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 간 빈 공간, 채움은 사유의 몫

곽윤섭 2014. 01. 16
조회수 12934 추천수 2

'스페이스22' 개관기념 5인전 ‘바깥-풍경’

안과 밖 그 경계의 틈에 싹 터

드러난 침묵에 숨은 아름다움

 

 사진·미술의 대안공간을 표방하는 ‘스페이스22’의 개관기념전 ‘바깥-풍경’이 열리고 있다. ‘스페이스22’는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번 출구에서 1분거리에 있다. 2월 14일까지. 오전 11시~7시. 매주 일요일은 휴관. 설연휴(1월 30일~2월 2일) 휴관. (02-3469-0822) 작가와의 만남이 1월 18일(토요일) 오후 3시~5시에 전시관 세미나룸에서 예정되어있다.
 
 ‘바깥-풍경’전의 참여작가는 박기호, 김혜원, 김영경, 서영주, 이건영 5명이다. 5명이 참가하니 첫 관전포인트는 5명이 어떻게 서로 다른지를 보는 것인데 그 점은 전시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기획자가 이미 고민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기사 후반부에 전시기획자이자 사진비평가인 최연하의 서문을 그대로 소개할 것이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와 별도로 보도자료와 추가로 받은 전시 이미지를 살펴본 느낌을 설명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을 보지 않고 사진만 봐도 풍경사진인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받은 것 중에선) 다섯 작가의 사진 어디에도 사람이 들어있지 않다. 김영경의 사진에서 다리 왼쪽에 사람이 보이긴 하지만 굳이 보고 찍은 것 같지 않으니 넘어간다. 한 명씩 짚어보자.
 
space-001.jpg » 박기호  

 

  박기호의 사진은 빈집의 내부 공간이다. 사람이 살다가 나간 흔적의 풍경이다.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http://photovil.hani.co.kr/55801처럼 사람이 사는 것도 풍경이며 장수선의 ‘가정동에서-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기록’http://photovil.hani.co.kr/321561처럼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풍경이다. 그런데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붙박이장의 문, 벽, 살짝 열린 방문이 제공하는 여러 공간의 분할과 바랜 빛과 거울 같은 것이 걸렸던 흔적(그 흔적 또한 빛이 만든것이리라) 정도다. 나머지 4명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었고 살았고 그리고 급기야 떠난 풍경이다. 장과 벽과 방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많을 수 있다. 살았던 사람을 떠올린다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읽어낼 요소가 부족하다.
 
 

space-002.jpg » 김혜원

space-003.jpg » 김혜원

space-004.jpg » 김혜원  

 

  김혜원의 사진은 ‘34개의 야외 주차장’이다. 기획자의 서문에서 에드워드 루샤의 작업이 모티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해서 나도 알게 되었다. 모티브를 따 오는 것은 복제도 아니고 모방도 아니다. 검색해서 에드워드 루샤의 이미지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에드워드 루샤는 1962년에 26개의 주유소 연작을 했고 1967년에 34개의 주차장 연작도 했다. 26개의 주유소는 땅에서 찍었고 34개의 주차장은 하늘에서 찍었다.

  김혜원의 주차장은 땅에서 찍은 사진이다. 주차장도 주유소도 사람이 이용하려고 만든 것이다. 지금 사진에서 주차장은 비었으니 사람의 흔적이다. 가만 보니 완전히 버려진 것 같지는 않다. 바닷가 해수욕장의 주차장은 계절이 바뀌면 다시 사람들이 찾아줄 공간이다. 어쨌든 사진은 과거이고 단절이고 기록이며 ‘거기에 있었음’이니 빈 주차장은 비어있다. 마틴 파의 ‘라스트 파킹 스페이스(한 자리 남은 주차공간)’ 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김혜원의 사진에선 뭘 읽어야할 것인가. 하나하나 구획이 그려진 주차공간에 머물다 간 자동차와 자동차에 탔던 사람의 이야길 떠올려야 하는 것인가? 많이 보여주니 그래도 훨씬 볼거리가 많다.
 

space-006.jpg » 이건영

  이건영의 사진 역시 버려진 공간의 풍경이다. 내용에선 그러한데 새카만 흑백이라 갑자기 튀어올랐다. 쓰레기 처리장, 학교 운동장, 컨테이너 박스 하나가 있다. 있어야 할 곳이 아닌 것 같은 자연공간에 내다 버린, 놀다 떠난, 이용하다가 버리거나 떠난 인공물이 놓여있다. 가히 ‘버린 풍경’이라 할 만하다. 썸네일로 운동장을 보다가 별의 궤적 사진이 떠올랐다. 별이 하늘을 돌면서 세월을 보내듯, 이 공간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숲으로 산으로 바다 밑으로 돌고 돌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space-007.jpg » 서영주

space-008.jpg » 서영주

  

