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속에 절, 절 속에 산

사진마을 2016.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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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서 사진전 '가야산 해인사-화엄세계'

동양화 전공한 사진가 임채욱, 수묵화 세상

 

 

 임채욱의 사진전 ‘가야산 해인사-화엄세계’ 사진전이 가야산 해인사 구광루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 12월 31일까지. 임채욱 작가는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에 작품활동은 사진으로만 하고 있다. 전화로 임씨의 이야길 들었다.

 

(임씨는) 늦게 대학교에 입학했다. 1997년 대학교 3학년 때 한지를 주제로 한 정부공모전에 대상으로 입상하여 2003년까지 벤처기업을 운영했다. 그러니 동양화를 전공했으나 작업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2007년쯤엔가 미술시장 전체가 활황이었다. 김아타의 사진을 구경하다가 사진도 그림처럼 표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림을 전공했지만 현대사진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무렵 이미 마흔 살이 다 되어가는데 그림을 시작하긴 늦었다는 점도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스케치 여행 다니면서 사진을 찍곤 했으니 사진이 완전히 생소하진 않았다.

  2008년 지인의 안내로 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렸던 아트페어에 부스를 사서 작품을 17점 걸었다. 모두 200여 명이 참가하는 대형 페어였고 그 중에 사진은 두 세 명 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모두 회화와 조각 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생애 최초의 전시였는데 18점이 팔렸다. 월천리 솔섬 작업은 5개의 에디션이 모두 나갔다. 판매된 18점의 고객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이고 나머지는 모르는 분들이었다. 사진이 주가 아닌 아트페어였다는 것이 중요했고 당시 작품은 사진이라기보다는 그림 같은 느낌이 나는 것이었다. 필름이었고 장노출이었다. 찍고 난 후 사진의 색을 바꾸었다. 눈으로 본 색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색이었다. 그때부터 가능성을 보고 2010년까지 근 40회의 페어나 전시에 참여했다.  
   2010년에 한지에 프린트하는 것을 시도했다. 한지업체와 함께 개발에 참여했다. 한지는 피그먼트 프린트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까다로운 기술이 있어야 했다. 한지에 대한 애착이 있었고 한지 세계화에도 뜻이 있었다. 2012년 무렵부터 산을 찍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먼저  ‘더 마운틴스’로 전시를 열어 외국의 반응을 먼저 살폈다. 2013년부터는 모두 한지에만 인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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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에서 그동안의 작품세계를 쭉 봤다. 주로 산을 찍었는데 갑자기 절이라서 느닷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3월에 서울 아라아트센터에서 ‘인터뷰 설악산’전시를 했다. 그 사진 중에 봉정암 가는 길도 있고 봉정암 부처바위도 있다. 한국의 산에는 절이 있으니 산에서 불교적 이야기가 보인다. 해인사 주지스님이 전시를 보러 왔다가 ‘감동받았다’라고 하시면서 해인사를 찍어달라고 요청을 하셨다. 그렇게 시작되어 3월부터 10월 초까지 열 번 넘게 해인사에 가서 며칠 씩 머물며 사진을 찍었다”


 -작가노트를 보면 해인사 장경판전 수다라장에서 찍은 연꽃 이야기가 있다. 1년에 두 차례 춘·추분에만 볼 수 있는 연꽃 이야기가 있는데 이게 뭘까?
 “수다라장은 대장경을 모신 곳인데 그 건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카메라 옵스큐라다. 문을 종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연중 춘분과 추분 무렵에 그것도 오후 3시께 5분에서 10분 정도만 연꽃을 볼 수 있는 앵글이 가능하다. 바깥에서 들어온 빛이 수다라장의 안쪽 바닥에 기와지붕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무려 6, 7백 년 전에 선조들이 건물을 지을 때 이것을 고려했으니 놀랍다. 바닥에 보이는 실핏줄 같은 선이 인드라망을 의미한다. 일즉다, 다즉일. 화엄세계의 완성이다”


 -불교와 인연이 있었나?
 “내 고향이 경북 성주다. 가야산이 보이는 곳이다. 대구에서 능인고등학교를 나왔다. 고 1 때 불교미술대전에 수묵화를 출품하여 입선한 적이 있다. 잘 이야기 안 하는 것인데…. 어렸을 때 그림을 좋아하던 나에게 물감 살 용돈을 주신 웅산스님이 있었다. ‘인터뷰 설악산’을 위해 사진 작업을 하다가 강원도 고성 화암사에 그 스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근 30년 만에 찾아뵈었다. 스님이 날 기억하셨고 약속 한 가지를 떠올리셨다. ‘네가 나중에 커서 화가가 되면 그림 9점을 나에게 선물하기로 한 적이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사진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왜 사진이냐며 실망하신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 약속을 못 지켰나?
 “지켰다. 산을 찍은 사진을 8장 들고 다시 화암사를 찾아갔다. 9점이 아니라 8점인 이유는 나머지 한 점이 화암사를 배경으로 찍은 것인데 홍콩 전시에 출품하느라 하나를 남겨두었는데 그것도 갖다 드릴거다. 어쨌든 사진을 보신 스님이 ‘수묵화 같다’면서 마음에 들어 하셨다. 화암사 가면 그 사진 8장이 걸려있다. 30년 만에 약속을 지켰다.”


