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으로 찍은 사진, 사진으로 쓴 논문

곽윤섭 2015. 01. 06
조회수 12931 추천수 2

 김승현-엄정윤의 ‘경동시장, 그 사회적 공간’
‘글+사진 사진+글’식의 포토에세이와 전혀 달라

 

gd004.jpg » 46쪽/김승현


  눈빛포토에세이 <경동시장, 그 사회적 공간>이 새로 나왔다. 이 책은 여러모로 협업의 산물이고 사진의 활용 혹은 사진가치의 재발견, 사진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아주 바람직한 시도이다. 포토에세이의 사진은 김승현, 이치환 2인이 협업했다.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는 ‘공간’에 대한 논문식 고찰은 김승현과 미디어공간 전공자 엄정윤의 협업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경동시gd0001.jpg장, 그 사회적 공간>은 경동시장에 관한 기록인데 시장하면 떠오르는 시장 사람들에 대해 주력하기보다는 시장이 서있는 장소(물론 그곳에 상인이나 손님도 있다)에 주력하고 있다. 시장은 어떤 곳이며 시장이란 공간이 어떻게 변해왔고 도시 속의 시장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연구하는 보고서의 형태를 띠고 있다. 말하자면 <경동시장-사회적 공간보고서>를 펴낸 것인데 사진과 논문이 협업했다. 루이스 하인은 여성, 남성, 이민자, 아동의 노동을 사진으로 찍어 보고서를 냈다. 사진으로 할 수 있는 학문적 보고서는 사회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였던 살가두는 사진으로 노동에 관해, 이민자에 관한 보고서를 썼고 아프리카의 기아사태에 관해 보고서를 썼다. 지금 전 세계를 돌고 있는 <제네시스>는 태고적 지구가 아직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생태학적, 인류학적 보고서였다. 

 

 <경동시장, 그 사회적 공간>은 사진을 전공하진 않았으나 사진을 진지하게 찍고 싶어하는 우리 사회 각계의 원로급 학자, 연구자들에게 좋은 비전을 제시하는 사진집이다. 프롤로그에서 김승현은 “그러므로 인간은 집과 시장과 함께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집이며 사람들이 (뭔가를) 사는 곳은 시장이다. 아마도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 장안의 화제작 <국제시장>은 어려운 시기를 견뎌온 국제시장 사람들의 이야길 담고 있는데 영화가 공간에 주력하지 않았으나 결국 국제시장이란 공간이 이들의 삶을 규정한 것은 맞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 식민지지배층이 남기고 간 물품을 사고 파는 곳으로 시작되었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미군병력과 물자가 모두 부산으로 들어왔고 피난민도 부산으로 밀려들어 왔고 특히 이북 출신 실향민들도 이곳에서 정착했다. 일본 강점과 한국전쟁은 모두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원인에 따른 결과이니 영화 <국제시장>이 윤덕수의 파란만장한 개인사를 다루었지만 결국 ‘꽃분이네’란 가게가 자리 잡은 국제시장이란 공간에 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다만 접근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책에 따르면 경동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농민들이 생산, 채취해온 농산물과 채소 및 임산물들이 옛 성동역과 청량리역을 통하여 몰려들어 그 반입과 판매를 위해 인근의 논을 매입한 공터에서 장사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봉건시대의 농사짓던 공간이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추상적 시장공간으로 변화된 곳이다. 1960년 공설시장 개설 허가를 받은 후 서울 시내에서 모든 농산물을 골고루 갖춘, 가장 싸게 파는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으면 1960년대 후반에는 한약재들의 특종물품을 취급하는 전문시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경동시장은 도시 속의 농촌을 볼 수 있는 고유한 장소로 그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라고 묘사되어있다. 도심 속 대규모 재래시장은 다 비슷한 사회적 기능을 해왔다.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대구의 현 서문시장이나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광주의 양동시장도 지금은 도시 속의 대표적인 상설 재래시장이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다를 수 있겠지만 현재는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시장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상인들의 삶은 비슷한 궤적을 밟아 왔을 것이다.
 
 김승현 이치환의 사진과 더불어 공간에 대한 김승현과 엄정윤의 논고로 구성된 <경동시장, 그 사회적 공간>은 위와 같은 맥락을 이해하고 난 다음 접근해야 한다. 사진 단독으로 구성된 사진집과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사진이미지만으로 구성된 사진집이라면 행간을 읽듯 사진과 사진 사이의 맥락과 연결성이 핵심이지만 글, 그것도 감상적인 글이 아니라 논문에 가까운 전문가의 논고와 사진으로 구성된 이번 책은 해당 테마인 시장의 공간성에 관한 기초 지식을 안고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다. 존 버거와 장 모르가 함께 쓰고 찍은 <말하기의 다른 방법>에서 이미  실험적으로 안내한 것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것이다. 존 버거는 사진과 글을 섞어 둔 형태, 사진만으로 이루어진 시퀀스형태의 나열을 통한 스토리텔링의 시도 등을 보여주고 있다. 중간에 미리 짚어두지만 “사진집은 사진으로만 이루어져야 하고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는 식으로 단정 지어버리는 것은 여기서 내가 말하는 것과 방향이 다르므로 시빗거리도  아니다. 존 버거는 사진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찰을 했던 미술평론가, 저술가였다. 사진도 말하고 글도 말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며 이젠 상식이다.

