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도 우리처럼, 쿠바에서

사진마을 2016.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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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쿠바다] <5> 500년 고도 트리니다드 

사람이 살고 죽고 부수고 노래하고 걷고 일하고

축구도 하고 춤도 추고... 쿠바에 사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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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alquier cama es mejor que no tener cama.”
 201300001.jpg »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케야르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스페인의 정복자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케야르(1465~1524)가 쿠바에 상륙하여 깃발을 꽂았다. 트리니다드는 벨라스케스가 쿠바의 여러 도시 중에서 가장 먼저 침입한 곳은 아니지만 아바나, 산티아고 데 쿠바와 더불어 1514년에 발을 디뎠던 곳이다.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는 스페인어로 정복자란 뜻인데 특히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잉카와 아스텍 문명 등 현재 스페인어를 쓰는 남미의 모든 나라의 고유한 문명은 이 콘키스타도르들이 다 파괴했다. 스페인의 입장에서만 쿠바 발견이며 정복일 뿐이지 원주민들에겐 날벼락 그 자체였다.


   어쨌든 트리니다드는 오래된 도시이며 어제까지 아바나에서 본 쿠바와 전혀 분위기가 달랐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속속 튀어나왔다. 아바나엔 현대식 건물이 꽤 있었지만 트리니다드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88년)에 지정될 정도로 고풍스럽다. 이글레시아 데 산타 아나 트리니다드 교회는 2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아침 달리기 때 이정표로 삼았다. 이제 올드카를 보고도 무덤덤해졌었는데 원색의 담벼락들이 다시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쿠바사진이라면 떠오르는 몇 장면 중에서 매력적으로 등장했던 낡은 원색의 배경이 바로 이곳 트리니다드 도처에 산재하여 있다.
   왜 셔터를 누르는지, 왜 사진을 찍는지 노골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자문해봤다.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찍는 사진이 다른 사람의 쿠바, 아바나, 트리니다드, 빈티지카 등과 다르긴 한가? 뭐가 다르겠나? 남들이 찍은, 혹은 이 순간에도 내 옆을 지나가면서 찍는 사진과 다를 수가 있나? 내 사진 100장을 쿠바 사진 1만장에 섞어 넣고 잘 저은 다음, 다시 골라낼 수 있을까? 류가헌에서 누군가 쿠바 말레콘 사진전을 한다는데 가봐야겠다. 뭐가 다른지. 다르기나 할까? 안 다르다면 내가 왜 찍고 있는가. 몇 년전에 순천만 S자 라인의 일몰을 찍으러 갔다가 두 손을 들었던 것과 이게 뭐가 다른가.
 
   왜 사진을 찍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전에 먼저 등장하는 문제는 남과 다르게 찍기였다. 이렇게 정리하고 트리니다드의 골목을 걷기 시작하자 오른손 검지가 조금 점잖아졌다. 그렇지만 쿠바, 그것도 500년 묵은 트리니다드의 내공 앞에서 나의 카메라는 채신머리 없게 수시로 내 얼굴을 가리곤 했다. 품위를 지켜야 하고 사진도 찍고 싶으니 타협했다. 찍을 때마다 이 사진을 어디에 쓸지 명분을 스스로 제시하기로.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바둑판 구조라서 한 블록을 지나면 다시 사방이 펼쳐졌고 내가 지나온 길을 제외하고 세 가지 대안이 있었다. 곧장 갈 것이냐, 좌우로 갈 것이냐. 3cuc(3,500원정도) 주고 산 쿠바지도는 있었지만 트리니다드의 옛 시가지 골목지도는 없었다. 저기 깃발 아닌 쿠바투어 부채를 든 남자를 졸졸 따라가는 유럽인들과 다르게 안내인도 없었고 굳이 가야할 목적지도 없었다. 대신 시간이 많았고 마음의 여유가 있었고 길을 잘못 들었다고, 잘 선택하지 못했다고 면박을 줄 사람도 없었다.
 
