햐안 삶이 피고 빨간 사랑이 익어 우주가 주렁주렁

곽윤섭 2011. 10. 05
조회수 10678 추천수 1

 시인이자 사진가인 신현림의 <사과밭 사진관>

사진 안과 밖 넘나들며 자화상의 향기 은은히

설치·합성 등 기법도 섞어짜며 곳곳 실험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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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자 사진가인 신현림이 새 사진집 <사과밭 사진관>을 냈다. 책 발매와 동시에 종로구 통의동 <류가헌>에서 같은 제목의 개인전도 열리고 있다. 신현림의 책은 영상에세이집을 포함해 네 번째이며 개인전은 2004년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2006년 <작아지고, 멀어지고, 사라지는 사람들>에 이어 세 번째다.

 이번 사진책과 사진전은 지난 7년간 작가 신현림이 경북 봉화와 충남 예산 사과밭에서 찍은 사진으로 꾸며졌다. 책을 몇 장 넘기다 보면 금세 실험적인 사진이 등장한다. 본인이 큰 사과 궤짝 안에 누워있는가 하면 사과밭에 구한말의 옛 사진과 이 사진집에 등장하는 사진이 걸려 있기도 하다. 바다 위에 사과가 하나 붕 떠있기도 하고 카메라를 흔들어 찍은 사진, 설치 사진도 등장한다. 신현림이 직접 쓴 ‘작가의 말’을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내 시집 속 한 구절을 읊으며 사과밭 근처에 단출한 내 집 한 칸을 짓고 싶었다. 그 곳에서 사랑을 누리며 청빈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어디서나 가슴에 사랑을 누리며 청빈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어디서나 가슴에 사람을 담는 여행이며, 그 사랑은 사진이 증거한다. 해와 바람 속에서 나무의 존재에 감사하며 나는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처럼 풍요를 기원하며 춤을 추었다. 맨몸, 맨발로 땅을 밟고… 무거운 옷과 구두와 양말을 벗어두고 나와 딸은 부드럽게 너울거렸다. 어깨에 날개가 달린 듯이. 발에 닿는 흙의 촉감을 나는 즐기고 즐겼다”

 

 사진집 곳곳에, 다시 말하자면 사과밭 곳곳에 작가 본인이 등장한다. 자화상, 딸과 함께 뛰어노는 스냅, 작가의 옷, 손, 시계, 책, 망치(?) 등 작가 신체의 일부, 혹은 작가의 일상에서 굴러다니는 여러 생활용품들이 사과와 함께 찍혔다. 이건 분명히 자신에 대한 표현이다.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고 사과밭과 작가 본인이 한데 어울려있기도 하고 사과에 대한 감정이입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책 뒤편에 나오는 정형탁(계간 컨템포러리아트저널 편집장)과의 인터뷰에 그런 내용이 들어있었다. 신 작가는 “한 그루 사과나무가 저의 전생일 수도 있겠죠. 저의 반쪽일 제 짝꿍일 수도 있구요. 사과 알이 우주고 제 몸이에요”라고 술회하고 있다. 최소한 신현림은 사과를 아주 좋아하는 모양이다.

 

 시인이기 때문에, 시인으로 더 유명하기 때문에 그의 사진에 시가 어떤 식이든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쓸려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 작가 신현림은 칼로 자르듯 말한다.

 “시는 시고 사진은 사진이다. 사진과 시는 철저히 분리한다. 제 사진 작품이 문학적 버전으로 취급받는 것을 결단코 거절한다”

 시인으로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사진작업을 취미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의 풍토에서 한 가지 이상의 전문작업을 하는 것을 폄하시키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것이 싫다고도 했다. 그 참 지나치게 까칠하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베를린천사의 시>를 찍은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진을 했고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으나 1984년에 <파리, 텍사스>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영화감독의 입지를 굳힌 다음에 비로소 자신의 사진을 인화하기 시작했다고 하지 않는가.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연 것이 그로부터 2년 뒤인 1986년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나친 결벽증이라고 생각된다. 사진이 되고 시도 되니 시인이며 사진가라고 불리는 것이다. 르네상스맨은 자랑스러운 호칭이고 문학과 회화를 모두 능히 한다는 것은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여러 분야에 모두 능통하면 분야끼리 시너지효과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다시 사진집을 펼쳤다. “신현림의 사진은 문학적이다”라는 말을 못 쓰게 하니 다른 표현을 찾아야겠다. 거칠다. 설치와 자화상과 스냅과 기념사진이 뒤섞여 있어서 사진읽기가 매끄럽지 않다. 작가의 선택이니 뭐랄 수 없다. 그녀가 그것을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사진에도 문법이 있는데 하나의 장편을 쓰면서 여러 가지 기법을 넘나드는 것은 사진 입문자들이 바라보기엔 조금 실험정신이 과한 것이 아닐까싶다. 사진집은 눈빛에서 나왔고 류가헌에서 하는 전시는 10월 16일까지 열린다. 류가헌(02-720-2010)

 

작가와의 만남 신청하실 분은 이곳으로---> http://bookbbs.hani.co.kr/xe/?mid=bookinfo&page=1&document_srl=2947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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