 

gd001.jpg » 9쪽/김승현

gd002.jpg » 28~29쪽/김승현

gd003.jpg » 42~43쪽/김승현   


 
 <경동시장, 그 사회적 공간>는 그동안 선보였던 글 더하기 사진 혹은 사진 더하기 글로 이루어진 포토에세이집과 완전히 다른 구성이다. 적당한 사진을 적당한 글로 때우려 했던 몇몇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업과 다르게 추상적 공간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한 학자의 글과 그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구성됐다. 글을 잘 쓴 학자가 찍은 사진이니 어느 정도 허술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개인전을 열었던 적이 있었고 전업사진가만 아니었을 뿐 오랫동안 사진을 취미 이상으로 찍어왔으니 사진의 수준이 가볍지 않다. 사실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사진계엔 큰 병폐가 있다. 어떤 사진가와 사진을 소개하면 먼저 나오는 질문은 누구에게 배웠는데? 뭐하던 사람인데? 얼마나 했는데? 이런 식으로 퍼져나간다. 전공이 사진이었는지, 학교는 어디였고 사진선생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경력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따진다. 그게 아니고 이런 질문이 나와야 한다. 뭘 찍는 사람인가? 어떻게 찍는 사람인가? 본인은 사진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는가? 사진을 보고 사진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사진계의 병폐 때문에 출신성분 따지느라 최민식, 김기찬 같은 분들이 제때 조명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과거형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 주위엔 이름하여 주류는 아니지만 실력  있고 포부 있고 소신 있는 사진가들이 힘들게 사진작업을 하고 있다. 
 
 잠깐 길을 우회했다. <경동시장, 그 사회적 공간>이 기존의 것과 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느냐면 말하는 톤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승현은 후기에서 “시장이란 공간은 근대적인 삶에 필수적인 장소입니다. 이 시장 속에서 인간은 물건을 매개로 다른 인간들과 연결됩니다. 이것은 삶의 기본바탕입니다”라고 했다. 사진과 인문학이 한 때 유행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인문학은 사람이 기본이고 사람의 삶이 기본이고 사람이 사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물론 바르트나 손탁 같은 석학들의 사진에 관한 철학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공간도 중요한 것이다.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어 도시가 커졌고 없던 곳에 시장이 생겼고 농촌에서 농산물이 도시로 들어왔다. 사람의 삶은 같은데 공간이 달라지면 삶의 구조가 바뀐다. 바뀐 구조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닐 때 불행이 발생한다. 피난민들이 상인으로, 손님으로 더불어 형성한 국제시장이든 큰불이 나서 몇 번이고 전 재산을 날려버린 대구 서문시장이든 개발과 개발의 반복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공간의 주체에서 밀려나고 있는 경동시장이든 마찬가지다. 경동시장에도 ‘덕수’와 ‘영자’가 있을 것이다. 아픈 사연을 안고 있지만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gd005.jpg » 90쪽/이치환

gd006.jpg » 120~121/이치환

gd007.jpg » 134쪽/이치환

gd008.jpg » 142~143쪽/이치환

    
 이 책은 1장에서 10장까지로 구성되어있고 책에 나오는 사진의 절반에 해당하는 6장에서 10장까지는 이치환이 담당했다. 이거 어려웠을 것이다. 공간적으로 같은 경동시장이었는데다가 둘 다 흑백이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겹치는 대목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면서 두 사진가를 비교해봤고 차이를 발견했다.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고 둘의 역할분담이 뚜렷했다. 전반부를 맡은 김승현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차분하게 공간을 바라봤다. 후반부를  맡은 이치환은 시장이란 공간에 섞여들려고 노력했다. 김승현은 어쩔 수 없이 추상공간으로 변모하는 경동시장을 목격하고 있고 이치환은 그래도 남아있는 희망을 보려고 가게 안을 기웃거렸다. 아직도 ‘꽃분이네’가 남아있는 경동시장을. 둘의 사진에 사람이 들어 있거나 없거나의 차이만으로 다르다고 규정한 것은 아니다. 차분하게 두 사진가의 사진을 보면서 차이를 발견해보라. 물론 여기 소개하는 여덟 장만으로는 힘들다. 나는 책을 보면서 전체 사진을 다 보고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어떻게 사진으로 시선의 차이를 낼 수 있는지를 공부하고 싶다면 이만큼 좋은 사례가 없을 것이다. 감상적 에세이가 아닌 연구에 따른 결과물인 논고와 사진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으면 역시 이 책을 볼 필요가 있다. 사회학, 인류학, 문학, 역사학과 사진의 결합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면 이 책을 참고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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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윤섭 선임기자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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