  “거기선 거기를 갔어야지. 거기까지 가 놓고서 거길 빼먹었다고? 헛걸음했군…….” 이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들 듣고 사는가? 용케 우연히 그곳을 다녀 왔다고 해도 사람들은 두 번째 기준을 던지며 나의 여행을 검증하려고 든다.
  “그래 거기 가는데 어디를 거쳐서 갔다 온 건가? 뭐 세 시간 걸렸다고? 시간 낭비했군. A에서 B를 거쳐 가는 게 아니라 C를 지나가야지……. 쯧쯧…….” 이라는 핀잔은 또 얼마나 많이 듣고 사는가? 정말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듯……. 아니다. 소는 정확한 뒷걸음으로 깐죽거리는 쥐를 노렸을 것이니 이 표현은 적절치 않다. 다시 표현해보자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그들이 원하는) 정확한 경로로 그곳을 다녀왔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세 번째 기준을 슬쩍 내밀거나 금방 화제를 돌려버린다. 집요한 사람들은 세 번째 기준을 제시한다.
 “그 경로로 거길 찾았다면 잘 했네. 그 정도라면 A 식당에서 AA-1을 먹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라면서 생전 처음 듣는 메뉴를 이야기한다. 이 때 그의 눈빛은 이글거린다. 실제 그런 메뉴가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는 안중에 없다. 더 집요한 사람들은 화제를 돌려버리는 부류다. 본전을 못 찾았으니 이번엔 아주 난이도가 높아서 일단계도 통과 못할 화제를 꺼낸다.
 “내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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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JPG » 쿠바 사람들은 자기 집 앞을 주기적으로 청소해야하는 법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거리엔 청소도구를 파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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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JPG » 페로 사마노씨

201311.JPG » 아드리아노, 제시카, 그리고 가는 귀가 먹은 할아버지

201312.JPG » 나는 사진을 찍는 댓가로 돈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 쿠바에서도 그러했는데 이 분에겐 얼마간 줬다. 쿠바여행을 앞두고 2달 반 스페인어 공부를 조금씩 했다. 현지에서 쓸려고. 이 할아버지와 대화를 하던 중 본인이 먼저 나이가 90살이라고 밝혔다. 뜬금없이 내가 “Cualquier cama es mejor que no tener cama.”라고 했더니 울먹울먹하는게 아닌가. 적절하지 않은 순간에 저 표현을 썼던 것이다. 너무 미안해서 꽤 돈을 드리고 물러났다.

 

201313.JPG » 구슬프게 트럼본을 부는 이 남자는 아사로 마르티네즈 아길레라씨. 무려 5곡이나 연주했다. 우리가 모르는 쿠바 음악이 많았다. 루이 암스트롱 같은 뮤지션을, 알게 된지 불과 몇년이 안되었다고했다. 사회주의 쿠바에서 미국과 담을 쌓았으니, 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봉쇄하자 쿠바에서도 미국을 외면했다. 인터넷 사용도 없고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으니 미국 재즈를 알 턱이 없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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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5.JPG » 강아지 이름이 또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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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7.JPG » 토요일엔 학교 안가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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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8.JPG » 원색의 담벼락은 정책적으로 칠하는 것이 분명했다. 관광객이 오지 않는 거리에는 흙벽이 방치되어 있었다.

