한 아름다움을 본다”  

 
좀처럼 노출되기를 꺼리던 코우델카는 2008년 소련의 체코 침공 40주년을 맞이해 한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이제 71살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은퇴할 계획이 없다. 나는 사진을 찍다가 죽기를 희망한다. 내 여동생이 아주 꼬맹이였을 때 꿈을 꾼 적이 있다고 했다. 어느 날 내가 실종되어버리는데 절대로 찾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게 내가 가야할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실종되어버리고 그 사실조차 아무도 모르게 되길 원한다.”
※ 참고문헌: MAGNUM STORIES (PHAIDON)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한겨레신문사는 12월 17일부터 2011년 2월 27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델피르와 친구들’ 사진전을 개최합니다.

델피르는 사진계의 거목으로 출판인, 전시기획자, 예술감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60여 년 활동해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델피르와 인연을 맺은 사진가들이 델피르에게 헌정하는 전시입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요세프 쿠우델카, 세바스치앙 살가두, 헬무트 뉴턴, 로버트 프랭크, 로베르 두아노 등 세계 최고의 거장들이 참여합니다. 

곽윤섭기자 

[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2> 요세프 코우델카
 <1> 로베르 두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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