  서영주는 폐교를 찍었다. 이름이 그러니 벌써 버려진 공간인데 이순신장군이 지키고 있고 폐교에 들어선 교회의 하느님이 지키고 있고 이승복 소년이 지키고 있으니 쓸쓸하지 않은 풍경을 찍어서 쓸쓸함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서영주는 이 공간을 지키고, 지켜보고 있다. 누군가 작품으로 남겨서 후대에 전하게 되었으니 쓸쓸하지 않다. 

  영매가 접신하려면 어떤 물건이 필요하다. 스투디움이 진행되려면 코드가 담긴 대상이 필요하다. 서영주는 최소한 공부(study)할 재료는 하나씩 담아뒀으니 친절하다.
 

space-009.jpg » 김영경

space-010.jpg » 김영경  

  김영경은 통일 혹은 분단 이데올로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이 흔적은 그런데 흔적이 아닐 수도 있는데 2014년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보고 읽을거리가 가장 많다. 보이는 것들이 모두 말을 하는지,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래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지에 대해선 내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바르트는 “생각에 잠기게 하는 사진이 더 급진적이다”라고 책에 썼다. 생각하고 있다.
 
 다시금 말하자면 뭘 찍을지, 어떻게 찍을지를 살피고 난 다음엔 필연적으로 “왜 찍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작가의 의무이다. 사진관객도 같은 의무를 가진다. 작품을 보면서 뭘  어떻게 찍었는지만 볼 것이 아니고 “왜 찍었는지”를 봐야한다. 전시기획사에서 보낸 전시장 전경을 보니 사진이 아주 많다. ‘스페이스22’는 강남의 요지에 아주 잘 만든 공간이라고 하니 가서 보라. 전시 시작 전에 찍은 사진이라서 관객이 하나도 없이 버려진 공간처럼 보인다. 전시장은 사람이 사람들을 위해서 작품을 보라고 만든 공간이다. 관객이 가득찬 풍경이 되어야 한다.
 

전시 서문
                                                   
 사진과 미술 대안공간, SPACE22의 개관기념전으로 <바깥-풍경>사진전을 개최한다. <바깥-풍경>전은 대도시화, 산업화, 관광 소비문화 및 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중적으로 생성되거나 용도폐기 된, 우리에게 친밀하고도 낯선 풍경(공간)을, 새롭게 태어난 공간인 SPACE22에 담아낸 전시이다. 전시로서의 풍경사진에 대한 다채로운 사유와 함께 한국사진의 미학적, 정치적 이슈들을 모색해보고자 ‘바깥-풍경’이라는 타이틀을 생각하게 되었다.
 
 풍경(風景)이라는 단어 속에서 바람이 만들어낸 경관, 바람과 햇볕, 그리고 그림자의 경관이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바람과 햇볕과 그림자의 표상이 곧 풍경인 것이다. 아름다운 말이다. 그 단어의 함의 외에도 ‘도시, 사회, 인간, 경제’ 풍경 등등, 풍경은 인간 삶을 둘러싼 환경에서부터 꽃 한 송이의 생태까지 영역을 지을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 하지만 대개의 풍경사진은 전적으로 피사체(대상)에 의존하고 있는 듯, 그동안 아름답다고 이미 ‘말해진’ 피사체가 찍힌 풍경사진은 ‘아름다운 풍경사진, 좋은 사진’이 되어왔다. 풍경은 아름다워야 하고, 아름다운 것이 사진으로 찍혀야한다는 매뉴얼 코드에 이미 길들여진 것이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의 정밀한 기계성과 엄청나게 가속화된 네트워크망을 통해 ‘똑같이!’ 아름다운 풍경사진을 우리는 수없이 보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 풍경사진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공식이 생겼을까. 게다가, 그러한 풍경사진이 계속 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깥-풍경>전은 풍경의 다양성을 풍경의 내외에서 사유해보고자 했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보편과 일반의 의미들의 밖에서 의미의 안을 살피고 있다. 사진 속의 풍경은 보는 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드러나’있기만 하다. ‘드러난’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진은 난해하고 위험하다. 그래서 아름답다고 명명되어진 대개의 풍경사진처럼, 어떤 식으로든 범주화한 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그물망 안에 가둬두어야 한다. 하지만 매순간 달라지는 풍경을 어떻게 범주화할 수 있을까. 그래서 중요한 의미의 중심이 아닌, 의미의 바깥에서 ‘사유이미지(denkbilder, 벤야민용어)’가 중요해진다.
 