201329.JPG » 5호 담당제와 유사한 혁명수호위원회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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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의 나라라더니 단 한 녀석도 야구하는 것을 못 봤다. 온 동네 아이들이 모두 어떤 종류의 공을 차면서 축구라고 하고 있다. 8년 정도 후의 월드컵 때 우리는 쿠바가 결승에 올라오는 것을 볼지도 모르겠다. 공 차던 아이들을 뒤로 하고 골목 끝에서 사거리를 만났다. 어디로 갈까? 저쪽에(여기서 저쪽이란 그냥 저~쪽을 말한다) 뭐가 있을 것 같아서 방향을 잡았다. 쿠바 온 삼일 만에, 트리니다드 온 지 이틀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초로(여기 반전이 있다)의 남자 두 명이 삽을 들고 집을 부수고 있었다. 부수는 것은 집이 아니라 거리 쪽에 면한 벽이었다. 재건축이라고 말했는데 짐작컨대 외벽을 헐고 새로 단장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볼 땐 부수고 있었다. 파괴 현장이 잘 보이는 맞은편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토요일 오후, 무료한 참에 볼거리를 만난 동네 사람 서너 명이 이미 불구경하듯, 싸움 구경하듯 자리를 잡고 앉아 이따금 관전평을 던지는 관객 마냥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따금 현장의 선수들에게 말을 던지기도 했다. “이대호! 그거 제대로 함 넘겨봐”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옆에 가서 앉았기 때문에 옆에 있게 된 동네 주민 노엘씨가 먼저 말을 건넸다.
 이 집이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집인데, 무려 식민지풍의 집인데, 1945년에 세워진 집인데 완전히 헐지는 않고 재건축하려는 것이다.
 저 사람 집인가?
 그렇다.
 저 사람 나이는 몇 살인가?를 물어보려다가 스페인어 문장이 갑자기 (뭔 갑자기)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 “나는 53살이다”라고 먼저 말하고 삽으로 벽을 내려치는 남자를 가리켰다. 삽을 든 집주인은 59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엘은 집주인에게 “야 이 남자는 53살이라는데”라고 소리쳤다. 집주인 59살 펠리페는 나를 힐끗 보더니 “뭐야 저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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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한동안 펠리페씨 형제의 삽질과 곡괭이질을 구경했다. 좀 짜증이 났다. 저 정도면 10분이면 싹 다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냥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들이 부수고 있는 벽은 콘크리트 한 줌, 철근 한 줄 섞이지 않은, 흙과 나무로 골조를 만든 흙벽이었다. 금방이라도 끝낼 수 있는 일을, 주말을 맞이하여 뭔가 소일거리가 필요한 집 주인과, 구경거리가 필요했던 동네주민들의 욕구가 서로 맞아 떨어져 천천히 즐기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충분히 설득력이 있다-이번 토요일에 동네 사람 모두를 위해 공사를 단행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단시간에 철거해 버릴 수가 없다고 짐작한다. 삽으로 한 번 내려치고 뭔가 관찰하고, 또 한 마디하고, 구경꾼의 한 소리를 듣고, 2루 도루를 지시하거나 작전 타임을 부르면서 경기를 꾸려가고 있었다.
   나와 같이 관전하던 노엘이 “지금 철거하는 저 집은 식민시대풍의 건축물이고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집이며 나머지 집들은 기껏해야 50년 쯤 되었을 뿐”이라고 세 번째 강조하는 것을 듣고 일어섰다. 다음 사거리에선 왼쪽을 택했다. 그 쪽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었기 때문이다. 뭔 일이 있었다. 누군가 세상을 떴다. 오래된 리무진이 어떤 집 앞에 서있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화환을 차 지붕에 얹고 있었다. 저건 장례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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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두 컷 누르다가 조용히 서서 관망했다. 이윽고 (그야말로 이 단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검은색 혹은 갈색의 관이 집에서 나왔고 남자들이 차에 관을 실었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듯이 느리게 느리게 장례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를 둘러싼 사람들의 피부색으로 봐서 지나던 관광객이 나처럼 관망하다가 서있는 모습도 있었다. 가라앉은 공기 사이로 친척이나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눈으로 인사를 나누고 눈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중년 남자 하나가 옆에 선 다른 남자의 귀를 슬쩍 찔렀다. 장난을 치는 얼굴이었는데 받아들이는 쪽에서 적당한 대응을 하지 못하자 둘다 머쓱해졌다. 민망하겠다…….
  다시 한번 이윽고 직계로 보이는 유족들이 자동차 뒤를 따르는 것이 보였다. 어깨동무를 하여 스크럼을 짠 형국이 되었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낮게 울음을 토하면서 덜컹이는 시골의 흙길을 굴러가는 장례차를 따르고 있었다. 지는 해의 방향으로 장례행렬이 떠나는 것을 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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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사거리에 왔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갔다. 200년 되어 폐허로 변한 이글레시아 교회가 석양에 황금빛으로 번쩍거렸다. 관광객들이 교회 건물 이곳 저곳에 걸터앉아 책을 읽거나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동네 주민이 빨간 보자기를 지고 교회 앞 언덕을 올랐다. 외국인이 쓰는 화폐인 Cuc로 동네 가게에서 탕약 같은 커피를 주문하고 거스름을 현지 사람들이 쓰는 화폐인 Cup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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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먹으러간 레스토랑에서 남녀 무희들이 흥을 돋우는 춤을 선보였다. 자갈로 포장된 오래된 골목길을 마차가 돌아나가면서 트리니다드의 밤이 깊어졌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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