 -사진과 동양화 중에 뭐가 더 쉬운가?
 “하하 그렇게 답을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각자의 세계가 있다. 나에겐 현재 사진의 세계가 더 맞는 모양이다. 어느 쪽이 더 쉽다고 할 수 없다. 그림을 작가가 원하는데로 그릴 수 있는데 반해 사진은 그게 좀 어렵다. 후보정 작업을 하지 않는 한 찍는 대상 자체에 제한이 많이 있어서 시간이 (회화보다) 더 많이 필요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초기에 월촌리 솔섬 작업 하면서 찍고 나서 색을 바꿨다고 하지 않았는가?
 “맞다. 마인드 스펙트럼 작업할 때는 사진과 회화 간에 접목을 시도했다. 현재는 후보정을 디지털로 하지 않는다. 부조작업은 한지로 인화한 사진을 손으로 구겨서 만진다. 부조처럼 튀어나오게 만든다. 이번 해인사 전시에도 부조 한 점이 있다. 아 무슨 질문인지 안다. 나의 작업은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설악산 작업, 이번 해인사 작업은 모두 기록이다. 내 작업의 기본은 다큐이지만 작품세계를 보여줄 때는 아트다.”


 -산 사진들을 보면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 해인사 사진은 스님이 많이 등장한다. 처음인 것 같다.
 “음. 그동안 산 사진을 보면 가끔 사람도 보인다. 아주 작아서 안 보일 뿐이다. 해인사의 사진도 스님들을 아주 크게 찍진 않았다. 점경인물이다. 풍경 속의 인물이다. 산 작업은 계속 할 것이다. 산 속에 절이 있으니 산만 할 순 없다”


 -곤란한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 사진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가?
 “음. 대형호텔에 내 작품이 걸려있다. 외국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그곳에선 한국의 산이 적합하다고 본 모양이다. (돈을 벌 수 있는) 프로젝트도 해야 한다.”


 -사진 공부를 한 적이 있는가?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다. 필름카메라로 시작해 중형, 파노라마까지 다 해봤다. 직접 부딪히면서 익혔다. 1년 하니 기술적인 면은 됐고 그 다음부턴 작품으로 끌어가고 있다.”
 
 임채욱 작가는 질문이 많아졌음에도 답을 더 많이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다. 동양화를 전공한 사진가라는 것에 대해 설명을 더 하고 싶은 듯했다.
 “다는 아니겠지만 사진을 전공하신 분들은 사진 이야기에 더 주력한다. 나는 사진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외적인 부분에도 편하게 접근한다. 예를 들자면 한지 작업도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해보는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려봐서 아는데 수묵화에도 필법을 드러낸다. 내가 붓으로 먹을 그어봐서 아는데 필선, 필법 이런 표현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사진에서 그게 가능하냐고? 눈이 왔을 때 가능하다. 대표적인 것이 울산바위다. 눈에 덮힌 바위에 호랑이 줄무늬가 보인다. 이것의 완성은 한지의 결이 있으니 가능하다. 눈의 질감을 살려내려면 한지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웹이나 도록으로 내 이미지를 보면 강하다는 느낌을 받겠지만 전시장에서 보면 수묵화의 필법이 드러나면서 깊은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해인사 전시 사진을 보니 겨울 사진이 하나도 없다.
 “10월까지 찍었고 전시일정이 잡혀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렇지 않아도 해인사 쪽과 협의해서 겨울에도 촬영하여 내년에 서울에서 완결된 ‘가야산 해인사-화엄세계’를 전시할 계획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쳤다. 임채욱의 사진은 해인사에 가야만 볼 수 있다니 아쉽다. 내년에 서울 온다니 기다려볼까 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임채욱 작가의 산 사진을 다시 한 번 보고 이번 해인사 전시사진을 다시 봤다. 산에 절이 있고 절에 스님이 있는데 풍경의 일부라는 뜻이 이해가 된다. 녹아들어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산에 있는 절이 산의 일부로 보인다면, 절에 있는 스님이 절의 일부로 보인다면 더 이상 인물이 아니라 풍경일 것이다. 이 역시 전시장에서 봐야 실감할 것 같다. 한편으로 해인사 사진의 몇 장을 보면 기본으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넘어서서 작품 발표도 다큐멘터리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전적으로 나의 생각일 뿐 작업은 작가에게 달렸다. 작가노트 전문을 소개한다.



 화엄세계

 

 해인사에는 일 년에 두 번 연꽃이 핀다. 

  

 해인사 장경판전 수다라장에 피는 이 꽃은 

 춘분과 추분에만 잠시 피었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빛과 시간 그리고 수다라장의 조화가 빚어내는 연꽃이다.

 

 이 연꽃을 만나기 위해 

 추분날 해인사로 달려갔다. 

 하지만 날씨가 흐려 하늘만 원망한 채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내년 춘분까지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셋째 날 역시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메고 수다라장으로 향했다. 

 오후 3시가 되자 구름 사이로 햇살이 잠시 비추는 듯했다.

 그러더니 해가 다시 구름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한숨이 나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햇살이 나타나 수다라장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순간, 그토록 기다리던 연꽃이 수다라장 가운데서 신비롭게 피어나는 게 아닌가!

 셔터 소리가 심장이 두근거리는 속도와 나란히 빨라져갔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어디선가 스님 한 분이 나타나셨다.

 그리고 정중히 합장을 하셨다.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순간 

 빛과 스님과 수다라장이 삼위일체가 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연꽃을 피웠다.

 

 화엄세계가 피어난 것이었다.       /임채욱

 

 

 

 임채욱 

 

 임채욱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한 후에 작품활동을 사진으로 시작하였다. 2016년 인터뷰 설악산전을 비롯해서 국내외 총 14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환기미술관의 ‘1970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후(2015)’ 외 50회 이상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특히, 2014년에는 영국의 사치갤러리와 Prudential이 공동 주최로 열린 제1회 The Prudential Eye Awards(싱가포르)에서 아시아 20인의 작가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한국의 산을 주제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화두로 삼고 사진작업을 하고 있으며 평면사진에서부터 한지에 프린트한 사진을 구겨서 만든 입체 및 설치영상까지 실험적이고 융합적인 조형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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