 김혜원의 <34개의 야외 주차장>은 개념미술가, 에드워드 루샤(Edward Ruscha)의 ‘34개의 주차장’이 작업의 모티브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진들은 비슷한 대상의 나열로 보일 수 있으나, 한반도 곳곳에 느닷없이 펼쳐지는, 광활하기까지 한 야외 주차장의 기이한 풍경을 낱낱이 살펴보게 하는 묘한 입장에 처하게 한다. 어느 것 하나도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놀랄 만큼 많은 사실들이 들어 있다. 그래서 관객은 그의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1)  

  텅 빈 공간을 파고들어가는 박기호의 작품 ‘Beyond Memories, 사라지는 흔적’은 철거 직전의 빈집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해외에 머물다 한국에 돌아와 발견하게 된 재개발지역의 풍경은 작가에게 생경스러움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래서 집안에 남아있는 이불가지, 그림들, 자전거 등등 ‘그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이야기’ 2) 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흔적은 언제나 상처로 드러나기에, 박기호의 사진작품 속에 상처로 기입되어 있는 누군가의 삶의 공간은, 동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거주지의 또 다른 풍경이기도 하다.
 

space-005.JPG » 전시장 풍경
 검고 아득한 이건영의 <흰 그늘진 마당>은 용도폐기 된 공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건영의 사진은 멀리서 가까이로 움직이며 계속 들여다보게 한다. ‘한 삽 푹 퍼서 언덕 아래로 뿌리면 그대로 몸이 되고 피가 돌 것 같구나 // 목단 아래로 검은 흙더미 한 채 배달되었다 / 누군가는 퍼 나르고 누군가는 삽등으로 다지’3) 고, 계속 변화 중인 땅의 모습은 마치 사람의 몸처럼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고, 그것이 삶의 마당임을 흑백의 깊은 톤으로 살피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또 다른 흑백의 웅숭깊은 시각이라 할 만한 서영주의 <공상空像>에서는 전라도 지역의 폐교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폐교의 이미지들을 통해 밀레니엄 이후 급격하게 대형화, 집중화되고 있는 한국 현대의 삶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공空상像>은 한 때 그(나, 너)가 머물렀을 곳이 사라지거나 공터로 남아 동시대 우리의 기억 속에 어떻게 살아있는지, 현재의 관점에서 표상하고 있다. 근대와 (탈)근대의 시기가 불연속적이고 모호하기만 한 내게, 냉전의 표상 이승복과 충효와 애국심의 상징인 이순신, 새마을 운동의 산물인 신작로’4)와 이 모든 이데올로기들을 한 몸에 녹여내 형제공동체를 설파한 교회의 십자가들은 친밀하고 낯선 공감대의 영역이자 대도시 바깥의 기이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김영경의 <Border Line>은 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해 버려진 채로, 하지만 거대한 의미를 생성하고 있는 풍경이다. 급수탑, 노동당사, 승일교, 공동창고는 죽은 지 오래됐지만 살아서 반공이미지(유령)로 계속 출몰하고 있다. 아무 말 없이, 아주 평범하게 주목받지 못한 죽은 이미지(유령, living Dead)들이 정치하게 힘을 획득할 수도 있음을 김영경의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이처럼 <바깥-풍경>사진전의 사진들은 다른 방식의 아름다움으로, 풍경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바깥’은 중심의 바깥이자 의미의 외부이지만, 프레임의 바깥에서 무한 의미를 생성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이기도 하다. 또한 ‘안’을 잘 살펴, 안의 ‘한계’를 드러내어 이제까지 불가능한 실천의 지대로 내몰았던 것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틈의 공간이기도 하다. 바깥은 안과의 경계를 지워냄과 동시에 안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서울의 한 중심에 위치하면서 서울을 전망할 수 있는 공간, SPACE22의 지형학적 위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바깥의 경계에서, 사진의 ‘가능성’을 깊이 사유해보고자 하는 의도로 개관기념전을 기획한다.

최연하(전시기획, 사진비평)

 

1) 최연하, <김혜원의 풍경>, Curator's Note중에서, 2009

2) 박기호 작가노트 중에서, 2013

3) 조유리의 시, ‘흰 그늘 속 검은 잠’ 중 일부

4) 최연하, <공상_어디에나 있되 텅 빈 근대의 상>, Curator's Note, 2011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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