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생각이 본능으로 곰삭아 순간 포착

곽윤섭 2011. 10. 28
조회수 9835 추천수 0

   이갑철 사진전 <가을에>
 20년 된 사진들, 그때 찍은 게 당시일까 과거일까
 머리 가슴 눈 손 발,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찍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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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을 빼놓고 어떻게 사진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마는 여전히 더 중요한 것은 사진의 내용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작가는 관객들이 뭘 읽어주길 기대했을까? 과연 그런 기대를 하긴 했을까? 찍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찍었을까? 과연 생각을 하고 찍는가?

 

 작가라고 할 순 없지만 나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봤다. 사진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히 있다. 그때그때 매번 목적에 따라 사진을 찍는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 행사 등 스트레이트뉴스용 사진을 찍을 땐 비교적 명확하다.. 현장의 상황을 객관적으로(사진은 객관적이니 못한 매체이니 참 어려운 일이긴 하다) 전달하면 된다. 뉴스사진의 한 종류이면서도 스트레이트사진과는 전혀 다른 스케치사진의 경우엔 목적이 달라진다. 빨갛게 물든 담쟁이덩굴과 고색창연한 한겨레신문사의 외벽을 찍어 가을을 표현하는 것이 스케치사진의 한 사례인데 이런 사진은 감성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는 나로서는 관객(독자)들이 빨간색, 낙엽, 거친 질감의 건물벽 같은 상징을 읽어주길 기대한다. 바람이라도 불어주면 흔들리는 이파리들은 느낌을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다.

 

  꽃, 비녀를 꽂은 할머니들의 뒷모습, 지팡이, 플라스틱 바구니, 달리기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는 권총, 양복이나 한복을 입은 멋쟁이 할아버지, 학교 운동장, 20년 전의 운동복, 곱게 차려입고 곱게 늙은 할머니……. 이런 상징들을 찍는 것은 분명히 독자들을 생각한 행위다. 찍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찍었을까? 글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확하고 솔직하게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대체로 사진가들은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른다. 눈으로 본 것이 머릿속에서 반응하고 작동하고 손가락에 힘을 보낸다. 그러나 구도를 생각한다든가 프레임을 구성한다든가, 대비를 이루게 한다든가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찍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다. 지금 막 누르지 않으면 금세 변해버릴 대상을 앞에 두고 무슨 ‘생각’씩 이나 하겠는가.
 
 그렇다면 다시금 묻는다. 사진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눌러놓은 사진을 예술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래서) 사진은 쉽고도 어렵다. 본능을 자극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 수없이 많은 사진을 보고 수없이 사진 찍는 연습을 하고 수없이 본인의 사진에 이의를 제기하는 동안 소위 본능도 생기고 직관도 생긴다.
 
 어떤 사람은 머리로 찍고 어떤 사람은 가슴으로 찍는다고 한다. 손으로 찍기도 하고 발로 찍기도 하고 눈으로 찍기도 한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사진을 찍으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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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진주에서 태어나 1984년 신구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구석구석에서  우리 민족의 삶과 생명력을 담아온 사진가 이갑철이 11월 1일부터 20일까지 <류가헌>에서 사진전을 연다. 대략 1992년 무렵의 가을을 찍었으니 전시의 제목은 <가을에>라고 달았나 보다. 여름과 겨울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가을이다. 벼도 익어가고 하늘도 높아가고 이파리들이 찬바람에 취해 물이 들고 떨어지고 코스모스가 사람들 귓가에 입에 머리에 달려있는 것을 보면 가을이다. <가을에>는 20여 년 전 시골의 풍경을 담고 있다. 가을 운동회의 풍경도 있고 들판에 핀 벌개미취도 있고 이런저런 곳을 걸어가는 할머니도 있다. 지금 보면 예스러운 장면들이다. 그런데 이 사진을 찍었을 20년 전에도 이 장면은 예스러웠을 것이다. 시골이고 흑백이니 가을스럽고 예스럽고 그랬을 것이다. 사진을 감상하는 것이 참 어렵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편해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사진들을 찍었을까? 뭘 보여주고 있는가? 관객들이 뭘 읽어주길 기대했을까?
 
 류가헌은 종로구 통의동에 있고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온다.
 02-720-2010 
 
 

 곽윤섭기자 kwak1027@hani.co.kr  @kwakcli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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